고전 11: 3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고전 11: 4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고전 11: 3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
본 절은 고린도 교인들 모두가 바울이 전한 전통(유전)을 지킨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비판받을 점이 있었다. 그것은 여자들이 공예배 때에 남자와 동등하게 수건을 쓰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졌다 할지라도 이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창조 원리를 통해서 논증한다.
1]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사도 바울은 남녀의 지위의 차이에 대하여 말한다. 구원 얻은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각 남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한다. 남녀의 지위의 차이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남자가 자신의 주관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2]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바울은 교회에서 공예배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그 논증의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세 단계의 질서이다.
(1) 머리
‘머리’라는 말은 주관자라는 뜻이다. 본 절에서 '머리'(*, 케팔레)는 '권위'를 의미하며, '유기체적인 복종'을 암시한다(Edwards, Morris, Meyer).
그리고 각 질서는 연합(union)에 의한 관계성을 나타내는데, 그 관계성은 교회의 질서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첫째 질서는 그리스도와 남자의 관계이다.
그리스도는 믿음을 통한 연합에 의해서 남자의 머리가 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그리스도와 남자의 연합 관계의 근거이다.
둘째 질서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이다.
남자는 결혼이라는 연합을 통해서 여자의 머리가 된다. 이것은 남녀가 본질에 있어서나 영적인 특권에 있어서 차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했다(갈 3: 28).
남녀는 본질에 있어서나 영적인 특권에 있어서 동등하다. 그러나 남녀는 그 지위와 역할에 있어서 다르며 여자를 주관할 자가 남자다.
그리스도인의 결혼 사상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즉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랑과 복종'의 관계로 설명되고 있다.
* 엡 5: 22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골 3: 18-19 –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 남편과 아내가 동등하며, 아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속이 남편과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차이가 없다 할지라도(), 지상의 다른 관계들 즉 주인과 종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의 섭리 아래에서도 여자의 복종의 위치는 지속된다(Godet, Meyer).
* 갈 3: 28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러나 이러한 질서는 존재 자체의 우열이 아니라 사랑과 화합과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창조 질서에 있어서 남녀 관계()는 지금도 존속(存續)하나 두 개체는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인격체이다.
* 창 3: 16 -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그러나 남녀 간의 성(性)의 구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
* 눅 20: 34-36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셋째 질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성(Fatherhood)과 그리스도의 아들 됨(Sonship)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신인(神人)이며 중보자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의 머리가 된다.
* 딤전 2: 5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신성(神性)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시며 그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지만, 그의 인성(人性)에 있어서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유일한 중보자시며 하나님께서는 인간 예수님보다 크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 28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말씀하셨다.
* 요 14: 28 -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 고전 3: 23 -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고전 15: 24 -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셨다.
* 요 5: 19 -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고전 3: 23 -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고전 15: 28 -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특히 본 절에서는 세 가지 질서 중 그리스도와 남자와의 관계가 제일 먼저 나타난다. 이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가능케 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서로의 관계를 형성시키는 요체가 되기 때문이다.
고전 11: 4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
기도하는 것은 주로 대표기도에 적용되며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아 말하든지 아니면 성경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 즉 오늘날 설교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교회의 집회 시 기도나 설교를 할 때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공적인 집회 시 여자들이 기도나 예언을 한 일이 있었던 것 같으나 바울은 본 서신의 뒷부분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교훈하였다(고전 14: 34).
1]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1) 머리
'머리'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신체적인 머리'로 해석한다(Erasmus, Beza, Bengel, Meyer).
본 절의 앞에서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라고 말함으로 신체적인 머리를 말하며, 5절에서도 같은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그리스도'로 해석한다(Hofmann, Maier, Osiander, Ruckert).
3절에서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한 것은 본 절에서 머리를 그리스도로 해석하기 위한 선언이었다고 본다.
이 두 견해는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이렇게 볼 때 본 절은 머리에 수건을 쓰는 상징을 헬라 관습처럼 이중적인 알레고리(allegory)로 사용하고 있다.
(2)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
본 절에 나타난 기도나 예언이 행해지는 장소가 어디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혹자는 가정 예배라고 하며(Bachmann, Hofmann), 혹자는 교회의 공적인 예배라고도 한다(Grosheide, Meyer).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전자는 그 견해의 근거로서 8: 1 – 11: 1에서 가정 문제를 다루었으며 별다른 주제의 전환이 없으므로 2절 이후에도 가정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미루어 기도나 예언도 가정 예배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2절에서 살핀 바와 같이 '데'(*, '이제')가 새로운 주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또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기도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본 절의 기도와 예언은 전체 교회를 위한 활동으로 공적인 예배에서 행해진 것이다.
* 고전 12: 10 -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 고전 14: 3-4, 22 –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더욱이 5절 이하에 나타난 본 장 내용에서도 공적인 예배를 전제로 바울의 권면이 전개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절의 공간적 배경은 공적인 교회의 예배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기도와 예언'은 본서 14장에서도 함께 나타나고 있는데, 거기서 기도는 방언을 말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
* 고전 14: 14-17 –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그래서 혹자는 본 절에서 말하는 기도를 방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Baur,Edwards).
2]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본 절에서 그리스도가 교회 질서 속에서 남자에게 여자에 대한 주권을 부여했는데, 만약 남자가 여자에 대한 순종의 상징인 수건을 머리에 쓴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체적인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인 머리를 부끄럽게 한 남자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주권을 부여한 영적인 머리 즉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롭고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소망 합니다.
밝은 미소와 기쁨이 가득 담은 행복에 문을 살포시 열어 봅니다.
향기에 예쁜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