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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정 |
백두산 종주 .연길 공항으로,, 2012년7월 다녀온 금액 :158만원확정. 최대성수기. | |||||
기 간 |
2013년 07월 19일 (금) - 2013년 07월 23일 (수). (4 박 5 일) | |||||
행 선 지 |
중국(백두산 종주 트래킹) | |||||
일 자 |
지 역 |
교 통 편 |
시 간 |
세 부 일 정 |
식 사 | |
제 1 일 7월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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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천
연 길
송 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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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 831 전용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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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0 08:20 11:5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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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3층 9번 출구 옆 “서경솔잎산악회” 인천 출발 (1시간45분 소요) 중국 연길 공항 도착/입국 수속 후 가이드 미팅후 이도백화로 이동. 대성중학교/윤동주시비/일송정/해란강,,등등관광. 이도백하 도착 후 석식 및 호텔 투숙 |
조:기내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 |
숙 박 |
영옥호텔(4성) 또는 동급호텔 | |||||
제 2 일 7월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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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강 하
남 파
송 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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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차량
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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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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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생태 탐사 관광 트레킹〉 호텔 조식후 남파산문으로 이동(2시간30분) 셔틀버스로 이동하며 관광 압록강대협곡-낙타봉-관명봉(2,656m)-천지 조망 감상(4호경계비) 악화폭포-고산화원-탄화목형성대-수직경관대-활 엽수에 기생하는소나무 관광 후 송강하로 복귀 석식후 호텔투숙 (*현재 산문 텐트는 최근 화재로 숙박 불가) |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 |
숙 박 |
장백산가일호텔(4성) 또는 동급 호텔 | |||||
제 3 일 7월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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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강 하 백 두 산 서 파 북 파 산 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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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차량
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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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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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외륜봉 종주 산행〉 호텔조식 후 서파산문으로 이동(40분) 5호 경계비 국경지대에서 일출 감상 및 사진촬영 천지 외륜봉 종주 등반(약 10시간 소요) 5호경계비 출발-마천루-청석봉-백운봉정상-차일 봉-녹명봉-용문봉-옥병폭포-온천지대하산후-소 천지-녹원담 가벼운 산책후 백두온천함. 2안:서파트레킹/불가시관광으로대치.(금강대협곡>제자하>고산야생화원,,등) 숙소에 도착 후 석식 및 온천욕(1회) |
조:호텔식 중:도시락 석:산장식 | |
숙 박 |
운동원호텔. 북파유일호텔. | |||||
제 4 일 7월2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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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두 산 북 파 통 화 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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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 차 도 보
전용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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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오 전
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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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 능선 종주 산행 〉 호텔 조식 후 보도 장백폭포 관광(약1시간30분) 짚차로 천문봉 방향(기상대)으로 이동 후 능선 종주 산행(약 4시간 소요) 철벽봉-화구내벽-천지물가(필히)-천문봉 짚차로 하산 중식 후 연길로 이동. 석식 및 전신맛사지체험. 연길도착 후 호텔 투숙. |
조:호텔식 중:산천어 석:현지식 | |
숙 박 |
해열시티프라자 호텔(4성) 또는 동급호텔 | |||||
제 5 일 7월23일 (화) |
연 길
인 천 |
KE 832 |
08:00
10:15 13:00 |
조식 후 공항으로 이동 연길 출발 인천 도착 후 해산. |
조:호텔식 중:기내식 |
※ 상기 일정은 항공기 사정이나 현지 사정에 의하여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알고가기 :
산행 중 중식은 행동식으로 제공되며 산행 중 비가 내리는 경우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에 우의(우산) 및 방한복을 반드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현지 기상이 악화되거나 위험이 있을 경우 현지 백두산관리국에서 산행을 전면 통제할 수 있습니다. 종주비 일부 환불은 5호경계비에서 산행을 조금이라도 시도하여 경계구역을 넘어가는 순간 불가능하니 가이드 또는 인솔자와 상의하여 대체일정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북파 산문안 유일한 운동원촌 호텔에 대한 안내 :
2011년 백두산 관리국에서 백두산 보호를 위해 산문안쪽 여행객 숙소를 철거하고 있습니다. 명성투어 이용하는 운동원촌 만이 정식적인으로 운용이 되며, 다음날 북파로 올라가는 지프출발지점에 위치하여 보다 편안합니다.
국제호텔, 천상호텔, 대우호텔은 철거를 시작하거나 준비중이고 타일이 벗겨지고 2012년 올해안에 다 철거할 예정입니다.
☀ 중국지역내. 겨레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백두산(2,750m)”
중국영토(45.5%) ☆북한영토(54.5%) 알고가기 ☀
우리가 가는 백두산은 중국지역내이다. 그래서 중국은“장백산(長白山)”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제일 큰 칼데라호를 가진 산이다.
우리의 옛 땅이고 우리의 조상인 “장수왕/광개토대왕”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국내성, 집안시를 돌아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 보시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 동부 최고의 산맥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흰 머리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 백두산을 장백산신으로 봉한 이후에 "장백산(長白山 : 창바이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원래는 화산활동을 하는 산이었으나 이미 250년 전에 활동을 멈춘 사화산(死火山)에 속한다. 백두산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식물원으로서 동북호랑이를 비롯한 희귀한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국가급 보호구에 속한다. 전체 면적 중 중국의 영토로 45.5%, 북한의 영토 54.5%에 속한다.
백두산 연평균기온은 -8도로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한다.
※ 동북 최고의 고산호, 천지(天池 :티엔츠) :
백두산 풍경 중 최고로 뽑히는 천지는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데에서 "천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형을 띠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0㎢, 호수 주위 길이가 13㎞, 평균수심이 204m 정도이다. 천지는 옛부터 안개가 많고 1년 중 맑은 날이 거의 없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천지의 물이 흘러 장백폭포와 온천을 형성한다. 또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천지를 닮은 작은 호수가 있어 '소천지'라고 불린다.
천지의 수심 중 가장 깊은 곳은 373m나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가장 깊은 화구호(칼데라호)로 알려져 있다. 이 곳의 연평균기온은 -7.3℃, 평균수온은 0.7-11℃이며, 11월에 얼어붙었다가 6월이 되어서야 녹는데 얼음의 두께가 1.2m나 된다.
천지의 수질이 매우 깨끗하여 먹을 수도 있으며, 주로 지하수와 강수량으로 채워진다. 이곳에는 잉어를 비롯한 몇 종류의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중국과 북한의 국경 호수로서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하지만 이곳의 기후가 불규칙하고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자주 발생해서 여행객들이 맑은 날에 천지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천지는 또 국경선이 통과해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놓여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 1년 내내 얼지 않는 장백폭포(長白瀑布 :창바이푸뿌) :
물줄기가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모양새로 웅장하게 떨어지는“비룡폭포”관광
천지 북쪽에 결구가 형성되어 있고, 천지의 물이 결구를 통해 1천여 미터의 긴 협곡까지 흘러 폭포를 형성했다. 장백폭포는 높이가 60여m의 웅장한 폭포로 200m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폭포는 크게 두 갈래의 물줄기로 나눠져 있고 동쪽 폭포 수량이 전체 수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떨어진 물은 송화강(松花江)으로 유입된다.
중국 북방의 폭포들은 모두 겨울에는 얼어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오로지 장백폭포만은 일년 내내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마치 용이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비룡폭포(飛龍瀑布)"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 민족기상의 발원지인“백두산천지”:
백두산은 민족정기의 발원지이며, 주변의 산을 갑자기 뚫고 솟아오른 형상으로 천지의 둘레는 14km이며, 천지 주변에 16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
백두산지역 현지기상상태(기상악조건)로 인해 짚차등정이 불가할경우 도보로 등반하실 수 있으며 천지관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 장백폭포주변의 위치한 다양한 온천군 :
[온천지대] : 백두산 기슭 곳곳에 산재한 온천은 최저 37도에서 최고82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백두산(서파)산문.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야생화 천상화원 :
큰원추리, 금매화, 노란만병초, 하늘매발톱, 개불알꽃 등 이름만큼이나 개성적인 1,800여 종의 야생화가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 군락지인“고산화원”관광(6월말~7월초순까지 야생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천지가 용암을 분출할 때 만들어진 V자 형태의 협곡으로 폭 100~200m, 깊이 70m, 길이 15km 규모로 기묘한 형태의 송곳바위와 천길낭떠러지, 에메랄드빛 계곡수가 아찔한 그랜드캐년을 방불케하는“금강대협곡”관광. 거대한 용암이 지하로 흘러들어 생겨난 제자하,높이 80M의 금강폭포.
제1일차 : 2012년07월28일(토)“심양도착 후 관광”
06:30 인천공항 3층 5번 E출입구쪽 "서경솔잎산악회"미팅 출국수속.
08:20 KE 831 인천공항 출발.(1시간45분 소요)
09:05 심양 공항 도착. 입국수속>현지 가이드 미팅>전용버스이용.
☀ 심양관광 ☀
▶ 북릉(세계문화유산)
▶ 서탑가
▶ 요령성 박물관
중식 후 송화로 이동(약 7시간 소요)
석식 후 “장백산가일호텔” 투숙 및 휴식
▒▒▒ 북릉(세계문화유산)청나라(후금)/조선 인조와(병자호란/정묘호란) ▒▒▒
북경에 자금성이 있다면, 심양엔 “심양고궁”이 있고 북경에 명13릉이 있다면, 이곳 심양엔 “북릉”이 있다.
한때는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고,
누루하치(청태조)가 청나라를 세워 2대 홍타이지(황태극,청태조)때까지 수고였던 심양 그래서 이곳엔 누루하치와 청태종이 머물렀던 고궁과 그들의 묘를 볼 수 있다.(청나라(후금)은 원래 명나라의 지배를 받던 만주족이었다)
- 청나라의 초기 수도였던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인 심양(沈陽, 선양)에 위치.
- 청나라를 건국한 청태조(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이면서.
청나라의 2대 황제인 태종과 황후 효단문이 묻혀있는 역사적인 유적지.
- 공식명칭은 소릉(昭陵), 심양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북릉(北陵)이라 불림.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 면적은 48만㎡이고 38동의 건물로 이루어짐.
※ 북릉 정문에서 능입구 연못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카트이용.
(요금은 1인당 우리돈 2천원)
※ 청태종의 무덤 :
- 만주족의 풍습에 의하면 능을 만든 후 개보수를 하지 않는다고 함.
- 무덤 한가운데는 스스로 자라난 나무가 있고 무덤 표면 위는 보호를 위해 시멘트 종류의 가루를 뿌려놓았음.
☀ 심양고궁에서 느끼는 점(우리 조선의 역사와 함께 한곳) :
인조가 병자호란에서 항복한 이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조선 효종)이 볼모로 끌러와 이곳에서 9년동안 살았다.
명분에 사로잡혀 병란을 부르고 결국 삼전도의 굴욕과 세자들의 볼모생활 등 불운한 집권생활을 했던 왕 인조, 그리고 포로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부녀자들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식을 했던 인조, 비록 세계문화유산인 심양고궁과 북릉이지만 이곳을 둘러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도 않고 오히려 씁씁해지는 것은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느끼는 감정이 같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정묘호란을 불러오고(당시 동아시아 주변국은 모두 국력이 쇠퇴하고 몰락하는 역사적 시점이었으며 그 시발점은 임진왜란이다.
일본은 1592년과1597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 한다.
1차 침입이 임진란에 일어나 임진왜란이라며, 2차 침입은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난 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이라 하면 이 두 침입을 통합하여 말한다)
=정묘호란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괄의 난(1623년광해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임금을 주장하자는 인조반정이 일어난다)=후금(청나라)의 침략(1627년1월14일(인조5년) 후금 누루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가 눈에 가시처럼 보였던 조선을 몽골 부족장 버일러에게 군사 3만을 주고 조선을 침략한다.
= 나중에 병자호란이 일어난다(명나라를 택할 것인가, 청나라를 택할 것인가 선택의 길목에서,,,병자호란=청나라는 1636년 12월9일 1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략이 병자호란이다(왕자를 보낼수 없다...전쟁을 치루자(척화론자와 주화론자와의 대립이 심하게 됨)
▒▒▒ 대륙정벌의 꿈을 안고 심양 타오센 공항 트랩을 내리며 찾아간,
서탑가(코리아타운) ▒▒▒
- 심양시의 동서남북에 탑과 절을 지어 그 서쪽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한 거리란 뜻으로 서탑가란 이름이 붙었으나 지금은 그 탑이 없음.
- 서탑가지역은 코리안타운으로 조선족들이 밀집해서 생활하고 있음.
- 사방 1㎞의 거리로 심양역에서 5분 거리이며 경제활동이 활발한 상업, 소비의 중심지이며 명소이다.
☞동북3성(요년성, 길림성, 흑룡강성)으로 배달되는 한국물품운 거의가 이곳에서 배송된다고 한다.
▒▒▒ 요령성 박물관 ▒▒▒
심양에 있는 요령성 박물관에는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있어 우리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유물도 많을 것이라 생각 한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우리 문화를 말살하려는 동북아공정의 일환으로 정리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있다.
요녕성의 성도인 심양은 동북3성의 경제, 물류 중심도시로 지형적으로 백두산에서 뻗은 용상의 산맥이 흘러 용의 꼬리 부분에 속하는 곳으로, 승천을 하는 용문 터로 혼화강(삼수강)이 휘둘러 흐르는 양지바른 땅에 위치하고 있다.
옛 후금(청나라)의 시조 누루하치가 태어난 곳이며, 1625년 청태조 누루하치가 수도를 요양에서 심양으로 옮겼으며, 제2대 혼타이지는 동 명칭을 성경으로 개명하였다. 심양은 요녕성의 성도이면서 중국 동북지방의 최대도시이다.
1625년 누르하치가 세운 금 나라부터 마주제국에 이어 청 와조가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서 번성하였으며, 북경으로 수도가 이전된 후에도 중국의 두 번째 수도로 동북 무역의 중심지로서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 참고로 = 후금이 청나라롤 국명을 개정한 것은 명나라는 불의 나라요,
후금은 금의 나라라서, 불이 금을 녹인다는 약재를 없애기 위하여 불을 끄는 물인 청나라로 바꾸었다. 1931년 9.18 만주사변 후 일본에 의해 봉천시로 개명되었다가 신 중극 설립(1949년)이후 다시 심양으로 개명하였다.
인구는 약 800만명(실제는 1,000만명) 이중에서 한족이 90%, 만주족, 조선족(약 10만명), 회족, 몽고족등 38개 소수민족이 10% 정도로 분포한다.
심양은 옛 고구려 영토로서, 심양주변에 고구려 산성 유적중의 하나인 석대자산성 이 존재한다. 조선 인조14년(1636년)에 발생한 병자호란으로 청나라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인질로 붙잡아가서 심양 고궁 주변의 조선관이란 곳에 기거토록 하였으며, 당시 척화론을 부르짖던 홍익환, 윤집, 오달제 등 3학사를 처형하였다.
일제의 조선 침략 및 만주점력으로 대한도립 투사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곳이다.
제2일차 : 2012년05월13일(일)“남파 생태 탐사 관광 트레킹”
호텔 조식 후 “남파산문”으로 이동.(약 2시간30분 소요)
※ 압록강대협곡>낙타봉>관명봉(2,656m)=천지조망 감상(4호경계비).
☞관광코스 :
악화폭포>고산화원>탄화목형성대>수직경관대>활엽수에 기생하는 소나무 관광.
☀ 장백현으로 오르는 백두산 남쪽 코스 명소 :
백두산 남파풍경구는 중 - 북변경의 압록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생태관광 환경보호가 가장 잘된 곳, 보존이 가장 잘 된 풍경구의 하나이다. 남쪽비탈을 따라 백두산에 오르면 천지의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성한 원시림, 독특한 화산지모, 비단처럼 펼쳐진 고산화원, 심산속의 악화폭포, 희귀한 고산습지, 웅장한 압록강대협곡, 중 - 북 4호경계비 등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1) 압록강상류류역 :북한국경수비대를 간혹 볼수 있는 개울과 같은 압록강상류.
2) 압록강대협곡 :백두산 화산폭발당시 용암에 패운 거대한 규모의 압록강대협곡.
3) 탄화목형성대 :
백두산 화산폭발당시 불에 탄 나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구역.
4) 수직경관대 :
멀리 북한측백두산에 남겨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글이 바라보이는 구역.
5) 활엽수에 기생하는 소나무 :기이한 자연의 걸작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6) 백두산남파에서 천지 감상-북한땅을 밟으면서 오르는 이 코스는 북한-중국 4호 국경경계비에서 천지를 감상하실수 있습니다.
☞ 백두산 이름을 있게한 “부석” 남파에서만 볼수 있는 곳 :
셔틀버스로 남파로 이동하다 보면 봉우리 언덕도 희고 도로변 돌들도 희다.
남파는 이 부석(浮石) 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화산석으로 너무 가벼워 물에 뜬다. 그래서 부석이다. 우리는 물에 뜨는 가벼운 돌을 '부석 돌'이라고도 하는데.....이 부석이 산머리에 가득해 멀리서 보면 희게 보여서 백두산이라 한다.
산 머리[마루]가 하얀 산. 백두산(白頭山).....중국쪽에서 말하는 창바이산(長白山)도 결국 같은 뜻. 마루[으뜸, 높다 뜻의 長]가 흰[白] 산이라 새길 수 있으니 말이다. 길가에는 낙석 위험 지대가 많았다. 다 부석 때문이다.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아찔했고, 낙석 방지를 위한 보수를 막 해댄 흔적도 역력했다.
제3일차 : 2012년07월30일(월)“서파>북파(천지 외륜봉 완전정복),
장백폭포(60m) 트레킹”
호텔 조식 후 “서파산문”으로 이동.(약 40분 소요)
☞ 산행코스 :약15km. 10시간정도.
북한과의경계인5호경계비(2,373m)출발>마천봉을 우회하여 청석봉(2,662m)>계곡 주변의 야생화 감상하며 트레킹>서파 최고의 전망 위치인 백운봉(2,691m)정상>낙석지대의 녹명봉(2,603m)>초원지대의 용문봉(2,596m)>옥병폭포>온천지대하산 후>소천지>녹원담 가벼운 산책 후>백두온천함.
☀ 백두산은 1962년 조중 변계조약에 따라 천지는 북한이 54.5%이며,
중국은 45.5% 차지하고 있다. 북한이 7개 봉우리,
중국이 9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제4일차 : 2012년07월31일(화)
“지프차량으로”천문봉“오름/기상대가있음/천지물가/장백폭포”
▶ 산행코스 :
지프차량으로천문봉오름>평타이>활구>천지물가>너덜바위>짚차로하산>장백폭포관광.
제5일차 : 2012년08월01일(수)
“조식 후 심양 공항출발>인천공항도착”
10:15 심양공항출발.
13:00 KE 832 인천공항 도착.
☀ 백두산 코스 알고가기 :
1.이도백하에서>북파산문을 거처>소천지>장백폭포>천문봉>백두산 천지를 돌아보는 북파관광 코스이다.
2.쑹장허에서>서파산문을 지나서 고산화원>백두산대협곡>백운봉>백두산 천지를 돌아보는 서파관광 코스이다.
3.창바이현에서 출발하여>남파산문으로 들어가 압록강대협곡>백두산 천지를 돌러버는 남파관광 코스이다.
☀ 1962년10월12일“백두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북)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변계조약 ☀
조중 변계 조약(朝中邊界條約)은 1962년 10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양국이 평양에서 체결한 국경 조약으로, 1964년 3월 20일 베이징에서 양국이 의정서(조중 변계 의정서)를 교환함으로써 발효되었다.
이 조약은 백두산 · 압록강 ·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양국의 국경선을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과 중화인민공화국 저우언라이가 양국을 대표하여 서명하였다.
☞ 조약의 내용 :조중 변계 조약은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그리고 황해 영해(領海)의 국경선에 관한 내용을 적고 있다.
조약문에 따르면 백두산 천지(天池)의 경계선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마루의 서남쪽 안부(鞍部, 안장처럼 들어간 부분)로부터 동북쪽 안부까지를 그은 직선'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 천지의 54.5%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45.5%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한다.
또한, 조약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경계 및 두 강의 하중도와 사주(砂洲, 모래톱)의 귀속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는데, 이 조약의 의정서에는 양측 국경의 총 451개 섬과 사주 가운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64개의 섬과 사주(총 면적 87.73㎢)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은 187개의 섬과 사주(총 면적 14.93㎢)에 대해 영토권이 있음을 열거하고 있다.
☞ 역사적 배경 :조선과 청나라는 1880년대에 두차례 걸쳐 백두산과 그 동쪽의 국경을 명확히 획정하기 위한 감계(勘界) 회담을 가졌으나, 회담은 모두 결렬되었다. 제1차 감계회담(1885년)에서는 양측이 백두산정계비에 쓰여진 동위토문(東爲土門)의 "토문(土門)"이 두만강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다투었다. 당시 조선측은 정계비의 위치상 '토문은 두만강과 별개의 강이다'고 주장하였고, 청측은 양국의 기본적인 국경선이 두만강이라는 전제하에 '토문은 곧 두만강을 지칭한다'고 주장하였다.
제2차 감계회담(1887년)에서 조선측은 백두산 산정(山頂)에서 가장 가까운 두만강 상류인 홍토수(紅土水)를 국경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고, 청측은 삼지연에서 흘러나오는 두만강의 지류인 홍단수(紅丹水)를 국경으로 주장했다가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의 논리에 밀리자 홍토수의 남쪽 지류인 석을수(石乙水)를 경계로 삼자고 수정제의하였다.
1909년 9월 4일, 조선이 외교권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청나라와 일제(日帝)는 간도 협약을 체결하여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고, 백두산정계비를 기점으로 하여 석을수를 그 상류의 경계로 정하였다.[3]
1945년, 일제가 패망함으로써 일제가 체결한 조약인 간도 협약은 무효가 되었다. 이에 새로 국경선을 정하기 위해 체결된 조약이 조중 변계 조약이다.
☞ 조약의 의의와 한계 :조중 변계 조약은 백두산의 국경을 자연 경계인 천지(天池)로 하고[4] 그 동쪽 국경을 천지에서 가장 가까운 두만강 상류인 홍토수(紅土水)로 하는 자연스러운 국경을 정함으로써 19세기 후반부터 한세기 동안 논란을 이어 온 백두산과 두만강 상류의 국경선을 명확히 획정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한계 :조중 변계 조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양측이 모두 비밀로 하였기 때문에 그 구체적 내용은 1999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조약은 양국이 모두 그 체결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없는 비밀 조약이므로 한반도 통일 과정이나 그 이후에 국경 분쟁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냉전시대였던 1980년대 초에 백두산 천지(天池)를 북·중 양측이 분할했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알려진 후 한동안 한국전쟁 참전의 대가로 북측이 천지의 절반을 중국측에 할양했다는 주장이 신뢰할 만한 근거 제시 없이 대북(對北) 불신감에 의존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며[5], 현재도 북측이 토문(土門)을 국경으로 주장하지 않아 간도(間島)의 영유권을 포기했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가 없지 않다.
주석 :1.대한민국에서 발행된 지도들은 천지(天池)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로 보아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북쪽 산마루를 이은 선'을 한국과 중국 사이의 국경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선은 조중 변계 조약에 따른 국경선과 같아서 간도 지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표시하고 있는 지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조중 변계 조약 제2조제1항에는 "조약 체결 전에 이미 한쪽의 공민(公民)이 살고 있거나 농사를 짓고 있는 섬과 모래섬은 그 국가의 영토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3.간도 협약 제1조 원문 "第一條 日淸兩國政府ハ圖們江ヲ淸韓兩國ノ國境トシ江原地方ニ於テハ定界碑ヲ起點トシ石乙水ヲ以テ兩國ノ境界トナスコトヲ聲明ス"(제1조 일·청 양국 정부는 도문강을 청국과 한국의 국경으로 하고, 강 원천지에 있는 정계비를 기점으로 하여 석을수를 두 나라의 경계로 함을 성명한다.)
4.이전에 백두산 국경의 표석이었던 백두산정계비의 위치는 천지(天池) 남동쪽 4Km 지점이었기 때문에 한·중간 국경으로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조중 변계 조약의 국경 획정으로 천지의 54.5%와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한국(북조선) 영토로 확정했다는 점에서 한국 전쟁 참전의 대가로 북·중이 백두산 천지를 분할했다는 설(說)은 근거가 없다.
5.김영광의원 외 54인(1983년9월16일). 백두산 영유권 확인에 관한 결의안. 대한민국 국회.
◈ 아래 내용들은 2012년도 겁니다.
참고 하세요.
백두산 완전정복.(남파/서파/장백폭포/북파(천문봉)/천지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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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두산 서파지역(5호경계비)으로 등정, 천지 조망후, 천지를 우측에 두고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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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두산의 아름다운 야생화 지역(고산화원)의 트레킹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습니다.
4. 백두산 천지는 보는 위치에 따라 새로운 감동을 가져옵니다.
5. 백두산의 숨겨진 비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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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백두산 최고봉인 백운봉과 청석봉,녹명봉,용문봉 등정.
8. 북파지역 <장백폭포><온천지대> 관광.
9. 백두산 서파,북파 입장료+트레킹 비용 및 산악가이드 비용 추가 발생
*** 참고 트레킹 비용 : 서-북 종주(160불)2012년7월 현재.
북파 :160불.(2012년7월 현재)
<패키지 상품>
1. 서파 지역(계단) 과 북파 지역으로 구분하여 상품 판매(백두산 입장료만 발생)
2. 서파 지역(5호경계비) 관광시 계단 990 계단으로 등정후 천지 조망(약 30분)후 하산
3. 북파 지역(천문봉) 관광시 짚차로 천문봉 등정후 천지 조망(약 30분)후 하산
4. 패키지 상품은 천지에서 날씨가 나쁘면 잠시 기다렸다가 천지 못보고 오는 경우가 많음.
5. 여행시 쇼핑, 옵션을 하기 위해서 관광시간을 줄여야 함
6. 백두산 야생화를 감상하기 어렵습니다.(트레킹 지역으로 조금도 갈수 없음)
★ 패키지 여행사에서 쇼핑,옵션을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하나 정말 가능할까요 ???? ★
- 2012년 5월 14일부터 중국현지 여행사 초청장필요 :중국 비자 발급시.
중국 동북3성(길림성,요녕성,흑룡강성)의 최대도시.
심양은 요녕성의 성도이면서 중국 동북지방의 최대도시이다. 1625년 누루하치가 세운 금나라부터 만주제국에 이어 청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서 번성하였으며, 북경으로 수도가 이전된 후에도 중국의 두번째 수도로서 동북 무역의 중심지로서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심양이라는 이름은 원대에 지리적으로 심수(沈水)의 양(陽 / 풍수사상에 의하면 물의 북쪽을 陽,남쪽을 陰이라 칭한다)에 위치한다고 하여 심양로(沈陽路)라 불리기 시작하였고 1625년 청태조가 도성을 요양(遼陽)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1634년 청 태종이 심양을 성경(盛京)이라 개명하였다. 이후 1644년 수도를 다시 북경으로 옮기면서 배도(陪都)라 개명하였고 청조가 중국을 완전히 통일한 후에는 이곳에 봉천부(奉天府)를 설치하였다. 심양이라는 이름은 1945년에야 다시 찾게되었다. 금나라를 시작으로 만주제국에서 청대까지가 부흥시기였기에 이곳에 가면 만주시대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있으며, 심양 고궁, 청대황제의 릉(복릉, 북릉 등) , "九一八"사변기념관, 장씨솔부 등 다양한 관광지들이 분포되어 있다.
◈ 중국속의 작은 한국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여 러시아,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이 4만 3547㎢, 인구가 219만 5000명 정도로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40%가 조선족이다.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이곳을 개척하였고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이후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어 1955년에는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연길(延吉)·도문(圖們)·돈화(敦化)·화룡(和龍)·용정(龍井)·훈춘(琿春)의 6개시와 왕칭(汪淸)·안도(安圖)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도문강·송화강(松花江)·목단강(牡丹江)·소분강[綏芬江] 등이 있고, 도문강 유역에는 '동북아 금삼각주(東北亞金三角州)'라고 불리는 국제개발지, 훈춘경제개발지가 있다.
조선 말기 우리 민족에 이주하면서부터 연변은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으며 그 때문에 청산리 항일전승지(靑山里抗日戰 勝地)·봉오동(鳳梧洞) 항일전승지·일송정(一松亭) 등 유적지가 많다.
◈ 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도시 연길(延吉 : 이엔지)
연길은 2,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년 전부터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이며 중국 조선족 문화의 중심지로 백두산과 가까워 매년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연변에서는 사람들의 옷차림, 집, 길거리를 둘러봐도 전혀 낯설지 않은, 우리 나라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자치주 스스로 그 민족 나름대로의 지역을 가꾸어 나가도록 하는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따라 연변자치주 내의정부기관이나 신문 광고 등에 조선족 자체의 문자를 우선적으로 쓰고 있고, 그 때문에 연변의 거의 모든 옥의광고가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글이 공용어로 되어 있다.
연길은 중온대 반습윤기후에 속해, 여름에는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며 겨울이 길고 춥고 뚜렷한 대륙성 계절풍 기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5.7℃, 최저 -32.7℃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연길의 면적은 390㎢, 인구는 약 25만 8000명(1993)에 달하며 주변 농업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집산지이다. 이곳은 청(淸)나라 말기에 간무국(墾務局)이 설치된 뒤 발달하였기 때문에 국자가(局子街)라고도 불렀다.
1902년 옌지청[延吉廳]이 설치되고 1909년 부(府)가 되었으며, 1913년 중화민국 수립 후 현(縣)이 되었다. 1909년 간도협약(間島協約:젠다오협약) 이후에 교역주로서 개방되자 많은 한국인 이민이 이주하여 시의 주변지역을 개척하였다. 부근에 석탄·금 등의 광산이 있고 광공업이 발달해 있다. 한국어방송국과 신문사가 있으며, 의과대학·연변대학 등이 있다.
◈ 연길을 여행할 때 주의할 점
연길시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일용품 생산지로서 가구와 한복을 비롯하여 전통 악기, 식기 등 60여 가지의 제품이 생산, 공급되고 있다. 연길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들에게는 단순한 여행의 의미 이상의 느낌을 갖게 하므로 매년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도처에서 조선족 동포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초청이나 현지 투자 등을 쉽게 약속해서는 안 된다.
◈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용정(LONG JING, 龍井)시 :
연길에서 30분 거리의 백두산 길목에 있는 위성도시이다.
길을 가면서 저멀리 산에 서있는 일송정과 선구자의 가사 속에서 항일정신을 돋우던 해란강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아직도 시비가 서있는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대성중학교, 용정우물터가 있다.
◈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 도문 (圖們, TUMEN) :
연길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문은 길림성 동부의 중요한 철도교통요충지로 길림시,장춘,하얼빈, 단동강,심양,북경 등지로 가는 여객열차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65년도에 시로 승격되었으며, 현재는 중국, 북한의 국경으로 길림성 최대 변경도시이다. 중국과 북한은 도문대교로 연결되어 그 절반으로 국경을 나누고 있어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중국,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북한으로 정하고 있다. 중국쪽 다리 입구에서 약간의 돈을 내면 다리의 붉은색 끝까지 갈 수 있다. 다리 아래로 두만강과 강건너편의 북한의 산하와 건너편에 지어진 북한의 도시를 볼 수 있다.
1920년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독립군이 일본군 1개 대대를 격파한 봉오동 전투의 전적지가 주변에 있다.
◈ 민족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일송정(一松亭) :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시작되는 노래와 항일독립운동을 그린 동일의 영화가 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에 보면 길 오른쪽의 야산 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눈에 띄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일송정'이다.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있다. 또 이곳에서 혜란강의 물줄기를 볼 수 있지만 지금은 물줄기가 말라 모습이 미흡하다.
용정 시민들의 말을 빌리면, 오래 전 이 곳에는 정자 모양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이 소나무 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항일의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고 한다. 이를 미워한 일제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넣어 일송정을 고사시켰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후반 중국정부 당국에서 이곳에 '일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 두만강(豆滿江) :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에 위치한 강이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분단의 아픔을 지닌 곳이며, 최근에는 월북자들이 이곳에서 생사를 달리하 는 가슴아픈 장소가 되고 있다.
길이 547.8㎞, 유역면적이 32,920㎢며, 주요 지류인 상류는 현무암으로 된 용암대지 및 화강암·화강편마암으로 된 무산고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백두산과 무산 사이에서 흘러드는 소홍단수나 서두수에서 비롯되고 있다.
두만강 유역은 동계혹한 기후에 속해 있어서 강우량이 적고, 일대 산림의 대부분이 성숙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연안에 넓은 초원이 발달하여 목축이 성하고, 부령에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 해란강(海蘭江)
두만강 지류로 선구자에서 언급된 용정지역의 강이다. 이 강이 선구자에 언급된 이유는 우리 민족이 간도 지방에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해란강 주변의 들판이었고, 그 중심 젖줄이 해란강이었기 때문이었다.
◈ 윤동주가 다녔던 용정중학교(구 대성중학교)
민족 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학교이다.
현재는 용정제일중학교(龍井第一中學校)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실제로 학생들이 이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단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어져, 구관 앞에는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가 세겨져 있는 윤동주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으며, 건물 2층에는 기념전시관이 꾸며져 있다.
기념관에는 사진, 화보, 책자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당시의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곳은 재야 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와 정일권 전 총리의 모교이기도 하다.
♣ 백두산(白頭山) ♣
중국에서 '장백산(長白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백두산은, 높이 2,750 m 로 세계적으로 제일 큰 칼데라호를 가진 산입니다. 250년 전 화산 활동을 멈춘 사화산으로 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영토, 2/3은 북한영토입니다. 경치가 아름답고 희귀한 동 식물이 자생하여 중국의 국가급 보호구에 속해 있습니다.
◈ 겨레의 숨결이 살아 쉬는 백두산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 동부 최고의 산맥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 '흰 머리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청나라때 백두산을 장백산신으로 봉한 이후에 "장백산(長白山 : 창바이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원래는 화산활동을 하는 산이었으나 이미 250년 전에 활동을 멈춘 사화산(死火山)에 속한다. 백두산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식물원으로서 동북호랑이를 비롯한 희귀한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국가급 보호구에 속한다. 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의 영토로,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한다. 백두산 연평균기온은 -8도로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한다.
◈ 동북 최고의 고산호, 천지(天池 : 티엔츠)
백두산 풍경중 최고로 뽑히는 천지는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데에서 "천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형을 띠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0㎢, 호수 주위 길이가 13㎞, 평균수심이 204m 정도이다. 천지는 옛부터 안개가 많고 1년 중 맑은 날이 거의 없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천지의 물이 흘러 장백폭포와 온천을 형성한다. 또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천지를 닮은 작은 호수가 있어 '소천지'라고 불린다.
천지의 수심 중 가장 깊은 곳은 373m나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가장 깊은 화구호(칼데라호)로 알려져 있다. 이 곳의 연평균기온은 -7.3℃, 평균수온은 0.7-11℃이며, 11월에 얼어붙었다가 6월이 되어서야 녹는데 얼음의 두께가 1.2m나 된다.
천지의 수질이 매우 깨끗하여 먹을 수도 있으며, 주로 지하수와 강수량으로 채워진다. 이곳에는 잉어를 비롯한 몇 종류의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중국과 북한의 국경 호수로서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하지만 이 곳의 기후가 불규칙하고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자주 발생해서 여행객들이 맑은 날에 천지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천지는 또 국경선이 통과해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놓여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 1년 내내 얼지 않는 장백폭포(長白瀑布 : 창바이푸뿌)
천지 북쪽에 결구가 형성되어 있고, 천지의 물이 결구를 통해 1천여 미터의 긴 협곡까지 흘러 폭포를 형성했다. 장백폭포는 높이가 60여m의 웅장한 폭포로 200m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폭포는 크게 두 갈래의 물줄기로 나눠져 있고 동쪽 폭포 수량이 전체 수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떨어진 물은 송화강(松花江)으로 유입된다.
중국 북방의 폭포들은 모두 겨울에는 얼어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오로지 장백폭포만은 일년 내내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마치 용이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비룡폭포(飛龍瀑布)"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백두산은 민족정기의 발원지이 주변의 산을 갑자기 뚫고 솟아나온 형상으로 천지의 둘레는 14km이며, 천지 주변에 16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
백두산지역 현지기상상태(기상악조건)로 인해 짚차등정이 불가할경우 도보로 등반하실수 있으며 천지관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줄기가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모양새로 웅장하게 떨어지는 '장백폭포(長白瀑布)' 관광
-물줄기가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모양새로 웅장하게 떨어진다하여 '비룡폭포(飛龍瀑布)'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겨울에도 얼지않아 일년 내내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장백폭포주변의 위치한 다양한 온천군 :
-[온천지대] : 백두산 기슭 곳곳에 산재한 온천은 최저 37도에서 최고82도까지 올라간다백
◈ 백두산(서파)산문 :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야생화 큰원추리, 금매화, 노란만병초, 하늘매발톱, 개불알꽃 등 이름만큼이나 개성적이며 아름다운 1,800여 종의 야생화가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 군락지인 '고산화원'관광(6월말~7월초순까지 야생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천지가 용암을 분출할 때 만들어진 V자 형태의 협곡으로 폭 100~200m, 깊이 70m, 길이 15km 규모로 기묘한 형태의 송곳바위와 천길 낭떠러지, 에메랄드빛 계곡수가 아찔한 그랜드캐년을 방불케하는 '금강대협곡' 관광
▶거대한 용암이 지하로 흘러들어 생겨난 제자하,높이 80M의 금강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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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사자산님 !
수고 좀 해주세요.
준비 과정은 제가 준비를 하겠습니다.
연길 비행기표 직항 예매만 단체로 꼭 해주셔야 합니다.
거듭 부탁을 드립니다.
연길 직항 비행표 예약 부탁을 합니다.
비행기 예약금 80만원 먼저 받겠습니다.
ㅎㅎㅎ,,,
사자산님 !
1월25일부로 :데이님/나라누나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박상욱님 여권앞면에 팩스를 보내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ㅎ,,,
누나 ! 두분을 환영을 합니다.
멋진 백두산 일정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연길 직항 비행기표예약이 중요 합니다.
백두산 버스로 진입하는데 한 두 시간이면갑니다.
그러나
장춘이나 심양으로 갈 경우 8시간 내지 9시간을 버스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2월 초에 비행기표를 미리 예약 하는겁니다.
사자산님 !
산쿡님하고 연락해서 여권앞면 받으신분 명단좀 이곳에 올려주세요.
그리고
2월5일까지 80만원 입금자도 명단을 올려주세요.
부탁을 합니다.
연길 직항 비행기표 예약이 제일 중요하기때문 입니다.
ㅎㅎㅎ,,,
사자산님 !
저희 직원동료 박상욱 011/9020/7947.님 2013년2월27일 19:00부로 취소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수아님 언니
김경숙님 참석 합니다.
백두산 갑니다
ㅎㅎㅎ,,,
형님 ! 고맙습니다.
사자산님 형님이름은 유익상 입니다
.
백두산 완전정복 준비를 철저히 하겠습니다.
여권은 보내지 않으셔도 뵙니다.
비행기표 예매금만 일부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2013년5월14일 화요일 현재 연길 직항 백두산 왕복표 5월10일 금요일보로 끝났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한사람이라도 이탈이 있으면 전체 일정에 크나큰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무슨일이 있더라도 약속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백두산 연길 왕복 직항표 입니다.
참으로 편안하게 백두산을 다녀올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무슨일이 있으면 광효 010/5294/9523. 전화나 문자를 꼭 주시길 바랍니다.
ㅎㅎㅎ...
2013년7월19일(금)~23일(화) 여름휴가철"백두산 트레킹" 연길 왕표비행기표.
160만원확정.7월5일(금)까지 완납을 부탁을 드립니다.
미팅는 7월16일 화요일 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ㅎ,,,
누나 ! 연락을 좀 드릴려고 전화나 문자를 해도 도통 통화를 할수가 없네요.
연락할수 있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7월16일 미팅 참석은 어떻게 하실건지 미리 답좀 주세요.
ㅎㅎㅎ,,,
국제호텔 입니다.
저녁7시에 만납니다.
전화 번호 맛는것 좀 죠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