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의 운무 (천문산옆 천문동)
2006 6/22 (목) 드디어 하늘이 내린 비취한조각 장가계를 떠나는 날이다. 모두들 장기간 집을 비우는 관계로 남아 있는 식구들의 반찬을 준비하랴, 집안 청소를 하랴 분주한 며칠을 보내면서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허리가 좋지 않아 많이 힘들어하는 유초가 남편과는 처음으로 가는 중국여행이라 아픈 허리를 이끌고 가기로 결정함으로 인천공항에 차를 팍킹하고 미팅장소로 갔다.
패키지로 가는 또다른 특색은 모르는 사람들과 공항에서 여행의 동반자를 만나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대구에서 오신 신한은행지점장 부부,이전 제일은행에 몸담고 계셨다는 부부,정년퇴임하신 교사부부, 천안대에서 대금을 가르치는 교수한분, 또한 젊은 한의사 한분, 배낭여행을 자주 하신다는 분과 그의 친구분, 그리고 우리팀 6명 이렇게 16명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오후 8시 30분에 장사 직항 전세기 아시아나 항공으로 출발했다
오후 11:30분이 되어서 장사 공항에 도착 다시 40분 버스로 이동 12 :10분경에 부용화천호텔에서 오늘의 여정을 풀었다. 중국은 우리보다 한시간 빠른 시차로 우리나라 시간 12시 10분이면 중국에선 11:10분이다.
장가계( 신선들이 그려 놓은 수묵화 인가??) 최근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중국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원래 대웅시였으나 1994년 장가계시로 승격, 인구 150만명, 20개의 소수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으며 그 중 토가족(土家族) 7-80%, 백족(白族), 묘족등이 살고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원시상태에 가까운 아열대 생태 보물 창고이다. 약 3억8천년 전 이곳은 바다였으나 후에 지구의 지각운동으로 해저가 육지로 솟아 올랐고 억만년의 침수와 자연 붕괴등의 자연적 영향으로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 맑은계곡,아름다운 호수등 자연 절경이 조화를 이루어 수려함을 뽐낸다.
계림이 둥그런 봉우리와 같은 어머니산이라면 장가계는 날카로운 봉우리로 우뚝 솟아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비유한다. 1982년 "장가계 국가 삼림공원"으로 지정된 뒤 20년을 넘게 발전하고 계발하는데 한국사람들이 일익을 했다고 할만큼 한국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많이 온다고 한다. 나 역시도 이렇게 외화 낭비하며 그네들에게 관광수입을 올려 주고 있으니 말이다.1992년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
사람이 태어나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수가 있겠는가?!(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라는 말도 있듯 중국 장가계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번 여행할 코스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토가족(土家族) 중국 각성에 두루 분포되어 있으나 이곳 장가계가 본 지역이며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체구가 유난히 작고 다양한 형식의 춤과 무술을 즐기며 그네들만의 독특한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다, 짜고 향료가 짙은 음식을 먹고 오랫동안 처마에 매달아 놓은 발효된 돼지고기를 별식으로 먹는다. 구애방법은 여자가 남자의 발등을 세번 밟으면 남자가 여자의 발굽을 두번 친다. 잘울고, 수를 잘 놓고, 발이 작아야 일등 신부감이란다. 결혼날짜를 받아 놓고는 헤어지기 서러워 서굴프게 울어야 한다는데 우리나라 돈 1000원을 주면 리듬에 맞추어 우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한다. 그리고 지금도 대가족이 한집에 어울려 산다. 티벳에 있는 장족 다음으로 토가족들이 무서운 민족이다. 무슨일이 생기면 순식간에 벌떼 모이듯 모여들어 그네들 유리한 쪽으로 일을 해결하며 지금은 돈만 주면 당장 앞에 있는 사람까지 해친다고 한다.
백족(白族) 여자들 시집가기 한달전부터 생이빨을 억지로 뽑으면 신랑집에서 금니를 해주는데 다시 며느리를 보면 시어머니의 금니을 다시 뽑아서 며느리에게 해 준다는 웃지 못할 유래가 있다. 그래서 백족 나이든 늙은 분들을 보면 이빨이 없는 사람들을 종종 볼수가 있다 한다 . 하지만 요즈음엔 이빨을 빼지 않고 이위에다 금을 씌워준다고 한다.
발마사지 약초 끊인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동안 팔,다리,어깨까지 주물러주기 때문에 전신 마사지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 발 전체에 크림을 바른후 손마디에 강,약을 주어 발을 눌러 주고 당겨주고 두드려주는 동안 장가계를 구경하면서 힘들었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래서 장가계 발마사지는 유명하다. 상해보다 훨씬 개운하고 시원하다. 가격은 20,000원, 전신마사지는 30,000원 이것은 호텔에서의 가격이고 다른곳에서는 훨씬 싸다.
화장실(洗手間, 衛生間, 厠所) 호텔과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삼림공원입구에서는 유료이다. 중국돈 5각(70원정도)인데 우리나라돈 1000원을 내도 거슬러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필히 위엔화로 준비하여 사용할것. 호텔을 제외한 대부분이 칸막이는 되어 있으나 앞문이 없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화장실을 쓴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하나 차츰 적응이 되어 간다. 아직은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와 많이 달라 냄새가 많이 난다.
화폐 이번에는 환율을 1위엔에 125원으로 환전하였으나. 재작년에 150원에 환전했는데 궂이 환전을 해가지 않아도 장가계에는 우리나라돈이 한국에서 쓰는것과 같이 통용된다.
가마 보봉호나 금편계곡등 걸어서 올라가기 힘든 사람을 위해 곳곳에 가마꾼들이 있는데 두사람이 메는 이용료는 2만원이다. 값을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하면 가마꾼 1인당 2만원라고 4만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음식 식성이 좋은 사람은 무난하지만 기본적으로 중국 음식은 기름끼와 향신료가 우리의 음식 문화보다는 강하므로 중국 여행을 할 친구들이라면 한국에서 고추장(튜브 기내식에서 나오는 튜브고추장이면 나로서는 만족), 캔 깻잎, 고추장에 볶은 멸치, 구운김, 캔 아삭이 고추(삮힌 고추) 등 준비해 간다면 함께 먹는 식사맛 끝내줘요...
2006 6/23 (금) 아침에 일어나보니 전날 저녁 가이드의 옷가방을 버스 앞칸에 실었는데 없어 졌단다. 여러모로 수소문 하였으나 못 찾았단다. 다들 안타까워 하면서 우리 일행은 8시 30분에 장가계로 출발하였는데 장사에서 장가계까지는 370키로미터로 약 5시간이 소요된단다.
중국은 워낙 땅이 크고 넓다보니 우리나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간이다. 번잡한 시가를 벗어나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여러번 느낀 바 이지만 고속도로 선상에는 차들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기사가 시속120-130킬로는 놓고 달리겠지만 이곳 기사들은 한적한 길이라도 100키로를 넘기지 않으니 급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선상의 차의 흐름을 깬다고 뒤에서 빵빵거리며 난리일 것이다.
가이드의 구수한 이야기를 들으며 고속도로 요금소를 빠져 나와 장가계를 들어서면서 길이 좁아졌기도 하였지만 교통 법규의 무법 천지로 중안선은 있으나 마나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면 아무생각없이 차를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버스에 탄 일행들은 가슴이 서늘해 지는데 그네들은 욕하는 사람 하나없이 아무렇지도 않은듯 사고도 내지 않고 저마다의 갈길을 잘도 간다. 장가계로 이동하는 시간이 긴 관계로 반나절을 다 소비하였으므로 오늘은 보봉호와 황룡동굴,그리고 진주가계, 찻집을 들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먼저 이곳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호텔식 아침을 허술히 먹은 탓인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한국식 점심을 뚝딱 해 치우고 보봉호로 향했다.
보봉호 입구에서 부터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보봉비폭(寶峰飛瀑), 인공으로 만든 폭포수가 하늘에서 물줄기를 쏟아내는 듯하다, 90년대 말레이지아 유한회사에서 임대하여 경영한다고 전한다. 댐을 쌓기위해 공사를 하다 뛰어난 경치를 발견해 관광지로 개발한 반인공, 반 자연 호수이다. 호수안에는 작은섬이 있고 바깥쪽에는 기이한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위에서 보면 마치 산속의 비취알맹이가 있는것 같이 청록색을 티고 있으며 이곳은 여는 호수처럼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지 않고 오히려 햇빛을 흡수해 더욱 영롱한 비취빛을 띤다. 마치 신선들이 노닐던 곳이 아니었나 할 생각이 들게 한다.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면 저쪽 작은 배안에서 토가족 아가씨가 나와 손을 흔들며 환영 노래를 불러 주는데 중국 사람들의 노래 소리는 두오악기 우리나라 아쟁과 비슷한 악기의 옥타브를 다 내는 청아한 목소리가 듣는이로 하여금 구슬프게까지 한다. 우리는 공작새 봉우리. 두꺼비바위, 선녀가 목욕하고 승천하지 못하여 머리를 틀어올리고 얼굴에 눈물자욱까지 보이는 선녀바위, 3,4월이면 바위 맨윗부분에 꽃까지 핀다는 촛대바위를 둘러 보면서 돌아오는 길에 토가족 아가씨가 부른 노래의 답례로 우리 팀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제일 먼저 유초 남편이 마이크를 받으며 남행열차를 함께부르는 것을 시작으로.눈을 감으며 저멀리서~, 나의 살던 고향은~ 고향의 봄, 우리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만남등등 아마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하여 만든 발상이 아니었나 생각 되었다. 길게 뻗은 산정호수에서의 뱃놀이가 끝나면 댐을 막았던 나선형 계단을 따라 하산한다.
여행지라면 빠지지 않는 쇼핑 진주가게에 들러 눈요기 많이 하고 황룡동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길목엔 즐비하게 상점들이 있었는데 아주머니들의 천원~ 천원세례~ 알고보니 군밤을 한바구니에 천원 천원을 연발하며 사라고 딱 옆에 붙는다. 한바구니사서 먹으니 입도 즐겁고 한참 걷는길을 잊을수도 있었다. 이곳 장가계는 워낙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어눌하지만 우리나라 말을 거의 할줄 안다. 모든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곳곳에는 한글도 보이고 받침이 틀린 글자도 눈에 뛰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종유동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세계의 종유동중 기적의 꽃"이라고 찬미하는 황룡동굴은 1983년에 발견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용암 동굴이다. 길이 2.5킬로, 계단이 2500개나 되는 4층으로 되어 있다.동굴안에는 800미터 뱃길로 관람하는 곳과 걸어서 관광하는 곳이 있는데 모두 2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규모와 크기의 웅장함을 가히 짐작이 간다. 우리가 본것은 동굴의 3/1밖에 되지 않으며 계속 계발중이며 기이한 종류석은 알록 달록 조명을 받아 그 신비를 더해 주었다. 똑같은 모양은 찾을수 없고 석순,석주의 이름 또한 다양하여 흥미를 자아냈다. 하이라이트는 용왕의 침실"용궁" 제1미사일 제2미사일 등의 이름을 붙인 갖가지 형태의 석순 1000여개가 숲을 이룬듯 " 중국최대의 저택"으로 불릴 정도로 멋진 종유석,석순,석주들이 저마다 미학을 뽑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높이 19.2미터 둘레 40센티의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는 석순은 천정에 다을 지경으로 부러질것을 대비해 중국돈 1억원(125억원)짜리 보험까지 들어 놓은 귀하신 몸이란다. 석순이 1센티 자라는데 100년이 걸린다니 64만년이 더 자라야 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모두들 신비러우면서 황홀한 마음을 안고 동굴을 나왔다.
찻집을 들러 옛날 영국 사람들이 아편전쟁때 중국차가 너무 좋아 땅속 깊은곳에 묻어 두고 영국으로 다들 떠났는데 훈날 중국에서 발견하였더니 그 긴 시간 동안 차가 발효되어 정말 몸에 보약이 되는 보이차가 되었다는데 다른차들은 유효기간이 지나면 백해무익하지만 보이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차값이 더 비싸짐을 알았다. 보이차, 국화차,일엽차, 녹차로 힘들덨던 몸을 차로 달래며 피로를 풀고 어제 잃어버린 가이드의 옷 가방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발해호텔에서 또 하루의 여정을 풀었다.
2006 6/24 (토) 새벽에 스위스와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가 있어 한국에선 밤을 새워 관전한다 난리 법썩을 떨겠지만 이곳에서 그래도 조용하다 쉽더니 이방 저방에서 와와 거리며 게임 관전하느라 잠을 깨운다 . 옆지기 몰래 T.V를 켜 보았더니 1:0으로 지고 있다 차마 볼수가 없어 끄고 커튼을 살며시 열어 보았더니 새벽부터 장대비가 내려 하루의 일정에 차질이 올까 걱정 되었다. 이비가 아침을 먹을때니 더욱이 세차게 내리지 않는가? 8시부터 일정을 잡았으나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하다가 어찌되었던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장가계 풍경구중 원가계부터 관람하기로 하였다.
원가계는 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광이라면 장가계는 밑에서 위로 기이한 풍광을 보는것이라 이해하면 쉽겠다. 가이드의 경험으로 비가오면 산위의 운무가 어쩌면 더 아름다운 절정으로 보일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산새가 높은 지역은 특성상 늦은 저녁서부터 아침 사이엔 종종 비가 많이 온다 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영동지방을 예를 들면 대관령이 높아 팬현상으로 인해 기후의 변화가 심하듯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비해 바람도 없고 하늘하고 가까운 동네라서 인지 맑으면 상상을 초월하리 만치 무더운 지역으로서 그나마 우린 비도 오고 약간 흐려서 걸어서 관람하기엔 아주 적절한 날씨이다.
이곳 장가계 국립공원을 들어 가자면 입장권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교통카드 크기와 같은 입장카드인데 입장료는 245위엔( 31.000원정도) , 카드 한장으로 이 지역을 대부분 다 둘러볼수 있고 중복 사용을 피하기 위해 입장할때 지문인식을 하는것이 특이하며 이 카드로 이틀을 사용할수 있다.
우린 비옷과 우산으로 완전 무장을 한후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므로 정류장에 도착했다. 높이 326미터나 되는 산을 따라 수직 돌벽에 겉으로 곧게 올라가는 둥근 투명 유리관의 엘리베이터가 육안으로 보기만 하여도 아찔하다. 우리나라 63빌딩 2배만한 높이에 아래쪽 150여미터는 수직 동굴로 되어 있고 위쪽 170여미터는 투명 유리창을 통해 자연 경관을 감상할수 있는데 약 3분정도의 짧은 시간을 통해 비가 와서 염려 했던 것과는 다르게 눈앞에 나타나는 산허리를 휘어감는 운무와 기암절벽, 뾰족뾰족한 산들이 마치 병풍을 둘러 놓은듯 신이 베풀어준 자연의 경이로움에 모두는 우와~를 연발하며 다른 말을 잇지 못하였다. 우리에겐 왜 이러한 자연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과연 신은 공평한 것인가?? 누가 신이 있다고 했단 말인가?? 많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또 하나의 절경 천하제일교에 다 달았다. 1400여년 긴 세월동안 여러차례 지각 변동과 기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300미터 높이의 커다란 두개의 돌장으로 만들어진 천연석교로 깍아지른듯한 절벽에 산봉우리를 교두보로 삼아 신이 놓은 다리라는 뜻에서 하늘문이라고도 하며 "기적중 기적"으로 정교하게 구성 되었다. 어찌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곳 상점에선 자물쇠를 파는데 연인들이 이곳에 들르면 서로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함을 기원핬다는 뜻에서 유래 철난간에 자물쇠로 잠그고 열쇠는 절벽 아래로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 졌다고 하는데 이젠 사업하는 사람들 사업 번창하게, 부자되게, 건강을 축원하는 등등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빈 흔적이 빈 난간이 없을 정도로 온통 자물쇠의 물결 또한 장관이었다.
그 와중에 발견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흔적 남기기 낙서이다. 언젠가 유럽 곳곳, 사람이 가는 곳이라면 한국사람들의 낙서가 돌이고 어디고를 막론하고 있다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난 누구를 사랑해, 어디 어디에서 온 누구 라는 한국사람들의 꼴물견을 볼수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젠 우리도 의식을 높이는 국민이 되어야겠다.
불규칙하고 뾰족하게 솟아오른 석봉들이 운무에 가려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것과 같은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을 정도라하여 이름 붙여진 미혼대 (迷魂臺), 바위위에 뿌리내린 소나무들이 정원수처럼 운치가 있는 "공중정원" "후화원"의 절경이 이어지면서 가는곳 마다 와와 탄성이 절로 나와 장가계의 여행을 와~워 여행이라고도 한단다. 협곡에 관광로를 개설하고 협곡사이에 철교를 놓은것이 놀랍다. 가드레일을 잡고 걸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득한 산꼭데기에 관광 통로를 만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버스로 이동하면서 시선이 머무는 곳은 산아래 중턱에는 계단식 논들과 울창한 숲이 땅을 덮은 곳, 걸어서는 도저히 오가지 못할 깊은 산속에는 드문드문 가옥들이 흩어져 있다. 그 험하고 깊은 골짜기를 걸어 다니는 토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비록 그들의 삶이나 입성은 남루하지만 그들은 자연속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순수한 자연인이다. 어쩌면 욕심없이 살아가는 그네들의 삶이 복잡하고 이기적인 현대인들에겐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중국 10대 원수중의 한명인 하룡장군(賀龍將軍)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하룡공원(賀龍公園)에 다달았다. 장군의 비문은 1995년 강택민 총서기가 쓴 것이란다. 애석하게 안개가 너무 짙어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듯한 형상을 하였다 하는 "어필봉"(御筆峰)과 천군마마의 기세로 솟아 있는 봉우리가 운무에 휩싸이면 바위 숲이 바다를 이룬다는 "서해", 맞은편에 선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세상에 꽃을 뿌리는 "선녀헌화"를 보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다.
곧바로 300계단을 올라가면 "대자연의 미궁" 인 천자산 , 와와 또 한번의 탄성이 절로 나오는 천자산 케이불카타는 곳에 다다른다. 1997년 설치하였고 길이 2,054미터이며 정상에서 케이블카로 목적지까지는 7분정도 걸리며 상,하로 운행한다. 케이블카를 탈때 만해도 온통 안개로만 깔려 안개만 보는것은 아닌가 하고 염려 하였는데 중간쯤 갔을까 머나먼 이곳까지 온것을 위안이라도 하듯 그 신비에 싸여 안개에 가려 있던 하나 하나의 비밀을 수줍은듯 살며시 아주 살며시 드러내며 얼굴을 내미는 모습들에 우리는 또 한번 와와 환호성을 연발하면서 허공에 매달린 케이블카는 서커스 공중곡예를 하듯 아슬아슬 현기증이 날 정도다. 행여 정전으로 멈추어서면 어쩌나 하는 발칙한 생각도 들면서 깍아지른 기암절벽과 그곳에 간신히 뿌리를 내린채 하늘을 나란히 누워있는 소나무의 풍광에 흠뻑 빠져 정신을 잃는 동안 케이블카는 종착지에 와있다.
우린 다시 버스로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이렇게 위험하고 안개로 미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어쩌면 이렇게도 운전을 잘 하는지 버스 기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점심은 삼겹살과 무공해 배추쌈으로 맛있게 먹고 보석가게를 들리면서 이 아줌씨들은 뿅 가버렸다. 모두들 한,두개씩 사가지고 나오면서 만족해 하는 모습들이 꼭 어린 아이들이 무쟈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샀을때와 같았다. 일행중 한명이 보석에 대해 박식함으로 그네들이 부르는 정찰가에서 또 다시 50%이상을 할인해 샀으니 속지는 않았을게다.
흐뭇한 마음으로 다시 버스에 기대어 십리화랑(十里畵廊)으로 이동하였다. 왕복 5키로미터 십리구간에 말그대로 대자연이 거침없이 그려놓은 수묵화의 병풍을 모노레일의 힘을 빌어 타고 위를 쳐다 보면서 관람하는데 특히 이곳의 약초는 이 할아버지가 다 캐낸다는 약초캐는 노인봉, 엄지 손가락 모양을 한 식지봉, 수탉 벼슬을 모양을 하였다하여 붙어진 수탉 봉우리, 세자매봉, 봉우리들마다 생김에 걸맞게 붙여져 있는 이름을 맞추는재미 또한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장가계의 "금편계곡" 걸어서 2시간코스로 산림욕을 즐기면서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는 거리를 30분의 시간을 주어 다른 일행은 모두 가지 않고 우리 4명만 출발해 무척 빠른 속보로 걸었는데 가도 가도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아 왕복 한시간의 시간으로 아마도 거의 도착하였으나 기다리는 일행들을 생각해 도중에서 내려와야 하는 아쉬움을 두고 노익장을 발휘하며 보람은 있었다.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 주위의 장엄한 기암절벽들이 어울어져 무릉도원의 수경을 한껏 뽑내 주었다.
오늘은 우중속에 모든계획이 이루어 졌음에도 가이드의 계산이 딱 맞아 떨어짐으로 하루를 빡빡한 일정으로 보람차게 실크가게에서 일행의 실크 이불 사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2006년 6/25 (일) 오늘은 계획데로라면 황석채와 천문산 일정인데 황석채로 가는 케이블카가 고장나 보수에 들어 갔는데 며칠이 걸릴거라는 가이드의 말이다. 그래서 천문산과 토가족 풍정원을 관람하고 장사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우리 일행은 한약방에서 간단한 진맥과 안마를 받고 멀지 않은 천문산으로 향했다. 천문산은 장가계의 산중에서 역사에 가장 먼저 기록된 명산이다. 장가계 시내에서 1500미터 고지에 위치한 전망대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길이 7.45키로미터 케이블카로 편도 35분정도 소요되며 산의 사방은 모두 절벽이며 봉우리는 하늘에 닿은 듯하고 그 기세 역시 하늘을 찌르는 듯 장대하다. "장가계의 혼" 호남 서쪽의 제일 가는 신성한 산이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99개의 구비구비 고갯길, 한고개는 늘 용왕이 휘감아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라는 통천대도는 마치 우리나라 속리산 법주사 가는 말티고개를 연상하는데 크기와 규모가 아주 거대하였으며 그 또한 바라보는이로 하여금 장관이었다.
우린 케이블카로 내려오는 중간 지점에서 내려 버스로 99개 고개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천문동으로 가고 있다,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위험한지 아마도 기사는 길만보고 운전하는것 같다. 행여 옆을 보다가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 진다. 한 20분은 갔을까 99고갯길의 정상에 도착되었다. 천문동은 천문산의 중상부에 위치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연 종유동으로 높이 130미터 너비 57미터 깊이 60미터로 타원형의 구멍이 났는데 999계단을 올라가면 마치 밝은 거울이 높은 곳에 걸려있는 듯 하늘의 문이 열린 것처럼 구름과 안개를 빨아들여 천궁 궁궐의 신비감으로 충만하다. 이 뚫어진 구멍으로 곡예 전투기가 빠져 나갔다는 그림으로 이곳을 트래이드마크로 광고를 한다.그 형성 원인은 지금까지도 타당한 과학적 설명을 찾지 못한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한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렸을때만 해도 천문동은 희뿌연 안개로 앞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였던 곳이 순식간에 휘몰아 삼키듯 빨아 들이더니 살며시 신성한 자태를 나타냄으로 위쪽 종유동을 쳐다보던 우리는 숨소리까지 죽이는 심정이 되어 버렸다. 모두들 하늘이 주신 이 위대한 자연앞에 또 한번 환호를 지를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곳을 보고 장가계를 신선관광이라고 했던가? 정말 우린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 같았다, 일행중 이구동성으로 모두들 덕을 많이 쌓은 분들이 모였기에 하늘에서 도와 주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이것으로 산사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버스로 내려가면서 아찔하고 아슬아슬한 꼬불길을 안전하게 데려다준 기사님께 감사 드린다.
우린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토가족 풍정원으로 이동했다. 토가족풍정원은 토가족들의 전통민속 문화와 생활양식들을 엿볼수 있었다. 전시관에는 장신구,토가족들의 농경문화,건축예술,공예예술,음악문화등 두루 견학할수 있었으며 그네들만의 칼춤은 노인들의 놀이문화로 많은 연습을 통해 함께 나이를 먹어 감을 알수 있었으며 흥겹게 즐기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후4시가 조금 넘으니 그네들만의 의식행사가 치러졌는데 하루에 두번 열리며 추장의 시작을 알리는 한마디로 행사는 시작되었고 젊은이들의 패기와 기상을 엿볼수 있었다. 토가족들만 쓰는 언어는 있으나 문자는 없단다. 그네들의 말은 토가족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모른단다. 이 언어도 나이 많은 사람들만 이어갈뿐 지금 젊은이들은 중국어를 사용한다고한다. 이것으로 장가계에서의 일정은 다 마치고 장사로 향했다.
2006년 6/26 (월) 이번 여행일정으로는 마지막 두곳, 악록(岳麓)서원과 김구선생 기념관을 관람하기로 하여 시간의 여유가 많은 날이다. 악록서원은 모택동이 2년동안 이곳에서 공부하던곳으로 원래 중국 유학의 고향이지만 도사들이 도광을 세우고 도학을 펼치던 곳이니 중국사상의 전시장이라고 할수 있다. 장사는 훌륭한 혁명가들이 많이 배출되어 중국 혁명의 발원지의 하나이며 모택동,유소기,호요방,주용기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태어난 도시이다.
김구선생 기념관은 김구선생이 8개월동안 장사(창사)에서 항일 독립을 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진 곳이며 각종 김구 선생의 관련 사진과 사료들이 전시돼 김구 선생의 험난 했던 독립운동 과정과 불굴의 정신을 엿볼수 있었고 한중 양국민의 상호 지지와 외세의 침략 활동에 항거하는 양국민의 우의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이렇듯 위대한 독립가가 계셨기에 후손들이 지금껏 편하게 잘 살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김구 선생은 1938년에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을 입어 이곳 상아의원에서 치료를 하셨다고 한다. 상해의 임시정부 전시관보다 작은 규모이다.
상강크루즈선을 타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이 있기에 가이드가 옵션을 내 놓았다. 그의 의중을 우린 이미 알고 있기에 우리일행들에게 맞는 제안을 하였다. 모두들 발마사지를 한번 더 받고 이후 나머지 시간은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기로 하고 가이드가 원하는 의중을 조절하기로 하였다. 호텔에서 받았던 마사지와는 비교도 안되었지만 그네들과 중국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만족했다. 젊은 아가씨들로 대학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학생도 있었고 24살에 이미 4살짜리 아이가 있는 내 파트너,한류문화에 힘입어 대장금 주제곡은 네명 모두 합창을 할 정도로 즐겨 부르고 본단다. 대화중 한국옷과 화장품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내가 쓰고 있는 화장품을 좀 보여 달라느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예쁘다느니, 한국에서 샀느냐, 내 모자를 직접 써보고 예쁘다느니, 미에 대한 관심을 함께 얘기하면서 한시간이 지나갔다. 시원한 마사지는 아니었다.
나머지 시간은 16명 모두는 4인조로 택시를 타고 쇼핑센터로 향했고 우리팀을 빼고는 중국어를 모르는 관계로 가이드가 함께 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미아가 될뻔한 어린 가이드의 큰 실수를 보는 시간들이었다.
저녁은 상강(湘江) 유람선선상에서 저녁만찬을 즐기며 5키로미터의 거리를 크루즈선을 타고 아름답고 수려한 상강주변의 야경에 흠뻑취해 시간 가는줄 모른다. 부부가 함께 오신분들은 갓판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쌓기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일들을 회상하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니라. 여행 일정의 마무리를 이렇게 황홀하고 아름답게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역시 집 떠난 6일간을 되짚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베이징이 만리장성,자금성,위화원등 고궁을 따라 걷는 "발로하는 관광"이라면 서안은 역사적인 사물을 많이 듣는 "귀로하는 관광" 계림은 넓게 펼쳐진 강을 감상하는 "눈으로 하는 관광" 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장가계는 온몸으로 하는 관광이다. 눈으로 보고 발로 걷고 온몸으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기이함을 보는 "몸으로 느끼는 관광"인것 같다. 말로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산새들의 웅장한 기운을 두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번 여행은 아주 알차고 유익하게 잘 마무리하고 마음으로 흠뻑 느끼며 돌아오게 되어 함께 했던 동행들께 모두 감사할 뿐이다. 시간이 허락 된다면 중국 장가계만은 꼭 한번 다녀오기를 권하고 싶다.
이렇게 긴 문장을 다 읽어 내려가기까지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훈날 친구들 장가계로 여행 일정을 잡을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나의 작은 마음에서... |
첫댓글 중국기행 잘 읽었어. 중국에 가게되면 많은 도움이 되겠네.
잠시 뜸하다 싶었더니만 여행중이었 구만 좋은여행 부럽네, 윗글은 중국여행에 알찬 가이드가 되겠어 고마우이,,
여행은 나의 또다름의 발견이기에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할것을 당부!!!!!
중국의 수려한 자연~~ 잘보고 눈으로 여행 잘했다.아주 즐겁고 유익한 여행하고 왔구나...너무아름답구나!!!
중국의 자연은 너무나 아름답구나. 말만들은 장가게 옥희가 기행문을 자세히 적어서 직접 본것 같아...
보고서처럼 써 준글 두번째 와도 다 읽기 어렵다. 좋은여행은 마음의 양식일테지?!!!
경숙,기옥,남익,춘옥,숙기,대원아 長文의 글 읽어 주어 고맙다. 원래 남의 긴 기행문 읽기가 쉽지 않아! 왜냐하면 그 상황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훈날 그곳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한번 읽어 보고 가면 도움이 될것이라는 마음에서 올려 놓았어. 여행을 계획하다보면 많은 정보를 찾아야 하는데 이러한 정보들이 난 많은 도움이 되더군 . 알차고 행복한 날 되시기를...
너무좋은 기행문을 다들 볼수있게 써준것만해도 나에겐 크나큰 양식이 되었어.자세히 서술해줘서 너무 고마워...
옥희의 장가계,원가계,천문산기행문 고맙고 잘읽어 정말로 한번 여행할만하지 나도 부부동반으로 갔따왔는데우리는그때 과다한 음주가무로 고생좀했지
옥희야 장가계 원가계 정말 멋있는 곳이구나. 사진으로만 봐도 신선이 노니는 곳이 아니드냐!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아직 가 보지 못해 더욱 마음 속에 닿는다. 발맛사지는 지난번 황산에 가서 받아보았는데 정말 약초냄새와 따스한 온기 그리고 성의껏 맛사지해 주는 데 기분과 몸이 모두 좋드구나. 언제 다시 한번 중국여행 갈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