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버스와 고래밥
조 귀 순
차창으로 겨울 햇살이 봄볕처럼 들어온다. 평일 한낮이라선지 버스와 도심이 한산하다. 번화가를 벗어난 차창 밖은 고즈넉해 보인다. 나는 펼쳐지는 거리를 무성영화 보듯이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님, 차 안에서 음식물 먹어도 되나요? 아가씨의 칼칼한 목소리가 정적을 무참히 깨뜨렸다. 어디서 먹는 소리가 들려서요. 따끔하다. 코로나 방역 정책에 따라 음식물을 드시면 안 된다는 기사의 음성이 되레 온화하다. 빨간색 광역버스엔 예닐곱 명밖에 없었다. 한참 영화에 심취했을 때 팝콘 씹는 소리에 영화 감상을 망친 기분이다. 나는 풀기 없이 느른한 멍때림이 좋았는데 아쉽다.
내 자리 건너편 좌석에서 버시럭소리가 난다. 할머니 몸이 대여섯 살 먹은 남자아이 쪽으로 쏠려있다. 과자 봉지를 부랴부랴 구겨 접는다. 먹는 소리의 발원지였음을 알겠다. 아이는 무릎 위에 놓인 과자 곽에 두 손을 얹고 있다가 다시 되작되작한다. 고래밥 하나만~~ 할머니를 바라보는 눈빛이 애절하다.
과자 곽이 참 낯익다. 연녹색과 노란색 배합이 유채꽃밭처럼 산뜻하다. 우리 아이 어렸을 때도 고래 싸움에 등 터진다는 00깡과 즐겨 먹었던 고래밥을 정말 오랜만에 본다. 과자 모양이 오밀조밀하고 귀엽다. 한번 먹으면 자꾸만 먹고 싶게 만든 마술 같은 과자다. 아이가 배탈이 나서 병원 갔던 날, 의사는 흰죽을 먹이라 했다. 약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대기실에 한 아이가 고래밥을 먹고 있었다. 그 멈출 수 없는 맛을 아는 우리 아이는 한 개만 얻어먹고 싶어 그 앞에 가 얼쩡거렸다.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주워 먹게 생겼다. 한 개도 얻어먹지 못한 아이는 집 앞 구멍가게 앞에서 주저앉았다. 끊을 수 없는 맛을 참으라고만 하니 화가 났을 것이다.
할머니도 지금은 안되고 쪼매만 참으라고 아이를 타이른다. 억제가 욕망을 더 분출시킨다. 아이가 몸을 베베 튼다. 할머니는 아이를 겨드랑이 밑으로 끌어안고 토닥인다. 어르고 달래면서 한숨 자라고 애착 수건을 쥐어준다. 하지만 당장 고래밥이 먹고 싶은데 잘 수가 있겠는가. 빨간 버스에서 아이는 과자 곽을 실선대로 잘 뜯었을 것이다. 어부가 되어 물고기를 용감하게 손으로 잡아 올리려 했을 것이다. 고래, 오징어, 불가사리, 돌고래, 그다음엔 꽃게, 복어, 새우, 이어서 상어를 잡고 문어, 소라, 가재…. 좋아하는 순서대로 잡아서 하나씩 골라서 먹고 싶었을 것이다. 빨간 버스는 아이의 바다였는데 기분을 망쳤겠다.
칼칼한 목소리로 일러바친 아가씨는 아이와 대각선으로 앉아있었다. 남자친구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잔다. 공공질서 어기는 행동을 보면 고발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젊은이다. 어려서부터 올바른 에티켓을 가르치라는 어른에 대한 일침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밝은 사회가 이뤄진다는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자꾸만 아이에게 맘이 쓰인다. 아니 그걸 보는 할머니 마음이 내 마음일 것 같다. 이미 실내에선 마스크 쓰기가 해제되었다. 다만 의료기관과 대중교통이 예외인 건 맞다. 카페에서는 마스크 벗은 채로 차 마시고 몇 시간씩 수다를 떨면서 아이가 과자 몇 알쯤 마스크 속으로 밀어 넣으면 안 된다. 통로 쪽으로 돌려진 할머니 등이 애처롭다.
내가 내리는 정류장에서 할머니도 아이와 함께 내렸다. 동그름한 얼굴에 큰 눈을 슴벅슴벅하는 아이는 온순해 보인다. 나는 아이에게 잘 참는 멋진 친구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는 기뻐하거나 웃거나 버스에서 내린 해방감에 겅중겅중 뛰거나 변화가 없다. 숫기가 없는 아이인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위축됐나 싶었다.
할머니가 아이를 꼭 껴안는다. 제 딴에는 참느라고 용을 써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단다. 얘가 정상이면 맘이 덜 쨘했을 거란다.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어서 치료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알음알음으로 찾은 병원으로 서울서 부천까지 오는 거였다. 애 엄마는 직장 다니고 할머니가 떠안았다. 특정 물체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물건의 위치를 바꾸거나 다른 옷을 입는 사소한 변화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버스에서 소동을 벌일까 봐 너무너무 초조했단다. 젊은 아가씨가 애를 흘깃흘깃 보면서 그러는데 어어휴우~~. 할머니 눈에 물기가 반짝였다. 양해를 구할 수도 배려를 할 수도 없는 현실이지만 할머니에게도 응원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어른도 역성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니까요, 제가 다 그 아가씨 뒤통수를 한 대 쥐어박고 싶더라니까요. 할머니 대신 원망을 퍼부었다.
저 아이가 할머니의 정성 먹고 도담도담 자라길 바란다. 맛으로 먹고 골라 먹는 재미로 또 먹는 고래밥을 먹으면서 태평양을 휘젓는 고래만큼 힘센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곧 봄이다. 2023. 3. 11.
첫댓글 단편 보 듯 줄줄 ~.
잘 읽었습니다.
<빨간 버스와 고래밥> 제목이 참 인상적이네요.
버스 안 풍경의 묘사 능력이 탁월합니다.
당장 고래밥 사러 마트에 가야 되겠어요.
자폐 아이의 정상이 가슴 아리게 다가옵니다.
휴머니티가 물씬 풍기는 글 잘 쓰셨습니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