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경매하다≫
신진련∣ 책펴냄열린시∣ 2019
배가 들어온다는 전갈을 받았다. 오십 톤급 고깃배 선주인 신 여사께 미리 경매 참관 연락을 해 둔 터이다. 요즈음 고등어는 금어기 기간이라 공동어시장의 경매는 쉰다고 했다. 그녀의 이번 어획량은 모두 자갈치위판장으로 보내어졌다.
어둠살이 번져 나는 시간, 찐득하니 항구의 밤바람이 불어온다. 항구의 새벽은 바다에서 시작하고 저녁 또한 바다로 저물어간다. 이곳 남항은 전국 최대의 어항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고깃배가 남항을 거쳐 인근 선착장으로 들어와 남포동 자갈치시장과 충무동 해안시장과 영도의 봉래시장 등으로 생선을 부려놓는다. 초저녁부터 어황을 싣고 온 운반선들이 해안가에 줄지어 늘어섰다. 어창에서 꺼낸 어획물은 대기하고 있던 수레가 운반하고 미리 입상되어 있는 것도 선별대로 이동시켜야 한다. 대기하고 있던 인부들의 장화 물결이 생선 상자와 함께 파도를 타듯 일렁인다.
상자에 채워진 물고기들이 줄줄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노조반 인부들이 장홧발로 찬 고기 상자가 선별 작업대 앞으로 가서 정확히 멈춘다. 어부의 손을 벗어난 생선들은 이제 작업반 아지매들을 만난다. 경매를 하기 전에 상품을 만들어서 미리 준비해놓아야 할 것이다. 위판장 아지매들이 어종별로 분류하느라 몇 시간씩 제대로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손 감각만으로도 대여섯 상자에 크기를 나눠 척척 던져내는 손놀림이 가히 예술 급이다. 대부분 일생을 보낸 일터, 경력만도 이삼 십 년 넘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시절이 좋든 나쁘든 생선 비린내와 함께한 세월로 자식들을 키워내고 어른들을 모시며 집안을 일구어온 억척 일꾼들이다.
시장 사람들은 봄꽃 흐드러진 이 계절의 수산물이 가장 맛있다고 귀띔한다. 선별을 거친 가자미 수백 상자가 바닥을 그득하게 채워나간다. 얼음을 뒤집어쓴 아귀, 한치, 쥐치, 먹갈치, 장어, 민어, 홍어, 우럭, 꽃돔, 눈볼대, 달고기, 물메기들도 연이어 위판장에 들어찼다. 모두 바다가 준 선물이다. 따로 저울에 달지 않아도 작업자들은 손대중 눈대중만으로도 중량을 맞춰나간다. 꾹꾹 눌러 담긴 새우도 있고 차곡차곡 빨래 개켜지듯 얌전히 포개진 가오리도 눈에 띈다. 커다란 참돔이나 광어는 한 상자에 한 마리씩만 담긴 채 몸값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 사이로 나란히 눕혀진 갑오징어들이 꿈틀꿈틀 얼음을 비집고 눈치를 살피며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
공동어시장 경매가 새벽을 연다면 이곳 자갈치 경매는 하루를 닫는 밤 열 시에 이루어진다. 남들은 퇴근하여 휴식에 들거나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고 곤히 잠에 빠졌을 때, 자갈치위판장에서는 시끌벅적 경매 준비로 분주하다. 경매가 시작되기 오 분 전, 일순 위판장은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경매사가 울리는 요령 소리에 경매장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두 소리를 따라 이동한다. 위판장 가득 진열된 생선 상자가 어림잡아 이천여 박스는 될 듯하다. 경계 표시도 없는 생선 상자들이 구경꾼에게는 무질서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곳 사람들은 선주별 조업한 물량을 정확히 구분한다. 경매 참여자들이 속속 모여들고 사람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전쟁 아닌 전쟁이 선포되었다.
경매는 먼저 들어온 배 순서대로 진행된다. 어종을 가운데 두고 경매사 주위로 사람들이 빙그르르 원을 그리며 둘러섰다. 붉은 모자를 쓴 오늘의 경매사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현란한 수신호로 경매 가격을 외친다.
- 일마이, 양마이, 삼마이야, 삼마이 이처이, 삼처이야!
옆에 바짝 붙은 속기사가 숫자를 적어나가고 보조 임무를 맡은 직원도 손과 눈으로 분위기를 제압한다. 경매사의 목청이 높이 찌르다가 다시 우렁우렁 리듬을 탄다. 그 소리가 마치 흑인의 영가같이 구슬프기도 하고 후렴구를 랩처럼 속사포로 반복할 때는 흥겨운 유행가를 듣는 듯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중도매인이 각자의 수지법으로 경매 신호를 보내고 있다.
치열한 눈치작전과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지고 저마다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사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각자의 번호를 새긴 모자를 쓰고서 손가락을 들어서 흔들거나 접어서 바지춤 옆으로 옮기거나 안주머니에서 불쑥 펼쳐내면, 경매사는 재빨리 눈으로 가장 높은 가격을 훑고 낙찰 번호를 매긴다. 위판장에 쉴 새 없이 손가락 언어가 꽃을 피워올린다. 원하는 생선을 사지 못한 중도매인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지고 좋은 고기를 낙찰받은 이의 기분은 최고조에 이른다. 재미있는 것은 경매사 앞에서 중도매인이 손가락 신호를 보내고, 또 중도매인을 마주 보고 상인들이 수신호로 주먹을 흔들어가며 물건값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시장의 질서가 지켜진다.
삶에 지칠 때 시장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퍼덕이는 물오른 생선과 상인들의 힘찬 목소리에서 잃었던 활력을 얻는다. 이곳 자갈치시장에 와서 아가미가 검붉은 먹갈치와 뱃살이 탄탄한 고등어를 고르고 뜨끈한 장터국밥 한 그릇이나 퍼덕이는 곰장어 구이라도 먹으면 시들했던 삶에도 생기가 돋게 된다. 무엇보다 저녁 경매 시간에 맞추어 위판장에라도 들르면 왁작박작 생기가 돋을 것이다. 상인들의 걸쭉한 팔도 사투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로 스며들고, 인부들의 거친 육담이 도시인의 겉치레를 조롱하듯 위판장 바닥을 건너 몸을 불려 낸다. 그들이 내뱉는 욕설과 은어와 외설이 담긴 시장의 언어가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인간의 말이 아닌가.
서너 군데 경매가 끝나고 이번에는 신 여사네 생선들을 경매할 차례다. 그녀는 여릿여릿해 보여도 사십여 년간 자갈치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러기에 은빛 생선이 깔린 위판장을 한번 쓰윽 둘러만 봐도 어황 정보가 담긴 전광판을 훑듯이 오늘의 물고기 양과 선적해온 어황 가격을 가늠한다. 좋은 선장을 모시려면 배도 좋아야 하기에 어선 관리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실력 있는 선장과 바지런한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십여 명의 선원들 덕분에 요즘 같은 불황에도 잘 견뎌내고 있다. 고마운 일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외아들까지 가업을 잇기로 마음먹었다는 사실이며, 무엇보다 자갈치 일상을 엮어 시집까지 한 권 낸 어엿한 시인이다.
그녀의 앳된 아들이 경매사 옆의 선주 자리를 꿰차고 섰다. 오늘의 풍어는 단연 이 계절의 인기어인 가자미다. 신 여사가 내 옆에서 자신의 배에서 잡아 오는 수십 종의 가자미류를 알려 준다. 주로 물가자미가 어획량이 많은 편이고 기름가자미와 참가자미, 문치가자미, 홍가자미와 쫄깃한 식감에 고소한 맛이 일품인 ‘포항가자미’로 널리 알려진 용가자미도 있으며, 경상도 횟집에서 ‘이시가리’로 통용되는 어마무시한 가격의 돌가자미, 줄가자미 등이 있단다.
생각해보니 밥상과 친숙한 생선을 꼽으라면 결코 가자미가 빠질 수 없다. 가자미 미역국, 가자미 찌개, 가자미 조림, 가자미 튀김, 가자미구이, 가자미식해 등등…. 그러나 가자미는 뭐니 뭐니 해도 회가 최고이다. 문득 며칠 전 물회 집에서 주문하여 맛있게 먹은 ‘세꼬시’가 생각났다. 어린 가자미를 뼈째썰기한 것이 세꼬시인데 신 여사는 언제부턴가 세꼬시는 먹지 않는단다. 역시 선주답게 어린 물고기는 살려두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어느새 신 여사의 물량에도 낙찰된 번호표들이 꽂혀졌다. 젊은 선주의 표정이 썩 밝지 않은 것을 보니 오늘의 경매가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바다의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와서는 값이 매겨진다. 저마다 제일 처음으로 부여받은 숫자를 시작으로 이동 장소에 따라 몸값이 올라갈 터. 위판장을 떠난 물고기들은 소매상과 시장을 거쳐 어느 집 밥상으로 또는 어느 횟집과 일식집 등의 식탁 위에서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어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싱싱한 물고기는 사고 싶어도 구경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도매인들은 소매인에게 넘기고 가공업자에게 낙찰된 선어들을 공장으로 직행한다. 그러나 조금만 부지런하면 다음 날 새벽 여섯 시부터 여는 위판장 내 ‘선어 판매장’으로 가면 된다. 이곳에서는 새벽부터 잡아 온 아가미가 깨끗하고 살이 탱탱한 물고기를 도매와 소매 등 복잡한 유통과정 없이 저렴하게 구입할 수가 있다.
소란스럽던 경매장도 북적거리던 발길도 잦아들었다. 운 좋게도 신 여사가 챙겨준 싱싱한 가자미 봉지와 그녀가 틈틈이 쓴 시집 ≪오늘을 경매하다≫까지 덤으로 오늘의 구경꾼 손에 들려졌다. 하역이 끝난 고깃배들은 어느새 정박지를 찾아 떠나가고 푸른 밤바다에 열아흐레 달이 조용히 내려와 있다.(*)
- 김정화 리뷰에세이 ≪말 이상의 말, 글 이상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