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기에 대한 소망
이태용(ty4214@hotmail.com)
나는 대한항공 밀리언마일러(MILLION MILER)다. 밀리언마일러 트로피와 카드를 받았다. 매월 기내지도 집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생일이 되면 축하 카드와 함께 포도주나 넥타이 등 선물도 매년 받았다. 코로나 사태로 경영환경이 어려워 이런 혜택을 없앤다고 했을 때 얼마나 회사가 어려우면 그럴까로 이해했다. 사실 그동안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혜택을 여러 차례 바꾸면서 줄여왔다.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민 여론도 좋지 않고 더하여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 사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발표를 철회했다. 이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여 우리나라 항공업계의 독점적 위치에 있게 될 회사라 어떤 결정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직장 생활 중 세계를 누비고 다닐 때 대한항공이 운항 되는 곳에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항상 이용했다. 회사도 국적기(國籍機) 이용을 의무화했다. 다른 나라 비행기를 이용할 때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다. 그런데도 국내 항공 산업 육성에 도움을 주고자 이런 원칙을 그 당시 많은 회사가 암묵적으로 운용했다. 그러다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하면서 두 회사가 경쟁적으로 서비스 질(質)을 향상했다. 역시 독점보다는 경쟁체제가 소비자 관점에서 좋다고 실감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면서 해외여행이 자유스러워졌다. 두 항공사 모두 국민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계적인 회사로 발전했다. 그런데 그동안 몇 차례 마일리지 혜택을 일방적으로 축소하여 비행기를 이용해준 사람들의 마음을 섭섭게 했다. 응원하고 키워준 승객들에게 배은망덕(背恩忘德)한 행위를 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막바지로 가면서 그동안 모아 놓은 마일리지를 활용해 해외여행을 갈 꿈에 부풀어 있던 국민이 많을 것이다. 그런 국민의 기대에 찬 물을 끼얹는 일방적인 발표로 모두를 화나게 한 것 같다.
서울에서 런던에 갈 때 국적기를 이용하지 않고 파리를 경유하는 에어프랑스를 타면 값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저렴하다. 서울에서 독일 후랑크푸르트를 갈 때 핀에어(핀란드 항공사) 비즈니스석을 이용해도 국적기 이코노미석 가격보다 싸다. 해외에서 서울 올 때 도쿄를 경유하는 싱가포르 항공이나 일본항공을 이용하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적기를 이용하면 편안한 점도 있고 또한 마일리지를 모아 놓으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이용했었다. 내 경우 국적기를 이용하면 우리나라 신문을 읽을 수 있어 출장 중 접할 수 없었던 국내 사정을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다른 나라 음식으로 속이 더부룩했는데 비빔밥이나 매운 라면을 먹으면 속이 편해지는 장점도 있었다. 두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 마일리지를 활용하여 경제적으로 도움도 받았다. 그런 향수가 있는데 마일리지 혜택을 줄인다고 하니 나도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다.
선대 회장의 타계 후 남매사이의 경영권 분쟁을 보면서 저러다 국적항공사가 엉뚱하게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를 한때도 있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여객기를 화물기로 바꿔 위기를 잘 넘겼다고 하는 기사를 읽으며 3세 경영의 불안한 출범을 보였던 대한항공을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나는 그 회사의 주주도 아니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지만, 우리나라 항공사이기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해외 출장 후 귀국할 때 타국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국적기를 보면 뿌듯한 자부심과 함께 집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도 느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잘 마무리하고 세계의 하늘을 누비고 다니면서 세계방방곡곡에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주길 바란다. 아울러 국적기를 이용하는 충성고객들에게 주는 혜택을 확대하는 결단을 내려 코로나로 지쳐있는 국민 마음을 달래주었으면 한다. 차제에 그동안 일방적으로 없애버린 밀리언마일러들에게 주었던 혜택도 부활시켰으면 한다. 코로나도 종식되어가니 그동안 묵혀두었던 마일리지를 활용하여 나도 미국 사는 손자들을 보러 가고 싶다. 만 3년 만에 일등석 탑승 창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수속 후 일등석 대기실에서 좋은 포도주도 마시면서 편히 쉬다가 출발 시간에 맞추어 탑승하는 밀리언마일러 대접을 오랜만에 즐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