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법정 싸움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이 법정에 서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저 놈은 아들이 아닙니다.
제가 죽어도 저 놈이 위선을 떨면서
상주 노릇을 하거나
저 놈이 내 제삿상 앞에 있는 것도 싫습니다.
저 놈한테 들인 유학비용, 결혼비용을 모두 돌려받고 싶어요.
단 한 푼도 상속해 주기 싫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아버지가 재판장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이유가 뭡니까?” / 재판장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들 교육을 위해
무리해서 강남으로 이사까지 가고, * 강남 월세가 400만원
과외를 시켜가며 공부, 공부하며 키웠습니다. * 한 과목만이 아니라
유학을 보내고 집안 기둥이 휘어지도록 * 미국유학
비용을 들여 결혼을 시켰습니다. * 결혼하나 시키려면
그런데 저 놈이 대기업에 들어 간 이후는
아예 부모와 연락을 끊고 삽니다.
새해가 되어도 세배를 오지도 않고,
명절이 돼도 10년간 찾아 온 적이 없어요.
자기 엄마가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손자, 손녀도 못 보게 합니다.
패륜아인 저 놈에게 들인 모든 돈을
돌려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재판장이 이번에는 아들에게 항변 할 기회를 주었다.
“저는 유학을 가서 개인주의를 배웠습니다.
저는 독립적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
부모를 찾아가고, 안 찾아 가는 건
나의 자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집은 제 프라이버시의 영역입니다.
부모가 오려면 미리 저나 와이프의 허락을 얻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손자, 손녀를 보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교육을 하고, 아들은 봉양을 해야 한다는 채권 계약을
원고와 맺은 적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재판장에게
아들의 말 중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재판장이 아버지 쪽을 가리키며
아들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입니까?”
“원고입니다.”
“아무리 법정에서 마주 섰어도
아버지는 아버지 아닙니까?
아버지를 굳이 그렇게 원고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판사는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그 눈에 은은한 분노가 일고 있었다.
오래 전 판사의 실무를 배우기 위해
성남 법원으로 갔을 때였는데 같은 방에서
내 나이 또래의 판사와 친하게 지냈다.
격의 없이 법원 앞 빵 집에 함께 가기도 하고,
성남의 3류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어느 날 판사실에서 그가 이런 말을 나에게 했다.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어요.
아버지가 택시를 운전해서 우리 5남매를 키웠으니까요.
아버지가 힘들게 돈을 버는 걸 보고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판사가 됐죠.
지금도 개인택시를 모는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살고 있어요.
내가 매일 아침 법원으로 출근 전에 하는 일이 뭔지 알아요?
아버지가 모는 택시를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게 닦으면서
"이 놈아 고맙다" 고 하죠.
그 택시가 우리를 살게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