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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원제15회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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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알림방 스크랩 달동네 김영감
태봉인 김씨 추천 0 조회 61 07.01.10 08:4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이 글은 내가 몇 번 가본 종묘공원에서 어르신들 일상을 보고 느낀 것들을

소설형식으로 쓴 글로 특정직업이나 특정인과 무관함.

 

-태봉인 김씨-

  

 

홑창문 스레이트지붕 허름한 벽돌집 단칸방을 파고드는 바람은 시리기만 한데

오늘도 할멈이 차려 준 아침밥을 한술 뜬 김영감은 주섬주섬 외투를 걸치고

방 겸 부엌이 딸린 쪽방문을 나선다.

 

조반이라고 해봐야 멀건 콩나물 국에 찬이라고는 셔빠진 김치 한가지 뿐이지만

그래도 자식손에 얻어먹는 것보다 맘은 편하다.

 

열어젖힌 합판문을 헤집고 골목바람이 방안을 휘감아 나가니

가뜩이나 해수 끼가 있는 할멈이 기침을 해댄다.

 

달동네 이 셋방이나마 봄이 되면 재개발로 헐린다고 하니

아침부터 울화통이 치민다.

 

괜스레 가만있는 마누라한테 화풀이를 해대고 골목을 나서는데

금방이라도 눈발이 흩날릴 것 같은 하늘이 김영감 마음같이 어두운 게 무겁기만 하다.

 

골목어귀를 돌아 자하철역까지는 족히 30분을 넘게 걸어야 한다.

 

단칸셋방이 있는 언덕배기를 한참 내려와 버스로 두 정거정이나 되는 역까지

걸어가야 지하철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땐 여기 지하철역 입구에서 제과점을 하며 부족한 거 없이 살았었는데

생각하니 가슴이 메인다.

 

욕심이 과해 제과점 옆에 핫도그 체인점을 내면서 꼬이기 시작한 장사가

늘그막에는 버스비 조차 없어 걸어 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나마 3년 전 부터 동사무소에서 두 늙은이 생활비라고 매달 40만원도 안 되게나마

주는 보조금을 받아 근근이 살아 가지만 방세주고 쌀 한포대 겨우 사고 나면

할멈 약값은커녕 김치도 제대로 못 담글 형편이 된다.

 

나이 일흔이 넘었지만 지금도 일자리만 있으면 그나마 몸뚱이 성하니

품이라도 팔아 할멈 약값도 하고 제삿날 돼지고기라도 한 칼 올리련만

날이 추워지면서 놀기 시작한 게 두 달이 넘어 엊그제 아버님 젯상에 사과 하나랑

포하나 그리고 술 한잔 올린게 전부였다.

 

역에 도착해 무임승차권을 받은 김영감은 의자에 앉아 자하철을 세 대나 보내고서야

열차에 올랐다.

 

갈 곳도 없고 기다릴 사람도 없는데 서둘러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서야 늙은이들이 모이는 종묘공원엘 도착했다.

집을 나선지 2시간이 지나서다.

 

공원엔 벌써 팔자좋은 영감들이 얼큰해서는 박카스 장사치들과 농을 해대며

흥정만 맞으면 2차까지 갈 기세다.

 

김영감은 그들을 지나 지난번 같이 공원 맨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거긴 김영감처럼 돈없어 술 한 잔도 못 사먹는 늙은이들만 모여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시간을 죽이는 장소다.

 

여기는 박카스나 요구르트를 파는 여인네도 오질 않는 그야말로 김영감이 사는 달동네 같이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없는 같은 공원 안에서도 소외된 곳이다.

 

요구르트나 박카스를 파는 여자들은 나이 쉰을 넘었을까 할 정도인데 화장을 곱게하고

어떻게 아는지 돈있는 영감들 한테만 매달리지 김영감 같이 무일푼 영감탱이는

쳐다도 안 보는 귀신들이다.

 

 

장기 한 판을 두고  나니 시들해 옆사람 장기두는 걸 훈수하다 보니 파출소가 있는

입구 쪽에서 찬송가가 울린다.

점심때가 된 모양이다.

 

찬송가가 울리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가 무료로 주는 밥 한그릇을 타서 같이 장기를 두던

심영감과 나무의자에 걸터 앉아 한 끼를 때웠다.

 

뜨끈한 국물이 시린 뱃속을 훝고 지나가니 추위가 좀 가시는 것 같다.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심영감과 함께 종묘입구 담벼락 밑에 모여 있는 영감들 한테로

자릴 옮겼다.

 

여기는 말 잘하는 영감이 나와서 노인들을 모아놓고 시국을 비판하면서

정치하는 사람들 비난하는 장소다.

 

  

그들 틈에 섞여 세상돌아가는 얘길 듣다보니 무슨 연예인협회에서 나왔다면서

노인들을 뫄놓고 환갑을 넘겼을 가수가 나와 노래를 하는데,

 

 

똥집 편했을 때 같았으면 흥에 겨워 어깨춤이라도 추면서 즐겼을 텐데 시들하기만 하다.

그렇게 또 두어 시간을 보냈다.

 

이제 돌아 갈 시간도 다 돼가는데 저쪽 돈있는 영감들 모이는 구석에서는

일당을 못 벌었는지 아직도 여인네의 노랫소리가 시들 줄 모른다.

 

그 곁을 지나면서 흘끔 처다보니 늙은이들 대여섯이 여자 셋과 어울려 가무를 즐기는데

여인네들은 그 영감들이 던져 주는 1,000원짜리 몇 닢에 신이 났는지

노랫소리는 점점 간드러져 가고 엉덩이는 잠시도 가만 있질 않는다.

 

 

 

누구를 원망하고 자시고 할 일도 아니지만 배알이 뒤틀린 김영감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해대고는

장기와 점심을 같이 한 심영감에게 먼저 가겠노라고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는데 눈가에 이슬이 매친다.

 

심영감과는 동갑이고 알고 지낸지도 벌써 햇수로 10년이 넘었다.

 

한때는 심영감도 종로통에서 버젓한 가게를 가지고 금은방을 하면서 잘 나가던 사업가로

그때는 강남에 아파트도 한 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으면서 심영감 재산마저 축을 내고는

며느리와 이혼까지 하고 아들과 손자도 뿔뿔이 훝어져 산다고 했다.

 

심영감이 종로통에서 보석상을 할 때 자식들 혼수준비를 위해 거래를 하면서

알게 되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그후에도 서너 번 갔었다.

 

그리고 재작년 정말 우연히 여기 종묘공원에서 무료급식을 타려고 줄을 섰다가

심영감을 만나 이렇게 시간이 나면 함께 세월을 죽이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시간은 오후 3시 조금 넘었을 것 같은데 해가 안 나 그런지

눈이 침침해 그런지 어느새 어둑해지는 것 같다.

 

종묘공원을 뒤로하고 탑골공원에나 들러 갈 생각에 종로2가로 걸음을 옮기면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때운 김영감은 집에서 기다릴 할멈이 떠올라

탑골공원을 포기하고 종로3가에서 지하철에 올랐다.

 

출퇴근 시간이 안 돼서 그런지 열차 안은 한산하다.

선반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신문을 꺼내 들고 경로석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신문을 뒤적이다 보니 자식과 떨어져 사는 노인이 죽은 지 일주일 만에

이웃에 의해 발견됐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눈가에 또 이슬이 매치면서 자식과 며느리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 얼굴이 자하철 창밖 불빛을 따라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 추위에 어찌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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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1.10 19:04

    첫댓글 나도 노후대책 대충은 해 놔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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