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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P.15~16 :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도 드문 역사책이다. 500년 왕조 동안 임금과 신하가 아침부터 조정에 모여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안건을 가지고 누가 어떤 내용의 발언을 했는지, 그 외에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조는 ‘역사의 나라’였다. 그 내용도 아마추어가 재미로 쓴 것이 아니라, 선발된 엘리트 사관史官이 사명감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다. 왜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역사서 집필(?)에 정력을 쏟았을까? 그만큼 후세에 내려질 판결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판결을 의식하면 함부로 행동하기 어렵다. 또한 이 기록들은 후손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판례집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대법원 재판에서도 판례 연구가 대단한 비중을 차지한다. 판례집은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애매한 상황에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한다. 인생이란 애매함의 연속이다. 이 속에서 참고자료는 역사라고 하는 판례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역사의 축적과 판단의 정확도는 비례한다.
P.103~104 : 제주의 올레길은 대부분 바닷가를 끼고 길이 나 있다. 약초도 해풍을 맞아야 약이 된다. 염기가 함유된 해풍을 온몸에 맞을 수 있는 올레길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바닷바람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작용이 탁월하다. 특히 화가 뭉쳐서 울화병 기운이 있으면 올레길이 좋다. 지리산은 산길이라서 포근하게 품어주는 기운이 있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하듯이 산의 기운은 사람을 어질게 만든다. 기운이 충만해야 화를 안 내고 어질어진다. 기운이 모자라면 화를 자주 낸다. 산은 사람의 고갈된 원기를 보충해주는 작용을 한다. 충북에 있는 괴산호의 둘레를 도는 산막이길은 약 4킬로미터 거리이다. 호수의 물은 바닷물과는 다르다. 소금기가 없는 호수의 물은 마음을 가라앉히면서도 섬세하게 다듬어주는 역할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jos-zIl8I24
P.140~141 : 동양 부자와 서양 부자는 베푸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로마의 부자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건물, 예를 들면 극장이나 도서관을 세우거나 광장을 조성하는 데에 돈을 썼다. 이에 비해 동양의 부자들은 밥을 먹이는 데에 돈을 썼다. 식객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 조사를 해보니 내로라하는 사대부 집안의 안주인들 상당수는 과로로 사망하였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 밥해주고 치다꺼리하다가 죽은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적선은 서양처럼 건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후대인들이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집을 거쳐 간 과객들의 입소문에 의하여 평판으로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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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조용헌의 동양학은 다르다
조용헌은 지난 세기까지 우리 생활의 기틀을 이루었던 동양 정신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분투하는 동양학자이다. 고전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강단講壇의 동양학과 달리, 저잣거리와 제도권 밖의 인물들 사이에 유통되는 강호江湖 동양학을 추구하는 그는, 발품을 팔아야만 취할 수 있는 귀한 이야기들을 찾아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마다하지 않는 외곬의 문필가이다. 또한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능엄경》 연구로 학위를 받은 불교학 박사이기도 하다. 그의 동양학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지난 30년간 그는 유?불?선의 고수들을 포함해 무당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났다. 역사를 ‘인간사의 판례집’이라고 규정하고(15쪽) 조선의 부자를 졸부 - 명부 - 의부(134쪽)로 나눠 우리 조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굴하고자 한 데에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선후대의 고리를 잇고자 한 조용헌 특유의 동양학이 담겨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프레임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에서 자주 거론되는 개념에는 ‘이판사판’ ‘발복’ ‘권력과 은둔’ ‘철’이 있다. 학교 수업과 책으로 배우는 이판理判과 달리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림으로써 터득되는 사판事判(42쪽)의 개념은 공자의 시련을 ‘상갓집의 개’라고 표현한 사마천에게도 엿볼 수 있는 고진감래의 인생관이다(38쪽). 덕을 쌓아야 후대가 번성한다는 발복發福 개념은 동양학의 윤리성을 견지한다(137쪽). 권력과 은둔은 권력이 있으면 은둔이 있다는 전제와 더불어(70쪽) 조선의 권력가들은 심산에 구곡을 만들어놓고 때를 기다렸다는 일종의 유토피아 개념이면서(104쪽) 사람에게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필요하며 이때 스스로에게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궁극의 길’이라는 철학이다(67쪽). 철(時)은 《주역》과 대자연의 요소이면서 인생에 기다려야 하는 때와 나아가야 하는 때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통찰이다(245쪽). 생에 단단히 발붙이는 한편으로 과거와 미래, 빛과 그림자를 넘나드는 조용헌의 철학은 앞으로만 내달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의 프레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만 권의 책을 읽고 온 세상 만 리 길을 여행하리라,
사물을 보고 이치를 궁구하니 대자연의 이치는 끝이 없다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은 총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만 권의 책을 읽다讀萬券書>에서 조용헌은 “얼굴을 보는 관상, 그 집의 형태를 보는 가상이 있는데, 서상書相이라는 것도 있다”며 책의 질과 양, 서재의 구조와 정돈 상태로 그 사람의 정신적 깊이와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2장 <만 리 길을 여행하다行萬里路>에서는 “인생을 알려면 건달이 되어보아야 한다”며 천하주유의 건달론을 펼친다. 3장 <사물을 보고 이치에 이르다格物致知>는 ‘토정 선생’이라고 일컬어지던 제산 박재현의 일화를 통해 신통한 예측력은 일상의 관찰력에서 비롯됨을 피력한다. 4장 <대자연의 이치는 끝이 없다調和無窮>에서는 별자리, 《주역》, 계절의 순환에 깃든 의미를 밝히고 있다. 각 장은 조용헌이 지난 수십 년간 인생고수들을 만나고 정리한 사람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으로 나서 만 권의 책을 읽고 온 세상 만 리 길을 여행하는 한편, 사물을 보고 이치를 궁구해야 하며, 마침내 대자연의 이치는 끝이 없음을 깨닫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헌에 대해 잊혀져가는 것들을 복원해내는 동양학자라는 평가가 있는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과거에 초점을 두고 있다기보다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 정신의 근원을 좇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우리가 조용헌의 글에 매료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