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 강의가 무언인고 싶어서 35분 짜리 영상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기위한 조건=을 시청하다 일본에 관한 통계 수치에 약간 자극을 받았는지
키보드까지 구매 했네요. 쓰다보니 나이탓 지식 부족탓 등으로. 앞뒤 맥락도 맞지 않지만 자유롭게
그냥…구어체로…글자 나열하듯이 쓰기로 했습니다.
일본에 40여년 사는동안 한국을 다녀온 기간 고작 20여일 뿐이었지만
이질적이 일본의 문화환경 속에서는 언제나 경계인의 삶일수 밖에 없었기에 늘 외로웠을 겁니다.
2004년도인가? 처음으로 ‘겨울연가’라는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통곡을 했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지금도 겨울연가의 OST를 들으면 가슴이 아리답니다.
오래전에는 몇년동안을 겨울연가의 배경음악 이었던 리챠드 그래이드만의 ‘Winter sonata’를 거리의
여기저기에서 자주 들을수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을 했구나!! 정말 문화 쑈크였고 그리고 그리움이었으리라.
글이 일관성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김누리 교수의 영상에서는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에서 발표한
30-50클럽(인구5천만에1인당 국민소득3만달러)중에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준이 일등이고 다음이
영국>이태리>독일>프랑스>미국>일본 순위라고 합니다.
#민주주의 진입년도는 일본(1992년) 독일(1995년) 미국(1997년)
영국(2002년) 프랑스(2004년) 이태리(2004년) 한국 (2018년) 순 이네요.
#세계 여론조사 결과(2021년도 기준)
한국이 12항목중에
세대갈등,성별갈등,종교갈등,정당갈등,이념갈등,빈부갈등,학력갈등
의 7개 분야에서 일등을 차지했다 합니다. 불평등 지수 일등이라고..
#KDI 한국개발연구원조사에서는
1,000명 이상 각국 대학생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한국81% 중국41% 미국40% 일본14%가 전쟁터 였다고 합니다. 열등감,무력감,좌절감에서도 한국이 일등..이라고…
한국의 선거제도의 나갈 방향에 대하여 이야기한 부분도 많이 유익했고 고무적 이었습니다.
외부에 사는 제가 보기엔 한국은 너무 역동적입니다. 현재진행형으로 말이지요~~~
일본인들은 대부분 한국사람들은 늘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해요. 무식해서 떠들고 억지만 부린답니다.
자기들은 어느때나 평화롭고 조용하며 살기좋은 나라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아서 좋기만 한데..
김누리 교수는 한국은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국가나 사회애 책임을 묻지않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한국이 능력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네요. 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는 순전히 자기탓 개인탓
이라고 하지 능력주의 운운하지 않아요. 그래서 갈등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능력주의에 관심이 별로없어 도 보입니다
#아스카시대(飛鳥時代)593-710 :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
#7세기경에 천황이라는 호칭과 더불어 국호를 정식으로 ‘일본’으로 부르기로 했었며 그전부터 자칭해 오던 왜(倭)는
화(和)와 야마토(大和)로 한자 표기를 하고 (천황) (일본)과 함께 사용하게 됩니다.
=성덕태자가 제정한 [第十七条헌법]-<현재의 일본국 헌법이 아님>은일본문화의 중심적 개념으로 고찰
할수 있는데 그 배경에는 당연히 성덕태자의 第十七条헌법이 있는것 처럼 당시의 조정(朝廷)의 의향,
사상이 있있다고 합니다=
“[제17조헌법]은 성덕태자의 사상성(思想性)에 의해 유지되는 천황제도에 대한 신앙심과 맞물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和)개념의 보급과 침투에 막대한 영향을 현재까지 끼치고 있다”고 주석을 달고 있습니다.
和思想은 “이질적인것을 공존시키는 힘”이라고 학자들이 주장하지만 현실적 으로는 엉뚱한 해석과 미화로
실제 생활속에 녹아들게 된것은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화사상(和思想) 개요(槪要)에
‘질서나 안녕을 해치는 개성이나 자유는 용서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집단의和>를 중요시 하다는 해석이 붙어있습니다.
그러나 성덕태자의 17조헌법은 아래와 같은 문구가 많이 등장합니다.
[제1조]에서는
”무슨일이든지 모두가 사이좋게 다투지 않고 협조 하는것이 좋은일이다”
[제10조] 에서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니 타인과 생각이 달라도 화내지마라”
[제17조]에서는
“독단적이 되지말고 타인과 잘 논의하라”등등
성덕태자의 제17조헌법은 전반적으로 유교와 불교를 접목한 부분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집단의和- 개념이 성덕태자와 많이 다른것 같지 않습니까? 같을까요?
일본 시니세(老舗)에 1400년 역사를 가진 료우캉(旅館)이 있는것으로 보아서 622년 성덕태자 사후(死後) 에
천황을 중심점에 두고 원을 그리듯이 그 주위를 쇼군(將軍)이 에워싸고 다음에 귀족이 그리고 사무라이(武士)
-(승려;준무사계급) 그다음이 농.공.상민(農.公.商)이고 마지막으로 최하위층인 천민=(非人)또는(穢多)라고 불리는
피차별신분으로 이렇게 여러개의 원이 모여서 하나의 커다란 체계(和)라는 집단을 형성 했다고
가정을 해보면 그들이 말하는 “和思想” 이란 고대부터 이어져오는 세습제로, 페쇄된 사회속에서 정해진 신분(위치)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서만 살아가게 했다고 할수있지 않을까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출세한 토요토미에 의해 그 체제가 더 확고하게 다져졌다 라는 일설에 대해서는 확인을 못해서 그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에는 장인(匠人)이나 시니세(老舗)라고 하는 200년 300년 500년 1000년 1000년 이상된 전통적인 한가지
사업만 하는 소점포나 기업들이 많습니다. 우리동네에도 130년 정도 되었다고 하는 12조(약6평) 다다미 크기의
작은 우동가게 주인도 대물림을 영광스러워 합니다. 내년에 대학 졸업하는 아들이 뒤를 이을거라고 이야기하데요.
정해진 장소에서 이탈하면 우선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우니 같은장소에서 대물림을 하면서 생존해 갈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인데요, 그렇게 계승되는 것에 일본사람들 스스로도 굉장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상들의 그 힘들었을 삶을 이해나 하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현대에 와서는 문화유산으로 전승되고 있으니 모양새는 좋습니다.
시대극에 많이 등장하는 복잡하고 비밀스런 지하나 지상 통로들을 보고 있으면 두려움을 이기려는
인간의 지혜에 감탄을 하지 않을수가 없답니다.
일본인들이 무척 섬세하고 정교한 일들이나 어렵고 두통이 날 정도로 복잡하고 축소지향적인 것에 특화되어 있는것은
간단히도 내목이 사무라이의 칼에 물건처럼 잘리는 공포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방법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
말이지요. 이유도 없이 목숨줄이 날아갈지 모르는 그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때로는 숨죽여 가며 숨어가며 조용히
살아야 했을….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수 밖에 없는 모양새로 나타나는 것이 위의 특성이며 특징들이 아닐런지..
지금도 TV시대극 드라마(30년-50년대에 제작된 사극들을 쉬지않고 재방하고 또 또 재방송함)에서 보통으로
자주 보여주고 있어요. 요즈음 사극들은 세련되어서 그런 장면 없습니다.
옛날 사무라이들이 남의 목을 그저 연습 삼아서 베는것 보면 참….그러한 칼날이 본인에게로 향할때는
하라키리(할복:腹切り)가 되어 ‘미덕’으로 치켜 세워지는 일본적인 정신문화 이기도 합니다만…
일본불교가 현세 이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질수 밖에 없었다면 저러한 원인들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지 않을수 없네요.
사람들이요, 오르지 못하는 나무는 아예 쳐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직업상 오후에는 학생 알바들과 같이 일하는데 그냥 자기 현실에 만족 한다고 해요. 꿈 같은거 별로 없다고.
지금의 청년들(대학생포함) 거의가 도통 일자리에 대한 욕심이나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하는 마음들이 없어 보입니다.
다른 회사의 젊은이들에게서도 활기를 느낄수가 없어요.
그들의 본질은 타책(他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본인이 판단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행동하길 기다립니다.
본인이 결단하게 되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이들은 임기응변을 모르데요.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상황에도
무엇이던 메뉴얼대로만 처리 합니다. 우리집은 사정상 자주 구급차를 불러요. 긴급인데도 구급대원들, 간호사들도
메뉴얼 우선 이랍니다. 구급으로 실려 온다고 다 살수 있는것은 아니구나. 피부로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컴플레인을 제기하는등 불만을 호소 했습니다..다른사람들은 조용히 기달려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엔 저도 잠자코 있습니다. 죽던가 말던가…ㅎㅎ
비지네스에서는 이쪽이 실수를 했는데도 그들이 먼저 머리를 숙이는 편입니다. 그래서 사업할땐 종종
그 덕을 보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대의 잘못도 자기들이 먼저 사과를 합니다. 요즈음도 그러한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외자계 회사들이 실수를 해도 무조건 적일만큼 이득을 볼때가 많다고 하네요.
일본사람들의 사고(思考)는 완전히 블랙박스 같습니다.
강자엔 (너무) 약하고 약자엔 (너무너무)강한 일본인들이 저러할때는 거의 소작인 집단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 도많습니다.
예전에 한국의 스님이 일본인들은 “후지산”을 경외한다고 하더이다.
그러고 보면 주위에서도 평생에 한번은 꼭 다녀와야 할 산이라고들 합니다.
에도시대(江戸時代)때는 후지산 가기위해 가면서 죽을 꺼니까 죽을 준비를 하고 길을 떠난다고 들은적도 있는데..
그 스님 말씀이 일본은
후지산 같은 높은산이 많고 수직적이라 순종과 복종이 몸에 베어 있다고요.
변화를 부정하는 집단 억압속에서 탐미와 무력의 이중성을 배양하는(탐미와 야만의 이중주?)
일본민족이라고 했습니다.
또 스님왈 한국인은 북한산을 바라보면 언제든 올라갈수 있다고 한다네요.
한국산들은 고만고만한 높이들이라 너도나도 자기 잘낫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한국은 언제나 창의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호탕하고 자유로움이 있다고 합디다.
지리적 배경,환경도 민족정신 형성에 한몫을 하는건 부정 할수가 없을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의 계급제 사회에서의 죽음에 대한 공포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오랜 세월동안 유전자로
이어져 오고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히게 됩니다.
일본사람들 여권 소지율이 24%~ 25% 정도였던걸로 아는데 2020년도 기준 21.4%로 나오네요.
코로나 영향이 있긴 하지만 외부로 나가는걸 싫어 한다는 증거도 되는거네요.
한동네서만 70~80년 그냥들 보통으로 살아요. 그래서 늘 보는 얼굴들이고 늘 보는 동네고 늘상 입니다.
정말이지 별로 변화를 원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자기의 감정이나 자기를 내세울때는 사회적 압력을 받습니다.
저처럼 자기주장이 강하면 응징을 당합니다. 아주 심하게요.(경험 많음)
그런 사회적인 관습이다 보니 혼네(本音)와 다떼마에(建前)가 있어야 하고 흐름을 보며 태도를 빨리 바꾸어야만
살아남을수가 있는거지요. 그리곤 또 금방 잊어요.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상대의 힘에 눌려 참는 체질(合理的泣き寝入り)”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애용되는
일본사회에서는 이러한 멘탈리티 개선을 위해서라도 어떤 행동이 요구될 시기에 온것도 같지만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과 조우하지 않는 이상 사회적 변화는 어려울것 같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만.
자기들이 전쟁 일으키고 식민지 정책 펼친것 등을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질 않습니다. 제가 역사를 좋아해서
잘 알아요. 제 때도 그랬는데 요즈음의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30대의 젊은이들에게 물어봐도 도통 모르더라고요.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질 않으니까 잘 모르고 이해도 못하는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지인들에
권하곤 하는데 다들 일제 식민지 정책을 이해를 못하더라구요. 학교같은 공공기관 에서도 왜곡 시켜서 가르치기도
하니까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원효대사를 당나라 사람으로 소개한 책자도 본적이 있습니다. 전에는 그 출판사에 항의를 할려고도 했는데
[그 원효] 라서 그만 두었습니다.ㅎㅎ
‘村사회’의 특징인 뭉치고 싶어하는 관습은 타민족에게 국토를 빼았겨본 적 없는 평화로운? 섬나라였기에 그런
가치관을 쉽게 공유 할수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은데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나만 고립되어 무라하치부{村八分}되는것을 피하고 싶기에 재빠르게 변심할수 밖에 없다는 거지요.
최악의 악습으로 존재하는 {村八分}와 {부락민문제}는 和문화(和사상)가 남긴 나쁜유산 같은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튀어나온 못은 두들겨라”는 속담이 그냥 생긴건 아닌듯 합니다.
틀속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을 “배제(排除) ”하는 문화가 참으로 뿌리 깊습니다.
“미투운동”이 아주 잠깐 몇주도 아닌 몇일 반짝하다가 기자회견을 청한 여자분 두명?과 함께 소리 소문도 없이
묻혀버릴때는 어이없음으로 한숨을 토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희생양을 만들어 놀림하는 문화는 불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낮 시간대TV와이드쇼나 SNS, 소속된 커뮤니티나 조직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집단적 습관]이며 오락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텐데….
65살 이상된 늙은 연예인들이 진치고 앉아 함께 그런 놀이를 즐기는 장면들을 보면 할말이 없어집니다.
철학 인문학등 교양방송등을 강의하는 메체는 전무하며 자극적인 방송으로 시청률 벌기에만 급급한
그런 메스컴들도 일본 특유의 정치 풍토에 까지 물들어 있다고 봅니다.
‘윗분’에 관한 보도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지만 손타꾸(忖度)라고 ‘윗분’의 뜻을 헤아려 지레짐작으로
처리해서 보도하는 자세와 그러한 대중매체에 의한 세뇌로 권력에 대하여 순종적인 것도 여기사람들이 자랑하는
‘和思想’이 저변에 깔려 있나 싶기도 합니다.
모든 국민은 국가(천황)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 새해3일동안 ‘皇居’로 몰려가서 천황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도 열시미 일해서 세금을 바쳐야 합니다. 심하게 말해서 서민들 등쳐 먹고 있다고 하고 싶네요.
정말이지 욕하고 싶습니다. 기업만 우대하는 세제(税制)로 서민들에게 부담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법인은 조금이라도 과세를 적게하고 개인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징수해 가는 일본나라.
노란봉투 보내와 노이로제 걸리게 하고 다음번엔 붉은 봉투 날려서 우울증에 빠지게 하며 이자까지 악착같이
챙겨간답니다. 시중의 고리대금업자와 다를것이 없어요.
자동차세도 엄청 비쌉니다. 지진이 많은탓 이라곤 하지만 불필요한 세금도 많아요.
또 동일본지진 복구에 사용 한다면서 부흥특별소득세를 만들어서는 아직도 혜택 받지 못한 3만여명의
지진 이재민에게는 헤택을 주지도 않고 엉뚱하게 오키나와에서 쓰여지는 용도도 아리송 하지만 그런일에는
어디에서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 하지도 않더군요.
남의일에는 정말이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은지 생각 합니다.
김누리 교수 영상 통계 수치에서 민주주의 진입년도가 일등 이라니 웃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입니다,
국민들이 별로 반응을 하지 않아요. 그냥 당연들 하다네요.
불황시에 소비세 증세를 당해도 “어쩔수 없다” 코로나 대책으로 보상이 없고 또 미비해도 “그런가 보다” 입니다.
수도세가 전기세가 올라도 오르는가 보다 입니다.
전직 총리가 코로나 연설 할때 ”첫째로 자조(自助)하시고 둘째로 공조 (共助)하시고 세번째에
국조(國助)에 의지 하시라” 했습니다. 그러나 자조(自助)까지 입니다. 자조 못하면 그냥 끝입니다.
공조도 국조도 단어만 존재 합니다. 보여주기 식이고 말일뿐이라는 것을 다들 인식 하고 있지요.
총리 연설에 대한 소감을 아는 이에게 묻다보면 묻는 사람이 머쓱해집니다. "정치이야기는 관심이 없는데" 하면서
그리곤 한동안은 이쪽 시선을 피하데요. 우린 집에서 조차 그런 경향이 있고 여기선 특히 친한 사이도
없지만 친하다 해도 그런 질문 자체가 금기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살면서도 자주
까먹다보니 무안을 당하는건 언제나 제 몫이랍니다.
자조(自助)를 못하게 되면 폭력적인 대부업자에 말려드는건 금방입니다.
일본만큼 고리대금업이 잘 발달되고 많이들 이용하는 나라도 없을듯 합니다.
식구중에 도박에 미친 인간이 하나 있다면 아마 평생 피멍을 안고 살아야 할겁니다.
일본인들의 정신사상(=和思想)” 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어라” 고
유치원때부터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민폐가 되어선 아니됩니다.
인생 살다가 코너에 몰려도 스스로 살아 남아야 합니다. 자조(自助) 지요.
어릴때부터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한 인내력 훈련에만 집중시킨 교육방침의 결과가 아닐까요.
어떠한 불이익에도 참도록 가르칩니다.
후지산 산록 북서쪽에 위치한 해발 920-1300미터에 거대한 수림(樹林)이 있습니다.
약 1200년정도의 역사를 가진 신생 원생림 이라는데
‘아오키가하라쥬카이(青木ケ原樹海)’라고 불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인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자살장소:스포트>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혼자만의 짐작이긴 하지만 자살자 수도 사실은 한국보다 더 많지 않을까 추측이 되는
한 예로써 위의 신비한 수림(神秘樹林)을 예로 들어 봤어요.
얼마전에는 시의원이라는 인물이 그간 사정은 알수 없으나 코로나 환자(노인)
에게 더 이상 살지 말고 죽어라는 막말이 문제되어 잠적을 하더니 다시 나타났어요. 부총리 아소씨도
비슷한 말을 내뱉은 적이 있지 않았을까~~
힘든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고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사회는 변해갈 이유가 주어지는건데 말입니다.
일본민족의 和思想이라는 정신문화의 본질은 ‘개성을 중시 하는것’이 아니라 ‘집단의 질서와 안녕,
예의와 작법을 중시’ 하는 것이기에 그 작법이나 예의 때문에 저도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기네들 和思想은 “[동조압력同調圧力]이 아니다! 또한 동조압력이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것일수 없다”
면서 학자들이 주장 합니다. 다른나라도 그렇다고 강조 하는걸 겁니다.
입학할때 분명히 한글로 된 내이름으로 서류등록을 했는데 일본이름이 쓰여진 졸업장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그 미묘한 감정은 분명히 모멸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워지지 않습니다. 가슴 한곳에 생채기로 남아 있어요.
그런데 이젠 일본명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이중성..마음이란것이 얼마나 교활한지..ㅎ
”냄새나는 것은 뚜껑을 덮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조건 없어요. 그냥 덮어요. 덮어야 하구요.
그리곤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한국인들과는 사고의식 체계부터가 조금 다른건 아닐까 같을리가 없겠지요~
앞으로도 한일관계가 제대로는개선이 될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냄새나면 덮어야만 일본에서는 ‘미덕’이 됩니다. 사사로이는 가정에서 조차 그러하고요,
너나없이 누구도 시끄럽게 하면 않되요.
코로나확진자수,사망자수등등 모든것들도당연히 숨기고 실제와 다르게 발표합니다.
정치가들 비리 당연히 덮고가요.그리고 책임질 일이 발생하면 약자에게 넘겨요.그래서 밑에 사람들이
또 다 짊어지고 갑니다. 자살로 마감 시키지요. “미덕”이 됩니다. 그런 에피소드 넘쳐납니다.
동일본 지진 피해로 다른지방으로 이주하게된 지진 피해주민들과 특히 어린 학생들이 전학 간 학교에서
당한 왕따로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후유증이 심하다고 합니다. 어떤 남학생이 너무 힘들어서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고 교황을 만난 사연도 지난주에야 (3월11일로 지진 발생 11년째) 읽었습니다.
여긴 요즈음 코흘리게 유치원생들 사이에도 왕따 문화가 성행을 한다는데
진위을 떠나 그런 소문 자체로도 현실이 우울해질 것 같네요.
한동안 코로나 걸린 사람들에게 민페 라면서 ‘자율경찰대’라고 스스로 칭하고 그런 집들을 색출해서
푸른비닐을 씌우고 붉은 종이를 붙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게 같은곳에도 장사 하지 말라고
문에 낙서 하고 유리창을 부수고 다니더군요. 난리법썩 이었답니다.
약 100년전 관동대지진때 조선사람들 대학살이 하나도 거짓이 아닌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도 증명되는 겁니다. ..
.
동경 우에노 공원등 여러군데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음식 봉사하고 그러시는 분들 거의가 한국계 분들이더라고요.
이국땅에서 오랜세월 모진 고난과 고통속에서 살아 왔길래 그 아픔을 잘 알고 공유하려는 그분들이
그저 그저 존경 스럽습니다.
에도시대(江戸時代)와 명치유신(明治維新)을 거치면서도 없어지지않은 귀족과 화족(華族)들이 주요
멤버였던 일본제국의회((帝國議會)=표면적으론 1947년에 사라짐) 에서 ‘귀족원’이라고 불려졌던
귀족의원과 화족의원들이 여전히 어둠속에서 권력과 권위를 조종하는 나라. 그 특권층들은 서민들과는
완전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절대로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 자제들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논스톱으로 진학할수도 있다고 해요. 그리고 일반 학생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한국 학생들처럼 지옥맛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을듯도 한데요.
굳이 대학 간다고들 아등바등 하지 않는데들 지옥맛을 느낄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며 알바하고 졸업해도 계속 알바생이나 공장 같은데를 편하게 또는 후리랜스로 빠지는
아이들도 꽤 있는것 같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냥 '오타꾸'로 살아가거나 다들 어깨에 힘을 뺀
그런 모습만 본 것 같습니다만…
일본학생 14% 수치는 아마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비율이 아닐런지 …
그들의 특징이라고 할수도 있는 “숨기는 미덕”이 없다면 왕따수준 또한 한국보다 더 높지 않을까요..
집 가까이에 중학 고등학교 소학교가 있는데 자주 마주쳐요. 밖에서도 왕따 당하는 모습들…
그 행동들을 보다보면 말릴수도 없어요. 여기선 지켜보는 자체가 잘못하면 간섭이 될수있는 빌미가 되어요.
세습적인 정치인들 거의가 할배들입니다. 국회 중계 보다보면 망언 제조기 할배는 늘상 졸고있고
다른 할배들도 하품하고 두다리 뻗고 졸고 있는 모습을 국민들은 개인적으론 웃음으로 응대 하면서도
집단으로 행동해야 할때는 권위와 권력에 복종하는 동일적 행동을 취하는 이중성.어느쪽이 더 바보이고 덜 바보인지 .
정치같은거 어렵고 모르니까 그냥 패스하고 자기의견 없음이고 지지하고 싶어도 바꿀 인물을 모르겠으니
그대로 괜찮다네요. 거의가 자기생각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것이 문제인것 같습니다.
고인 물이 썩어서 폭발할때 까지는 뚜껑은 열려지지 않을 나라 ….
70년 합법적 독재?를 눈감아오는 국민들 덕분에 앞으로도 평화로운 일본이다 외치며 잘 살아 갈겁니다.
외부의 강력한 세력이 일본을 굴복이라도 시키던지…. 아니면,
후지산이라도 폭발하면서 미증유(末曾有)의 지진이 두어군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나라가 완전히 파괴가 되든지 했으면 좋겠다는…
부드럽지 못한 성격이라 일본인들에게 미안하게 거친말을 뱉고 말았네요.
어찌되었건 우선은 천황제도가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을 많이 쓰고 싶었는데 반대적인 단어들만
나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읽어 주시는 분들 스트레스 받지 마시길.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이밤도 편안하고 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라울이라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사람들과 문명를 시작하고 그들이 더욱 공부해서
정신을 확장하면 그 광활한 정신과 함께 지구너머의 미지로
나아가려는 계획을 꿈꾸고 자라가는 의미이다. <현통마안에서 발췌>
첫댓글 글 잘 봤습니다. 글을 보면서 그 동안 공부했던걸 다시 생각해봤네요.
다만 여쭤볼께 있습니다. 정확히는 애도막부때부터지만 메이지유신때부터 현재까지 일본정치의 중심은 관동지방인 도쿄지요. 언급하신부분이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보여준 행동은 전형적인 관동인의 모습을 보여줬었는데요.
제 경험과 관찰로 봤을때에는 관서지방인 오사카부터해서 서쪽으로 갈수록, 우리가 알고있는 일본인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더라구요.
또한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도쿄의 젊은층으로 형성된 실즈(SEALDs)가 도쿄국회의사당에서 보여준 시위는 우리의 촛불시위만큼 성숙된 시위를 보여줬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건과 경향부분에서 변화의 요소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부분에서 오련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부정적인 부분을 말씀하셨으니 긍정적인 부분도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