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7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아골골짜기는 아간과 그가 훔친 물건들을 파묻은 돌무덤이요 골짜기입니다(수 7:25-26).
그렇게 죄인 중에 괴수로 죽은 아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저주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골골짜기를 저주의 골짜기라 하지 않고 소망의 문이라 일컫습니다.
(호 2: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나의 정욕과 욕심으로 인하여 죽었던 그 자리가 나의 아골골짜기이지만 우리 주님과 함께 장사된 무덤이 되어 예수로 살아나는 소망의 문이 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하여 주소서.
이 하루도 나를 드러내는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엡 1:15-23
제목 : 주님의 몸인 교회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으로 거하게 하소서.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 나의 묵상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는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신 구원의 은혜를 찬양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곧 창세전에 약속하신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아들의 생명을 얻은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안에 거하는 우리들에게 거저 주신 구원의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구원의 은혜는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또한 그 아들이 세상에 초림하심으로 그 은혜가 확증되었다.
그 은혜는 다름 아니라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딤후 1:1, 9-10)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영생)을 드러내신지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창세전 생명의 은혜에 따라 아들은 이 세상에 오셨고 죽으셨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는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우리가 알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셨는데 이는 모든 일을 당신의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기업이 된 것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하신 성령으로 인하여 주어진 것이다.
바울은 이제 에베소 성도들의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또한 성도들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에 대하여 감사기도를 쉬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을 향한 기도의 내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그들에게 주실 것과 그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그들의 이성 곧 지각의 눈이 밝히 떠져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들 안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주신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이 어떠한지 알기를 기도한다.
여기서 부르심의 소망이란, 창세전부터 택함을 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영원을 현재로 살면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비록 공중권세 잡은 자의 위협과 바벨론 큰 음녀의 미혹 등 여전히 영과 육의 위협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현재로 누리며 살아가는 그 기쁨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런 이들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약속하신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이다.
이성(理性) 곧 지각의 눈이 밝히 떠지면 그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된다.
기업은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또한 천상교회를 나타낸다.
그런데 천상교회의 모형으로서의 지상교회 또한 그 기업의 풍성함을 누려야 한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했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곧 천상교회를 의미하며 그 천상교회는 이 땅에 있는 지상교회가 이루어가야 할 실재인 것이다.
요한이 본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성전을 보았는데 그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 양이 바로 그 성전이셨다.
(계 21:22-23)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영광이 해와 같이 빛나고 어린 양의 등불이 달빛처럼 빛나기 때문에 그 천상교회에는 해와 달이 필요가 없다.
열방이 그 빛 안으로 들어오고 또한 모든 나라의 왕들이 자기 영광보다 더 밝은 영광의 빛이 있는 그 성 안으로 들어온다.
속된 것이나 가증한 것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그리로 들어갈 수 없으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는 들어간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자들이 누리는 영광의 풍성함은 실로 표현불가이다.
그래서 계21장에서는 그 나라를 온갖 보석으로 명명하는 것은 요한이 이보다 더 아름답고 풍성한 것으로 그 영광을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상교회에서도 이 영광의 풍성함을 누려야 하는데 이는 성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와 사귐을 통해서 가능하다.
(요일 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 위하여 기도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것인데,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다.
그리하여 그에게 뛰어난 이름을 주셨는데,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 그리고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일컬어지는 어떤 이름보다 가장 뛰어난 이름이다.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인 ‘주(主)’를 부활하신 아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시므로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 그리스도를 만물의 머리로 삼으셨는데 그 이유는 교회를 위하여 하신 것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의 충만이다.
여기서 ‘충만’이라는 헬라어 ‘플레로마’는 수동태로 쓰였다.
이는 교회가 스스로 충만해질 수 없으며 다른 존재에 의해서 충만케 되어지는 것이다.
교회를 충만케 하는 다른 존재란 곧 부활하여 높이 들리시고 ‘주’라는 뛰어난 이름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교회의 정체성 곧 본질은 다른 그 무엇으로 충만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야만 한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그 무엇으로 충만하게 되는데 그 허전함과 갈급함을 대신 채우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다.
이는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간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으로 거하게 된다.
(요일 2:16-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따라서 교회의 정체성과 그 본질을 바르게 알고 교회의 역할을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세상적인 가치관이 들어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세상적인 가치관은 무엇이든 크게 높게 많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신다.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적 가치관과 다분히 역설적이다.
세상은 강한 것을 원하지만, 교회는 약한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세상은 부요한 것을 원하지만, 교회는 가난한 것을 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은 많이 가진 것을 자랑하지만, 교회는 없는 것을 자랑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은 항상 높은 것을 추구하지만, 교회는 낮은 곳을 지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이면서도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이다.
나 자신이 바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매몰되어 살았던 자였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육신과 안목의 정욕에 나 자신을 내어주며 바벨론 큰 음녀의 미혹에 나를 내동댕이쳤던 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가정교회의 제사장으로 세우셨지만 가정을 주의 말씀으로 바르게 세우기는커녕 가정을 깨트린 장본인이다.
그리고 한 교회의 목사로 세우셨는데 이를 복음으로 온전히 세우지 못하고 힘들다고 포기해버린 내가 아니던가?
이런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죽어 마땅한 자이다.
나는 지금 영적 상황적 광야에 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나를 덮고 있다.
그러나 분명 믿는 것은 내가 받는 심판으로 그치면 아무 것도 아니나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함께 하기에 생명으로 나올 것을 믿는다.
오직 만물의 머리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이 오늘 교회를 위하여 존재하시듯, 그 충만이 또한 교회 된 나를 위하여 그리고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임하기를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어리석고 미련한 이 종에게 하늘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옵소서.
그리하여 내 마음의 눈을 밝히사 창세전에 약속하신 영생에 대한 소망을 날마다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 오늘 깨달아 알게 하소서.
나는 작고, 어린 아이 같아서 출입을 알지 못하오니 이 종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 따라 하늘의 소망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