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키가 좀 큰 편이다..
186cm...
그래서 인지 전혀 농구못하던 시절에도 키크다는 이유로..
농구장에 끌려나가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조던의 모든걸 흉내내던 친구가 있었다..
혀 내미는 버릇부터 슛폼까지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왼손잡이였다는거.. 빼곤..
그래서 완전 초보였던 나를 그친구는 마음껏 가지고 놀았고..
승부욕이 과도한게 많던 나였기에..
그때부터 이기기 위해서... 매일같이 집 뒤 학교 운동장에서
2~3시간씩 농구 연습을 했었다..
그리곤 집에 와서 보던 조던의 모든것이라는 비디오 테이프..
그 비디오는 나에게 조던이라는 이름을...
농구가 얼마나 매력적인 운동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농구 9단.코트의마술사.천재.대통령등...
코트위의 예술가들?에게
붙여지는 칭호는 많다..
하지만....
Air.황제등을 포함
전세계를 통틀어
감히
신이라 칭호를 받았던 인간...
그는 농구황제라는 칭호로는 부족했다..
그의 플레이는
정말이지 신에 가까웠다..
예전 허재의 스타쇼에서 허재선수를 마이클에 비교하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허재선수의 표정이 당황해하며..
[비교가 안된다며.. 정말 그 친구 경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농구의 신같다는
느낌이 든다라며]라고 했던 말이 기억된다..
그리고 93시즌 당시 챔피언결정전경기이후 피닉스선즈의 한명이 했던말이 기억난다..
"그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적없습니다.
아무도 그를 막을수 없으니까요."
이처럼 같이 경기를 한선수들에게 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마이클 조던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은퇴이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 기억속에 최고로 남아있는..
농구역사상
가장위대했던..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마이클조던
이 아닌가 싶다..
본명 : 마이클 제프리 조던(Michael Jeffery Jordan)
포지션 : 슈팅 가드(G)
키 : 6피트 6인치(198cm)
몸무게 : 216파운드(97Kg)
생년월일 : 1963년 2월 17일생
출생지 : 뉴욕 브룩클린
출신학교 : 윌밍턴 레이니 고등학교 -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드래프트 : 1984년 전체 1라운드 3순위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
NBA경력 : 총 15시즌(시카고 불스: 84-85시즌~92-93시즌, 94-95시즌~97-98시즌
워싱턴 위저즈: 01-02시즌~02-03시즌)
주요 수상 내역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5회(87-88ㆍ90-91ㆍ91-92ㆍ95-96ㆍ97-98시즌)
▲챔피언결정전 Final MVP 6회(91ㆍ92ㆍ93ㆍ96ㆍ97ㆍ98년)
▲정규시즌 득점왕 10회(86-87∼92-93시즌, 95-96∼97-98시즌)
▲All NBA First Team 10회(87-93년, 96-98년)
▲올해의 신인상(84-85시즌)
▲올해의 최고 수비수상(88년)
▲슬램덩크 콘테스트 우승 2회(87ㆍ88년)
▲올스타전 MVP 3회(88ㆍ96ㆍ98년)
▲스포팅뉴스지 선정 올해의 대학선수 2회(83ㆍ84년) 등등
[주요 개인 기록]
[조던의 동상에 적힌 그의 기록]
▲통산 경기당 평균득점 1위(30.2점)
▲연속 경기 두 자릿수 득점 1위(866경기. 1986년3월25일∼2001년12월27일)
▲통산 득점랭킹 3위(3만2천292점)
▲통산 가로채기 3위(2천514개)
▲플레이오프 한경기 최다득점 1위(63점. 86년 플레이오프 1회전<보스턴전>)
▲플레이오프 통산 평균득점 1위(33.4점)
▲플레이오프 통산 최다 가로채기(376개)
▲챔피언결정전 전반 또는 후반 최다득점 1위(35점)
▲단일 챔피언결정전 평균득점 1위(41점. 93년 VS 피닉스)
▲한경기 연속득점 1위(23점.87년 애틀랜타전)
▲한시즌 통산득점 3위(3천41점, 86-87시즌) 등등
주요 우승 기록
▲시카고 불스 3년 연속 우승 2회(90-91∼92-93시즌, 95-96∼97-98시즌)
▲미국 국가대표로 올림픽 금메달 2회(84년 LA올림픽,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미국대학선수권(NCAA) 우승(82년) [연합]
바이오 그래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1963.2.17 뉴욕 브룩클린에서 태어남.
1982.3.29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신입생으로 조지타운과의 NCAA 파이널서 결승 버저비터를 성공시킴.
1984. 미국 농구 대표팀으로 선정 올림픽 금메달 수상.
1984.9.12 하킴 올라주원, 샘 보위에 이어 1라운드 3순위로 시카고 불스에 지명됨.
1985. 평균 28.2득점(전체 3위)으로 신인왕 차지.
1985-1986. 발 부상으로 64경기 결장.
1986.4.20 보스턴 셀틱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대결서
플레이오프 역대 최다 득점인 63점을 기록함.
1986-1987. 올스타 슬램덩크 챔피언 등극,
평균 37.1점으로 득점왕 7연패의 시동을 걸었고,
역시 7시즌 연속 All-NBA First Team 선정의 막을 올림.
[슬램덩크 컨테스트中 ]
987-1988. 2년 연속 올스타 슬램덩크 챔피언 등극.
정규 시즌 MVP, 올해의 최고 수비상,
올스타전 MVP선정, 6시즌 연속 All-Defencive First Team 선정의 막을 올림.
1989.5.9 뉴욕 닉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트리플-더블 달성.
1990.5.28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경기서
자신의 한 경기 최다인 69득점을 기록.
1990-1991. 정규 시즌 MVP, NBA Final MVP선정,
시카고 불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
1991-1992. NBA 역사상 최초로 정규 시즌 MVP와
NBA Final MVP를 2시즌 연속 차지.
플레이오프서 자신의 통산 5번째 50점 이상 득점 기록을 세움.
원조 농구 드림팀의 멤버로 2번째 금메달을 획득.
1993.6.20 NBA Final 역사상 최고인 평균 41.0점을 기록,
시카고 불스 3연속 우승 달성. 3년 연속 NBA Final MVP에 뽑힌 최초의 선수가 됨.
1992-1993. 평균 32.6점으로 윌트 체임벌린과 타이인 득점왕 7연패를 달성.
1993.8.3 갱단에 의한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1993.10.6 1차 은퇴를 선언하고 야구로의 전향을 발표.
1993.12 시카고 화이트삭스 트라이아웃에 참가.
1994.2.7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 체결.
1994.3.31 화이트삭스 산하 더블A팀인 버밍햄 배런스에서 본격적인 야구 선수생활 시작.
[야구시절 마이클조던]
1994.4.8 프로야구 선수로 첫 출장.
시즌 출전 기록(주요 포지션: 우익수. 타율: 0.202, 타점: 51, 도루: 30개, 삼진아웃: 114개.)
1994.9.9 스카티 피펜과 함께한 자선 농구 경기서 52득점을 올림.
1994.11.1 시카고 불스, 조던의 23번을 영구결번 시킴.
1995.3.2 메이저리그 파업을 이유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떠남.
1995.3.7-9 은퇴후 처음으로 시카고 불스의 연습장에 모습을 드러냄.
1995.3.18 시카고 불스로의 복귀를 선언.
1995.3.19 야구 선수시절의 등번호 45번을 단 유니폼을 입고
복귀 선언이후 하루만에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 출전.
복귀전서 19득점을 기록했지만 시카고는 연장전에서 패배.
1995.3.28 복귀 이후 5번째 경기인 뉴욕닉스와의 대결서 55득점을 기록.
1995.5.18 시카고 불스, 올랜도 매직과의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서 패배.
1996.6.16 통산 8번째 시즌 득점왕, 정규 시즌 MVP,
NBA Final MVP, 올스타전 MVP를 모두 석권함.
시카고 불스 NBA역사상 한시즌 최다승인 72승 신기록과 함께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물리치고 우승, 3년만에 정상 탈환.
1996.10.29 'NBA를 빛낸 위대한 50인'에 선정됨.
1996.11.30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경기서 통산 25,000득점 돌파.
1997.6.13 2시즌 연속이자 통산 9번째 득점왕,
2시즌 연속으로 NBA Final MVP선정. 시카고 불스,
유타 재즈를 꺾고 2연속 우승 및 통산 5번째 우승 달성.
[VS 유타재즈]
1998.3.27 NBA 역사상 최다 관중인 62,046명이 운집한 조지아돔에서 조던은 34득점 기록.
시카고 불스는 애틀랜타 호크스에 89-74로 승리.
1998.4.3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전에서 41점을 기록하며
카림 압둘-자바와 윌트 체임벌린에 이어 통산 3번째로 29,000점을 돌파.
1998.6.14 3시즌 연속이자 통산 10번째 득점왕.
정규 시즌 MVP, NBA Final MVP, 올스타전 MVP 석권.
유타 재즈와의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 점퍼를 성공시키며
시카고의 2번째 3연속 우승 및 8시즌 동안 6번에 우승을 견인하며
명실상부한 90년대를 대표하는 팀으로 입지를 굳힘.
1999.1.13 2번째 은퇴 공식 선언.
1999.12.26 베이브 루스를 제치고 ESPN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
2000.1.19 워싱턴 위저즈와 워싱턴 캐피털스의 소유 지분 취득.
2001.9.10 2차 복귀 의사를 밝힘.
[워싱턴 위저드시절]
2001.9.25 공식적으로 복귀 선언. 워싱턴 위저즈와 2년 계약 체결.
2001.10.30 공식 복귀전인 뉴욕 닉스와의 경기서 19점을 기록, 워싱턴 위저즈는 91-93으로 패배.
2002.11.28 2002-03시즌이 끝난후 은퇴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
2003.4.16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마지막 경기를 치름.
[- 이상 자료 후니의 NBA MANIA -]
마이클 조던의 가족
조던의 부모님인 제임스와 들로리스 조던은 모두
성실한 일꾼이었다. 마이클의 아버지 제임스는
1967년 제너럴 일렉트릭에 정비사로 입사했다.
그는 그 부서의 부장으로 은퇴했다. 마이클의 어머니
들로리스는 유나이티드 캐롤라이나 은행에서
드라이브 인 텔러(자동차에 탄 채로 은행 업무를 보는
사람)로 출발하여 대고객 상담 책임자까지 승진했다.
마이클은 4살연상인 자니타와 결혼하게 되다.
[마이클 조던의 가족사진]
그녀는 마이클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그의 아들 제프리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즐긴다.
하지만 마커스는 마이클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이다.
마이클은 자신의 아이들이 커서 운동선수가 될거라고 말한다.
제프리와 마커스 모두 거대한
손과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형 래리 조던]
그의 형 래리는 키가 1m 70cm에 불과했는데도 두 손 덩크가 가능했다.
마이클의 성장이 가속화하여
마이클이 유리한 위치에 오르기전까지는 항상 래리가 마이클을 이기곤 했다.
래리는 마이클과는 반대로 매우 성실했다.
스쿨버스 운전수로 일하면서 ROTC 복무를 했다.
마이클의 누나와 형들은 모두 일을가지고 있었다.
형 로니 역시 스쿨버스 운전을 했고
누나인 델로스와 로스린은 하디스나 맥도날드에서 서빙보는 일을 했다.
하지만 마이클은 항상 게으르고 빈둥거렸다.
마이클의 키는 1m 93cm로 가족 누구보다도 10cm이상컸다.
"그때 마이클은 키가 커지기로 결심한 것처럼 쑥쑥 자랐습니다."
마이클의 아버지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비록 직접 일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마이클은 그의 아버지가 작업하는 것을 보곤 했다.
마이클은 바로 거기서 그의 가족의 유산인 혀 내미는 버릇을 익히게 되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던의 혀 내미는 버릇은
그 조던가의 작업실에서 비롯되었던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1993년 7월, 두명의 괴한이 노스캐롤라이나 길거리에서 차를주차해두고 쉬고 있던
마이클의 아버지를 덮쳐 금품을 빼앗은 후 그를 살해했다.
조던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제임스 조던은 그의 아버지일뿐 아니라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조던이 승리할때나 실패할 때 아버지인
제임스 조던은 항상 마이클의 곁에 있었다.
[조던의 아내 자나타와 두 아들 제프리와 마커스,
막내딸 자스민과의 가족사진]
아버지는 조던이 농구보다는 메이저 리그에
뛰는 걸 보길 원했기 때문에 조던은 아버지를
기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프로야구에 뛰어 들었다.
미국 국민들은 불스가 챔피언 트로피를
안았을 때 함께 기쁨을 나누던 이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얼마전에 이혼했다는 소식이 들렸던거 같은데--;;;
좀 아쉬움ㅇ...ㅇ...;ㅣ
[마이클조던의 집]
마이클 조던의 2차 은퇴 당시의 기자회견 내용
결국 내가 정말로 해야 할 말은 'I'm Gone'이라는 단 한 마디이다.
그러나 나는 내 팬들과 언론에게 그 이상의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선 나는 이런 은퇴기자 회견을 두 번이나 하게 되었다.
여러분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오늘이 단지 나 '마이클 조던'을 위한 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는 더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그런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하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고 그들이 매일 겪게 되는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내가 지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이제 나의 농구은퇴를 알리기 위해 여기에 왔다.
물론 나는 야구를 하기로 했다거나 그 밖에 다른 계획을 발표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행동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고 많은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내 결정도 그랬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내게 NBA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특히 시카고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준 데이빗 스턴과 제리 라인스도프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내 가족과 친구들도 지금까지 나를 응원해 줬다.
시카고로 왔기 때문에 나는 아내를 만나고 이곳에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나는 시카고 팬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시카고는 이제 챔피언쉽의 도시다.
내가 이제 불스 유니폼을 벗는다 해도 시카고가 계속 그 명성을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특히 아내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시카고에서 지낼 것이고 계속 '시카고 불스'를 응원할 것이다.
나는 게임 자체야말로 '마이클 조던'이라는 개인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혹은 NBA에 들어오기 전에 뛰었던 압둘자바, 닥터 J, 앨진 베이어, 제리 웨스트 등과
같은 선수들의 노력 때문에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나는 게임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를 하려고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리그가 계속 된다는 것이다.
비록 지난 6달동안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게임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게임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줄 것이다.
사람들은 한 때 '조던은 농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에서도 도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것이다.
조던의 마지막 은퇴글
친애하는 농구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지도 28년이 다 돼 갑니다.
우리집 주차장 뒤편에서 부모님의 소개로 당신을 처음 만난지 28년이 지났지요.
만일 누군가 그때 나에게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될지 말해줬더라면 아마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조차 잘 몰랐거든요.
그후 주위에서 당신을 보기 시작했고 TV에서도 봤습니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당신을 그저 지켜보곤 했지요.
우리는 짧은 시간에 친해졌습니다. 당신을 알게 되면 될수록 더 좋아졌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대학 때 당신에게 정말 호기심을 많이 느꼈고
또 정말 심각해지기도 했었답니다.
당신은 그때 내게 아직 멀었다고 말했었죠.
나는 상처받았고 심지어 울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신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연습했습니다.
몸을 던져가며 경기에 임했습니다.
생각하고 달렸습니다.
당신을 공부했습니다. 나는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고 당신은 나를 주목했죠.
그때 나는 뭐가 어떻게 진행돼 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아요.
스미스 감독은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또 어떻게 잘 들을지,
어떻게 이해할지,
어떻게 존경하고 어떻게 감사하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일이 일어났죠.
그날 밤, 루이지애나 슈퍼돔에서 조지타운대와의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순간,
당신은 구석에 있던 나를 찾아냈고 우리는 춤을 추었습니다.
그 이후로 당신은 나에게 단순한 공, 단순한 코트 이상의 무엇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당신은 나의 인생이고 열정이고 삶에 동기를 부여해 주고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존재였습니다.
당신은 나의 가장 훌륭한 팬이면서 또 가장 가혹한 비평가였습니다.
당신은 가장 친한 친구이며 가장 강력한 동맹관계지요.
당신은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면서 또 가장 사랑스러운 학생입니다.
또 당신은 영원한 동반자이지만 가장 거친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전세계에서 통하는 나의 여권,
수백만 팬들의 가슴으로 통하는 비자이기도 합니다.
제 이전에 뛰었던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합니다.
나와 경기했던 모든 선수들
우승과 우승반지
올스타전과 플레이오프
마지막 슛
버저비터
거친 파울
승리와 패배에 감사합니다.
23번 등번호에도 감사합니다.
나를 믿어준 사람이나 의심했던 사람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스미스 감독, 로허티 감독, 알벡 감독, 콜린스 감독, 잭슨 감독에게도 감사합니다.
내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어주고 격려해준 모든 팬들에게 감사합니다.
당신이 우리 가족에게 준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나는 나만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 이전의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고
이후로도 그럴 것이란 것을 알고 있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 관계가 매우 특별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관계가 그렇듯 우리 관계도 바꾸어 나가야 하겠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NBA에서 뛰던 나의 날들은 분명히 끝났지만 우리의 관계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실어
From. Michael Jordan
- Michael Jordan said...
두려움은 환상이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것.. 어떤일을 하든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보다 뛰어난 방법은 없다.
성공에는 지름길이 없다.
능은 게임을 이기게 한다. 그러나 팀웤과 이해력은 챔피언을 만든다.
기초를 소홀이 하면 바탕이 무너진다.
행동과 힘든 연습이 뒷받침되지 않는 말은 아무 가치도 없다.
나는 어린 선수들에게 경기를 그저 즐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농구에 대한 사랑을 키워 갔으면 한다.
도전할 목표가 생기면 경기를 갈망하고 사랑하게 되며, 연습을 더 열심히 하게된다.
삶의 매순간을 즐겨라 절대 지난 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지마라.
보폭을 작게 하라 어떤 것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
당신의 걸음 하나 하나는 퍼즐조각 같은것이다.
그것들이 모여 한장의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당신은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 긍정적인 목표에 도달한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있어서 나는 그 외의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9000번도 넘게 샷을 성공 시키지 못했다.
나는 300번도 넘게 져봤다.
사람들이 나를 믿어 주었을 때 나는 26번이나 클러치를 미쓰해봤다.
나는 계속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만일 내가 섬에서 태어나 완전히 혼자 힘으로 농구를 배우고
다른 선배 선수들의 훌륭한 경기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선수가 되었다면,
나는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호칭을 받아들일 겁니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었던 훌륭한 선배선수들을 거울삼아
나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태까지 우리들이 이루어놓은 것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아이가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겁니다.
만일 골대가 더 높아지거나 경기의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나를 훨씬 능가하는 선수가 틀림없이 나올 거예요
- 마이클조던 -
- 마이클 조던의 경기모습 -
마이클조던에 관한 글들..
- 마이클 조던이 슛을 18번 연속으로 실패 한다고 해도
난 그를 끝까지 지켜 볼 것이다.
19번째에 우리가 한번도 보지못한
위대한 슛이 나올꺼라는 믿음 때문이다.
-매직 존슨
어린 아들이 TV를 보며 샤킬오닐이 농구를 제일 잘한다고 했을 때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결심했다. 코트로 돌아오기로..
아버지가 최고의 선수라는걸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32세에 코트로 복귀의사를 밝히던 마이클 조던
..대재앙이군요..그런데 설레는 이유가 뭘까요?
-조던의 복귀소식을 들은 어느 NBA 선수
조던이 CF 모델로 활동했던
나이키, 맥도널드, 게토레이의 주식값이 20% 이상 올랐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투자자들의 매수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던이 복귀발표 후, 월스트리트의 CNN 기자
미국에서 피할 수 없는 3 가지는 세금. 죽음. 마이클 조던이다.
그는 스포츠 선수가 아닌..하나의 문화이자 미국의 상징이었다.
- 뉴욕타임즈에서 36세 조던의 두번째 은퇴사실을 보도하며
마이클 조던이 36세에 은퇴를 선언했을 때..
백악관에서 국무부 관리들과 중동현안에 대해서 안보회의를 하던
빌 클린턴은 즉시 회의를 중지하고 긴급기자회견을 열어서..
코트를 떠나는 영웅에게 경의를 표시했었다.
"마이클 조던의 은퇴가 정말로 아쉽다.나는 그를 정말로 존경한다.
그는 완벽한 신체와 영혼을 지닌 위대한 스포츠 맨이었다."
- 미합중국 전대통령 빌 클린턴
나는 조던과 시카고 불스를 이기려고 정말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도 우리 팀은 결코 조던의 시카고 불스를 이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왠지 그가 그리울 것 같다.
- 조던의 은퇴소식을 듣고, NBA의 정상급 센터 알론조 모닝
나이키, 맥도널드, 게토레이의 주식이 30% 이상 폭락했습니다.
- 조던의 은퇴소식이 전해진 후, 월스트리트의 CNN 기자
전세계에 조던의 은퇴소식이 긴급타전되었고,
이미 루마니아의 국영방송은 조던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청소년들은 모두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 NBC 방송에서 조던의 은퇴를 보도하며
"Thank You Michael. Good Bye Michael."
- 조던의 마지막 경기를 보러온 어느 할머니
너무 좋네요. 싸인 좀 해주세요.
- 조던을 만난,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
마이클 조던은 미국의 근현대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동안 시카고는 항상 뉴욕에 대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이후엔,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거든요.
조던의 존재로 시카고와 일리노이주는 승리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배럭 오마바
세상에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어요.
마이클 조던이 바로 그런 사람이죠.
신은 농구를 시키기 위해서 그를 창조했어요.
-헐리우드의 배우 윌 스미스
마이클 조던의 연습이라면 돈을 내고서라도 보겠다.
-NBA 우승경력의 명코치 래리 브라운
당신은 그냥 조던이 아니에요. 마이클 조던이잖아요.
..
세상에..아들한테 농구를 갈쳐준다구요?
이럴수가..마이클 조던한테 농구를 배우다니..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조던, 만리장성
-중국의 청소년 설문조사, 무엇이 위대한가라는 질문에
존 롱이 경기전에 악수를 거부하자 조던은 무려63득점을 기록했다.
나는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누군가가 63득점을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마이클조던으로 분장한 신(神) 이라고 생각한다.
- 래리버드
조던을 20점이하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딱 한명이다.
바로 그는 시카고 불스의 감독이다.
그는 조던의 출장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트 위의 조던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뉴욕타임즈의 기사
앞으로 베이브 루스는 야구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불러야한다.
...
- Espn 칼럼니스트 스티브 커
내가 샌안토니오 스퍼스 팀에서 불스와 경기를 펼치고 있을때
점프를 했다가 론 하퍼 위를 깔고 뭉갠 적이 있었다.
나를 막을 수 없었던 하퍼는 몹시 화가 나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도 질세라 그에게 맞섰다.
나중에 코트 저쪽 끝에 있던 조던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내 복부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정말 나를 때린것이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나의 팀 동료를 못살게 굴지마.
만약 그런 날에는 나를 상대하게 될 거야."
- 몬티 윌리암스
그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적 없어요..
아무도 그를 막을수 없죠.
-93 챔피언 결정전에서 피닉스 선수중-
여자친구가 집에 놀러올 때 난 조던의 경기를 같이 보자고 했다.
...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죠.
- 1998년 조던의 The Shot 에 대해서 코비 브라이언트
최고의 수비능력을 자랑했던 218cm의 올스타 센터 디켐베 무톰보.
그가 NBA에 의기양양하게 입성한 신인시절, 시카고와의 첫경기.
무톰보는 득점왕인 조던을 악착같이 막아보려다가 파울을 범했다.
조던은 무톰보를 가리키더니 갑자기 눈을 감고서 자유투를 던졌고,
놀랍게도 깨끗이 성공시킨 후 윙크를 하며 말했다.
.........."Welcome to the NBA"
말년의 조던은 단지 점프슈터에 지나지 않는다고
조지칼 감독이 혹평을 하자,
조던은 점프슛만으로 48득점을 폭발시켰다.
식서스의 보조코치 프레드 카터가 경기 내내 소리를 질러댔다.
"컨디션이 안좋은 마이클에게 점프슛을 쏘게 해"
마이클은 연속 여섯 골을 성공시키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어떤가, 프레드?"
시애틀의 한 스포츠 기자로부터,
슈퍼소닉스의 뛰어난 수비선수 네이트 맥밀런이
조던을 저지하기 위해 출장한다는 말을 듣고,
조던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한시간동안 맥밀런에 관한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그를 분석했다.
그는 그날 밤 40점을 넣었고
맥밀런은 단 한 골도 터뜨리지 못했다.
마이애미 히트와 경기를 벌이던 어느날 밤,
조던은 말쑥하게 단장을 한 히트팀 감독, 팻 라일리를 향해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공이 그의 손에 들어왔을 때
조던은 히트 팀 벤치 앞에서 라일리에게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점프슛으로 할까요.아니면 드라이브?"
라일리가 대답하지 않자 조던이 말했다.
"좋아요, 드라이브로 하죠"
그는 수비를 요리조리 헤치며 돌진해 덩크슛을 성공시켰다.
다음번에는 3점슛라인 바깥에서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에도 라일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요, 점프슛이요"
물론 깨끗이 네트로 빨려 들어가는 슛이었다.
어느날 밤, 그가 야구에서 농구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불스가 유타재즈를 여유있게 리드하는 상황에서
조던은 4쿼터를 맞아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미 49득점을 기록한 터였다.
기자석에 앉은 스포츠 기자들을 돌아보며 그가 물었다.
"올해 정규리그 최고 득점이 얼마죠?"
누군가가 그의 질문에 큰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칼 말론이 기록한 54점인데요"
조던은 코트로 다시 들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연속으로 세번이나 슛을 성공시키고
다시 벤치로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이제 55점이 최고 기록이죠?"
조던은 경기종료를 몇 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슛을 쏘는게
두렵지 않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전혀요. 수천번,수만번도 넘게 던져 본 슛인걸요."
나는 지금까지 9000번도 넘게 슛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300번도 넘게 경기에서 져봤다...
사람들이 나를 믿어 주었을 땐, 26번이나 결정적인 슛을 실패했다.
나는 계속 실패하고,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 마이클 조던 -
내가 미네소타에 소속되어 뛸 때,
우리 팀이 홈 경기에서 불스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마이클의 수비를 맡고 있던 토니캠벨이 그에게 말했어요.
'바로 이거야. 우리가 너희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겠어.'
그러자 마이클은 '하늘이 두쪽나도 그렇게는 안될걸'이라더군요.
캠벨이 슛을 성공시켰고 경기 종료 5초를 남겨두고
우리가 1점차로 앞서고 있었어요.
그런데 순식간에 마이클이 공을 잡더니무섭게 질주해
밑으로부터 던져넣는 스쿱샷을 쏘아올렸고,
결과는 불스의 승리였죠. 내 평생 그런경기는 처음이였어요.
- 푸 리처드슨(NBA 가드)
뭐라구? 조던이 이번 경기에서 43번이나 슛을 던졌다고?
- 찰스 바클리
누군가 말했습니다. "I'm Back."
- 조던의 복귀소식을 전하는 Fox Sports 의 아나운서
ESPN의 댄 패트릭 기자와
1998년 챔피언결정전 직후에 가졌던 인터뷰에서,
패트릭유잉이 조던과 일대일 시합을 할 수도 있다고 하자
조던은 바로 그자리에서 도전을 받아들였다.
"불과 몇분 전에,
세계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을 성공시킨 친구가
단지 내 코를 납작하기 위해 또 경기를 하고 싶어하는군요."
- 패트릭유잉의 말이다.
마이클은 누가 자기에게 조금만 뭐라고 해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다가 그 사람, 혹은 그 팀을 물리쳐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기 자신을 몰아갔어요.
그는 모든 것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날을 세고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마이클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아마 그 누구도 원치 않을 겁니다.
- 샤킬오닐-
1991년 불스와 레이커스가 맞붙은 NBA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레이커스의 코치들이 자기 팀 선수들에게 특별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불스의 맨 마지막 공격에서 조던이 공을 만져보지도 못하게
철저히 묶어버리라는 것이었다.
레이커스의 보조 코치 빌 베르카는 이렇게 회상했다.
"경기가 시작됐고, 마이클이 공을 잡더니 코트 끝까지 돌파해
점수를 올려놓았습니다. 결과는 불스의 승리였고
남은 경기에서도 우리 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죠.
마이클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경기였어요"
한번은 피닉스 선즈와의 4쿼터 경기가 진행되던 중에,
종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코트 밖에서 공을 패스하던 조던이
선즈 팀 감독 코튼 피츠시몬스에게 잘라 말했다.
"코튼 감독님, 게임은 이제 끝났다는 거 아시죠?"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로렌젠 라이트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신인 선수로 클리퍼스 팀에 입단한 첫 해,
경기 종료까지 40초 남은상황에서
우리가 불스보다 5점 앞서고 있었어요.
흘러나온 공의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었고,
코트 안으로 공을 던져넣었는데
그 공이 그만 불스로 넘어가고 말았어요.
마이클이 3점슛을 쏘았죠. 물론 성공이었구요..
그러고는 로드니 로저스의 패스를 가로채서
게임종료 부저 소리와 동시에 슛을 성공시켜 동점을 만들었어요.
경기는 연장전으로 들어갔고 결과는 우리 팀의 패배였죠.
마이클 조던을 이보다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일화가 또 있을까요?"
호크스의 크리스 크로퍼드가 말했다.
"내가 신참이었을 때, 우리 팀과 불스가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경기 후반에 1점차로 우리 팀이 앞서 있었어요.
마이클이 뱅크슛을 터뜨려 불스가 1점차로 앞서기 시작했어요.
그때 우리 팀의 스티브 스미스가 파울을 얻어냈죠.
그가 자유투 두개를 모두 성공시키자 상황은 다시 뒤집혔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마이클이 버저비터슛을 날렸고
결국 승부를 결정지었습니다.
더구나 마이클은 그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코트에서 걸어나왔습니다.
그저 많은 날들 가운데 하루에 불과하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는 그날 무려 49득점을 기록했어요."
불스와 네츠가 맞붙어서 네츠가 연승을 거두고
불스는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져있을 때였다.
두 팀의 경기가 있었떤 어느 날 밤,
방송인 마이크 오코렌이 경기 시작전에 조던을 인터뷰하면서
오늘도 불스가 질 거라고 단언하듯 말했다.
신발 끈을 조여매고 있던 조던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뭐라고요?"
"오늘밤 네츠가 이길 것 같다구요" 오코렌이 대답했다.
"아뇨, 그런 일은 없을겁니다" 조던이 단호하게 말했다.
3쿼터가 끝났을때 그는 35득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경기 종료 직전, 그는 승리에 쐐기를 박는 슛을 성공시킨 다음
코트 뒤쪽으로 나와 오코렌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미네소타에 소속되어 있을때 마이클 수비담당으로
경기에 투입된 적이 있었어요.
마이클이 그때 팀동료 스코티 피펜에게
'돼지쥐를 상대하게 생겼어'라고 말하더니,
나를 돌아보며 '나는 자넬 제치고 슛을 성공시킬거야' 라더군요.
그러고는 나를 꼼짝 못하게 세워두고
슛을 연속으로 세번이나 터뜨렸죠.
결국 나는 경기 도중에 교체되어 나왔는데
마이클이 내 엉덩이를 툭툭 치며 '나중에 보자구'라고 했어요
- 제임스 로빈슨(NBA 선수)
당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소속이었던 브라이언 쇼가
경기중에 조던을 상대로 점프슛을 성공시킨 후,
지나치다 싶게 떠벌리기 시작했다.
조던은 워리어스 팀의 감독 PJ 카를시모에게 가서 말했다.
"브라이언 쇼에게 입 좀 다물라고 하십시오"
쇼의 수다는 여전했다.
조던은 다시 카를시모에게 말했다.
"경고해 두겠소"
그러고는 조던은 연이어서 12점을 휘몰아치듯 뽑아내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코트 밖으로 걸어나오며 그가 카를시모에게 말했다.
"나를 건드리지 말랬죠"
내가 보기에 마이클은 모든 선수들이 자기 수준으로
경기력을 향상시켜 주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입니다.
상대 선수들이 그의 수준에서 경쟁을 해야
더 자극이 되기 때문이에요.
- 허시 호킨스
어느 날, 마이클이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강행했을때,
나는 24점을 올리고 조던은 21점을 기록했어요.
다음날, 샘 스미스가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조던에 대해서 자신감에 찬 나의 말을 전했죠.
다음번에 불스와 경기를 갖게 되었을때
마이클은 나를 상대로 무려 55점을 뽑아냈어요.
그때 저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야 했던거죠.
- 크레이그 일로(전 클리블랜드 선수)
조던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은 선수다.
사실, 그렇게 순수한 승부사를,
승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승부사를 가졌던 스포츠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위협적이고,두려움을 모르고,
승리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차 있으며,
그의 전설적인 경쟁심은 몇세대가 지나도 다시 만나기 힘들것이다.
- 팻 윌리암스
마지막 2분을 남겨놓고 경기가 초긴장의 상황으로 접어들 때
내가 어떤 다른 선수들보다도 유리하다고 느낀다."
- 조던
1995년 캠프에서, 몇 명이 연습을 마치고 훈련장에 남아 있었는데
마이클이 우리에게 말했어요.
'너희들, 내 등에 뛰어올라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는 게 좋을거야.
만일 거기서 떨어져 나가면 끝까지 함께 할수 없기 때문이지..
내 등에 타고 가는 것이 편하진 않겠지만, 난 끝까지 갈거니까.
- 빌 웨닝턴(전 시카고불스 센터)
만일 마이클에게 '좋지않은 슛이었다'라고 말하면,
그는 순순히 그렇다고 인정합니다. 그는 논쟁하려 들지 않아요.
그는 슛을 던지고나서 이렇게 말할 겁니다.
'내가 망쳤어. 내가 그 슛을 쏘는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 조던을 지도한 감독 필 잭슨
1991년 불스는 LA레이커스와 결승전을 갖기 위해
로스엔젤레스에 있었다.
버스 안에서 선수들은 세계적인 유명 인사를 누가 가장 많이 아는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대화는 갈수록 활기를 띠었지만 마이클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물었다.
"자넨 어때, 마이클? 유명한 사람 누구 알아?"
조던이 말했다.
"누구한테 전화해 줄까?"
"재닛잭슨 어때?"
조던이 곧바로 전화를 걸어 말했다
"어이 재닛, 나 마이클이야, 전화 좀 부탁해"
그러자 누군가가 말했다
"에이. 뻥치지 말라구"
30분후 전화벨이 울렸다. 재닛잭슨이였다.
"마이클이 우리와 다르다는걸 느꼈던 것이 바로 그때였죠."
- 존 샐리
비니 델 니그로는 조던이 야구로 외도를 했다가
복귀한 직후에 샌안토니오 팀에서 뛰고 있었다.
흘러나온 볼을 잡으려고 두 선수가 달려든 순간,
조던을 방어하던 델 니그로가 그의 팔을 잡아 나꿔챘고
공은 조던의 손에서 튕겨져나갔다.
그러자 조던이 씩 웃으며
"내가 없는 동안, 꽤 늘었는데"라고 말했다.
"그게 잊혀지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던 그의 눈빛에 어린 표정이."
- 델 니그로
왜 다시복귀해서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1차복귀후 조던이 닉스를 상대로 55득점하고)
팻 라일리감독
조던은 진실이고 진실은 전체며 진실일뿐이다.
칼드웰 존스(전 식서스가드)
시합중 내게 보였던 것은 조던의 신발바닥 뿐이었다 .
마이클홀튼(전 피닉스가드)
그는 날아다닌다 그는 진짜 AIR 다.
미치 리치먼드
조던은 우리랑 차원이 다른 게임을 한다.
제럼커시
웹스터 사전에 등록될 운동선수가 있다면 마이클 조던 뿐이다.
그랜트힐
감독으로서 더블팀, 트리프팀을 조던에게 걸어봤자 소용없다.
그는 무시하고 골을 성공시키기 때문이다.
척 데일러 감독
조던이 날 바보로 만들었다. 그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다.
(93년 5월31일 뉴욕닉스에서 53득점한 조던을 보고)
존 스탁스
조던을 30점대로 막을라면 그의 신경을 건들지 말아야 한다.
안그랬다간 50득점을 할것이다.
론하퍼
조던도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것 이다.
조던을 수비할땐 현실을 인정하는것이 중요하다.
그누구도 그의 슛을 막지 못할것이다.
폴 웨스트폴 감독(전 피닉스감독)
내가 대통령이 된 후 6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조던이 불스로 돌아오면 600만 1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생각입니다.
빌 클린턴 전대통령
오늘경기중 밴치에서 내가한말은 오~!와우~! 두마디뿐이다
(92년 히트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불스의 팀동료 저드 부쉴러는 조던이 은퇴에서 복귀해
처음 가졌던 연습 경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조던의 패스를 받아 부쉴러가 슛을 성공시키자
조던이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세상에..마이클조던에게서 하이파이브를 받다니!'
"내가 그 어느때보다 커진 기분이였어요.
그의 격려에 나는 흘러나온 볼을 잡으려고
돌진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수비벽을 뚫고 전진할 용기가 넘쳐났어요.
한 위대한 친구로부터 받은 격려의 말 한마디가
나를 그렇게 만든거죠."
호래이스 그랜트
어느날 저녁, 내 아들 앨런이 그때 열한 살이었는데
불스와 매직의 경기를 TV를 통해 지켜보고있었다.
녀석이 제 엄마에게 몸을 기울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이클은 문신을 안 했어요. 그렇죠?
난 그래서 좋아요."
- 어느 아이의 아버지
미국의 어느 소도시에서 한 시민단체가..
빈곤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시민들의 총기를 수거해서 그 돈으로 기부하는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했었고..
1주일동안 300개 정도의 총기밖에 수거하지 못했었다.
원래 계획된 5000 개의 총기를 수거하는 목표를 접으려 할 때..
우연히 그 얘기를 듣게된 마이클 조던이..안타까운 마음으로
현장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던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총기를 가져오면
자신이 싸인을 하나씩 해주겠다고 웃으면서 말을 했는데..
- 불과 3시간만에 8000명이 자신의 총을 기부했다고 한다.
- 그 돈은 모두 자선사업에 쓰여졌으며..
- 마이클 조던은 일일히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싸인을 해주었고..
- 싸인을 못해준 사람들에게는 싸인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채
- 다음 경기를 위해서 묵묵히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고 한다.
1996년, 불스가 플레이오프에서 올랜도 매직을 꺽은후,
마이클이 귓속말로 내게 말했다
"거기서 끝까지 버티고 절대로 아래로 내려오지 말게,
자네 시대가 오고있어"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 샤킬오닐 -
뉴욕닉스와 시카고 불스의 그 굉장했던 1992년 플레이오프..
사실은 닉스가 더 우수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불스는 전의를 상실했지만 마이클은 혼자 힘으로
그 시리즈에서 불스가 승리하도록 만들었죠.
그는 자신의 팀이 무릎꿇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어요
- 마크 잭슨(전 뉴욕닉스의 가드)
내가 덴버 너게츠에 있을 때, 덴버에서 열린 경기 4쿼터에서
우리가 불스를 26점 리드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3점차로 간신히 이겼죠.
그때 마이클은 무려 52득점을 했어요. 정말 대단했죠.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4쿼터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어요.
마이클과 경기를 함께하고 있을 때는 이기고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안심할 수 없어요
- 대니 쉐이즈(전 NBA선수)
마이클 조던과 경기할때에는 잠시도 수비를 소홀히 할 수 없어요.
계속해서 공격을 퍼붓고 항상 날쌔게 몸을 움직이는
마이클은 정말 지독해서 선수들이 단 1초도 느긋할 수 없었어요.
그가 벤치에 나가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에요.
그는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았다가 경기할 때
반드시 그걸 활용해 상대를 더 강하게 몰아붙이거든요.
- 폴 프레시(전 NBA 가드)
하루는 마이클이 허리경련이 심해서
버스를 타고 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어요.
하지만 그날밤도 그는 40점을 득점했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필 잭슨(전 시카고불스 감독)
불스 팀 주치의 존 헤프런은
가끔 조던의 아버지 제임스 조던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제임스 조던은 아들이 요즘 어떠냐고 묻곤 했다.
헤프런이 조던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독감에 걸렸다고, 배탈이 났다고 말하면
제임스 조던은 "아, 그러면 마이클 녀석이
오늘밤 경기는 아주 잘 치르겠군요"라고 대꾸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조던의 육체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것은
그가 그런식으로 몸을 훈련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몸은 포기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거죠
- 린지(시카고 트리뷴)
마이클은 천재이면서도
자신의 천재성을 좀더 향상시키고자 하는 보기 드문 자질을 지녔다.
- 존 바하
"1985년 NBA 최우수 신인왕에 뽑힌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찾아가 로이 윌리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코치님께 할말이 있어요'
로이가 '말해, 마이클'이라고 대답하자
'아뇨, 코치님 단 둘이서만요'라고 했다.
그들은 외야석으로 나갔고 마이클이 물었다.
'코치님,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살면서 마이클처럼 지독하게 연습한 선수는 없었다."
- 데이비드 핼버스텀
마이클은 항상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서
강점으로 만들 궁리를 하고 있어요
- 필 잭슨
동부 컨퍼런스에 있다 보면 감독 능력이 향상된다.
누구나 조던과 싸울 준비를 하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 제프 밴 건디(뉴욕닉스 감독)
조던이 1997년 다섯번째 챔피언쉽을 따낸 뒤에
어떤사람이 조던에게 그만큼 이뤘으면 됐지 왜 계속 뛰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던은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아직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1993년 바클리와 피닉스 선즈에 대항해 싸우던 날,
방송인 닉 핀토는 테이프를 전달하려고 이른 오후에
시카고 스타디움을 찾았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코트에 마이클 조던이 나와 있었다.
"종일 나와서 자유투 연습을 하고 있어요"
-경비원의 말이었다.
오늘날의 마이클을 만든 건 연습이에요.
그는 날마다 자신이 최고란 걸 보여주어야 했죠.
그것은 마이클의 일부가 되었어요.
어떤 선수들은 밤 연습을 빼먹고
어떤 선수들은 낮 연습을 빼먹었지만,
마이클은 연습을 빼먹은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재능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연습이야말로 그를 모든 선수들의 위에 올라서게 한 거죠.
- 덕 콜린스(전 시카고불스 감독)
마이클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일찍 나와서 수위에게 슛 연습을 할 수 있게
체육관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곤 했어요.
체육과장이 빨리 수업에 들어가라고
체육관에서 쫒아냈을 정도였으니까요
- 척 커리(노스캐롤라이나 월밍톤의 스포츠 기자)
마이클은 이른 아침에 공을 치고, 그런 다음 정규 타격 훈련을 받고,
그 다음에 이동식 백네트에 들어가서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공을 치고 경기가 끝난뒤에도 다시 공을 쳤다.
그는 지식욕에도 불탔다.
그렇게 해서 8월쯤 되자 그는 자신을 매우 훌륭한 타자로 만들었다.
- 마이크 바넷(버밍햄 배런즈의 타격코치)
마이클 조던은
타이거 우즈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이클은 타이거의 선도자로서,
최고가 되고 싶거든 매일 경쟁 상대보다 더 열심히 연습해야한다.
절대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 그렉 보엔(USA 투데이)
나는 몇시간 동안
MJ의 경기 모습을 담은 테이프를 보았다.
그는 단 1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으며,
결코 플레이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에 열중했으며 계속 긴장상태였다.
- 브랜든 말론(NBA보조코치)
내가 아는 선수들 중에 계약서에
'농구가 좋아서'를 조항으로 넣은 선수는 조던밖에 없다.
- 팻 윌리암스
불스의 연습장에 들어갈 때에도 입장료를 내야 하는게 맞습니다.
실제 경기에서보다 연습장에서
마이클의 진면목을 더 잘 볼 수 있으니까요.
8일동안 다섯 경기를 뛴다고 해도 상관없었어요.
마이클은 항상 그날이 유니폼을 입는 마지막 날인것처럼
지독하게 연습했습니다.
- 에드닐리(과거 시카고멤버)
조던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열정을 심어주었다.
전날 경기에서 아무리 오래 뛰었어도,
아무리 많은 득점을 했어도 그는 연습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그런 자세, 그런 모범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 스콧버렐(NBA선수)
마이클 조던은 내가 스포츠계에서 만나본
가장 훌륭한 경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항상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 존 우든(농구감독)
조던의 집중력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는 항상 두세명의 수비수들을 달고 뛰었다.
경기마다 두세명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라. 그는 밤마다 그런 싸움을 벌였다.
- 네이트 맥밀런(시애틀 슈퍼소닉스 감독)
마이클을 적진에 두고 선수들을 감독하던 시절,
나는 언제나 그를 공략할 방법을 궁리했지만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의 마음, 몸, 영혼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그에겐 어떤식의 공격도 먹히지 않았고,
나는 완전히 당혹감에 빠졌습니다.
그는 공격할 수 없는 대상이었어요.
그는 오로지 적을 깨기만 해습니다.
나는 그를 마음속 깊히 존경하지 않을수 없었어요
- 팻 라일리(마이애미 히트 감독)
마이클은 집중력을 통해 날마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갔어요.
위대한 선수들은 이런 집중력을 지녔죠.
래리버드나,매직존슨도 집중력이 뛰어났지만
마이클에는 못미칩니다.
최고의 선수는 여전히 마이클 조던입니다.
- 레니 윌킨스
마이클조던은 삶이 치열한 수련 그 자체입니다.
가끔 그런것도 아니고, 대부분 그런것도 아니에요.
항상 그렇습니다.
- BJ 암스트롱
단지, 농구를 할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 마이클 조던
그를 믿어보십시오. 그는 아직도 최고의 선수입니다. 다만 일시적으로 페이스를 잃은것 뿐이죠.
-복귀후 슬럼프에 빠져있는 조던을 본 스코티 피펜-
그가 그리울것입니다. 일년동안 그와 함께 경기한게 기쁩니다.
-첫번째 은퇴기자회견후 -
"전 나중에 제 손자에게 자랑할 것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옛날 저 황제와 같은 코트에서 뛰었단다'라고... "
- 조던의 두번째 은퇴식때, 샤킬 오닐 -
첫댓글 나만엑박인가;;
엑박
엑박~
최근 까페에 마이클조던 신자가 아주 적극적으로 포교활동하는 듯...농신 인정
저에겐 두말하면 잔소리 ~ 쵝오
넘 길다.....
사진 다 엑박,,!!!!!
사진까지 나왔다면 정말 좋았을텐데..사진이 엑박이라..ㅋㅋ
잘 나오는데요?ㅎㅎ
98킬로그램이나 나갔어요?
저렇게 농구유니폼이 잘어울리는 선수가 또있을까
조던의 현역시절 농구 경기를 본 것 만으로도 행운..
말그대로 신....
마이클잭슨이랑 마주하고 서있는 저장면 왜이리 감동적인지..
마이클 조던이 활동하던때 nba 인기 대단했죠.제가 국민 중`고등학교 때만해도 nba스타 왠만한 사람 다 알았는데 지금은 하나도 모른다는거~~~물론 저 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도 nba안봄.조단 있을땐 그렇게 인기 있었는데,스포츠계에 조단만큼 뛰어난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생각함.
혹한기 훈련 말뚝 서다가 조던 은퇴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는데, 그냥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나네요
와.. 마지막에... 샤킬오닐... 말하는거.. 정말 소름 돋고 멋지네요........ 그러게요....... 실제로 라이브로 그의 플레이를 본 우리들도 큰 영광? 기쁨으로 여기는데....... 실제로 부대끼며 경기를 펼쳤던 선수들은 오직 할까요...... 세계 최고의 센터... 오닐 선수가 저런 말을 하니까 더 감동이네요... 아 조던 횽아 ㅠㅠ ......... 울 친형이 한떄 농구에 완전 미쳐서 나도 덩달아 NBA 카드 사고 그랬었는데, 그떄 수백대 일... 카드 나와서 그떄 당시 100만원 정도 현금으로 바꿀수 있었는데도 안바꿨었다는 ㅋㅋ 10만원 정도하는건 바꾸고 ㅋ 아 옛날 생각난다 ㅋ
통산 득점이... 1위 압둘자바 2위 칼말론 3위 챔벌래인 아닌가요??
일리노이주 버럭 오바마도 한마디 했었군
뛰어난 운동 신경에 얼굴까지 잘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