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문화사 조선시대 편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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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강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으며 고려를 멸망시키고 1500년대 새 나라의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은 고려의 뒤를 이어 사대부(士大夫)와 협력하여 새로운 왕조로 1392년 태조 즉위한 태조 제 1대왕 이성계를 시작으로 1910년 마지막 임금인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지속된 나라였다. 조선의 양반은 조선전기와 후기에 그 의미가 달라 초기에는 세습신분으로 양인(良人)과 천인(賤人)으로 나뉘었으며, 양반 중심의 사회였다. 양반이란, 벼슬한 사람만이 아니라 벼슬을 할 수 있는 신분을 지칭하는 말로 양천제의 구조가 반상제도로 바뀌게 된다. 양 반제는 갑오경장 때 신분제가 폐지되지만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전후 뿌리 깊은 양반의식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2. 문화적 배경 정치ㆍ사회 안정과 국력의 충실은 조선왕조로 하여금 초기부터 문화적으로 많은 발전을 하였으며 유학을 정치ㆍ사회ㆍ문화의 바탕으로 삼게 되면서 학문 활동이 매우 진전되었다. 고려의 문화는 화려하고 장엄하게 발전한 아름답고 자존을 지킨 문화로 발전한 불교문화였으며,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의 문화는 성리학에 바탕을 둔 유교문화로 중국을 많이 모방한 사대적인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문화였다. | ||||
조선 초기 세종대왕은 중국의 문화를 들여와 습득하는데 열중하여 학문과 문화를 집현전의 학사들로 하여금 연구시켜 민족적 자각과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국보 제 70호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의 과학기술은 1441(세종 23) ~42년에 측우기(測雨器)와 수표(水標)라는 강우량 측정기가 발명되어 강우량의 수량적 측정법이 완성되었으며 중국에서 처음으로 수입한 청화백자(靑華白磁)를 15세기 중엽부터는 조선에서도 만들 수 있게 되어 15세기 전반 이후에 기형(器形)과 청화문양의 주제는 질적 양적으로 중국의 자기에 견줄 수 있게 되었다. 화포나 거북선도 조선시대 기술의 특징을 잘 보였으며 각 지방의 발전된 농업기술을 요약한〈농사직설 農事直說〉(1929) 책을 출판, 새로운 기술의 유기 기술적 집약농업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다음호에는 조선시대 머리형태의 배경, 미술의 배경에 대한 내용으로 연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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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 너무 복잡한 시데에 여유로운 게시물 보니 마음이 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