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설계
인생은 60부터라든가? 짧지만은 않았던 삶이지만,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니 지난 세월들이 너무나 훌쩍 지나가 버렸던 것 같다.
이쯤해서 불현듯 지난 내 삶에 대해 반추해보고, 앞으로 남은 그다지 길지 않을 내 삶을 설계해 보려하니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그다지 후회스럽지만은 않다.나는 작고 조용한 두메산골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시절은 모두들 어렵고 힘들었다고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더욱 그러하셨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에서 자동차도 한번 구경해보지 않았던 어린 시절, 지금의 내 모습을 어떻게 상상이라도 했을까? 나에게 가장 슬펐던 사건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일이 아닌가 한다. 어린 내겐 큰 충격이었고 힘들고 슬픈 나날이었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들판에서 뛰어놀고, 사랑하는 아버지와 형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며, 그렇게 웃으며 때론 울며 어린 시절을 잘 견딜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고향에서 80리 떨어진 함양읍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혼자서 하는 자취생활에 힘이 들고 집이 그립기도 했지만, 그 당시 고향마을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진학한 나로서는 무척이나 행복한 나날이었는지도 모른다.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은 부산으로 진학했다. 기계계열의 내연기관을 전공하면서 자동차에 대해 매력을 많이 느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전공은 인기도 없었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생활의 필수품이고,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써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자동차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리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써 자동차 산업에 종사할 인력을 배출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자동차를 전공하는 교직자가 되기를 결심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역군으로서세계시장에서 우리를 알리는데 공헌을 하고 있고, 국내도 이젠 마이 카(my car) 시대로써 레저용으로라든지, 산업용으로라든지 자동차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발전되고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의 편견과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40여 년간 ‘자동차’를 고집해온 내게 그런 선견지명이 있었다. 처음 전자공고에서 경남공고, 부산공고 등을 거쳐 또한 우리나라 유일의 자동차분야 특성화고 ‘부산자동차고등학교’를 설립하는데 앞장서서, 30여 년 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크나큰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근무한바 있다.지금 나는 두 명 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그리고 자동차를 분야를 가르쳐온 교직자로서 열심히 생활해왔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얼마 남지 않은 교직생활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지, 그리고 은퇴한 후 어떻게 삶을 영위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우선, 나는 지금 학교최고 경영자로서 생활 하고 있으나 퇴직 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할까 .35 여 년간 학생들과 작업복에 기름때 묻혀가며 호흡을 같이 하며 느낀 점도 많고, 보람도 컸다 . 계속해서 평교사로 남아 그들과 호흡을 함께 하고 싶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조금은 새로운 모습의 관리자로서 학교행정에 기여하고 싶다. 종전의 이론위주의 수업으로 실제 현장에서 바로 적용되지 못하는 실업계 고등학교 교육을 개선하여, 현장에서 즉시 적용가능하고 실질적인 교육이 되게 하고 싶다.그래서 그런 제자들이 산업현장에 나갔을 때,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적응할 수 있도록 실업계 교육을 정상화시키는데 교감시절 공업계고교에서 기여해 왔고. 나는 개인적으로 인화와 화합을 중시한다.12년 동안 170여명의 교직원이 근무하는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에서 친목회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남은 교직생활을 관리자로서 인화와 화합을 중시하고 이를 실천하면서 지내고 싶다.
교직을 은퇴하고서는 난 어떤 삶을 살아가야할 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한평생 교직에 몸담고서 자동차 산업인력을 육성하는 데에만 고민해오던 나로서는 더 이상의 생각의 여지도 없다.
그 동안 아껴온 제자들만도 수천 명이고 있는데, 당연히 나는 그들의 뒤를 돌보는 데에 내 남은 인생을 바쳐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교원정년이 62세로 낮아져서 많이 우울하고 힘든 점도 많지만, 학교가 아니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교직을 은퇴하고서 후진들에게 그 동안의 경험과 고민으로 애정 어린 충고를 하고, 기회가 된다면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계속해서 자동차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우리 가족에 대한 내 소망을 펼쳐본다.
2002학년도 춘기 방학 때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인하여 응급실 및 병원 입원으로 인하여 지금도 약으로 생활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우리 두 딸, 자신의 적성에 맞게 의상디자이너교수, 화장품 연구교수로 계속해서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외손자 도헌이. 다연이가 무럭무럭 자라 이 나라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막내 정미도 끔찍이 아껴주는 배필을 만나서 단란한 가정을 꾸려갔으면 한다. 그때쯤에는
아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좋아하는 등산도 하며, 손자, 손녀 보며 그렇게 지내겠지,모두들 건강했으면 좋겠다. 더운 날씨에 학교에서 수업하랴, 업무 보랴, 연수받느라 힘든 점도만한지만, 이런 기회에 이렇게 내 삶을 한번 둘러 볼 기회를 가지게 되어 많은 생각들이 지나쳐 간다. 너무나 훌쩍 지나와 버린 내 청춘에 대한 그리움도 많고, 후회도 많지만, 참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감히 바라건대, 내가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을 존경해왔던 것처럼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자 한다.
사랑하는제자들아!!!
부디 하는일들 잘되길... 뒤에서 기도
드리마.....
박 종 옥
첫댓글 교육자로서 훌륭하게 생활하시고 가정에도 충실하신 선생님의 제자로써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선생님 고향이 함양이신것 같은데 저도 본관이 함양박가 입니다 혹시 같은 종문은 아니신지 궁금하네요?
참 삶이 무엇이라는것을 선생님 모습에서 느낌니다.교육자로서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부끄러움없이 살아오신 선생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모든 일들이 소망하신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