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호 1987년1월1일
50평생을 부르던 본인의 이름도 나이도 잊어버렸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생각의 범주가 있어서 자신이 경험했던 범주 내에서만 생각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그 범주를 벗어나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의 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생각 범주 안에 죽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고 희락과 기쁨속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으며 심지어는 날아다니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요 죽지 않는 세계, 희락과 기쁨이 충만한 세계, 몸이 날아다니던 세계에서 살아보았던 경험이 있는 피가 인간의 몸 속에서 흐르고 있는 고로 그런 마음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피가 그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그런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작용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속에 바로 그러한 희열의 세계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마음작용을 환상이다. 비과학적이다 하며 인간의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 한정된 좁은 틀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 생각의 범주가 무한대의 것으로 바뀌어져야 하나의 범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범주를 바꾸려는 노력이 없었던 고로 지금까지 사망의 범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생각의 범주가 변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인간의 감정을 초월하지 못하고 인간의 감정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다.
무아경지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도 느낄 수 없다.
한정된 생각의 범주를 바꾸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려면 나라는 의식자체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잊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도로 하나님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또 사모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모해주시는 층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러면 하루내내 한도 끝도 없이 사모하면서 그 사모하는 생각에 깊이 빠져있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이 세상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시간의 흐름조차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은 마귀의 영이기 때문이고 일단 하나님의 경지에 올라서면 시간의 흐름을 모르게 된다.
여러분들은 초초로 하나님을 사모하여 온전히 맡긴 바가 되어 이끄시는대로 움직여야 한다. 생각의 초점이 나라고 하는 곳에 꽂히게 되면 온 몸이 무거워지고 은혜 연결이 가늘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 생각은 항상 하나님께 집중하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씀이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 모두가 마귀의 생각이다. 개가 개의 생각밖에 못하듯이 사람은 사람의 생각을 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인 나의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이긴자는 인류의 태양이요 우주의 은인이다.
사람에게는 눈이 있어도 그 눈으로 아무것이나 볼 수 없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고 생각이 있어도 이런저런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야 그 때부터 그 사람의 영이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밀실]이라고 하는 곳에 가니 [해와주님]께서 텔레비전을 주시며 보라고 하여 TV 작동 스위치를 켜니 눈이 쑤시고 따가와서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이유인즉 이 눈은 당신의 눈이요, 이 귀는 당신 것이오니 더러운 것이나 보지 못할 것은 보지 않고 듣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하던 평소의 그 기도가 상달된 것이다. TV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영이 고도로 성장하였던 까닭에 조금만 더러운 것에 감염되어도 괴로워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내 생각이 자유가 없는 단계에 까지 이르려면 먼저 참는 단계로부터 시작해야 된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못마땅한 것을 보아도 꾹 참고 또 참으면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참기만해도 잘 이겼다고 인정을 해주신다. 그러나 영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참는 것도 죄라고 쳐버리는 것이다. 그 영이 자라는데 따라서 법은 엄하게 다스려졌던 것이다. 형제의 잘못하는 행위를 보고 못마땅한 생각이 나오려고 준비하는 마음도 여지없이 [자유율법]에 걸리었다. 누구의 허물을 보아도 못마땅한 생각이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단계에 돌입하기 까지는 항상 하나님을 사모하고 극도로 간절하게 하나님께 이끄심을 받기 위해 애걸복걸 애원하는 만큼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자유율법이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내 하나님처럼 존경하고 내 몸처럼 여기면 되는 것이다.
[이긴자]를 배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엄한 법으로 다스렸다. 1초안에 하나님을 사모한 것보다 1초후에 배(倍)이상 더 하나님을 사모해야지 일초전과 일초후에 사모하는 정도가 똑같아도 여지없이 죄가 된다고 쳐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들은 잘 이해가 안될 것이다. 이고도의 율법을 여러분들에게 적용한다면 한명도 구원 얻을 자가 없는 것이다.
온 인류를 사망에서 구원할 [이긴자]를 다듬어 세우기 휘하여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잠을 못자게 하셨다. 고도의 [자유율법]으로 일초일초 이끄셨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나님이 된다. 누구의 죄도 내 죄로 여겨질 때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되어야 구원이다. 성령으로 거듭나라(요3:5)는 말씀은 사람이 전에 하나님이었던 것처럼 다시 하나님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천국에서 살수 있다는 뜻이다.
초창기에 이긴자의 영은 일초일초 급성장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였다. 계속해서 지금도 상승일로에 있는까닭에 어느 시점에 이르면 우주에 꽉찬 마귀가 순식간에 멸함을 받아 마치 눈 녹듯이 녹아질 것이다. 그 때 인류와 온 우주 만물은 6천년 사망의 노예에서 석방되고 해방되어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가 빛나는 영체로 화하여 말할 수 없는 영생속에서 전무후무한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며 영원무궁토록 영존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는 죽음과 괴롬이 없고 곡하는 것과 애통하는 것이나 죽는 일이 없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계21:1~4)
그러므로 이긴자는 온 인류의 태양이요, 어머니요, 구세주요, 온 우주의 은인인 것이다.
거듭남의 비결은 샘처럼 솟아나는 자아의식을 꽁꽁 묶어야 가능해
6천년 간이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그 생각이 완전히 하나님께 묶인 바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도 [자유율법]에 걸리고 저런 생각을 해도 [자유율법]에 걸리었고 오직 하나님만을 고도로 사모하는 자유밖에 없었던 것이다. 늘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심을 따라서 움직이게 되니 일거수일투족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하니 처음에는 그 곤고함이란 말할 수없었다. 이래도 엄어지고 저래도 엄어지는 까닭에하나님께서 좌정하여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며 애타게 간구해도 나라는 의식은 순간순간 작용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라고 하는 자아의식이 작용을 못하게 일초일초 꽁꽁 묶고 또 묶기가 매우 바빴던 것이다. 이 [자유율법]은 꼭 나를 의식해서만 음란죄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의식하려는 마음만 일어나도 나를 의식하는 음란죄를 범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림자 자유율법]이다. 인간의 생각을 하지 않았어도 인간의 생각을 하려고 준비하는 그 마음도 여지없이 [그림자 자유율법]에 걸렸던 것이다. 그 생각을 내 마음애도 품어서는 절대로 안되었던 것이다.
생각이 있어도 그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가운데 부들부들 떨면서 맡기지 못하게 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상태도 맡기지 못하는 의심죄로 여지없이 쳐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향한 마음이 부족한 까닭에 다른 생각이 나오려고 하였으므로 가차없이 [자유율법]에 걸렸던 것이다. 마지막에 [이긴자]를 세우실 때에 이와 같이 고도의 율법으로 다듬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고도로 사모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았다는음란죄에 해당이 되는것이다. 사모하는 그 열도가 일초일초 상승되어야 하나님안에 있다가 되고 [자유율법]을 지켰다가 되는 것이다. 그와같이 하나님께서 다그치시니 다른 생각을 할래야 도저히 할수 없었으므로 나중에는 50평생 부르던 본인의 이름도 나이도 잊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뿐만아니라 세상에서 공부한것도 다 잊었고, 완전히 백지상태로 돌아가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내 나이가 한 살인지 두살인지 장가를 갔었는지 안갔었는지 집이 어딘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 생각을 얼마나 잡아당겼으면 수십년간 부르던 이름도 잊어버렸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하나님 입장에 서서 하나님만 생각해야지 내 입장에 서는 순간 벌써 음란죄를 지은 것이다. 이것은 그 유명한 예수나, 석가나, 공자, 맹자, 톨스토이, 소트라테스 등등 인생문제에 있어서 도가 텄다 할 정도로 휼륭한 성인들이라고 세인들이 칭송을 하지만 그들은 이 차원에 전혀 올라와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너무나 유치한 차원에서 죽어간 것이다.
죄인이 100% 하나님께 향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
내게 몸이 있어도 내 몸이 아니요, 눈과 입이 있어도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포로가 되고 100% 매인바 되어야 마귀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6천년간이나 마귀에게 사로잡힌 가운데서 살던 그 심령이 하나님께 100% 매인 바가 되는 것은 사실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오는 것보다 어렵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겨보려고 아무리 애를 쓰고 기를 써도 되어지지 않았다. 가족도 친척도 재산도 다 버렸고 세상도 모두 다 끊어버렸다.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앞에 할 일을 다 했다할 정도로 주머니속에 들어있던 십원짜리 동전 하나마저 몽땅 맡겼던 고로 육으로는 다 맡겼다가 되었어도 내가 밑긴 연고로 밑긴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맡기라는 독촉을 계속 받았던 것이다. 내 생명까지 모든 전체를 다 드렸건만 또 무엇을 맡기라고 하실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않았다. 계속해서 말기지 않는다고 야단을 치시므로 어찌할 수 없이 하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이 하나님께 맡겨 주셔요. 저는 안됩니다. 하니 그때서야 하나님께서 벙글벙글 웃으시며 바로 그거야 하고 웃음으로 응답을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는 단계가 5단계를 올라가면 우주를 움직인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이끌어 주시고 주장해주셔요, 사모하는 것도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하나님을 사모해 주시고 일을하는 것도 하나님이 오셔서 일을 하여 주시옵소서 호흡하는것도 말하는것도 하나님이 오셔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覽 밑긴것도 또 맡기고 또 맡긴 것을 또 맡겨 주시옵소서 하며 그 맡기는 단계가 계속해서 1단계 2단계 3단계 계속해서 올라갔던 것이다. 3단계정도 올라가니 이 세상 생각을 할래야 할수 없는 경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4단계 5단계로 올라가니 하늘 세계와 우주가 환히 내다 보이며 이 사람의 생각이 움직이는대로 우주가 움직이는 것이 내어다보였다. 그 다음 6단계 7. 8. 9단계로 올라가니 완전히 인간의 탈을 벗은 상태가 되어 인간의 습성과 인간의 생각은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후부터는 늘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생각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 때 비로서 하나님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가 되어진 것이다. 그러하니 누가 감히 이 복을 빼앗을 자가 없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마귀가 넘겨다 볼수 없고 마귀가 유혹할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어가 흔들릴래야 흔들릴 수 없는 그 때 하나님께서 네가 이긴자가 되었다! 네가 완성자가 되었다!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 이제 너는 더 이상 자랄 것이없다. 네가 뉘 죄던지 사하면 사하여지고 정하면 정하여 지리라! 하시므로 그 때 제가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기셨지요. 하나님이 완성이 되시고 하나님이 좌정하셨으니 하나님이지요 하니 또 이겼다! 하시므로 또 이긴 것도 하나님이 이기셨지요 하며 이와 같이 계속해서 승승장구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여 올라가니 마귀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이제 마귀를 바라보기만 해도 지리멸멸 되니 완성자 중의 완성자로 즉 [자유율법]으로 뭉쳐져 사망을 이긴자가 되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동일체의 사상을 원하신다.
완성자가 되고 이긴자가 되니 누구를 보아도 천사처럼 보인다. 이 사람 눈에는 보기 싫은 것이 안보인다. 이 사람을 보아도 천사같고 저 사람을 보아도 하나님같고 이 사람의 잘못이 내 잘못으로 여겨지고 저 사람의 허물이 내 허물로 여겨지고 온 인류의 죄가 나의 죄오 여겨지니 완전히 일체사상으로 동일체의 이념으로 화하여진 것이다. 그래서 형제의 아품이 내 아품으로 여겨지고 타인의 어려운 형편과 사정이 곧 나의 사상으로 느껴지니 그렇게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안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완성자 중에 완성자가 되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단계가 있다. 재론컨대 처음에는 묵묵히 참는 단계로부터 시작해야 된다. 어떤 일을 당해도 참고 어떤 일을 보아도 참아야 되는 것이다. 이 길은 참고 말을 하지 않아야 은혜가 간직된다. [영모님]께서도 그 옛날에 구원의 길은 99%가 인내라고 말씀이 계셨다.
이 길은 인내의 길이다. 참고 견디는 자만이 그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