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물놀이
본디 사물놀이란 용어는 민속학자 심우성님의 조언으로 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의 네사람이 속한 풍물굿패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물놀이의 시작은 1978년 2월, '공간' 소극장에서 열린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에서 장구 김덕수, 쇠 김용배, 북 이종대, 징 최태현의 네 사람이 처음 '웃다리 풍물놀이'를 발표했습니다.
그해 4월에 같은 곳에서 장구 김덕수, 쇠 김용배, 북 최종석, 징 최종실이 '영남 12차농악'을 발표하고, 5월에는 최종석이 이광수로 교체된 뒤 이들은 계속 연구하여 풍물굿에 뿌리를 둔 사물놀이라는 영역을 개발하였고 1982년까지 271회라는 놀랄만한 해외공연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사물놀이'의 구성원 사이에 연행 방법에 대한 차이가 심했습니다. 바로 풍물굿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김용배와 대중에 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김덕수였습니다.
그 결과 1983년에 김용배가 탈퇴하여 '국립국악원 사물놀이'를 결성하고, 흔히 알려진 '김덕수 사물놀이'와 두 기둥을 이루며 활약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연주곡 짜임에서도 나타나는데 설장구가락을 예로 보면 김덕수의 '사물놀이'에서는 느린 가락에서 점차 빠른 가락으로 몰아가는 <다스름-굿거리장단-덩덕궁이장단-동살푸리장단-휘모리장단>으로 연주했고, 김용배의 '국립국악원 사물놀이'에서는 판굿의 장구놀이 가락인 <다스름-휘모리장단(동살푸리장단)-굿거리장단-자진모리장단>으로 연주했습니다.
그 뒤 사물놀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단체가 늘어갔고 사물놀이는 풍물굿의 새로운 연주 형태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습니다.
또 사물놀이패들의 활약으로 일제침략기를 거친 어른들이 쓰던 '농악'이란 말을 밀어내고 풍물굿의 다른 이름처럼 널리 불려지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각급 학교나 노동조합등에서 많은 수의 사물놀이 모임이 생겼습니다.
현재는 수많은 전문 사물놀이 단체가 있으나 1995년 이후 각 사물놀이 단체는 풍물굿 가락을 연주하던 처음의 흐름에서 벗어나 모듬북을 도입하거나, 아프리카 타악기, 서양 리듬악기와 협연하는등 차츰 풍물굿이 아닌 타악연주 그룹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2. 사물에 대하여
'사물(四物)'이란 본디 불교 용어로 불교음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타악기인 법고, 운판, 목어, 대종을 가리킵니다.
법고(法鼓)는 커다란 북으로 가죽부분과 테를 채 두개로 번갈아 치는데 기어 다니는 짐승을 제도하기 위해 두드린다고 합니다. 운판(雲板)은 구름 모양의 쇠판으로 채 두개로 치는데 날아 다니는 짐승을 제도하기 위해 두드린다고 합니다. 목어(木魚)는 통나무 속을 파내 물고기 모양으로 깎은 것으로 채 두개로 번갈아 치는데 물 속의 짐승을 제도하기 위해 두드린다고 합니다. 끝으로 대종(大鐘) 커다란 쇠북으로 굵은 채를 매달아 치는데 지옥고에 헤매는 짐승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고 합니다.
법고, 운판, 목어, 대종은 각각 풍물굿 주요 악기인 북, 쇠, 장구, 징과 대응합니다.
풍물굿에는 여러 악기가 있으나 나발, 새납, 소고는 가락을 구성하는 기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풍물굿 가락은 쇠, 징, 장구, 북의 네가지 풍물을 통해 특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물놀이에서는 이 네가지 악기를 북의 울림은 바람소리를 닮았다 하고, 장구의 몰아가는 소리는 비를 닮았다 하고, 징의 울림은 바람을 닮았다 하고, 쇠의 울림은 우레를 닮았다 하여 운우풍뢰(雲雨風雷)라 합니다.
민가에서 쓰는 풍물을 '사사로운 것'이란 뜻의 사물(邪物)로 본 기록도 있으나, 조선 후기의 유랑예인집단 가운데 널리 알려진 남사당패가 안성 청룡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그들이 절의 신표를 지니고 다녔던 점을 비추어 절에서 쓰는 사물이란 말을 사용했으며 그 후예들인 '사물놀이'의 구성원들이 민속학자 심우성님의 조언을 합당하게 받아 들인 듯 합니다.
어떤 이는 사물놀이를 네가지 악기인 쇠, 징, 장구, 북으로 연주하므로 생긴 명칭이라고 하나 새납, 소고등의 악기를 더하여 연주하는 선반인 경우에는 '오물, 육물놀이'가 되는 모순이 있습니다.
3. 사물놀이의 특징
'사물놀이'는 남사당패라는 전문 걸립패에서 성장한 이들이 조직함으로 한 마을굿에 얽매이지 않고 각 지방의 가락을 정리하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었으며 풍물굿에서 장단을 배울 때나 고사반을 할 때 쓰던 앉은반을 채택하여 보고 즐기던 풍물굿을 감상하는 차원으로 이끌었습니다.
사물놀이의 뿌리는 풍물굿이며, 사물놀이 또한 풍물굿의 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사물놀이가 풍물굿과 다른 점은, 풍물굿이 주로 농어촌에서 전승되어 온 것과 달리 도시의 성향에 맞는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사물놀이가 풍물굿과 다른 몇가지 특징을 살펴 보면
첫째, 사물놀이는 주로 앉은반으로 연주하므로 풍물을 다루는 솜씨나 기량을 최대로 발휘하게 됩니다. 풍물굿은 본디 춤, 노래, 극, 가락이 한데 어울어지므로 가락보다는 시각효과인 진법과 춤사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반면 앉은반을 택한 사물놀이는 가락을 위주로 하므로 관객들에게 청각효과를 높여 풍물굿과 다른 신명을 줍니다. 바로 풍물굿의 내고-달고-맺고-푸는 원리에 치배의 기량을 최대한 구사하는 짜임인 내고-달고-굴리고-맺고-푸는 원리를 지닙니다.
사물놀이에도 선반인 판굿이 있으나 앉은반에 못미치고 대신 춤사위, 발림, 진법등으로 풍물굿 모습을 따릅니다.
둘째, 사물놀이는 풍물굿 가락을 사용하나 그 가락을 다시 배열하여 느린가락에서 빠른가락으로 가속되는 틀을 갖습니다. 풍물굿도 춤사위, 진법에 따라 가락이 바뀌고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원리를 지니지만 사물놀이는 한층 더 조여가는 틀을 이룹니다. 이 점에서 사물놀이는 풍물굿 가락을 더 복잡하고 세련되게 만들었습니다.
셋째, 풍물굿은 상모를 사용하고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만 사물놀이는 춤사위나 발림이 없으므로 상모가 필요없고, 풍물굿의 많은 악기 가운데 핵심인 네가지 풍물을 쓰므로 적은 인원으로도 연주를 할 수 있어 도시사회에 적응하기 쉽게 했습니다.
넷째, 판에서 이루어지는 풍물굿과는 달리 사물놀이는 실내 무대에서 연주를 합니다. 풍물굿도 처음 가락을 배울 때나 집안굿을 할 때 앉은반으로 방에서 치기도 하지만 대개 넓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물놀이는 판굿이나 야외공연도 무대를 설치하여 연행함으로 풍물굿의 특성인 치배와 관객이 어우러지는 대동굿 요소를 배제하여 풍물굿 자체를 무대음악으로 한정하였습니다.
사물놀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마당에 있던 풍물굿을 실내 무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바로 풍물굿 현장에서 몸으로 느낄 수 없는 현대인의 욕구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물놀이'도 풍물굿의 정신을 그대로 잇고 있으니 서낭굿의 과정을 살려 연행하는 점입니다.
우선 공연에 앞서 서낭굿의 지신밟기 가운데 집돌이 부분의 문굿을 치며 무대로 올라서고 비나리를 하여 축원 덕담을 합니다.
그 다음 설장구가락이나 여러 이름의 풍물굿가락 짜임을 치고 마지막에는 판굿을 하고 항상 무대에서 관객과 치배가 어울리는 뒷풀이를 치룹니다.
사물놀이가 무대음악이기는 하지만 풍물굿의 전통 신앙과 양식을 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수많은 사물놀이 단체가 개성을 표방하고자 풍물굿 가락을 연주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모듬북, 다른나라 타악기, 리듬악기등의 요소를 도입하여 차츰 풍물굿이 아닌 타악 연주 그룹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사물놀이 단체가 1990년 중반까지 풍물굿가락 짜임을 치던 형식은 풍물굿이라 할 수 있으나 그 이후의 여러 장르로 벗어난 연주 내용은 풍물굿으로 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