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길 여행
임경자
비는 생명체들을 깨우느라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보슬보슬 내렸다. 언 땅을 녹여주는 봄비는 먼 곳에서 오는 손님처럼 반갑고 기쁘다. 비와 더불어 부드러운 훈풍이 스치고 지나간 대지는 예외 없이 생명의 기운이 꿈틀댄다. 봄의 전령사인 매화향기와 산수유 향기에 오늘 하루 푹 빠져 보리라.
매화마을로 가는 길은 주중이라서 그런지 한적했다. 남녘의 섬진강변을 끼고 지리산 자락에는 다른 곳보다 봄이 성큼 다가 온 듯했다. 풀어놓은 비안개가 산자락마다 휘감아 산등성이로 오르내리고 있다. 봄꽃을 보겠다고 성급한 마음으로 찾아 온 꽃마을을 두 눈 크게 뜨고 살피니 띄엄띄엄 흰색 꽃이 눈에 보였다.
그중 일조량이 전국 으뜸이라는 '햇빛고을' 전남 광양(光陽) 일원에는 대자연의 식물들이 한창 물오르고 있다. 지명조차 매화마을로 바뀐 섬진마을은 본래 밤나무가 무성한 강마을이었다. 고(故) 김오천 옹이 1920년대에 처음으로 백운산 자락에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며느리인 홍쌍리 여사가 40여년이 넘는 세월을 쉼 없이 심었다고 한다. 매화 밭은 12만평 규모의 청매실농원으로 이제는 전국 제일의 매화꽃 명소가 됐다.
우리 일행은 차에서 내려 기슭으로 난 길로 올라갔다. 비탈길을 올라 장독 항아리가 보이는 앞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장항아리는 무려 2천개 정도 된다고 한다. 저 많은 항아리에 그득하게 차 있을 장과 매실 엑기스가 푹 익어 가리라. 즐비하게 놓여있는 장독을 보니 고향집 뒤뜰에 놓인 장독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가장 먼저 봄을 열어 준다는 광양 매화마을의 축제기간이 2012년 3월 17~3월 25일까지다. 금년은 봄이 좀 늦어졌다고 봄나물을 펼쳐놓고 파는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마을 주민들이 비가 오는데도 길가에 앉아 산과 들에서 채취한 봄나물과 매실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매화보다는 천리향이 좋은가 일행들은 천리향묘목을 한 그루씩 안고 차에 올랐다.
쫓비산 길 따라 층계를 오르다가 정자가 있는 곳에 머물렀다. 건너편 산자락에 있는 매화나무 밑은 초록색 보리가 비에 젖어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하얀 매화꽃을 그려보았다. 저만치 보이는 섬진강변의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산허리에 운무를 풀어놓은 듯했다. 산, 강, 운무, 매화꽃, 대숲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만 같다.
양지바른 곳과 대나무가 찬바람을 막아주는 곳에는 매화나무마다 여리디 여린 꽃봉오리가 터지고 있다. 꽃망울은 아이보리, 연초록, 핑크빛색깔로 건드리면 톡 터질듯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옛날 아궁이에 볏짚을 땐 뒤 벼이삭을 잿불위에 올려놓으면 톡톡 튀겨져 하얀 튀밥이 되는 모습과 흡사했다. 또한 그윽한 향기를 아낌없이 뿜어 댈 준비를 하고 있다. 청매화보다도 홍매가 더 약빠른지 활짝 피워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했다. 홍매화 꽃이 겹으로 활짝 피어난 곳에는 너도 나도 들뜬 마음으로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다.
매화 밭과 밭 샛길로 난 산책로를 걷다보니 여러 가지 안내판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시인 노천명의 시 ‘설중매’와 ‘홍쌍리매실가’라는 큰 바위에 새긴 글이 큰 바위 얼굴처럼 눈에 들어왔다.
사군자 매·난·국·죽 중에서 가장 으뜸인 매화다. 추위와 찬바람을 무릅쓰고 첫 꽃을 피워내어 선비의 마음을 사로잡는 꽃이 아닌가. 여인의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의 향기다. 매화꽃 향을 품어 안고 있을 건 다 있다는 화개장터에서의 갖가지 물건들을 구경하고 맛보았다.
구례 상위마을에 피어나는 노란 자태가 개나리 못지않은 산수유 꽃이다. 돌담너머의 산수유 꽃 향에 젖어 여유와 낭만을 한껏 부리며 이끼 낀 돌담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수줍게 피어오르는 노오란 산수유꽃길인 돌담길의 정겨운 풍취에 젖어도 보았다.
이른 봄을 눈으로 색을 보고 코로 향을 맡고 입으로 맛을 보았다. 탐스러운 꽃망울을 터트려 매화향기 가득한 곳을 찾아 온 꽃놀이다. 매화꽃이 되어 핀 연인이 외로운 님 곁에 휘파람새가 되어 항아리에 몸을 숨긴 꽃님이다. 자연을 벗 삼아 꽃내음이 흥건히 물든 날 휘파람새가 날아들어 나와 함께 매향에 젖어 보고픈 초봄이다.
2012.3.23
설레며 떠나는 길 여행
임경자
동양일보 7월 길 여행은 ‘솔향기 나는 서해의 절경 충남태안 솔향기 길로 떠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어디론가 떠나려 해도 무엇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번엔 내 일상을 훌훌 털고 떠났다.
태안 앞바다는 2007년 기름유출 사건으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12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 와 기름띠를 닦아주는 아름다운 마음이 녹아있는 곳이다. 늘 마음으로 빚진 것 같았던 그 곳에 갈 기회가 생겼다. 며칠 전 도보여행가의 강의를 텔레비죤 방송을 통해 들었다. 그는 65세에 처음으로 도보 여행을 시작 했다고 했다.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던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한번 시도 해 볼까’ 하는 막연한 꿈을 가져보았다.
요즈음은 유행처럼 길 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인간은 태어나 처음으로 걸음마를 걸으면 축복처럼 기뻐하는 우리다. 발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걸어 다니며 의, 식, 주를 해결했던 원시시대서부터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 우리의 생활풍습도 많이 변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의 물결이 빠름의 시대로 몰아간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쉼 없이 변화되는 삼라만상이다. 시속 300킬로미터나 되는 고속전철 시대에 살면서 많은 것을 놓치며 살고 있다.
차에서 내려 농로를 따라 가다가 언덕에 오르니 보랏빛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길옆에 붉게 익어가는 산딸기향이 입맛을 유혹하기도 했다. 알뜰하게 정비해 놓고 온 국민들에게 알리는 차윤천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닷가에 닿았다. 그는 이 길에 애착을 갖고 자기 혼자의 힘과 정성으로 땀 흘리며 가꾸어 놓았다고 했다. 피나는 노력으로 어려운 일을 굳굳하게 해 온 그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숲 사이로 바닷바람이 비릿하게 불어 와 내 코끝을 자극했다. 시야는 안개로 덮여있어 바닷물 빛을 볼 수가 없이 뿌옇다. 아쉬운 마음으로 허옇게 뒤덮인 저 곳이 바다려니 하며 바위 위에 붙어 있는 조개껍질로 눈길을 돌렸다. 130여명의 우리 일행은 오솔길을 마치 병정들이 행군하는 것처럼 일렬로 줄을 서서 걸었다.
"솔향기길"은 바람처럼, 향기처럼 일상을 털고 찾아왔으니 오늘 하루 즐기리라 마음먹었다. 오르막길로 숨 가쁘게 오르다보니 도깨비엉컹퀴가 곱게 피어나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꽃이라 자줏빛 얼굴에 손을 살짝 얹어 보았다. 수염 꽃잎이 바르르 떨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저절로 피었다가 지는 꽃이다. 자기 나름대로 씨를 퍼트리며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생명체인 것을 어찌 우리 마음대로 하려는지 모르겠다. 내리막길에서 만나는 바람은 내 목덜미의 땀을 식혀주어 고마웠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고마운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바다를 바라보고 숨을 고르며 여유를 부려본다.
이 곳 솔잎의 향기만큼이나 상큼한 숲길에서 풀잎도 초록, 나무도 초록, 소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초록빛이다. 그 맑고 싱그러운 잎들의 예쁜 초록색 고운 빛이 찌든 마음과 생각까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이름 모를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뱃고동 소리와 어울려 출렁이는 파도가 되었다. 이 싱그러운 자연의 맑은소리 가득한 솔향기길 정자에 올라서서 크게 심호흡을 해 본다.
한낮인데도 바다위에 깔린 덧옷은 아직 벗지 않았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썰물이 된 저 바닷빛을 볼 수 있을까. 산길을 내려와 해안가에 펼쳐진 자갈길을 걸었다. 따끈따끈한 햇볕이 돌을 달궈 발바닥을 데워주었다. 오기 전에는 해안도로 옆으로 난 펑퍼짐한 숲길을 쉽게 걸을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랐다. 산길을 오르고 내리막을 잇는 외길에 서서 모두들 기진맥진하며 숨을 골랐다. ‘자연은 말없는 선생님’이라는 말과 같이 많은 것을 터득했다.
두발로 떠나는 여행은 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이다. 어느 순간 지나온 길만큼 묻혀 온 것들이 무거워 지는 길.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느릿하게 길을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온 그 길이 즐겁고 행복하고 쓰리고 아픈 상처 때문에 가슴앓이로 웃음과 눈물로 범벅된 외로운 길. 이제 거침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흙냄새, 풀냄새, 꽃향기, 바람향기, 사람냄새, 거름냄새, 온갖 냄새 맡으며 거친 길을 다듬으며 걸어야겠다.
2012.7.22
또 가고픈 길 여행
임경자
생태계의 보고라고 일컫는 곳 그곳은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 벼르기만 해 왔다. 그런데 동양일보에서 길 여행을 이곳으로 정했기에 열 일 젖혀놓고 신청했다. 필히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다는 국립 수목원을 가게 되어 기대감이 크다. 우기는 지났지만 며칠간 국지성 소나기가 전국을 골고루 오르내리며 엄청난 물 폭탄을 뿌려주고 있다.
광릉 입구에 도착할 쯤 비는 보슬보슬 오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고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을 들어보니 조선의 왕 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능陵이라 하고 왕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왕의 사친의 무덤을 원園이라하며 왕족,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의 무덤을 묘라 한다. 세조가 죽은 후 500년 동안 긴 세월을 세조의 후손들이 조선왕조를 유지했다. 그 이유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조선왕릉 중에 가장 좋은 자리라 한다.
특히 반가운 말씀은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 고향 보은이라 그런지 보은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반갑다.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니 정이품송의 손자 소나무 두 그루가 바로 앞에 있다고 한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어린 소나무는 늠름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 모습을 많이 닮았고 예쁘고 근사해 보였다. 못된 사람보다도 더 훌륭한 소나무가 아닌가. 유구한 역사 속에 찬란한 빛이 되기를 빌어 본다.
완만한 경사라서 울창한 숲길을 따라 힘들지 않게 올라갔다. 시야에 들어오는 능은 마치 녹색 비단을 펼쳐 널어놓은 듯했다. 가랑비가 살짝 지나간 후라서 그런지 그 빛이 더욱 짙녹색으로 빛났다.
광릉은 같은 산줄기에 좌우 언덕을 달리하여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봉안했다. 마치 V자 모양으로 두 능의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丁자각을 세우는 형식인 동원이강同原異岡릉으로서, 이러한 형태의 능으로는 최초라고 한다. 좌측 능선의 봉분이 세조의 능이며 오른쪽의 봉분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광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간소하게 조성되었다고 한다.
능의 보존관리를 위해 홀수 날에는 세조의 능을 갈 수 있고 짝수 날은 왕비의 능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왕비 능으로 발길을 옮겼다. 돌계단을 디디고 올라가며 다른 왕 능에 비해 많이 가파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탈진 내리막길에서 ‘얼룩진 부귀영화를 얻고자 쟁취의 삶을 살아온 그가 회한의 그늘에서 그 얼마나 가슴 아파하였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광릉 맞은편에 있는 광릉수목원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광릉수목원은 540년간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전 세계적으로 온대활엽수 지역이며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서어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어린나무부터 오래된 고목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해 있다. 2010년 6월 2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전나무 숲길로 오르면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무들이 우람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쭈쭈 빵빵하게 자란 나무들이 얼마나 늘씬하게 잘 생겼는지 모른다. 아마 사람이라면 홀딱 반할만하다. 진한 산소 향에 흠뻑 젖어보는 기막힌 시간일 텐데 비가 부슬부슬 내려 나무 향을 찾으려고 아쉬운 마음으로 코를 벌름거렸다. 산책로 양쪽으로 수많은 식물과 참나무와 가래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광릉수목원이다.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누구나 즐기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동물원에 들어서니 우리 안에 있는 늑대는 놀랐는지 쏼 거리며 돌아다녔다. 옆집 멧돼지는 궂은 날씨라 그런지 곤한 잠에 취해있다. 백두산 호랑이역시 깊은 잠이 들어 깨우지 않으려고 발길을 돌렸다. 깊고 높은 산을 휘젓고 다닐 호랑이가 좁은 철망 안에 갇혀있어서 안쓰럽다. 식물원에 들려 처음 보는 희귀한 식물에 눈을 고정시켰다. 펑펑 쏟아 붓는 빗줄기를 맞으며 하나라도 더 보려고 야생화가 있는 화단사이를 이리저리 다녔다.
길 여행은 첫째 자신을 만나고 둘째 자연을 만나고 셋째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자연과 20~30년 전에 같은 직장과 이웃에 살던 옛 정인들을 만나 반가웠다. 생태의 보고인 이곳에 와서 샅샅이 살펴보지 못하고 떠나 아쉬움이 남지만 좋은 추억을 만든 하루다. 느리게 걸으며 눈여겨보러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해 본다.
2012.8.18일 토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