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은 여러분 모두 좋아하시는 고구려의 영웅 온달(溫達)이다. 이 얘기 다 아시겠지? 근데 이 얘긴『삼국사기』권 45 열전 5「온달」에만 나온다. 다른 기록엔 '온달'이란 이름조차 없다. 자료가 달랑 하나니 정말 좋다. 이런저런 자료랑 비교 안해도 되니 말이다(그거 열나 시간든다. 함 해바바). 아, 그리고 이번 글의 목적은 누구를 씹는게 아니라 띄워주려는 것이다. 사실 불쌍한 온달 쪼아댈 게 뭐 있나. 팍팍 밀어줘도 시원찮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지난번에도 그랬듯이 미리 토 몇 개 달자.
⑴ 이 글은 '바보 온달' 얘기를 위인전이나 동화책, 인형극 등을 통해서 알고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쓴 거다. 그 이상 수준의 분들은 안 읽으셔도 된다. 읽는 거 막을 순 없지만, 읽고나서 '뻔히 다 아는 얘기 뭐하러 했냐'는 말씀 하지 마시란 뜻이다.
⑵ '원문'이나 '본문' 대신 '텍스트'라고 쓰겠다. 이 연재의 성격을 보여주는 데는 차라리 이 말이 나을 거 같아서다. 거부감 드셔도 참아주셔야겠다.
⑶ 학계에선 온달은 실존 인물로 본다. 하지만 텍스트 내용의 진위 여부(어디가 진짜고 어디는 가짠가 가려내는...)는 여기서 안 다룬다. 문학성이나 상징성 같은 거도 내 알 바 아니다. 난 그저 이 얘기를 텍스트 그대로 믿고 따져보련다(그러니 이 글에서 학술적인 내용 기대하지 마시라).
⑷ '바보'라는 말에 상처 받을 분이 계실까 걱정된다. 우리 주변에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지능이 모자란 분들이 적지 않다. 그 분들이 직접 이 글을 읽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주변 분들이 불쾌하게 느낄 수 있겠다.
이 점 양해 바란다.
⑸ 윈도우에서 지원되지 않는 한자의 경우, 붉은 색 글씨로 표시했다. X표로 남겨놓는 것보다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표시해 보려 노력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책 표지다...
■ '평강공주'란 이름은 텍스트에 없다
우선 이거부터 따져보자. 보통 '평강공주'라 부르는데 그런 이름 텍스트에 없다. '평강왕의 어린 딸【平岡王少女兒】'과 '공주'만 나올 뿐이다. 누가 언제부터 '평강공주'라 불렀는진 모른다. 뻔한 말이지만, '평강공주'는 '평강왕의 공주'란 뜻이지 공주의 이름이 '평강'은 아니다. 또 '평강왕'은 왕이 죽은 다음에 붙여진 시호(諡號)니까 그가 살았을 땐 공주도 '평강왕의 공주'라 불렸을 리 없다.
그치만 이름이 안나오니 어쩌겠나. 그냥 글케라도 불러야지. 글고 평강왕(재위 559~590)은 '평원왕(平原王)' 또는 '평국왕(平國王)'으로도 불렸다니, 김부식이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溫達 高句麗平岡王時人也】'하지 않고 '평원왕' 또는 '평국왕'이라 했으면 우린 꼼짝없이 '평원공주' 또는 '평국공주'라 불러야 했을 거다.
대무신왕이나 소수림왕, 광개토왕의 딸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다. 광개토공주라... 흐흐.
상관없는 얘기지만 '온달왕자들'이라는 드라마도 있었다...
■ 아바마마, 나중에 두고 봅시다
우리의 평강공주, 잘 아다시피 어려서부터 울보였다. 그 때마다 평강왕은 '네가 늘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앞으로 반드시 사대부의 아내는 되지 못할테고,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가야 마땅하겠다'며 놀려댔다.
아이의 울음을 멈추는 방법은 '착하지?'하고 달래는 유형과 '맞을래?'하고 꾸짖는 유형, '.....' 하고 냅두는 유형 등이 있겠다. 근데 평강왕은 이도저도 아니다. 울 때마다 늘 놀려댄 것이다【王戱曰 … 大王常語 …】. 우는 입장에선 이게 젤 서럽다. 이런 설움이 세월을 두고 쌓이다 보면 오기가 솟는다. '그래요 아바바마, 나중에 두고봅시다' 같은 거 말이다. 암튼 우리의 온달, 평강왕도 알고 있을 정도면 그 때 이미 고구려의 바보계를 평정한 국가대표급 바보였나보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공주는 이팔청춘 16세, 혼인적령기로 접어든다. 이 때쯤이면 사춘기 아닌가. 한창 개길 때다. 이 때 평강왕이 상부고씨(上部高氏)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공주가 이렇게 삐댄다.
공주 : 대왕께서는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이제 와서 앞서 하셨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匹夫)라도 식언(食言)을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至尊)께서야 말할 나위도 없지요. 그런 까닭에 '왕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대왕이 명은 잘못된 것이니,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왕 : 네가 내 명을 따르지 않으니 결코 내 딸이 될 수 없다. 어찌 같이 살겠는가.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 마땅하겠다.
"이 니욘, 내 말 안들으려면 궁에서 나갓!"
"흥, 나가라면 못나갈 줄 아세욧?"
등등의 고성이 오갔으리라. 귀쌰대기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암튼 이 싸움은 공주의 퇴출로 싱겁게 끝난다.
공주가 첨부터 쫒겨날 걸 각오하고 개긴 건지, 그건 아녔는데 아버지가 빡세게 나와 떨려난 건지 텍스트만 갖곤 알 수 없다. 반대로 평강왕은 정말 공주를 쫒아내려 한 건지, 아님 정신 차리라고 함 핏대낸 건데 공주가 글켄 못하져 하며 튕겨나간 건지 모호하다.
암튼 궁에서 나온 공주는 온달을 찾아나선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 분풀이 하려는 거다. '그래, 온달 함 인물 맹글어서 울 아부지 쩍팔리게 해드리자'는 심뽀 아닌가. 어딘지 섬찟하다. 온달에 대해 아는 정보라야 바보라는 거밖에 없다. 근데도 사랑 없이 한풀이를 위해 하려는 결혼, 결국 온달은 공주의 한풀이를 위한 '잘했어 라이코스'로 이용된 거 아니겠나. 그치만 이용된들 어떠랴. 백번이라도 좋으니 나도 좀 이용해주라.
■ 평강공주가 보따리 하나 달랑 안고 쫒겨났다?
위인전이나 동화책 보면, 요 대목에서 공주가 훌쩍대며 보따리 하나 달랑 안고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물론 패물 챙겨 나왔다고 씌여진 것도 있다). 보신 적들 있는가. 나도 어릴 때 이 장면에서 가슴 짠했던 기억이 새록하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우리 공주, 맨손으로 허접스레 쫒겨날 만큼 어리버리하지 않다.
이에 공주는 보물팔찌 수십개를 팔꿈치에 건 뒤 왕궁에서 나와 홀로 갔다【於是公主以寶釧數十枚繫주(月+寸)後 出宮獨行】.
평강공주 이 여자, 볼수록 맘에 들지 않는가? 야무지기 짝이 없다. 보물팔찌 수십개를 팔꿈치에 거는 방법은 내 알 바 아니다. 아무튼 공주,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온달의 집을 물어 그 집을 찾아간다. (놀랍다! 딱 한 사람 만나서【路遇一人】물었더니 즉빵으로 일러주더란 거다. 무슨 말인가? 온달의 집은 이 때 이미 누구나 다 아는 고구려의 '명소(名所)' 반열에 올라 있었단 뜻이다)
근데 집에는 온달의 눈먼 노모(老母)만 있었다. 공주는 노모에게 다가가 절한 뒤 온달이 간 곳을 물었다. 그랬더니 노모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비루해서 귀인(貴人)이 가까이 할 바가 아니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이상하고, 손를 만지니 부드럽기가 솜(綿)과 같으니 천하의 귀인(貴人)이 틀림 없구려. 누구의 속임수에 빠져 여기에 오게 되었소.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여 산으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간 지 오래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오【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주(人+舟)以至於此乎 惟我息不忍饑 取楡皮於山林】.
원래 어느 한쪽 감각이 기능을 잃으면 다른 감각들이 발달한단다. 노모(자꾸... 노모 히데오가...)는 예민한 후각과 촉각으로 공주가 귀인임을 퍼뜩 알아챈다. 뭔가 수상쩍긴 하지만 아들이 간 곳을 일러준다.
■ '바보 온달전'에는 '바보 온달'이 없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 온달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흔히 그를 '바보 온달'이라 부르는데, 텍스트에 두 번 나오는 '우온달(愚溫達)'이란 부분을 글케 번역한 거다. 근데 아무리 디벼봐도 온달이 왜 바본지 보여주는 대목이 없다. 국가대표급 바보라면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뭔가 허걱스런 바보짓 사례 한 두 개쯤 나와줘야 하지 않나. 글치만 김부식은 '따지지 말고 바보라면 바본줄 알아 쨔샤' 거의 이런 분위기다. 젠장, 온달의 몰골이 어땠는지나 알아보자.
얼굴이 핼쓱하고 우습게 생겼지만 마음은 밝았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늘 빌어먹으며 어머니를 봉양했다. 떨어진 옷을 입고 해어진 신고 시정간(市井間)을 오고가니, 그 때 사람들이 그를 일러 '바보 온달'이라 했다【容貌龍鐘可笑 中心則 행(日+幸)(행, 恐作曄)然 家甚貧 常乞食以養母 破衫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마음이 밝았다'는 건 늘 실실 웃고 다녔다는 뜻 같다('명랑했다'로 번역하기도 한다. 불만 없이 매사에 긍정적이었단 뜻일게다). 생긴 것도 웃긴 놈이 늘 실실 쪼개고 다니니 볼만 했겠다. 게다가 하고 다니는 꼬라지를 보면 영락없이 거지다(분명히 하자. 온달은 거지였다). 근데도 그는 여기저기서 밥을 빌어 노모를 모셨단다. 지극한 효자다. <바보 + 거지 + 효자> 이거 나름대로 '위인'아닌가? 인간극장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아이들한텐 이 점 강조해줘야 한다. < 천재 + 부자 + 불효자> 이거보단 훨 낫다. 게다가 나중에 성공해서 용장(勇將)에 충신까지 되니, 누가 온달을 미워하겠는가.
■ 왕실대표 울보와 국가대표 바보, 드뎌 만나다
다시 아까 장면으로 돌아간다. 노모의 말을 듣고 집에서 나온 공주가 산 밑에 이르니 누가 저만치서 내려온다. 척 보니 알겠다. 온달이다. 왕실대표 울보와 국가대표 바보는 이렇게 만난다. 순간?내가 정말 저 화상을 뎃구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왜 안들었겠나. 그치만 맘을 가다듬고 지가 여기 온 까닭을 밝힌다. 보자마자 청혼한 거다. 그러자 버엉~찐 온달, 벌컥 화를 내며【悖然】소리친다.
이는 어린 여자가 할 만한 짓이 아니다. 너는 틀림없이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이다. 내게 다가오지 마! 그리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遂行不顧】.
보시라. 대체 어디를 봐서 온달이 바보냐. 우리보다 훨씬 맑은 정신 아닌가. 오히려 온달한테 공주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을 거다. 귀티가 줄줄 흐르는 데다 얼굴 또한 이쁘지 않았겠는가 (이뻤다는 거... 증거 없다. 걍 공주니 이뻤겠지 해서 썼다가 와이프한테 쫑코 먹었다. 왜 공주면 다 이쁘다 생각하냐고. 트퍼... 맞는 말이지만... 딴 여자 이쁘단 꼴을 못본다). 게다가 팔꿈치에는 보물팔찌가 주렁주렁 … 근데 이런 여자가 지한테 청혼을 하니 어찌 이상하지 않겠는가.
온달이 공주를 만난 곳은 산 속이 아닌 산 밑이었다【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 비교적 덜 무서운 곳이란 뜻이다. 여자로 변신한 여우나 귀신이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적다. 따라서 여느 사람이면 꼴딱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온달,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공주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늘 히죽대기만 하던 온달이 말이다. 그리곤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버린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 '온달족'의 기원을 열다
하지만 돌아갈 곳도 물러설 데도 없는 공주, 온달의 집으로 돌아와 사립문 아래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다시 집으로 들어와 온달과 노모를 설득한다. 그런데 온달, 어제의 단호했던 태도와는 달리 결정을 못내리고 우물쭈물한다【依違未決】. 왜냐고? 뻔하지 뭐.
⑴ 가만히 뜯어보니 여우나 귀신은 아닌 것 같다.
⑵ 여자다!
⑶ 팔꿈치에 금팔찌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갈등 때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만약 여기서도 온달이 단호히 물리쳤다면 '성인(聖人)'이다 (그런 인물이라면 느끼해서 아예 여기서 다루지도 않는다).
근데 노모는 아직도 망설인다. '우리 아들은 너무 비루해서 귀인의 짝이 될 수 없고,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귀인이 살 수 없다'고 말이다(맹인이라 보물팔찌를 못봐서 그럴게다). 그러자 공주, 일케 대꾸한다.
옛 사람의 말에, 한 말 곡식도 방아찧을 수 있고, 한자 베도 꿰멜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만 맞는다면, 어찌 반드시 부귀해진 다음에야만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古人言 一斗粟猶可용(찧을 용)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可共乎】
아! 정말 감동적인 말이다. 맘만 맞는다면 빈천(貧賤)도 문제될 거 없다는 거다(지가 언제부터 온달을 알고 지냈다고 맘이 맞는지 아나. 억지로라도 맞추겠다는 거다). 근데 일케 공자님 같은 말씀을 마치신 우리 공주님, 다음 행동을 보시라.
이에 금팔찌를 팔아 전지(田宅)·노비(奴婢)·우마(牛馬)·기물(器物) 등을 사니 필요한 것들이 모두 갖추어졌다【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이런... 대체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빈천은 별 문제 아니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팔찌(앞에선 '보물팔찌'라 했는데 여기선 '금팔찌'로 나온다. 뭐 보물이나 금이나...)를 팔아 살림살이를 모조리 사들이다니. 그냥 한번 폼잡으려 해본 소리였구나! 하긴, 정말 글케 살거라면 뭐땜시 팔꿈치에 금팔찌를 수십개나 달고 왔겠는가(여담인데 팔꿈치와 금팔찌, 연속으로 치면 자꾸 오타난다. 한번들 해보시라).
공주의 목적은 '잘사는 게 복수다' 수준이 아녔다. 온달을 보란 듯이 성공시켜 아버지에게 멋지게 한방 날리고 싶었던 거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 훈련에 들어가야지 이런저런 허접스런 일에 매달릴 여유가 없었다. 뭐 밥짓고 빨래하고... 솔직히 이런 거 하기도 싫었겠지. 해본 적도 없을테고. 그래서 풀셋트로 완벽히 갖춰놓고 곧바로 조련에 들어간 거다. 이쯤 되면 온달과 노모가 공주를 물리칠 이유는 아무데도 없어진다. 와이프 잘만나 인생 꽃피는, 이른바 '온달족'의 기원이 열리는 순간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바보 온달' 관련 삽화를 본 적이 있는데, 공주가 밭에서 괭이질을 하며 땀흘리는 모습이었다. 텍스트를 괄시하니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
'평강공주'라는 민박집도 있다
(기사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없음)
여기서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이 커플의 나이차를 따져보자. 공주가 울보라 불린 때를 대략 5살 정도로 잡아보자. 그럼 그 때 온달은 몇 살? 뭐 근거야 없지만, 한 나라의 바보계를 대표하려면 적어도 15세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또 온달이 산 밑에서 16살짜리 공주를 만났을 때 '어린 여자【幼女子】'라 불렀다. 16살이 어려? 지는 훨 나이 먹었다는 거 아닌가. 적어도 10년 차는 넉넉히 날 거 같다. 공주에 금팔찌에 한참 연하라... 쩝.
■ 말(馬) 고르는 노하우, 주몽에서 온달까지
공주가 온달에게 내린 첫 지시는 시장에 가서 말을 사오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일케 당부한다.
시장 상인이 파는 말은 절대 사지 말고, 반드시 병들어서 (팔러) 내놓은 국마(國馬)를 사오세요【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유(앓을 유)而見放者 而後換之】.
우리의 라이코스, 시키는 대로 말을 사오고, 공주는 그 말을 잘 길러 명마(名馬)로 만든다. 근데 이거『삼국사기』권 13 고구려본기 1「시조 동명성왕」에도 나오는 얘기다. 부여 금와왕의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자 왕은 주몽에게 말 기르는 한직을 맡겼다. 그랬더니 주몽이 좋은 말은 안먹여 야위게 만들고, 나쁜 말은 잘먹여 살지게 만들었다가 나중에 야윈 말을 지가 챙긴 뒤 잘먹여 준마로 만들었다는 그 얘기 말이다 (이것도 애들 보는 위인전 보면 주몽의 '지혜'라고 나온다. '슬기'와 '잔꾀'는 다르다. 비록 한직이긴 했지만 그것도 공직 아닌가).
이 부분 첨 읽으며 약간 삐리리~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상징성이 엿보여서다. '국마(國馬)', 즉 나라에서 기르던 말 중 병들고 야위어서 내놓은 것을 사가지고 잘 길러 명마를 만들었다? 왠지 그 말(馬)이 온달을 상징하는 거 같지 않은가? 볼품 하나 없는 바보이자 거지인 온달을 잘 '키워' 명장(名將)으로 만든다... 안 비슷한가? 그래, 그건 글타 쳐두 말은 품종이라도 좋은 '국마'였는데 온달은 그게 아녔쟎냐고? 음... 머 온달도 어쨌든 국가대표급... 아닌가.
■ 이 사람은 내 사위라!
텍스트를 보면 수련과정은 완전히 생략된 채 뜽금없이 파워업된 온달이 나타난다. 처음 데뷔무대는 매년 3월 3일 열리는 사냥대회. 평강왕도 참관한 이 대회에서 온달은 늘 남보다 앞서 말을 달리며 가장 많은 짐승을 잡았다. 왕이 불러 이름을 물었는데, 이름을 들은 왕은 깜짝 놀라면서 이상히 여겼단다【驚且異之】. "어? 이 놈이 그 유명한 온달이야?(驚) 근데 바보라는 놈이 왜 일케 화끈해?(異)" 아마 이랬을거다.
그럼 평강왕은 공주가 온달과 결혼한 걸 몰랐을까? 그럴 리 있나. 국가대표급 바보 온달의 결혼, 아무나 잡고 물어도 척 하고 집을 알려줄 정도 명사(名士)의 결혼을 고구려 사람들이 몰랐을 리 없다. 게다가 신부가 어디 보통 퀸칸가. 고구려 사람들이 다 아는 정보라면 왕도 뻔히 안다. 더구나 지 딸이 온달한테 시집간다고 나갔는데, 아무렴 소식을 몰랐겠는가. 그치만 아직은 모른 채 한다. 사위로 인정하기 싫다는 거다. 왜? 아직은 기껏해야 말 잘 타며 짐승 잘 잡는 사냥꾼 수준이기 때문이다.
얼마 뒤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쳐들어오자 온달은 고구려군의 선봉장이 되어 적 수십명을 베니 이에 군사들의 사기가 치솟아 크게 이겼단다. 공을 따지니 온달이 단연 으뜸이었다. 그제서야 평강왕은 선언한다.
"이 사람은 내 사위라!【是吾女壻也】"
이젠 온달을 사위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보에서 영웅으로 인생역전한 온달, 사냥꾼이 아닌 위풍당당한 장군이자 왕의 사위가 된 거다. 왕은 예를 갖추어 그를 맞이하고 작위를 주어 대형(大兄)을 삼았다. 이왕 밀어주기로 한거 팍팍 쏜거다.
아차산 위에 남아있는 아차산성(왼쪽)과 고구려 석묘(오른쪽)
■ 여보... 나 죽었어... 어케해?
평강왕이 죽고 큰아들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은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북쪽의 땅을 되찾아 오겠다고 말한다(땅이란 참 재밌다. 지가 빼앗았다는 사람은 없고 남한테 빼앗겼다는 사람만 있으니...). 왕의 허락을 얻은 뒤 출정에 앞서 그는 맹세한다.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리곤 아단성(阿旦城 : 지금의 아차산, 즉 쉐라톤워커힐 부근) 전투에서 싸우다 그만 화살에 맞아 죽는다. 그래서 장례를 치루려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걸 어쩌나. 할 수 없이 공주를 부른다. 공주는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었으니, 아아~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死生決矣 於乎歸矣】." 폼나게 번역했지만 뜻인 즉 '죽은 주제에 더 개기지 말고 언능 가자'다. 그러자 마침내 관이 들렸단다【遂擧而폄(하관할 폄)】.
대체 왜 첨에 온달의 관은 움직이지 않았을까. 떠날 때 한 맹세 때문이다. 신라로부터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빼앗긴' 땅을 되찾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에, '몸은 비록 죽었으나 나라 위해 눈을 못감고(심수봉,「무궁화」중에서)' 있었던 거다. 그는 죽어서도 어쩔줄 몰랐다. '여보 … 나 죽었어 … 어케해? 가야 돼 말아야 돼?' 이 번민과 여한의 불꽃을 잠재워 줄 사람은 공주뿐이었다. 그래서 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한마디 하니 움쩍 않던 관이 뽈딱 들린 것이다. 온달은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었다.
나의 작은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은 님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끄는 수가 없습니다(한용운,「님의 손길」중에서)
■ 온달은 '바보'가 아녔다?
이건 재미로 함 해보는 거다. '재미'라니 또 언짢으실 분 계시겠지만, 매사에 심각할 필요는 없쟎나. 우리 모두 좋아하는 온달에게서 '바보'란 굴레를 잠시 벗겨보자.
⑴ '우온달(愚溫達)'의 해석을 바꿔보자
앞서 말했듯이 온달을 바보로 보는 근거는 텍스트에 두 번 나오는 '우온달(愚溫達)' 뿐이다. 따라서 '우(愚)'의 뜻만 살짝 바꿔주면 된다. '우(愚)'에는 '바보' 말고 '우둔하다' '우직하다' '무식하다' 등의 뜻도 있다. 이 중에서 '우직(愚直)'으로 볼 순 없을까? '우직한 온달'로 말이다.
하긴 이거 요새 국어사전에서 찾은 거니 그대로 믿긴 좀 그렇다. 고전에서 이런 용례를 찾아보면,『논어(論語)』「先進」편에 '柴也愚'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의 뜻은〔集解〕를 보면 '何晏曰, 愚, 愚直之愚也'로 풀었다. 즉 여기서 '우'는 '우직'을 뜻한다는 거다. 그러니 텍스트에 나오는 '우'도 여러 가지 해석 중 '우직', 즉 '어리석고 고지식하다' 또는 '어리석을 정도로 고지식하다' 정도로 풀어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글케는 절대 못하쥐... 하시는 분은 이하 안 읽으셔도 된다). 어리석은 거하고 바보라는 거하고는 다르다는 건 굳이 설명 안해도 아시리라 믿는다.
⑵ 바보짓 한 사례는 나오지 않지만 우직한 짓 사례는 여럿이다
이미 말했다. 국가대표급 바보라면서 무슨 바보짓을 했는지 텍스트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 우직한 짓은 나오나? 나온다.
① 거지꼴을 하고 늘 히죽대며 밥을 빌어 노모를 봉양하는 거, 바보일 수도 있지만 우직일 수도 있다. 거지가 곧 바보는 아니쟎은가. 난 이게 온달을 전국적인 명사로 만든 요인으로 본다. 바보라서가 아니라, 비록 거지지만 우직하게 노모를 봉양하는 게 사람들 보기에 기특했던 거다. 물론 거지이자 바보면서 노모를 봉양했다면 더 화제가 됐겠지만, 꼭 바보가 아녔더라도 남의 이목을 끄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거다.
근데 공주가 울 때마다 평강왕이 '나중에 온달한테 시집보낸다'고 놀려댄 건, 고구려 여성들이 기피하는 신랑감 0순위가 온달같은 스타일였음을 보여준다.
'우직한 거지', 이거 영원한 평생 거지다 ('교활한 거지', 이건 약간 희망 있다). 게다가 '우직한 효자', 여자들이 좋아하는 줄 아나. '우직한 효자 거지', 이것만으로도 최악의 조건은 충분히 성립된다. "저 사람 참 훌륭하구나" 감동하는 것과 "저런 사람한테 시집가야지" 생각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② 온달이 공주를 첨 만났을 때 얄짤없이 안면깐 거, 이거 우직이다. 중딩 땐가, 담임 쉐임이 청소당번들 벌 세워놓고서 깜빡 잊고 칼퇴근하셨다. 어리버리한 몇 놈들, 늦게까지 교실 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네. 딴반 쉐임이 그냥 가라 해도, 한 녀석은 우리 쉐임 말씀이 아니라며 개겼다(찐빠 먹고 곧 가긴 했지만). 이거... 우직이다. 바보랑 다르다. 온달은, 산에서 어떤 여자가 꼬시면 그건 여우 아니면 귀신이라고 평소 교육받은 거 아녔겠나. 우직하게 그 말을 따랐을 뿐이다.
③ 공주는 온달에게 말 고르는 요령을 갈쳐주며 심부름을 시킨다. 왜 공주 지가 직접 안갔을까. 온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니까. 이건 우직이지 바보가 아니다. 바보였다면 슈퍼에서 컵라면 사오는 것도 아닌데 혼자 보냈을 리 없다.
④ 앞서 말했다. 아단성 전투에서 죽었을 때 온달의 관이 움직이지 않은 건 지가 했던 맹세 때문였다고. 신라로부터 땅을 빼앗기 전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그 맹세 말이다. 약속을 못지켰으니 시신조차 돌아가는 게 맘에 걸렸던 거다. 이거 정말 우직의 진수다.
⑶ 그래, 이런 거뜰 바보도 다 하는 짓이라 치자. 근데 온달이 보통 바본가. 왕실에서도 인정한 국가대표급 바보 아닌가? 이 정도 양호한 상태의 바보가 국가대표급이라면, 고구려 사람들의 평균 지능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⑷ 노모 입에서 아들이 바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공주를 첨 만났을 때 노모는 일케 말한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비루해서 귀인(貴人)이 가까이 할 바가 아니오.' 담 만났을 때도 똑같이 말한다.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모, 비록 앞은 못보지만 훌륭하신 분이다. 그 아들이 우직한 것도 다 이런 노모의 훈계 때문 아녔겠나. 암튼 그 때 노모가 정말 공주를 물리칠 거였으면 "내 아들 바본데?" 하고 한 큐 날렸을텐데 그런 말이 없다.
물론, 어느 부모인들 남한테 자기 자식이 바보라 하고 싶겠는가.
"얘가 머린 좋은데 노력을..."
"친구 잘못 사귀어서...."
일케 둘러대겠지. 그래도 정말 공주를 쫒아내려 했다면, 그 이유가 자기들의 분수를 지킬 줄 알아서든, 군식구 하나 더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든(보물팔찌를 아직 못봤을 때) "내 아들 바보요" 하지 않았을까. 아들이 좀 어리버리하긴 하지만 적어도 바보는 아니니 이 말을 하지 않은거 아닐까.
⑸ 온달은 바보가 아니고 우직했다고 봐야 갑자기 방방 뜨게 되는 반전(反轉)이 좀더 부드럽게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바보 → 명장' 보다는 '우직이 → 명장'이 좀 설득력 있지 않나 하는 말이다. 이 경우 극적인 효과는 줄겠지만...
충북 단양의 남한강변에는 '온달산성'이라는 이름의
산성이 남아있고 그 아래 '온달 동굴'도 있다.
■ 온달은 정말 행복했을까?
이런 추리가 그럴듯한지 아닌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할 몫이다. 다시 온달을 바보로 돌려놓고 잠시 오버 좀 해보자.
우리 친척 중에 지능이 아주 낮은 형님이 한 분 계신다. 물론 아직도 장가 못가셨다. 뵌 지도 한참 된다. 옛날에 그 형님을 뵈면, 동생인 내게 넙죽 절을 하시며 존대말을 쓰신다. 그리고 언제나 해맑게 웃으신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근데 주위 사람들은 전부 그 형님이 불행하단다. 그 형님을 보고 측은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그 분들은 정말 그 형님보다 행복할까.
그 형님, 정말 불행한가? 아니다. 그 형님보다 배운 거 많고 가진 거 많으면서도 맨날 푸념만 하며 만족할 줄 모르며 사는 내가, 무슨 근거로 그 형님보다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 형님은 정말로 행복한 거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람의 지능지수와 행복지수는 반비례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중견 연극배우 김아무개씨가 어느 잡지에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젊었을 때 산동네에서 어떤 남자랑 동거했단다. 추운 겨울밤 수도가에 나와 설거지를 했단다. 시린 손을 호호 녹여가며 찬물로 말이다. 그러다 문득 밤하늘을 쳐다봤단다.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더란다. 그 순간, 너무나 행복해서 울고 말았단다. 행복이란 그런거다. 지들이 행복하다는데 왜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가.
난 온달은 정말 행복했다고 믿는다(공주도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공주의 말이라면 꼼짝 못했고, 공주 없이는 스스로 판단하거나 행동할 줄 몰랐다 해도, 공주를 정말 사랑해서 복종한 것이라면 그건 행복이다. 바보였든 우직했든 관계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