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못할 서북능선 종주
단풍이 절정인 백담과 설악산의 서북능선 그리고 12선녀탕까지의 산행계획을 잡으며 체력적, 시간적인 부담으로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혼자서 하기에는 더더욱 어렵기에 이번 기회에 몇차례 함께하였던 동호회원들과 서북능선 종주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번산행에는 당초 8명정도가 참가하기로 했었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생겨 3명이 참가하게 되었다.
서북능선은 설악산의 능선중에 가장길다고 하는 능선이다. 틈틈이 정보를 수집하고 숙박을 위한 산장과 민박집을 한달전부터 예약하고 드디어 출발한다.
□ 때 : 2002. 10. 12(토) ~ 10. 14(월)
□ 곳 : 설악산(백담사~대청봉~중청 1박~서북능선~12 선녀탕계곡)
□ 인원 : 3명(40대)
□ 주요일정 (1일차) : 10. 12 (토) - 조치원출발 : 16:00 - 용대리 도착 : 20:00(민박) (2일차) : 10:13(일) 20㎞, 10시간산행(휴식, 식사시간 포함) - 백담사매표소(07:00)~중청(16:00)~대청봉(16:30)~중청산장(17:00) 숙박 (3일차) : 10:14 (월) 20.8㎞., 14시간산행 - 중청산장(03:50)~귀청(08:20)~대승령(12:20)~남교리매표소(18:00)~조치원도착(23:50)
□ 산행기
서북능선은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마등령, 미시령을 이루고 서쪽으로 한계령을 거쳐 남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이루는 서부일대의 내설악에 위치한 가장 긴 능선이다. 대청봉에서 중청, 끝청, 귀떼기청봉을 거쳐 대승령, 안산에 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주변에 안산, 장수대, 한계령, 가리봉, 12선녀탕계곡, 백담계곡이 연결되고 용아장성릉과 공룡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귀때기청봉에서 보면 한계령 이남의 장쾌한 능선과 북으로는 멀리 통일전망대와 금강산이 보이는 인상적인 코스이다. 첫날은 용대리에 도착하여 민박을 하고 다음날 일찍 아침밥을 먹고 백담사 매표소로 갔다. 백담사매표소로부터 4㎞지점까지는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07:00버스를 타고(요금 800원) 10분 정도가 지나 하차를 한 후 백담사까지 3㎞의 거리를 50여분 걸어 도착했다.
○백담사~백담산장~영시암~수렴동대피소 : 1시간 30분소요
백담사는 한때 전직 대통령이 기거하여 세간에 많이 알려진 천고의 고찰로 내설악의 첫관문이다. 08:00에 백담사에 도착하여 경내 휴게소에서 전통차 한잔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하여 계곡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09:00에 영시암에 도착하였다. 다시 영시암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는 30분이 더 소요된다.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지나면 수렴동 입구가 나오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계곡이 둘로 갈라진다. 그 갈라진 곳에 수렴동대피소가 있다. 영시암에서 쌍폭까지의 계곡이 수렴동계곡이고 수렴동대피소에서 둘로 갈라져 왼쪽으로 흐르는 계곡이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사이의 가야동계곡이다. 쌍폭에서 봉정암가지전까지 흐르는 구곡담계곡과 가야동계곡을 흘러 백담사까지 주변의 암벽과 단풍, 조약돌, 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흐르는 백담계곡은 정말 장관이다.
○수렴동대피소~봉정암 : 3시간 10분소요
수렴동대피소에서 봉정암까지는 구곡담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내리다가 급경사의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봉정암은 용아장성 아래의 암봉사이에 위치한 절로 해발 1,327m이다. 국내 암자중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암자라 한다. 봉정암에 오르는 가파른 코스를 올라서 능선정상에 서면 등산로 우측으로 사자바위라는 안내판이 있다. 등산로에서 10여미터 떨어진 사자바위에 올라서면 봉정암위쪽으로 떨어질 듯 아스라이 걸쳐있는 암봉과 용아장성능 주변의 암봉이 단풍과 어우러진 장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백담사를 출발한지 4시간 40분이 지난 12:40분에 봉정암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봉정암은 등산객들이 쉬어 가기에 좋은 곳으로 많은 불자등산객들이 숙박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식수를 구할 수 있지만 수량이 많지않아 물을 먹거나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어서 물통에 물을 받기가 미안할 정도이다.
○봉정암~소청~중청산장~대청봉 : 1시간 30분소요
오늘의 일정은 중청산장까지이다. 12:40분에 봉정암에 도착하여 식수를 보충하고, 간단한 행동식으로 요기를 하며 쉬었다. 중청산장까지는 1시간거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간의 여유가 있다. 봉정암을 지나 가파른 길을 25분정도 올라가니 소청산장이다. 소청산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능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뚝우뚝 솟은 암봉들 사이로 운해가 펼쳐지고 연신 새로운 광경을 연출한다. 소청산장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하고 느긋하게 15:40분에 출발하여 16:00경에 중청산장에 도착하였다. 일찌감치 산장의 잠자리를 배정받아 짐을 풀고 대청봉에 올라갔다. 저녁시간이라서 인지 사람이 없다. 대청봉 정상에서 이렇게 한가하게 사진을 찍어본 기억이 없다. 대청을 내려와 느긋하게 저녁을 해결하였다. 산장에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붐비지는 않았다. 잠자리를 제일먼저 배정을 받아 좋은 자리를 받았지만 예민한 성격인지라 많은 사람들의 소리와 냄새로 쉽게 잠을 청할 수 가 없었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조금 눈을 붙이고 그나마 자주 깨는 바람에 피곤함이 쉽게 가시지는 않았다.
○중청산장~끝청~한계령갈림길 : 3시간소요
중청산장에서 03:40분에 짐을 꾸려 출발했다. 오늘은 이번산행의 주목적인 서북능선을 종주하는 날로 코스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다음날 귀가시간을 당기기 위해서 예정보다 2시간정도를 일찍 출발한 것이다. 지도상에 중청에서 한계령갈림길까지의 거리는 2시간 20분거리로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중청에서 끝청까지 20분, 끝청에서 한계령갈림길까지는 2시간 40분이 소요되어 총 3시간이 소요되었다. 아마도 야간산행이라서 늦어진 듯 싶다. 끝청을 지나 갈림길에 거의 도착할 무렵인 6시경이 되면서부터 동쪽으로 붉은빛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고 완전히 해가 솟아오른 06:50분에서야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지도상으로는 샘터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찾을 수 가 없었다. 더구나 한계령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샘터를 보지 못했다 한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한계령갈림길에서 한계령방향으로 200여미터 내려가면 오른쪽 사면에서 흘러내리는 가느다란 냇물줄기가 있다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게 찾을 수 없어 대승령까지는 미리 충분한 식수를 준비하여야 한다.
○한계령갈림길~귀때기청봉~대승령 : 4시간 30분소요
한계령갈림길에서부터 귀때기청봉을 지나 대승령까지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서북능선의 주능선이라한다. 한계령갈림길을 조금 벗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07:30분에 귀때기청봉을 향해 출발했다. 귀때기청봉까지는 바위덩어리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너덜지대를 올라가 50여분이 소요된다. 야간이나 안개가 짙은 날에는 등산로가 뚜렷하지 않아 주의하여야 하며 바위에 나있는 희미한 발자국과 스틱의 흔적 그리고 등산로를 안내하는 로프와 가끔씩 메어있는 리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귀때기청봉은 해발 1577.6m로 주변이 바위와 어른 무릎정도높이로 낮은키의 관목류가 뒤덮고 있으며 내설악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주위를 둘러보는 경관이 매우 좋다. 마침날씨가 좋아서 멀리 통일전망대와 금강산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도 20여분거리에 샘이 있다고 하지만 등산로 아님의 표지판이 걸려있고 체력적으로 지친 초보자가 샘터를 찾기는 어렵다. 귀때기청봉에서 대승령까지는 지도상의 2시간 40분거리이다. 하지만 귀때기청봉을 지난지 3시간 40분이 지나서 대승령에 도착하였다. 대승령까지의 구간중에는 길이 10여미터의 로프가 메어진 구간을 2~3번 통과하여야 하며 크고 작은 암봉을 여러차례 넘고, 체력적인 부담을 주는 너덜지대를 한동안 지나야 한다. 중간에 나오는 안내판의 대승령까지 2.9㎞와 1.1㎞라는 거리가 쉽게 줄어들지 않는 코스이다. 이후에 알아보니 등산지도에 표시된 소요시간보다 실제로 대부분이 1시간이상씩 더 걸린다 한다. 이곳 구간에 대한 산행계획을 잡는 사람들은 프로가 아닌이상 지도상보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 더걸릴 것을 감안하여 계획을 짜야 할 것 같다. 또한 중간에 물을 구할 곳을 찾기 어려우므로 식수를 충분히 확보하여야 한다. 우리는 중청에서 03:40분에 출발하여 총 8시간 40분만인 12:20분에 대승령에 도착한 것이다. 대승령에서는 장수대로 가는길과 12선녀탕의 남교리로 가는길이 갈라지고, 백담사로 이어지는 흑선동계곡이 이어지지만 이길은 폐쇄가 된 상태이다. 이곳에서 장수대까지는 2.7㎞, 남교리까지는 8.6㎞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우리는 물이 떨어진 상태에서 한시간이상의 산행을 한 상태라 물생각만이 간절하였고 체력이 고갈되어 배가 고픈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지도를 보니 이제 이곳에서는 한시간여만 가면 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다시 힘을 충전하고 출발해야지!
○대승령~안산갈림길~12선녀탕~남교리 : 5시간소요
대승령에서 안산방향으로 30분을 올라가면 12선녀탕으로 갈라지는 안산갈림길이 나온다. 서북릉은 해발 1430.4m의 안산을 시작으로 중청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공룡능선상의 신선대에서 바라볼 때 가장멀리 보이는 설악의 끝에 서있는 봉우리가 바로 안산인 것이다. 안산 갈림길에서 너덜지대를 30여분 내려가면 처음으로 물을 만날 수 있다. 12선녀탕계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으로 물을 마시고 체력을 보충한다. 이곳에서부터 남교리까지는 4시간정도가 소요되고 바위 너덜지대가 계속이어진다. 십이선녀탕계곡은 응봉폭포, 두문폭포등 몇 개의 폭포와 복숭아탕을 비롯한 여러개의 소가 단풍과 어우러져 절경을 뽐내고 있지만 백담계곡에 비하면 등산객이 거의 없는 편이다. 지난 태풍과 호우피해로 서너군대 이상의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가 유실되어 응급복구된 상태이며 냇물가운데의 징검다리로 지나가는 곳도 몇군데 있어 비가 많이 온 경우는 조심해야 할 곳이기도 하다. 대승령을 출발한지 정확히 5시간이 지나 남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청에서부터 남교리까지 총 20여㎞를 14시간에 걸쳐서 완주를 한 것이다. 출발하기전 인터넷에서 본 산행기에서 누군가 미친짓! 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정말 미친짓 같았다. 다시는 같은 코스로 산행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내설악의 진면목과 설악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산행이었던 것에 만족한다. 어젯밤 중청의 하늘에 떠있던 무수한 별들과 속초시의 야경, 어두운 밤하늘에 우뚝솟아 있는 대청봉의 위상, 영상 8도의 찬공기속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순간들이 다시 그리워지는 것은 병일까? 어쩔 수 없이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올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나이 40의 비슷한 청년 셋이서 미련한, 미친듯한 일을 해냈다는 야릇한 쾌감도 든다.
난 산행을 마치고 또다시 배낭을 꾸린다. 또다른 산행을 준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