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중초등학교
5학년1반 변영현~♡
오늘 역사탐방팀에서 "수원화성"이라는 뜻 깊은 곳에 갔다.
화성은 우리라에 마지막성이여서인지 내가본 성중에 가장 거창했다. 화성에는 대표적인 4대문이 있다. 동쪽에는 창룡문, 서쪽에는 화서문 남쪽에는 팔달문, 북쪽에는 장안문이있는데 창룡문은 동대문의 형식과 비슷하고, 화서문은 보물403호로 등록되어있다. 팔달문은 보물402호로 등록되어있고, 오성지라는 총과 화살을 쏠수있는 구멍이여러게 있다. 마지막으로 장안문은 화성의 중심지라 할 수 있으며 숭례문보다 크게 쌓았다고 한다. 나는 이 문 이름으로 상품을 탔다. 다른 사람(아이)들은 감히 엄두도 못낼 문제였다...그래서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리가 이곳을 걸으면서 구경을하고 "남궁일주"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을 하는데 하늘이 우리의 관람을 시샘이라고 하는지 거센 소나기를 내렸다. 자기는 하늘에서 보면되면서 왜 시샘을 하는지? 참 알수없다. 화성은 정조대왕(조선의 22대 왕)이 수원을 신도시로 만들자고 주장해 그지역 인근 주민들을 다른곳으로 돈을주고 이주 시켰다고 한다. 그리하여 "다산정약용"(1762~1836년동안 사셨고 목민심서를 쓰심)이 중국에서 들여온 과학 문물로 만든 거중기와 벽돌과 자연석으로 만들어지던 화성은 10년만에 완성될것으로 예측 되었지만 2년 반이라는 시간안에 완성시켰다. 정말 나는 조상과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할 뿐이다. 내가 이머리에 반만 이라도 닮았다면 전교1등은 따논 당삼일 것이다... 하지만 놀랄것은 따로 있었다.화성이 유네스코라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있다는 이유였다. 화성에 설계도가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보전이 되어있던 것일까?이것도 하나의 선조들의 지혜가 아닐까? 그다음 우리가 찾은 곳은 울창한 원시림 속에 위치한 용주사이다. 이곳은 신라 문성완 16년에 창건된 갈양사가 병란으로 소실된 후 조선조정조가 다시 세우게 한 절이다. 정조는 생부장헌세자의 명복을 빌기위하여 이 절을 지었으며,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고 절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고 지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공양이라고 불리우는 점심을 먹고, 이곳 주지스님에게 孝란 무엇인지 깨달았다.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孝란 별것 아니다. 그저 부모님을 편하게 하는것이고 불효를 저지르지 않는것이 가장 쉬운효도에 한가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가슴깊은 곳에 담아두었다. 이 절에는 국보 제 120호인 범종이 있다. 이곳에 동전을 던져서 구멍이 난곳에 들어가고 난후 소원을 빌면 진짜인진 모르겠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그것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그리고 정조대왕이 직접 심으셨다는 200년 된 회양목이 있는데 지금 그것이 죽어가고있어서 스님들이 살리느라고 애를 먹고 계신다.꼭 살아나서 몇천년 까지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가 많이 왜곡되고 있다.나는 커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 잡을것이다.
첫댓글 좀 길게 썻내요...
참 이것도 밑줄에 넣어주세요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신 주민자치위원회 어른들께 감사드림니다♡<ㅡ꼭 달아 주세요
잘 썼어요. 느낀점도 많다고하니 역사탐방 추진이 잘한일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런데 내용중 잘못 기재된곳이 있으니 수정하세요. 오성지는 물을 쏟는 구멍이고 장안문이 숭례문보다 크지는 않아요. 화성건설기록물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200년전에 그렇게 자세한 기록물을 썼다는것에 세계가 놀랬지요.
공포의 우는 표정 짧은데... 아주 잘 썼어요
한마루님 또 오셨네!(눈치코치하면 이 hoyeon님!)
변영현 학생 글을 읽어면서 어른들 못지않은 깊은 생각에 많이 놀랐습니다. / 수원화성도 그렇고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지금도 세계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 그러나 욕심쟁이 이웃나라에서 우리역사를 왜곡시키는데 변영현 같은 학생이 있으니 우리나라가 든든하네요
후인정님 감사합니다... 칭찬해 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