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사보에 있던 기사인데, 88년인가 87년인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고 아 무튼 칼럼기사입니다.
"황소의 뿔을 꺽고 일격에 황소를 쓰러뜨리는 격투기의 백호, 최영의"
사람이 맨손으로 황소뿔을 꺾을 수 있을까? 또 사람이 맨손으로 일격에 황소 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있다. 실제로 맨손 만으로 황소의 뿔을 꺽고 한 대에 황소를 쓰러 뜨린 사람이 있다.
제일동포이며 현재 국제공수도연맹 총재이자 극진회관 관장인 최영의(일본이 름 大山倍達:오오야마 마쓰다쓰)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처음으로 열린 일본공수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최영의는 상대방 몸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종래의 경기규칙에 의문을 품게된다.
"격투기에서는 1/100초 사이에도 상황은 변할 수 있다. 또 설사 상대방의 공 격을 먼저 받았다해도 보다 위력강한 공격으로 반격했을 경우 승패는 뒤집어질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상대방 몸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경기규칙으로 어떻게 강자를 가려낼 수 있단 말인가?"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려고 기요즈미 산에 들어가 맨손으로 차돌을 깨뜨리 는데 이른 최영의는 1950년 다테야마의 도살장의 협조를 얻어 황소의 뿔을 꺾고 일격에 쓰러뜨린다. 그러나 처음부터 황소뿔을 꺾는데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手刀를 휘둘러 도 황소뿔은 꺽이지 않았다.
"참, 최영의 씨. 당신은 앞으로부터 황소뿔을 치고 있는데 뒤로부터 쳐보시 오. 소뿔은 앞으로부터 덤비는 적을 무찌르도록 되어있으니 앞으로부터의 충격 에는 강하지만 뒤로부터의 충격에는 약할지도 모르겠소"
도살장 사무소장의 도움말이었다. 좌절감에 사로잡혀있던 최영의는 다시 용기 를 얻어 6살짜리의 큰 황소에 다가가서 이번에는 수도를 날려 뒤로부터 비스듬 히 뿔을 쳤다. '와아!' 구경하고 있던 도살장의 관계자들이 함성을 질렀다. 뿔 은 날라갔다.
처음에는 정권으로 쳐서 황소를 쓰러뜨리는 것도 실패였다. 어떻게 하면 정권 만으로 황소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최영의에게 도움 말을 준 것은 도살장에 오래 근무했던 노인이었다.
"어때요. 황소의 급소를 쳐보면...?" "급소가 어딥니까? 미간이 아닙니까?" "아니오. 사람하고는 달라서 귀밑입니다" "귀밑이라..."
최영의의 정권을 귀밑에 맞은 황소는 공중에 뜨듯 쓰러졌다. 물론 언제나 성 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47마리의 황소와 대결, 4마리를 즉사시킨 최영의는 1952년부터 세계를 돌며 중국의 쿵후, 프랑스의 사바테, 브라질의 카포에라, 발 리송 권법, 미국의 프로레슬러 등과 차례로 실전을 벌여 무패를 자랑, 온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 요르단의 후세인 왕, 모나코의 핫산 왕 등 여러사람 의 국가원수들이 그에게 호신술을 배웠으며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이 름을 떨친 숀 코넬리, 한스 돌프 랑그렌도 최영의의 제자이다.
한국계 공수도인 극진공수에서는 다른 유파보다도 한국계 선수들의 활약이 두 드러진다. 1971년 제3회 전일본선수권대회 준우승자인 조태언(曺泰彦, 일본이름 大山 彦), 1973년 제5회 전일본선수권대회 우승자이자 1975년 제1회 세계선수권 대회 준우승자인 노초웅(盧初雄, 일본이름 盧山初雄)도 한국계 선수들이다. 또 요즘 [극진가라데의 별]로 눈부시케 떠오르고 있는 제일동포 문장규(文章 圭, 일본이름 松井章圭)는 1985년, 86년의 제17회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2연패 를 이룩한 뒤,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했다.
극진공수는 손으로 상대방의 안면공격 또 낭심공격 등 몇가지 만을 금지하고 자유롭게 공격을 허용하고 있어 선수들의 건강보호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최영의 관장은 "거의 모든 무도가 지나치게 스포츠화 되어 가고 있는 지금, 극진공수처럼 격투기의 원점 가까이 머물러 있는 무도가 하나 쯤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다.
끝. 고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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