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쪽에
아이의 인격 형성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오직 아이들의 성적과 등위에만 관심을 갖는
부모라면 당장이라도 아이를 학교로부터 끄집어내어 지식 습득 전문공장에 보낼 일이다.
33쪽에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가위질을 하면서
아이들은 손의 기능을 익힌다. 천을 자르면서 공간 개념과 창의력을 익힐 수도 있다.
....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 하나를 완성해 봄으로써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42쪽에
유태인들은 사람을 판단할 때 용감하던가, 봉사정신이 투철하던가 하는 인간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목표도 인간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을 어린아이는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43 -44
... 유태인들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데 그림그리기를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신화적 상상력과 사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훈련을
함으로써 창의력을 길러주는 한편 구체화되지 않은 사상이나 생각을 더 심화시키고
구체화 시키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사랑에서 영감을 얻고 상상으로 그린다.”
이는 저 유명한 초현실파의 거장 샤갈의 말이다. 물론 이 말은 “너의 그림은 다른 사람
그림과 달라서 훌륭하다.” 라고 어려서부터 샤갈의 기를 키워준 유태인 어머니의 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샤갈은 그런 어머니 밑에서 유태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훌륭한
화가가 되었던 것이다.
44 - 45 쪽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 다만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운동을 잘 한다거나 하는 재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재능을 잘 찾아 가르치면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신경 쓰지 않는다.
47 쪽에
사람은 약해지는 순간 모든 열등감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그리하여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고 사후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하는 심한 구박은 일생 동안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어는 부분에 열등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점을 한시라도 키워줘야 한다.
48쪽에
“공부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선생님이 되고, 그 다음 사람은 장사를 하고, 그 다음 사람은
정치를 한다.”는 유태인 속담에 ...
50 - 52 쪽에
... 온 가족이 집에 있는 토요일 오후나 공휴일에 김치를 담근다고 하자.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가면서부터 교육은 비롯된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따라서는 아이는 이미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는 새로운 세계에 접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그리고 많은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심각한 철학자니까.
“이건 뭐야? ... 이건?” ....
... 이렇게 뜬금없이 “왜” 하고 물을 때에는 조심해야한다.
그래도 충실하게 답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
“ ..그건 네가 이다음에 학교에 들어가면 알 수 있을 거야” 라고 대답해도 안된다. ...
56쪽에
이스라엘의 초등학교의 수업 방식은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그들의 수업하는 풍경을 보면
도대체 무슨 과목을 배우는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58쪽에
아이가 엉뚱한 질문을 한다거나 엉뚱한 대답을 할 때, 아이를 구박하거나 꾸짖어서
아이의 상상력을 단절시켜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런 아이의 풍부한 상상력을 칭찬해
주어야 하는 것 이다.
60쪽에
우리의 아이들이 폭력물로 인해 심하게 손상되어 갈 때,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그들 민족의
역사를 배움으로써 강한 민족애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63쪽에
... 인성교육은 간 곳 없는 지식 주입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
합격만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합격자 보다는 떨어지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교육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 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꼴찌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교육이 될 때 비로소 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5쪽에
그들의 어머니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습과 설화 속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리고 시가 속에 스며들어 있는 애환들을. 이렇게 그들만의 역사와
전통을 그들은 끊임없이 구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면서도
그 지역 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그들만의 유태민족 문화를 창출하여 전승해온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
95쪽에
... 이스라엘 수영장에 ...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울 정도의 아이를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무자비할 정도로 마구 물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계속하여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몇 번
허우적거리던 아이는 언제 그랬느냐 싶게 물에 적응하고 있었다.
겁을 먹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101 - 104쪽에
우리 부모들이 자식에게 ...
“남 주려고 공부하니?”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 아니니?”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자신이 이룩하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해 자식이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대리 욕구가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 쉽게 생각해서는
안될 커다란 착오가 그 속에 숨어 있다.
‘잘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부모의 입장이라면 ... 아이의 생각도 이러한가...
...이발소에 갔다 ... 한 사람 한 사람 머리를 깍을 때마다 서랍속에 돈을 챙겨넣고 있는
주인 아저씨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군것질 하기가 하늘의 벼따기보다 어려운
시절 ... 이다음에 크면 이발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으로 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 꿈은 어머니에게 자랑스럽게 밝힌 어느 한순간에 끝이 나고 말았다.
“아니, 뭐가 할 짓이 없어서 그 짓을 해. 앞으로 한 번만 더 입밖에 그런 소리내기만 해봐 ...
아이들은 타고난 재능과 소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
126 - 127 쪽에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만 세 살이 되면 누구나 탁아소에 입소한다. 만 세 살이 되면
대다수의 아이들의 지능지수가 굳어진다는 통계를 볼 때, 이러한 탁아소 교육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특별한 교육은 찾아볼 수 없다.
... 그들은 결코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문자나 수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리기와 만들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아이들은 그러한 부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기를 통해 많은 상상력을 키우기도 하고, 그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만들기를 통해서는 손의 기능과 공간구조를 잠재적으로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교육 방법이다. 그들은 결코 암기식이나 주입식
교육은 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아이들에게 단답형이나 직접 대답이 나오는 것을
피한다. 예를 들면 ... “양 열일곱 마리를 ... ”
145 - 146 쪽에
“네가 뭐가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거냐. 가만히 공부만 열심히 해라. 엄마, 아빠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피땀 흘려가며 돈을 버는데 ...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도 마라. 너, 괜히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러는 거지?”
이러한 부모의 품에서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정신적 불구가 되기
쉽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들은 언제나 독립을 꿈꾼다.
“엄마, 절 제발 내버려 두세요. 진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간섭받지 않고 사는 거예요.”
“그럼 내보내 줄 테니까 혼자 한번 살아보렴!”
“ ... 대신에 돈을 주세요.”
십중팔구 독립을 꿈꾸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끝맺음은 돈을 달라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반쯤 불구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 모두가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146 -147쪽에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아이가 커서도 마찬가지다. ‘자식은 늙어도 자식’ 이라는
생각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소명을 갖고 자신만의
길을 가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아이가 정신적, 경제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할 때에도
‘그래, 품에 있을 때나 자식이라더니’ 하는
푸념 없이 아이를 축복 속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험악한 세상이라도 다 큰 딸에게 늦게 들어온다고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이에게 더 깊은 믿음과 사랑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이들도 두려움 없이 사회 속으로 떳떳하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 지금부터라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 홀로 뛰어들어 성취하는 기쁨이 어떤 것인가를.
그리고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청소년 들은 지금도 포기할 줄 모르고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을.
165 쪽에
... 1986년 까지의 노벨상 수상자 기록을 보면, 300명의 수상자 가운데 유태인이 93명이나
올라있으니 ...세계 인구의 0.2 - 0.3%에 불과한 그들이 모든 분양에서 가장 권위가
인정되는 노벨상의 31%, 세계 지도자의 2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 마디로 그들에게서는 천재교육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앞서 구구단을
가르치지 않는 그들의 산수 교육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우리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175 - 176 쪽에
저명하게 사회 활동을 하다 지긋한 나이에 회고록을 펴낸 사람의 책에는 항상 어떤 스승을
잊을 수 없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스승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정 반대의 입장에서 그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어찌 됐든 어렸을 때,
선생님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짐작케 하는 말이다.
선생님의 작은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무한한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하도, 돌이킬 수 없는
패배감에 빠져들게도 하는 것이다.
... 아이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이 있다. 또한 위대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180쪽에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체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며, 문명국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나라들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까지 엄격하게 체벌을 금하고 있다.
... 방법론이 더 문제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명령과 복종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아이를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으로 체벌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대화와 자율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결코 체벌은 필요치 않다. 우리의 국민들
대다수가 체벌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명령과 강요로 길들여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증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82 쪽에
“너, 빨리 가서 손 씻고 와.”
“왜, 엄마?”
왜는 무슨 왜야, 엄마가 씻으라면 씻는 거지. 빨리 씻고 와!“
이런 방법으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강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행동과 언어를 모방하면
서 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 세심하다. ....
“너, 손 씻고 밥 먹어야지?”
“왜, 엄마?”
“너, 밖에서 흙도 만지고 그랬지?”
“예.”
“그 흙 속에는 작은 벌레들이 많아요. ...
......
“알았어요, 엄마.“
...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에 익숙해진다. .....
...
211쪽에
대부분의 지능은 세 살 때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학계의 총설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는 중학생 나이에, 심지어는 20대가 훨씬 넘은 나이에 머리가 트는
경우도 있다. 절대로 조급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31 쪽에
... 풋내기 권투 선수는 궤멸을 앞에 두고 도전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무적의 힘을
가진 자는 모든 작은 일에 양보한다. 많은 것을 다 주어도 최후에 남는, 그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32 쪽에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의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가. 오늘의 내 임무는 무엇인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나 자신을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우리가 매순간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을 때 나와 우리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233 쪽에
“인물이 없다, 인물이 없다 한탄하지 말고 인물을 키우려고 노력하거나 인물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역설이 ...
237 쪽에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가부장 제도를 가지고 있다. ...
이스라엘 국적 취득 조건을 보면 첫째, 부모가 모두 유태인일 경우에는 그들이 아무리 외국
국적을 취득하여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했더라도 그들은 이스라엘에 이주하는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둘째, 어머니가 유태인이고 아버자가
외국인일 경우에도 동일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셋째, 아버지가 유태인이고 어머니가
비 유태인일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비로소 유태인의
자격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241 쪽에
그들의 어머니와 우리의 어머니는 참으로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두 나라 어머니 모두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교육의 목표에 있다. 그들의 교육 목표는 인간됨을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공부 못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해 주지만 거짓말 하거나 비겁한 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의 교육 목표도 물론 전인교육에 있다. 그러나 다만 실제상황의 목표는 이와 거리가 멀다.
262 쪽에
사람은 누구나 다 가치관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을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예술에 심취되어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희생과 봉사의 생활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하나의 잣대로만 기준하여 “누구는 행복하게 잘 사네”
“누구는 불행하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69 쪽에
형제의 개성을 비교하면 모두 살릴 수 있지만,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모두 죽인다.
269 - 270 쪽에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러한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결코 남과 비교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유태인 어머니들은 항상 “남보다 뛰어나려
하지 말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아이들에게 주문한다. 사실 남과 다른 분야를 잘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282 -283 쪽에
“만약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육체관계를 가져도 괜찮아. 하지만 매독이나 임질 같은
성병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넌 그런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잘못 걸리면 코가
썩어 문드러지기도 하는 병이지.”
“그래, 네가 임신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 네 자유니까. 하지만 임신을 하면 반드시 애를
나야 한다. 그리고 너는 그 아이를 업고학교에 가야 한단다.”
딸아이가 임신을 하면 쉬쉬하며 산부인과로 먼저 달려가는 우리네 부모들이 마땅히
귀기울여야 할 대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289 쪽에
아이의 양부모는 아이에게 한글과 한국말을 가르치고 싶다며 한국 유학생을 소개시켜
달라고까지 하였다. 아이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쳐 한국의 얼을 넣어주어
아이가 성인이 된 뒤,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면 한국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대학은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겠다고 했다.
294 쪽에
형식적인 면만 바라보면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매우 불행하게 보인다. 퇴근 후에는 모든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가정엔
아버지의 권위가 존재한다. 그 권위는 매우 엄격해서 아버지가 출장으로 몇 달간 자리를
비워도, 심지어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그 자리는 아버지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자리는 아이들이 장난을 칠 때에도 결코 앉을 수 없다.
298 - 299 쪽에
이스라엘의 여성들은 군 복무를 해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여성들에 비해 매우 거칠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한 여성들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만큼은 결코 남편에게 명령하거나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들은 부부싸움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없을 때를 택해 싸움을 하거나 밖으로 나가 싸움을 한다.
어떤 경우는 아이들이 잠자는 틈을 이용해 살그머니 공원으로 나가 싸움을 할라치면 도저히
싸울 기분이 들지 않아 싸우려 나갔다가도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300 쪽에
이스라엘 남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권위가 주어진다. 그것은 바로 가족회의에서의 최종
결정권이다. 이러한 자리는 아버지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한 권위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도 아버지의 권위를 생각한다.
302 쪽에
우리의 아이에게도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가 즐겁게 노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아내들은 또
반문할 것이다.
“스스로 권위를 포기한 게 누군데, 아내만 책임을 져야해?”
하지만 작은 일부터 아버지의 권위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작은 일로부터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줄 때, 더 이상 방황하는 남편은 없을 것이다.
남편은 더 이상 돈만 벌어다주는 일벌레, 돈벌레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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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02쪽 책 값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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