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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자료실 스크랩 활쏘기의 즐거움
윤종경 추천 0 조회 168 06.02.18 19:5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활쏘기의 즐거움

 


    

                                                                                                            


   "탁-", 연 삼중이다. 화살 다섯 대 중 세 대가 연이어 과녁을 맞힌 것이다. 이제 남은 두 대만 더 맞히면, 연이어 다섯 대를 다 맞히는 몰기沒技다. 왼손으로 활을 단단히 잡아 뻗치고 오른손으로는 끝까지 시위를 당겨 과녁을 겨냥한 살을 살짝 놓는다. 네 번째 화살 마저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탁-"하며 경쾌한 소리를 낸다. 연 사중이다. 이제 마지막 한 대만 더 맞히면 몰기다. 다시 심호흡을 하고 힘껏 시위를 당겨 화살을 놓는다. 아뿔싸! 시위를 떠난 화살은 어느 순간 휙- 과녁을 뒤로 넘어 저만치 언덕에 꽂히고 말았다. 꼭 몰기를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당긴 시위가 너무 세었던지 화살이 과녁을 넘고 만 것이다. 욕심이 앞서 몰기를 놓치고 말았다. 활쏘기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평상심平常心을 잃은 탓이다. 


  우리 활쏘기인 궁도弓道에서는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놓기까지의 자세나 가늠, 지형, 바람 등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가짐을 중히 여긴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는다든지 허튼 생각을 하거나 욕심을 부리면, 화살은 어김없이 짧거나 길며 앞 나거나 뒤가 나 과녁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세상에 배움의 끝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어느 하난들 있으랴만, 활쏘기만큼은 평생을 배워도 그 배움을 다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어떤 선인은 활의 이치만 깨달으면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궁리弓理,  아무리 궁리窮理를 해도 그 문리가 쉬 트이지 않는 것이 활 인 것 같다. 해서 활쏘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 경력이 10년이 되었건 2,30년이 되었건 사대射臺에 서서 첫 화살을 내기 전에는 꼭 "활 배웁니다"라는 말을 하여 늘 겸손하게 배우는 태도를 나타낸다. 아울러 우리 활쏘기에서는 왜 기나 술을 붙이지 않고 굳이 도를 붙여 궁도弓道라 부르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처음 활을 잡은 것은 10 여 년 전이다. 당시 나는 동료 교사들과 테니스를 즐기고 있었지만 계속 불어나는 체중을 감당 할 수 없었다. 165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작은 키에 체중은 85킬로그램을 넘겼으니 신체에 이상이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코트를 뛰면서 흘린 땀의 양보다 더 많이 마셔야 하는 청량음료는 체중을 줄이기는커녕 허리둘레만 더해갔으며, 순간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날아오는 공을 받기 위해 체중 실은 다리로 빨리 뛰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먼저 다리관절에 무리가 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니 다른 방식의 운동거리를 찾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있을 때 권영학 선생을 만난 것이 활을 잡게된 계기가 되었다. 권영학 선생은 이곳 예천에서 선친 권태진 옹의 대를 이어 활을 만들고 있으며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6호(궁장)로 지정 받은 바 있는 명장名匠일 뿐 아니라, 활을 쏘는 궁사로서도 기량이 아주 높아 최고 단수인 명궁名弓명무名武 칭호를 모두 가진 분이다. 


  처음엔 가만히 서서 하는 활쏘기가 무슨 운동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활을 잡은 지 대여섯 달만에 체중을 5킬로그램 정도 줄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과체중 상태의 병리검사에서 나타났던 여러 가지 나쁜 수치들도 체중이 줄어듦에 따라 차츰 개선되어 갔으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정적인 운동인 듯 하지만 시위를 당겼다 놓는 동작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단위시간 당 운동량으로 따진다면 결코 테니스에 뒤지지 않는 것이 활쏘기라 생각할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다른 스포츠에서 기대 할 수 없는 운동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다리를 힘차게 버티고 서서 가슴을 비우고 배에 힘을 실어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놓는 순간까지 호흡을 멈추었다 다시 내쉬게 되니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이 이루어져 심폐기능과 장 기능 등 여러 신체기능이 향상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 같다. 

   
 

 

  원시시대 때부터 사람들은 활을 이용하여 짐승을 잡은 것은 말 할 바 없고, 다른 부족들과의 싸움에서도 활을 주요 무기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옛 고구려 사람들은 무예를 숭상하고 활쏘기를 즐겼으며 활을 가지고 짐승을 잡는 그림을 무덤벽화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신라의 화랑들도 말타기와 더불어 활쏘기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볼 때 활의 역사는 우리나라 역사는 말할 바 없고 인류역사의 시작과 함께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엄밀한 말의 갈래로 따지면 양궁과 국궁이 모두 궁도에 속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전래의 국궁을 그냥 궁도라 부르고, 양궁은 따로 양궁이라 부른다. 오늘날 우리들이 일종의 스포츠로 즐기고 있는 국궁은 조선시대 때부터 행해진 것으로 기록이나 그림에는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국궁은 전쟁용이 아니라 선비나 한량이라 불리던 일부 계층의 사람들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즐기던 우리나라 전통경기였다.


  국궁과 양궁은 다같이 활과 화살을 사용하는 경기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여러 면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우선 양궁은 FRP라는 플라스틱 종류로 만든 활과 카본이라는 인조 소재로 만든 화살을 사용하지만, 국궁은 물소 뿔과 뽕나무, 대나무, 소 힘줄 등 천연 소재로 만든 각궁角弓이라 부르는 활과 대나무로 만든 화살을 사용한다. 또한 양궁은 활에 붙은 조준경을 통하여 과녁을 겨냥하지만, 국궁은 조준경이 없이 다만 눈짐작만으로 과녁을 겨냥한다. 사대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도 양궁은 제일 먼 거리가 70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국궁은 그 배가 넘는 거리인 145미터나 된다. 따라서 조준경을 사용하는 양궁은 시위를 떠난 화살이 일직선으로 날아가 과녁을 맞히므로 비교적 변수가 적으나, 별도의 조준경을 사용하지 않는 국궁은 훨씬 먼 거리를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 과녁을 맞히게 되므로 변수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차이를 설명 할 때 양궁을 눈으로 쏘는 활이라면, 국궁은 마음으로 쏘는 활이라는 표현을 곧 잘 쓴다.


  궁도에는 활을 잡는 자세와 방법을 이르는 집궁 8원칙執弓八原則과 궁도인의 마음가짐을 이르는 궁도 9계훈弓道九戒訓이 있다. 먼저〈집궁 8원칙〉은 선찰지형 후관풍세先察地形 後觀風勢, 비정비팔 흉허복실非丁非八 胸虛腹實,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 발이부중 반구제기發而不中 反求諸己로 이를 순서대로 풀이하면, 먼저 지형을 살피고 다음에는 바람의 흐름을 읽는다. 그리고 발 자세는 고무래 정자丁字도 아니고 여듧 팔자八字도 아니게 하며, 가슴을 비우고 배는 실하게 한다. 또한 활을 잡은 손은 태산을 밀 듯 힘있게 밀고 시위를 잡은 손은 범의 꼬리를 잡았다 놓듯 가볍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할 바를 다하여 화살을 날렸는데도 과녁을 맞히지 못했다면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아울러 〈궁도 9계훈〉은 인애덕행仁愛德行, 성실겸손誠實謙遜, 자중절조自重節操, 예의엄수禮儀嚴守, 염직과감廉直果敢, 습사무언習射無言, 정심정기正心正己, 불원승자不怨勝者, 막만타궁莫彎他弓 등이 있으며, 그 실천요강을 두어 모든 궁도인들로 하여금 활쏘기를 통하여 단순히 궁술의 기량을 익히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마음을 수양함은 물론 사회인으로서의 예의를 지키고 그 도리를 다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활쏘기는 몸과 마음을 함께 닦을 수 있는 경기며 우리 조상의 슬기와 얼을 이어받을 수 있는 민족고유의 전통경기다.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의 경우 보름 정도만 연습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경기 일진데 어찌 볼링이나 골프, 테니스 같은 서양에서 들어온 경기만 좋다고 할 수 있겠는가?

                                                                       
  * 글쓴이 양승모는 예천의 한내글모임 회원으로 시를 쓰고 있는데 1989년 시집 《억새풀 빈 대궁으로 서걱일지라도》를 펴낸 바 있으며, 지금은 은풍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yyeosan@hanmail.net

                                                                                            <안동수필.2001>

 

 

   * 글마당 처음에 올렸던 글을 다시 앞으로 꺼집어 내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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