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를 이용 산행을 시작한지 5년여. 산행시마다 우리도 이젠 해외원정산행도 가자며 契를 부은 지 1년 반이 넘어 처음으로 해외 산행지를 정한 곳이 이 번 산행의 목적지인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산. 단지 동남아 최고봉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싱겁게 정해져 추진하게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좀 아쉬움이 남는 산행지였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런지..... 아무튼 추억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던 키나발루산의 등정기를 약간의 시간상의 오차는 있을지 몰라도 상세하게 적어 다음에 가실 분이 있다면 참고로 삼았으면 합니다.
10.6일 새벽 5시에 부산을 떨어 첫 해외여행을 혼자만 간다고 입이 한 자는 나온 집사람에게 다녀오마며 집을 나서 태릉입구역의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약속시간이 7시인데 시중들리가 벌써 나와서 반깁니다. 휴대폰도 안 된다는 이야기에 아예 집에다 꺼두고 온 상태라 회원들의 연락두절 상태가 되면 어쩌나 싶었으나 다행히 이곳의 집합인원 이상없이 버스가 와 타니 상계에서 타고 온 떠드리와 삐리리가 맨 앞좌석에서 우리를 반깁니다.
버스요금이 13,000원이어서 아까운 면이 좀 있었으나(사실 그 전에 싸이트를 뒤져 공항의 주차관계를 확인해보니 주유비, 톨비, 5일간의 주차비 합쳐 8만원이면 충분한 걸로 총무에게 보고했으나 묵살당한 터라 더더욱 미련이 남습니다. 8명이면 왕복 2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것을....애고 아까워라. 허나 다 지나긴 일. 다 처음 산행의 들뜸에 묻혀버려야지요 뭐)
9시정도에 공항 도착. 다행스럽게 8명의 회원이 무사하게 도착을 한 후 여행사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데 소주 구입건으로 한바탕 소동이 입니다. 떠드리는 1인당 4홉 한 병씩 배당했으나 가이드 이야기로는 말레이시아가 회교국가라 주류 제조 및 판매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충분하게 가져가라고 충고합니다. 팔기는 합니다만 특별구역에만 있고 한국식당에서도 병당 만원은 한다며.... 급히 공항 내 판매점에서 구입하다 보니 38은 24니, 48이 32니 옥신각신하다 결국은 48이 32로 결정, 구입 후 출국장을 들어가 면세점으로 가니 훨씬 싸게 사서 가져갈 수 있은 것을 그 선 하나에 여러 사람 울고 웃깁니다. 결국 이 술은 산행 및 여행 내내 우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건 그 때 그 때 이야기하기로 하고 드디어 말레이시아항공에 몸을 싣고 역사적인 첫 해외 물을 먹으러 갑니다. 8명의 회원 중 해외 물을 먹아 본 사람은 단 둘뿐으로 거의 대다수가 처음인지라, 들뜬 사람들과 일부 비행기 두려움에 떨던 사람(덩치를 생각해서 실명을 밝히지는 않고 우리 산행명으로 떠드리라고 합니다). 모두 묘한 감정으로 그 와중에도 항공사 여승무원의 國籍이 어디네, 美貌가 어쩌네, 비행기가 좀 작네, 하다 보니 11시에 비행기는 이륙 후 잠시 지나니 이제는 하얀 구름만 보이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부는 잠자고, 나와 용파리는 뒷 자석의 빈자리로 가서 큰 대자로 누워 잠을 청해봅니다. 희한한게 승무원도 제지를 안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잠을 자며 여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습성인지, 아니면 남아도는 좌석이용률을 극대화시키기 위함인지.....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 창 옆의 빈자리로 가서 앉으니 드디어 망망대해에 한 점 한 점 섬과 지나가는 배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육지에 다 온 모양입니다. 떠드리가 안내방송의 3만9천피트라는데 1피트가 얼마냐로 시작해서 또 떠들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는 우리의 기착지인 보르네오섬도 보이기 시작하고 비행기 아래로 지나가는 구름과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섬의 모습은 조금은 경이롭습니다. 이 곳 코타키나발루는 우리나라와 時差가 한시간으로 늦습니다. 착륙 직전 바라보는 이국의 첫 풍경은 이곳이 관광지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맑은 바닷가 옆에 들어선 리조트의 건물들이 첫 인상이었으나 공항에 처음 내려서 보는 모습은 우리나라 70년대 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국제공항이라지만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몰골의 건물과 말레이항공 비행기 몇 대뿐.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오니 우리를 안내해줄 가이드가 반겨줍니다. 해맑은 모습의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에서 유학중에 아르바이트로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아 참. 우리 떠드리. 또 일을 냅니다.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가져왔다 機內에 두고 내린 것입니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다시 들어가 가져왔는지 20여분 기다리니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나타납니다. 우리가 타고 온 말레이항공 여객기가 이 곳을 거쳐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라 한 시간을 연착 후 가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그러면 뭐하나. 결국은 이 핸드폰 귀국시에 짐에서 빠져나가 영영 떠드리 손을 떠나게 되는 것을..... 배낭 앞의 핸드폰 함에 넣고 자크를 채웠다는데 열린 것인지, 아니면 검색시 열어보고 닫다 빠졌는지, 하여간 인천공항에서 한참을 난리치다 항공사에서 연락을 해준다는 말을 최선의 답변으로 듣고 돌아왔으나 결국은 五里霧中. 그래서 그 아저씨 핸드폰이 바뀌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 그 아저씨를 아시는 분들은 핸드폰 변경하시기 바랍니다.
却說하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25인승으로 8명과 가이드 , 운전수, 특이하게 여기에는 운전수 보조가 따라 다닙니다. 예전 우리나라 助手식으로.... 넉넉하게 다니는 것은 좋으나 어쩐지 좀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키나발루산 입구까지는 3시간여가 걸리는 거리로 가이드의 설명으로 이곳의 생활상 등에 관하여 들어봅니다. 너무 많아 기억도 없고, 대신 생각날 때마다 기록하겠습니다. 코타 시내를 거쳐 가다보니 이곳의 옛날 집은 거의 수상가옥 식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地熱과 害蟲, 동물로부터 보호받기 위함이랍니다. 우리가 산행 후 묵게 될 호텔 근처가 간척사업으로 이루어 낸 곳이라 시내 안쪽으로 바닷물이 막혀 더러워진 곳에 진짜 수상가옥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 개발독재의 맹점인 재개발식 형태로 곧 쫓겨 날 신세랍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시내를 달리는 차들이 전부 일제 차량이라는 것이죠. 도요다, 미쓰비시, 닛산, 혼다, ISUZU 등등 우리나라 차량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나중엔 버스로 쓰이는 봉고와 몇 대의 현대차량을 보긴 했지만.....이유인즉슨 이 곳 말레이시아가 우리처럼 한때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해방 후에 일본에서 길을 닦아주는 대신 일본차를 수입하는 조건이었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개중에 말레이산 차량도 보이나 이것은 생색내기일 뿐, 본체는 전부 日産이라는 이야기이죠.
키나발루로 가는 국도는 2차선으로 앞에서 똥차가 가면 위험을 무릎쓰고 중앙선을 넘어가야 하는 코스로 이 나라의 도로상황을 알 만 합니다. 우리 차는 겉 보습은 멀쩡한데 언덕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80대 할아버지 형태입니다. 다행이 열대우림의 나무들을 쳐다보며 가다 보니 곧 무신경해집니다. 노랗게 익어 지천으로 열려있는 야자수와 바나나를 보며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졌는데 왜 이리 못 사는 나라일까 생각도 해봅니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만만디 성격과 일 안해도 먹을 수 있는 과일도 많고 1년에 2모작하는 벼 등등. 조건이 좋으면 사람 마음도 변하겠죠.
이곳의 운전대는 우리나라와 달리 오른쪽이 있는데 그 이유를 혹시 아십니까? 믿거나말거나 가이드 왈, 옛날 왕권국가의 말 수레에서 유래한다는데....그래서 지금도 왕이 있는 나라인 영국, 일본, 태국 등이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는 말씀.
어느 정도를 가다보니 구름 위로 시커멓게 솟아 있는 바위산이 얼핏얼핏 보이기에 물어보니 키나발루산이 맞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인데도 저 정도면 그 크기가 대충은 가늠이 갑니다.
컴컴해질 무렵 드디어 공원사무소에 도착합니다. 이제 도착했나 싶었더니 이곳에서는 다시 공원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숙소가 나온답니다. 곡예운전을 하는 공원기사 아저씨의 실력은 우리의 첫 숙박지인 메실라우 리조트로 빨리 메실라고 하는 성의라 생각하니 일견 고맙습니다.
식당아가씨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을 보며 차려진 밥상을 보니 긴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허전합니다. 샤브샤브라는데 국물도 이상하고 이곳은 회교국가라 돼지고기도 없고 양고기가 대체적인 고기입니다. 밥은 훅 불으면 수백 개의 파편이 되어 날라 갈 것 같고, 하여간 배고픈 탓에 억지로 먹습니다. 우리 일행 외 두 팀이 있었는데 전부 한국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국의 여행사 상품은 똑같아서 저 사람들과 산행 내내 관광 내내 만나게 됩니다.
식사후 숙소로 가서 해외 첫 여행의 기념으로 소주를 한잔 하는데 안주가 없습니다. 다행이 오다 슈퍼에서 이 곳 컵라면과 햄 통조림을 사왔기에 개봉을 했더니 한마디로 니글니글, 냄새는 욱욱, 한 점도 못 먹고 쓰레기로 직행. 한참을 떠들다 내일 산행을 위해 잠자리에 드는데 우리의 끝내리 마샘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리기 시작합니다. 특이한 것은 낮에는 있는지 없는지 구별이 안 되다 저녁때만 되면 시작되는데, 이것도 한잔을 걸쳐야만 합니다. 특이한 자기 영역표시 방법이 아니라, 자기 존재가치 알리기 방법이죠. 2인실 기준이라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가 자기 시작하는데 끝내리를 비롯한 똥씨 3형제가 못내 아쉬운지 한잔씩을 더 하는데 남국의 태양의 온기는 이미 스러져 우리나라 늦가을 날씨마냥 서늘해 온방 기능을 한 후 눕자마자 깨어보니 열대 새들의 울음소리가 청아해 날씨까지도 청명합니다.
우리 삐리리의 안경분실 소동을 한바탕 치른 후 배낭을 메고 어젯밤 식당에서 다시 아침을 먹는데 남들은 어제보다 나아 먹기 편하다 합니다. 추측건대 세 사람 정도로 아마 아침주식을 빵으로 한다든가, 아니면 굶고 다닌다든가 하는 사람들이었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전 여전히 입맛이 영 아닙니다. 그러나 저 역시 식성이 무척 무던한 편이라 배는 채우고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공원사무실로 갑니다.
키나발루산. 세계 동식물의 寶庫라 전체가 국립공원이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등산 신청절차가 까다롭습니다. 우리야 여행사에서 다 알아서 처리했으니 간단하나, - 우선 등반 허가가 나야 하고 8명까지는 1명의 가이드가 따라 붙고, 그러니까 1명이 산행해도 1명의 가이드, 9명이 산행하면 2명의 가이드가 붙어야 한다는 말씀, 하루 등반인원도 170명 정도로 한정한다는 것이죠. 말로는 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데 이 지역 주민의 副收入을 위한 정책이라는 냄새가 더 강하게 남은 나만의 생각일까. 우선 이 곳은 열대우림으로 온갖 동식물들의 寶庫라 잡아도 안 되고 採取도 안 되며 등반로를 이탈하여 산행도 안된다. 하기야 나중에 느낀 점이지만 열대우림이라 등반로를 벗어날 수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한 발만 집어넣어도 다시 돌아 나올 수 없을 정도의 밀림이니 말이죠.
하미리라는 가이드가 맨 앞장 서고 우리 일행 맨 뒤로 현지가이드가 붙어서 오르는데 처음부터 급사면의 계단입니다. 이 곳 메실라우 리조트의 고도가 2,000m이니 우리는 지금부터 산행역사의 새 장을 열어나가는 중이며, 한발 한발 올라갈 때마다 신기록을 작성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다닌 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 한라산인데 2.000m가 조금 안 되니 말입니다. 얼어죽을....
그리고 이 곳 키나발루 등정코스가 2개 있는데 이 곳 메실라우 코스와 우리가 등정 후 내려갈 팀포혼게이트 이렇게 두 곳입니다. 대부분은 팀포혼게이트에서 올라와 다시 그곳으로 내려가지만 유독 한국여행사의 코스는 우리와 같이 설정되어 한편으로 고맙고, 한편으론 이 곳 코스가 한참을 올라갔다가 다시 올라온 만큼을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는 코스로 급경사가 많고 계단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아 힘들다는 점 때문에 좀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열대우림을 힘들게 오르며 오랑우탄의 위치를 확인해 보나 아예 코빼기도 뵈질 않습니다. 보아야 잡지! 우리 차장님이 한 마리 잡아오라고 명했는데! 임을 봐야 뽕을 따지.
고산증 증세가 있다하여 천천히 안내하는 가이드가 일견 고마우면서도 일견 좀 따분한 오름길입니다. 나중에 떠드리나 시중들리는 처음에 땀을 쭉 빼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해 아쉬웠다는데, 에이그 여기까지 와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 경치도 구경하면서 가면 되지. 이 곳 남국까지 와서 티를 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나는 땀이 주룩주룩 흐르더만서두.....
곳곳에 무리지어 있는 식충식물의 대명사인 ‘네펜데스’도 구경하며 오르다 보니 점심시간. 럼포유쉘터에서 먹는 여행사에서 준비한 한정식 도시락은 꿀맛입니다. 또 하나 이곳의 자랑은 물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국내 산행시나 비박시에 항상 애로사항이 물이었는데, 이 곳에는 풍부한 물로 인해 중간중간 휴게소마다 정자도 지워놓고 철철 넘쳐나는 수도꼭지가 있고, 그 덕분에 수세식 화장실이 꼭 하나씩 있다는 것입니다.
수시로 변하는 구름인지 운무인지 변화무쌍한 날씨를 느끼면 가다보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가 팀포혼게이트에서 올라오는 코스와 만나는 곳입니다. 내일은 이 길로 내려가는 것이죠. 점점 힘들어지는 숨소리와 뻐근해지는 다리를 이끌고 한참을 오르니 처음으로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좋은 빌로사쉘터입니다. 여기서는 드디어 구름 사이로 정상의 일부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하도 변화무쌍한 구름 때문에 볼 수기 없습니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구름이 덮어버리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한참의 휴식 후 오르는 길 옆으로 우리나라 복분자 줄기와 형태가 비슷한 딸기가 있어 어렵게 한주먹을 따서 집어먹으니 처음에는 좀 시큼하더니 진짜 달작지근한 게 피로가 확 달아나 버리는 듯한 기분입니다. 여기까지는 식물의 생태도 변하여 밑의 열대우림과 중간부분의 우리나라의 참나무 비슷한 종류의 활엽수이더니 지금부터는 고산지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침엽수림 지대입니다. 침엽수라고는 하나 우리나라처럼 모진 바람에 못 이겨 앉은뱅이거나 바람이 반대 방향만 잎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잎모양만 침엽수지 거의 열대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파카쉘터를 지나서 해가 뉘엿해질 무렵. 오늘의 숙박지인 3,300여m에 있는 라반라타 산장에 도착해 들어서니 여기는 완전히 인종전시장입니다. 사람도 다양, 말소리도 다양하고, 서둘러 숙소에 여장을 풀고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려는데 더운 물이 안 나옵니다. 아무리 열대지방이라지만 밖의 온도는 7-8도 정도. 찬 물로 씻어내는데 진짜 오금이 저려서 이가 따닥따닥 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나중 들어간 떠드리가 콧노래를 부르는 연유를 물으니 더운 물이 잘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뿔사! 고장 난 것처럼 보이는 밸브를 한참 이리저리 돌리니 온수가 나오더라는 것이죠. 전 이 덕분에 다음날 줄줄 흐르는 콧물을 훔치면 산행을 하느라 혼났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해가 지는 석양이 모습이 환상적입니다. 모두가 좁아터진 발코니에서 복잡대니 우리는 산장 밖 공터로 나가 사진을 담시에 바쁩니다. 내려다 보는 마을이며, 점점 스러져가는 열도의 태양이며, 등 뒤로 시커멓게 보이는 정상의 바위들을 쳐다보느라 추운 줄도 모릅니다.
다행이 매일 있다던 스콜도 없어 비도 안 왔고 하늘에 떠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로 인해 내일도 날씨가 좋으리라 점쳐 봅니다. 만약 비가 많이 오면 위험 때문에 산행을 중지시킨다는 겁니다. 먼저 차수에 등반객들이 정상에 못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정상에 못 갔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생각해 보니 평소에 안 찾던 신에게 기도까지 해 봅니다.
방은 2층 침대가 5개가 있어 한국 사람만 모아놓아 확인하니 어젯밤에 리조트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새벽 2시 반에 일어나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옆 방의 시끄러움, 코고는 소리, 고산증 때문인지 가슴도 답답하여 잠이 잘 안 옵니다. 사무실의 앞지기가 고산증 이야기를 듣고 자기 집에 있는 1회용 산소호흡기를 전해줘 메고는 왔으나 별무신통.
1편. 끝.
첫댓글 미련스럽게 소주 4홉 32병이나 가져가 산행내내 박스에 넣어 짊어지며 쐬빠지게 이동하고 아깝다고 마시구 또 마시고..으이구 말좀 듣지 ... 술욕심들은 많아가지고...
결국 남아서 한인식당에 헌납했지요...
소주 거의 다 들이켰죠 . 미처리 량은 5병 정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