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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화'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션이 원작입니다.
[원 제] 청춘을 불사르다
[연재기간] 2002/02/20 - 2003/02/14
[원 작 자 ] 베르사유 (hohoya830@hanmail.net)
[연재공간] 카페 블루하와이 http://cafe.daum.net/bluehawaii
※ 원작자의 허락없는 불펌, 내용수정, 캐릭터 변경 등을 일체 금합니다.
6. 진화(進化)
"형 구구단 할 줄 알아?"
“장난 하냐.”
“9단까지 말이야.”
“아, 나 미치겠다. 진짜.”
난 오늘도 내 동생과 심한 말다툼을 하고 있다.
…선호와? 아니? 우리 막내와.
그러다가 갑자기 이게 아주 날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묻는다. 구구단 할 줄 아냐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고등학교란 델 다니는데 말이야. 날 너무 무시한다. 우리 막내.
콩알만한 게 어디서 구구단이란 말을 주워 들어서는.
난 초등학교 4학년 때 겨우… 음음, 저‥정정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떼었다. 분명히 말한다. 초등학교 1학년 구구단 땠다.
"너 구구단이 뭔 줄은 알아?"
그러자 이게 아주 같잖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런다.
“난 13단까지 할 줄 알거든? 큰 형아는 상상도 못 하는 단계야.”
아우, 저거 표정 좀 봐? 미치겠네. 진짜.
“그래, 니 똥 굵다!”
왜 이렇게 이런 순간에, 이런 유치하고 초딩같은 반박밖에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하고 엿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유치원생한테‥
바로 그 순간, 이 꼬맹이가 기어이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형이 왜 공부를 못하는 줄 알아?"
"형은 공부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못하니까 안하는 거잖아?"
얘는 누굴 담아 말발이 이렇게 센 걸까.
"아니라고."
"아니야, 진짜?"
"그래. 아니야."
"그럼 안 해서 못 하는 거네?"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안 해서 못 하는 거나, 못 해서 안 하는 거나. 공부 대따 못 하는 건 맞지?”
"앗! 그‥ 그런 얘기가 아니라…"
또 말려 들었다. 막내의 페이스에.
"그러니까 형아가 왜 공부를 못하는 줄 아냐구!!"
"아, 몰라! 모른다! 왜! 왜 못 하는데!! 왜!!" 하고 성질 뻗쳐서 따져 물으니,
"형은."
“……?”
저 조그만 입에서 또 뭔 말이 나오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고 깐죽이지?
아, 심장 떨려 협심증이 온다. 난 얘 때문에 제 명에 못 살 거다.
"형은…… 진화가 덜 돼서 그래.”
“뭐가… 덜 돼?”
“진화. 다른 말로는 또… 미개하다. 이렇게도 말한대.”
“그만… 해라.”
“미.개.하.다. 책에서 본 건데... 무슨 뜻이냐면 음,,
어차피 큰 형아는 못 알아들을 텐데 상관없지 뭐.”
하고 내게 메롱을 날리고는 이게 제 방으로 잽싸게 뛰어 들어간다.
진호가 덜 되‥? 미개해…? 어차피 못 알아들을 거…?
아오, 내가 저걸 똥 기저귀 빨아서 학교 업고 다니며 키웠놨더니 겨우 듣는 소리가…
나보고 진화가 덜 됐단다.
나 아직… 워‥원숭이래.
선호야… 언제 와…? 빌어먹을 학원은 언제 끝나는 거니‥?
보고 싶다. 빨리 와…
큰 형 자꾸 눈물이 난다‥?
- * -
#. 아침 등굣길.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넌 양심의 가책도 못 느껴? 책임감도 못 느끼냐구!"
“양심? 책임감? 하하...!”
"너 지금‥ 나 비웃어?"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격양된다.
그 주변으로 하나 둘 아이들이 몰려든다.
"막말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여자 아이와 마주 선 남자아이가 그런다.
"막말로 그게 내 씨일지 딴 새끼 씨일지 어떻게 알아?”
"‥뭐?"
마주 선 여자 아이의 눈동자와, 어깨와,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온다.
"너랑 놀아난 게 한 두 새끼냐? 그게 내 새끼란 증거 있어?
왜 나한테 와서 이 지랄이야. 내가 제일 만만해 보여?"
[ 짜 악! ]
시린 겨울바람을 가르듯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한껏 독설을 내뿜던 남자 아이의 고개가 힘껏 돌아가고,
천천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의 시선이 눈앞의 여자 아이를 똑바로 응시한다.
가만히 노려보고 있는 여자의 눈엔 모멸감으로 눈물이 고여 있다.
"…적당히 해라. 이만하면 니 더러운 성질 다 받아준 거니까 이걸로 끝내자, 좀.”
“너 한 번도 나한테‥ 진심인 적은 없었니?”
상처 받은 듯 울먹이는 여자 아이의 목소리에 소년이 피식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웃음은 너무나 씁쓸하고 공허하며 차갑다.
“너 처음에 나한테 와서 수술 소리 했을 때‥ 나 별 소리 없이 니가 달라는 대로 다 내줬어. 왜?
어쨌든 내가 너랑 논 건 사실이니까. 니가 말한 양심? 죄책감? 까는 소리 하지 마.”
“……”
“그 소리 들었을 때 내가 진짜 소름 끼쳤던 게 뭔지 알아? 혹시라도‥ 진짜 나랑 똑같은 종자가 세상에 나올까봐."
“……”
"나 같은 새끼가 하나 더 나올까봐. 나 그게 무서워서 군 말없이 너 수술비 대준 거야.
내 새끼란 증거 하나 없이. 그 ‘혹시’ 가, 그 ‘설마’ 가 소름끼치게 무서워서. 내 말 알아들어?”
“난 지금… 한 번도 나 좋아한 적 없냐고 묻고 있는 거거든?”
여자 아이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흐른다.
그 눈을 무심하게 보다 남자아이가 또다시 피식 웃는다.
“유리야. 왜 그래‥ 우리 그냥 논 거잖아. 너 같은 애랑, 나 같은 애가. …아냐?”
“……!”
“그러니까 너 나한테 한 번만 더 이 지랄하면‥ 나도 더는 안 참는다."
그리고 남자 아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옆 건물로 처벅처벅 걸음을 옮긴다.
그가 유유히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여자 아이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목 놓아 운다.
부끄러움은 모르고 서러움만 아는 아이처럼, 서럽고 서럽게 울었다.
"뭐냐. 아침부터 재수없게 여자 곡소리가 들려?"
“몰라. 나도.”
봉구랑 눈싸움 좀 하고 들어오는데 햑교가 이상하게 시끄럽다.
떡하니 서서 뭔가를 구경하고 있는 동완이 놈에게 물으니 지도 모른단다.
"야! 너 일루와봐."
동완이 지나가던 놈 하나를 불러 세워 녀석이 지금 저게 무슨 일이냐 묻는다.
"저기 바닥에 앉아있는 여자애는요. 최유리라는 애인데요."
웬 녀석이 잔뜩 얼어서는 나와 김동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그런다.
"저기 막 건물에 들어간 새끼는 전진인가 하는 놈이지?"
전진‥? 들어봤다.
우리학교 논다하는 계집애들 치고 저 새끼가 안 건드린 애가 없다고 들었다.
계집애들이 지들이 안달 나서 매달린다고 하니 뭐,
이제 겨우 1학년, 아니 이제 2학년인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참 잘 하는 짓이다.
벌써부터 저러고 돌아다니니 아침부터 전교생 앞에서 계집애한테 따귀나 맞고 다니지.
“전진은 이런 걸로는 워낙 유명해요. 호빠를 다는 다닌 얘기도 있고. 뭐 그냥‥ 중학교 때부터 워낙 유명했으니까.”
“아, 찝찝한데? 저딴 새끼가 내 동생이랑 한 반 되면 안 되는데…”
“전교부회장이요? 아마 같은 반일 텐데… 둘 다 7반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젠장! 진짜냐?! 저 새끼‥ 잘 봐둬야겠구만? 생양아치 새끼 같으니.”
그러면서 전진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민우의 눈이 순간 무섭다.
원체 차가운 인상에 눈에 번쩍 파란 빛이 일렁이자 그 앞에 선 아이가 잔뜩 긴장한다.
"뭐 분위기 보아하니 여자애가 수술을 한 모양이네. 근데도 저 놈을 아직 꽤 좋아하는 모양이고.
근데 저 놈은 정나미 떨어졌는지 안 만나주고, 그래서 아침부터 이 난리인가 본데?”
상황 파악이 됐는지 동완이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아일 보며 그런다.
민우는 가만히 듣고 있다 어이가 없는 듯 피식 웃는다.
“그럼 적어도 말이다‥ 어쨌든 생명을 죽인건데, 거기에 대한 속죄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사람이면 최소한?”
“뭐, 요즘 애들(?)이 그런 걸 아나.”
“그런데 저것들은 지금 사랑타령이나 하고 있어? ‥말종들이구만.”
"쯧쯧. 그러게 말이다. 생명 귀한 줄도 모르고 왜들 저럴까."
그러고 보면 어쩌면, 그래.. 우리 똘이박사는 진짜 천재일지도 모른다.
"진화가 덜 되서 그렇지."
"진화?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
“그런 게 있다. 우리 집 박사님 말씀.”
저 모자른 인간말종 놈과 설마
우리 선호가 상종할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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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착각은 자유 (1)
[쾅…!]
녀석의 책상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려치자, 순간 놀란 눈으로 날 올려다본다.
“……”
“……”
그리고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당돌. 이 아이 눈빛에는 그런 게 있다.
거만…이 아닌 당돌함.
자만(自慢)과는 좀 다른 자존심 같은 것 말이다.
이 녀석 눈에는 아무튼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런 게 있다.
"주차장 구석에 있는."
“……”
"빨간색에 섹시한 자전거."
“……?”
"미지공, 네 거지?"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너 왜‥ 그거타고 아침마다 내 뒤를 왜 그렇게 열심히 따라오는 거냐."
오늘 아침도 역시나. 집 앞 골목에서부터 학교까지 그 찝찝한 미행을 당했다.
이 곱상하고 시건방진, 반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몰랐던 어쨌건 나에겐 듣보잡이었던 이놈에게.
“나도 너 만큼이나 이런 패턴 익숙하거든?”
녀석 앞에 삐딱하니 서서 나름 재수 없는 소리 좀 하고 있다.
난 뭐 잘 나간 적 없는 줄 아냐.
중학교 때 회색 머리 날리면서 오토바이 한 번 몰아주면 애들 아주 싹 다 쓰러졌다.
나야. 나 청북동 이민우라고.
그러면서 부드럽게 찰랑이는 내 직모를 한번 샥 털어주니
김동완이 혀끝을 끌끌 차며 ‘저 새끼 또 증세 나온다’ 고 구시렁거린다.
“패턴이라니. 무슨 패턴?”
"액션 그만 까고, 까놓고 말 해봐. …너 나 좋아하냐?"
순간, ‘오오-' 하고 교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이상한 추임새와 함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녀석의 미간이 확 좁혀지며 뭐랄까. 신경질이 가득한 표정이랄까.
"그런데 넌 내 취향 절대 아니거든? 너가 숙희씨처럼 가슴이 되냐? 그렇다고 힙이 되냐? 볼 거 하나 없거든?”
쓰잘데기 없이 높은 놈의 콧대, 한 번 꺾고 싶었다.
"너…”
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녀석이 느릿하게 “너…” 하고 입을 뗀다.
교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혜성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아이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그런다.
“너… 무슨 약 같은 거 하니?”
......
짹짹-
창밖으로 참새 두어 마리가 지나갔다.
그리고 빵 터진 김동완이 교실이 떠나갈 듯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야. 꽤 예리한데? 우리 민우가 과대망상이 좀 있긴 하지. 속된 말로 자뻑증이라고.
아하하하하‥ 나 이 친구 마음에 드는데?”
김동완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내 입가에서도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그리고 녀석의 책상을 두 손으로 짚고 천천히 녀석쪽으로 몸을 숙였다.
순간, 코끝으로 알싸하게 샴푸 냄새가 느껴졌다.
“그래. 내가 존X 자뻑에 생쇼한다 치자. 그럼 각설하고.”
“……”
"미지공 너. 한 번 만 더 내 뒤꽁무니로 니 예쁜 자전거 보이면 그땐 아주 박살낸다.
진짠지 아닌지 궁금하면 어디 한 번 더 해보던지.”
“……”
- 큰 형아. 난 그런 거 싫어.
- 뭐가?
- 누가 우리 집 얘기 하는 거.. 나보고 아빠 없다고 하는 것도.
형아들하고 나 하고 다르다고 하는 것도 싫고.
불쌍하다고 하는 것도 싫고.. 그렇게 말 시키고 쳐다보는 거.. 다 싫어.
싫은 나도 싫어. 막내야.
누가 날 보는 것도, 내게 말을 거는 것도,
궁금한 척 관심 갖는 것도 나도 너무 싫었었어.
나는 이대로가 좋으니까,
나는 지금 혼자서도 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까.
누가 내 인생에 끼어드는 거 짜증나.
아무도 안돼.
누구도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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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착각은 자유 (2)
"아, 씨X, 깜짝이야. 야. 너 뭐야?"
“……”
"너 뭐냐고. 누가 여기 들어오래?"
“……?”
대꾸가 없다. 자세히 보니, 자고 있다.
이 먼지 폴폴 나는, 더러워 죽겠는 창고에서.
여기는 담배굴이지 사람이 잘 만한 곳은 아니다.
쾌쾌한 곰팡내 하며 조금만 누워있어도 등줄기로 벌레가 스믈스믈 벌레가 기어들어 올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잠을 자기에는 무섭도록 더러운 곳인데.
"뭐야, 이거. 별 미친놈 다 있네."
그렇게 어둠 속에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문 채, 그다지 생각에 잠긴 거 같지도 않은 담담한 표정으로
어둠속으로 희뿌옇게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고,
그 옆의 남자는 여전히 자고 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지금 담배 피는 거야?"
“아 깜짝이야…!”
한동안의 침묵이 깨지고, 갑자기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의 눈에 반짝이는 두 개의 빛이 들어왔다.
아주 천천히, 꿈뻑꿈뻑 구르는 눈동자가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맥이 탁 풀려버릴 정도로 나른했다.
"깼냐? 너 여기서 잠이 오냐. 이거 또라인가."
"너 담배 뭐 펴?"
"딴소리는. 말보로. …왜, 한 대 줘?"
"지금 몇 시?"
이거 일부러 딴소리를 해대는 거야, 뭐야.
제 할 말만 하고 제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있다.
누구야? 뭐하는 새끼지, 이건?
"애들 밥 처먹겠다고 지랄 떠는 시간이다, 왜."
순간, 별 대꾸 없이 어둠속에서 시커먼 게 갑자기 쑥 올라온다. 일어선 모양이다.
그리고는 천천히 철문 쪽으로 걸어간다. 끼이익- 하고 소름이 돋는 마찰음과 함께 열린 문사이로
갑자기 파란 빛들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온다.
"아, 씨! 야, 문 안 닫ㅇ…!"
"국산 펴. 외국 담배 사는 건 매국노랬어. 동완이가."
뭐라고 떠드는지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얼굴로 그저 파랗게 빛이 쏟아졌다.
까맣게 자신을 삼킨 어둠을 순식간에 밀어내며 차마 눈도 뜨지 못할 만큼 쏟아져 들아오는 햇살 사이로,
우두커니 서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 부서져 내리는 빛줄기 사이로, 서서히 누군가가 보인다.
"문‥정혁?"
문정혁. 그 다.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은 없지만 분명히 그다.
이 학교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툭‥ 순간, 입에 물렸던 담배가 바닥으로 나뒹귄다.
"오늘 급식 짜장밥이야. 난 짜장밥이 젤 좋더라. 너두 빨리 가서 먹어."
그리고는 어느 세월에 복도계단을 다 오를까 싶은 느릿느릇한 걸음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문정혁.
문정혁. 누군가는 그가 자폐증이라고도 했다.
누군가는 정신이 이상하다고도 했고, 누군가는 실어증이라고도 했다.
그럼 또 누군가는 김동완과 이민우하고만 오로지 대화를 할 뿐이라고 했다.
이 학교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얼굴값이란 걸 할 줄 모르고,
가장 다부진 몸이지만 몸을 써먹을 줄 모르는 천치 바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민우가 학교 통이 된 데에 일등공신이 문정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가 단 한 번 싸움에 끼어든 적이 있었는데,
그 현장에 있었던 놈들은 문정혁처럼 느리면서 문정혁처럼 잔인하게 사람을
망가뜨리는 건 태어나 처음 본다고도 했다.
마치 저승에서 온 사신처럼 감정없이, 자비없이.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듯한, 그런 텅 빈 눈이었다고, 아주 소름이 끼쳤다고 말 했다.
그 싸움으로 이민우는 학교를 발아래 두었지만, 그들은 이후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이민우처럼 빠른 몸도 아니고,
그와 같이 어울리는 김동완처럼 오랜 세월을 운동으로 다져진 몸도 아니라고 했다.
먼저 싸움을 거는 법도 없고,
딱히 누군가를 돕거나 구하겠다는 의리나 정의 같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실이던 아니던, 그의 소문이 살벌하다는 것과
최측근이 이 학교 통인 이민우와 김동완이라는 사실이다.
아‥ X됐다.
문정혁에게 반말을 찍찍 깔렸으니 또 선배가 하늘 같으니 어쩌니 하면서 무더기로 우르르 교실로 몰려오겠군.
혼자 오긴 딸리는지 꼭 떼거지로 겨 온단 말이야.
논다하는 윗학년 새끼들 하는 짓이야 뻔하지.
그래, 씨X, 죽이든지 살리든지 멋대로 해라. 난 뭐, 뵈는 것도 없고 겁나는 것도 없는 새끼니까.
난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새끼니까.
- * -
“너 진짜 근성 있구나."
애가 독한건가? 아님, 내가 그렇게 물렁해 보이나?
아님, 다정다감하고 소프트하고 마일드한 내 고급스러운 성품이 죄인가.
어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지?
여기는 우리 집 앞,
그리고 내가 고갤 돌려 바라본 본 아이는 역시나 또 그 녀석이지 누구겠어.
이제는 학교도 모자라서 집까지 쫒아온단 말이지?
아침도 모자라서 이젠 낮이고 밤이고 따라온다 이거지.
이제는 몰래 숨어서도 아니고 아예 대놓고 아주 떳떳하게 말이지?
도대체 왜? 아, 왜 저러는 거지? 왜 날 따라다니는 건데?
“아… 훗, 후후후후후…”
순간, 머릿속으로 아차, 그거였군 하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래, 그거였어.
내 죄다. 이건. 잘 생겨도 너무나 잘생긴 내 죄.
너무 당연한 걸 잠시 깜빡했군.
“그래, 내가 이해한다. 나정도 얼굴이면, 한 번 욕심나겠지. 아하하하하…!”
“……?”
“내 입에서 먼저 고백이라도 나오길 바랬나?”
“……?”
“그 도도한 자존심에 먼저 말 꺼내기 조바심도 났겠지, 아하하하하…!”
그렇게 내가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을수록, 눈앞의 녀석은 아주 오묘한 표정을 지어댄다.
"이민우… 지금 뭔가 굉장히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쉿…!”
순간 손가락을 들어 녀석의 입을 막는다.
녀석의 입술은 아주 작고, 아주 빨갛고 아주 부드럽다.
입술은 이 동네에서 우리 선호가 최고로 이쁜데.
"됐고, 딱 한 번만 말 할 테니까 잘 들어라."
“……?”
“분명히 말하지만 난 너랑 사귈 맘 없어! 알아들어?!"
“후우…”
녀석이 그렇게 깊이 한숨을 내쉰다.
하하, 이런이런, 상처 받은 건가.
너만 뺀지 놓은 인생인줄 알아? 나도 날고 긴다 하는 것들 한 번씩 다 뻥뻥 차본 인간이야. 이거 왜 이래?
“너 증세가 꽤 심하구나‥”
“그래, 자존심 상하겠지. 뭐, 뭐라고 지껄여도 좋아.
니가 나한테 까였단 얘기는 사나이의 의리를 걸고 어디 가서 소문은 안 내줄ㄱ…”
"혜성아! "
그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그 애의 이름을 부른다.
그 녀석 뒤로 보이던, 우리 옆집의 옆집에서 나온 웬 젊은 여자가 나오며 그 녀석의 이름을 부른다.
누구지? 동네에서 못 보던 아가씨인데? 새로 이사 왔나?
그러면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 순간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엄마?!
"집에 안 들어오고 길에서 뭐 하고 있어? 근데 누구…? 친구?"
"응? 친구는 아니고. 그냥 같은 반."
"얘는. 같은 반이면 그게 친구지. 반가워요. 어머, 어서 와요. 우리 집에 놀러온 건가보네?”
“아니 뭐. 그게.”
아닙니다. 어머니. 전… 저희 집에 가는 중입니다만.
“별 일이네. 우리 혜성이가 통 집에 누굴 데려온 적이 없어서.
꽤 마음에 드는 친군가 보네? 우리 혜성이 친구하기에 좀 많이 까다롭죠?"
아닙니다. 어머니. 전…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혼자 얼어서 바보축구멍청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신혜성이 기가 찬 듯 피식 웃는다.
"친구 아니라니까. 근데 엄마 어디가?"
"응. 전입신고도 해야 하고, 이사 한 거 정리 하려면 이곳저곳 들릴 데가 많아서."
전입신고‥
이사‥
우리 옆집에 옆집으로… 그런… 거였었나.
"저녁 차려놨으니까 챙겨먹고, 친구는 나중에 또 봐요."
그러면서 굉장히 젊고, 굉장히 상냥햔 녀석의 어머니가 눈을 ‘^^’ 이렇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나는 엉겁결에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예? 예, 예. 그럼."
그렇게 녀석의 어머니가 소문의 그 검은 색 외제차에 올라 사라지고,
벙쩌있는 나를 한 번 더, 아주 기분 더럽게 비웃어 보인 녀석이
우리의 옆집의 옆집으로 들어서다 휙 뒤를 돌더니 나를 향해 그런다.
"이 동네에 살면 다 너랑 사겨야 되나봐?"
“……”
“미지왕이야, 너?”
“……”
“미친새끼. 지가 왕잔줄 알어…라며, 그게.”
“……”
이렇게 한방 먹는다.
“그,그만 해라. 상황파악 했으니까.”
…미치겠다. 쪽팔려서.
“나도 분명히 말하지만. 너랑 사귈 맘 없어. 알아듣지?”
아오, 저 새끼, 존X 즐기고 있네? 진짜?!
그렇게 고개를 들어 놈을 좀 노려보려는 순간, 쾅! 소리와 함께 녀석의 현관문이 부서질 듯 닫힌다.
♪ 자기야 전화 받아 자기야 전화받아 ♬
그렇게 혼자 멍하니 허수아비처럼 서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나는 여전히 넋이 빠진 채 그대로 귓가로 가져갔다.
<야. 나다.>
“……”
<이따 나와.>
“……”
<듣고 있는 거냐. 야! …여보세요?>
"동완아."
<아, 이 새끼 듣고 있었으면서. …왜.>
"나 방금 집 앞에서 걔 봤거든. …신혜성."
<뭐?! 걔가 너 집까지 따라왔어? 장난 아니다, 걔. 대체 왜 그런다냐,>
"나도 그런 줄 알았거든? 걔가 나 따..따라다는 줄 알았는데. 걔… 우리 옆집에 옆집 산대."
<뭐? 너네 옆집?>
“아니, 우리 옆집에 옆집.”
<……풉! 푸하하하하하!! 그럼 아침에도 따라온 게 아니라, 그냥 지네집서 나와서 학교 온 거였네?
지금도 걔는 그냥 걔네 집 간 거고? 아 뭐야. 이민우, 똘아이 새꺄. 혼자 생쇼를 하더니 그런 거였어?!>
“동완아. 나 어떡해? 쪽팔려서? 응…?”
<아, 몰라. 니 알아서 하고 …풉! 아, 골때려. 이민우. 암튼. 이따 봐.>
그렇게 나를 신나게 비웃어대던 김동완과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그곳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입 싼 김동완은 이 일을 여기저기 지껄이고 다니며 몇날 며칠을 욹궈 먹을 게 뻔하고,
교실 놈들은 날 상 돌아이로 볼 테고. 학교에는 소문이 또 개같이 날 테고.
그러다 이내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힘껏 녀석의 현관문을 노려보았다.
아니, 이사를 왔으면 이사를 왔다? 신고를 해야할 거 아냐?!
음... 내가 동사무소도 아니고 그건 아닌가.
아무튼! 내가 그렇게 개소리를 해대면 난 내 집에 간 거다! 하고 한 마디 하면 됐을 거 아냐?
음... 그래도 딱히 내가 믿었을 거 같지는 않고.
아, 아무튼 간에! 몰라! 이건 다 신혜성 탓이고! 다 신혜성 저 자식 때문이야!
니가 날 개망신을 줘? 어디 두고 보자. …신혜성.
이 수모는 반드시.. 되갚아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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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 3 자
"선호야. 바‥밖에." 하며 술렁이는 교실 분위기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무심히 문 밖을 보던 선호가,
‘응? 웬 일이지?’ 하는 얼굴로 자리에서 막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씨X.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그렇게 작게 욕을 내뱉으며 선호의 앞을 막아서며 교실 문으로 향하는 누군가 보인다.
‘전‥진…?’
그의 뒷 모습을 보며 선호는 어리둥절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진짜 짜증나. 김동완! 할 말 있음 너 혼자 오면 되지 우린 왜 억지로 끌고 오는데?"
"난 졸린데."
"호,혼자 오기 부끄럽단 말이다.”
"뭐? 부,부끄 뭐?! 난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넌 왜 이선호만 보면 뭘 그렇게 내외를 하냐?”
그렇게 쫑알쫑알 선호의 교실 앞에서 떠들고 있던 민우 일행 앞에,
"교실 앞에서 이러지 말고 다른 데 가서 얘기하죠."
"……?"
잔뜩 무게를 잡는 목소리로 다가와 그들을 막아선 전진을 민우 일행은 떨떠름하게 본다.
“뭐냐. 이건 또.”
기다리던 선호가 아닌 뜻밖의 인물에 민우의 일행 머리위로 물음표가 떠오른다.
"너 아는 애냐."
민우가 동완에게 묻는다. 정혁에겐 어차피 묻지도 않는다.
문정혁이야 부모 알아보는 것도 신기한 애니까.
"아니, 몰라." 동완이 그렇게 무심히 대꾸하다,
"아, 얘 걔 아니냐?! 그 때 아침에 전교생 앞에서 쌩쇼하던."
"아, 그 전진인가 하는?"
그제서야 생각난 듯 민우와 동완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작 전진이란 아이의 눈은 정혁을 향해 있었다.
그 맹렬한 눈동자에 민우와 동완도 정혁을 물끄러미 본다.
"얘 왜 이렇게 널 잡아 먹을 듯 보냐? 혹시 너 아는 애야?" 하고 동완이 정혁의 팔꿈치를 툭 친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 친다기 보단 별 감흥 없이 마주하고 있던 정혁이 느릿하게 그런다.
"……매국노.”
“매..매국노?”
“……말보로."
“말..말보로. 매국노…”
혼자서 어떻게든 정혁의 말을 해석하려고 애쓰던 민우가,
"휴우… 미안. 정혁아. 난 도저히 니가 쓰는 우주어를 못 알아듣겠다."
"…형!"
"오, 마이 영걸 브라더~ 우쥬라잌썸씽 드링크?”
“아니라니까.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 Okay?"
"젠장! 빌어먹을! 영어나 씨부리는 미국의 개가 되느니 떳떳한 조선의 선비가 되겠다!”
“아휴, 그 레파토리는 그만 좀 하고. 뭔데? 아침부터 여긴 웬 일?
내가 웬만하면 교실 찾아오지 말랬잖아. 애들 겁 먹는다니까.”
"내가 오고 싶어서 왔냐. 김동완 이게 하도 가자고 졸라대서 억지로 왔다.”
“동완이 형이? 형 왜?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그러면서 선호가 생글거리며 웃는다.
저 생글거리는 얼굴로 지금까지 학급 반장에 학교 임원을 꽤찬 놈이다.
내 동생이지만 똑똑한 놈이지 순진한 녀석은 아니다.
자기가 뭘 가진 줄 알며 그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영리한 놈이지,
마냥 순수하고 착하고 여린 놈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저 이선호가 아주 상냥하고 친절한 아이인줄 안다.
바로 이 멍청한 눈 뜬 장님, 김동완처럼.
환하게 웃으며 묻는 선호와 눈이 마주친 동완이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물이 들더니 고개를 숙인다.
21세기에도 이런 순정이 있다니.
민우는 제 친구 하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제 동생을 너무나 잘 알기에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동완아, 빨리 줘. 나 화장실 가고 싶어." 하면서 정혁이 느릿하게 보챈다.
“줘?! 뭘 주는데?” 하고 민우가 어리둥절해서 묻는다.
"저, 저… 선호야! 이, 이거…!!!"
그 순간 선호의 손에 빨갛고 네모난 걸 쥐어주고,
동완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후닥닥 계단을 뛰어내려 간다.
무슨 선배한테 고백한 1학년 여고생처럼. 정말 흉측하고 돌아이 같이 말이다.
“아, 미친놈 저거‥ 야. 뭐냐 이선호?”
동완이 던지듯 쥐어주고 간 빨간 무언가의 한가운데 큼지막하고 엉성하게 써진 글귀.
“초대‥장?” 선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것을 열자,
Dear. 선호님
공부 잘하고, 착하고, 귀엽고, 친절하고, 늘 상냥하신 전교 부회장이자
우리 모두의 등불이신 선호님을 김동완 18번째 생일파티에 초대합니다.
.................................... -김동완 드림-
정성스레 궁서체로 꾹꾹 눌러 쓴 동완의 글씨를 보며 선호가 피식 웃는다.
"아, 이맘때가 동완이 형 생일이었지. 동완이 형한테 꼭 간다고 전해줘."
“아효, 저깔난 걸 주겠다고 이 난리를 핀 거냐. 어이가 없다 내가.”
민우는 정혁을 끌고 돌아서며 구시렁거린다.
“우리가 무슨 초등학생이냐. 유치한 새끼. 웬 초대장? 그치, 정혁아?"
“……”
민우의 물음에 정혁은 별 대꾸가 없다. 그러더니 느릿하게.
"나두 받고 싶은데.“
“으응?”
“…초대장. 갖고 싶은데 동완이가 난 안 줘. …넌 줬어?"
"휴우, 정혁아 쫌. 나 힘들어, 진짜."
그렇게 민우와 정혁도 복도를 빠져 나가고,
그렇게 티격태격 하는 둘의 모습을 보며 혼자 웃던 선호도 교실로 들어가고,
그렇게 그 곳엔.
‘지금 뭐냐. 이거?’
한참을 동상처럼 굳어 홀로 서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뭐냐고. 이거. 나 까대러 온 거 아니었어?’
무시. 내지는 완전한 ‘투명인간’ 이었다.
그렇게 완전한 무시를 당했다.
그는 분명 며칠 전 창고에서 본 문정혁이었다.
그 역시도 전진을 알아보는 듯 했다.
자신의 교실 앞에 친구들 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그.
뻔할 뻔 자라고 생각했다.
오늘 또 선배입네 하는 것들에게 피터지게 얻어터져줘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완전한 무시.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이,
아니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 자신들만을 사람취급하고 있었다.
사람 무안하고 기분 뭣 같게 말이다.
이유 없이 두들겨 패는 것보다 기분이 더 더럽다.
때리면 맞아줬다. 욕하면 들어줬다.
그 폭력과 욕설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시샘, 부러움, 열등감이 그런 식으로 폭발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자신을 조금이라도 추스르며 살아왔다.
언제 어디서나 집중을 받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들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우월감 속에서.
그러면서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신을 꽤 자랑스럽게 생각해 오며.
그런데, 지금 이들은 뭐지?
난 또 뭐라 그랬더라? 교실서 이러지 말고 밖에서 얘기하자고 했던가?
하‥ 혼자 병신 된 거네.
갑자기 뭔가 분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게 오기가 발동한다.
갑자기, 갑자기 울컥 명치끝에서 무언가가 욱하고 튀어오른다.
"야. 이선호."
그대로 교실로 들어가 이민우의 동생을 불러 세웠다.
녀석이 어리둥절해서 나를 돌아본다. 나는 놈을 보며 작게 웃었다.
미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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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 발
"야. 이선호."
"...왜?"
[ 퍽…! ]
순식간이었다. 선호가 의자에서 떨어져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아이들 모두 놀란 눈으로 그대로 굳은 듯 멈춰 섰다.
바닥에 쓰러진 선호는 한참을 그대로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아이다.
아니, 저 아이는 늘 물속에 떠다니는 기름방울 같은 아이였다.
교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학교도 제가 내킬 때만 나왔다.
누구와도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라도 상관없이 섞여 있기도 했다.
늘 아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또 그것을 꽤 즐기기도 하는, 묘한 아이였다.
학교라는 물속에 홀로 떠다니는 기름방울 같은 아이.
그런 녀석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격.
"뭐야, 갑자기?”
선호의 목소리가 차분하다.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목소리엔 분노가 없다.
원래 대외적으로 분노가 없는 아이다.
무릎을 굽혀 선호와 눈높이를 맞춘 전진이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선호의 찢어진 입술을 제 손가락 끝으로 스윽 훑어 내고는 작게 웃는다.
의외로 눈웃음이 예쁜 얼굴이다.
“가서.”
“……”
"네 형한테 일러라."
“뭐?”
이 애가… 지금 제 정신인가.
- * -
"아니, 숙희씨가 저를 다 보자고 하시고, 그런데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아하하하!”
"좀 앉으렴. 민우야."
교무실로 숙희씨에게 불려왔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여기서 한 3교시까지 뻐기고, 4교시 체육시간에 나가서 축고 좀 쎄리다가 점심 먹으면 딱이군. 좋아, 퍼펙트!
"요즘 진로상담 중인 거 알지?”
“쳇! 제가 선생님 마음 모를 줄 알고요? 진로상담은 무슨. 그거 다 핑계인거 알아요.
미래설계를 위해 부르신 거잖아요. 우리의 미래설계, 어우- 숙희씨, 몰라 엉큼해!”
“……”
"아이 참,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이런 곳에서 절 유혹하셔봤자.“
“휴우… 민우야. 선생님이 너 때문에 편두통이 있는 건 아니?”
“그러게. 내 생각 좀 그만 하라니까!
돌아서면 보고 싶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알아요, 숙희씨 마음 저도 다 압니다.”
그렇게 숙희씨와 밀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 딱…! ]
"아악!!"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며 돌에 얻어 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하다.
"이노무새끼가… 이민우. 어디 하늘같은 선생님의 존함을 함부로 지껄여?
고선생님. 애들 좀 꽉 조이십시오. 선생님이 너무 풀어주시니깐 이것들이 이렇게 기어 오르는 거 아닙니까."
고개를 휙 들어 올리니 봉구가 학급일지를 들고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서있다.
아효, 이 인간은 진짜 왜 나만 보면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지?
선생이고 학생이고 다 떼고 한 번 붙어봐, 아주?
그렇게 강봉구를 힘껏 노려보고 있는데, 숙희씨가 날 한 번 보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런다.
“그래도 애는 착해요.”
오호라, 숙희씨가 내 편을 든다. 봉구의 눈에서 번쩍 불꽃이 튄다.
“착하다니는요! 이놈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놈인 줄 아십니까!”
“내가 뭐가 극악무도합니까? 내가 애들 돈을 뺏은 적이 있어요, 줘팬 적이 있어요?
학교 통 치고 나처럼 죽은 듯 지내는 놈 있나? 그렇다고 다른 놈들 설치게 두는 것도 아니고,
이 근방에서 우리 학교처럼 조용히 어? 애들이 평화롭게, 안심하고 학교 다니는 데 또 있어요? 또 있습니까?”
“……”
봉구가 내 말에 헙! 하고 말문이 막힌 얼굴이다.
전부 사실이니까. 착하게 살려는 사람의 콧털을 왜 자꾸 건드나, 이 싸람아?
"강선생님 진정하시구요. 지금 수업 나가세요?"
"예? 아.. 예.“
그러면서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이는 강봉구.
어라? 얼씨구? 뭐지, 이 섬처녀 섬총각같은 시츄에이션은?
안 돼. 넌 못 줘. 넌 못 주겠다. 강봉구. …숙희는 절대 너 못 준다.
"그럼 그만 수업 나가보시죠, 선생님?"
그렇게 의자에 삐딱하니 앉아 시건방진 말투로 말해도 봉구는 콧바람만 씩씩 거릴 뿐 별 말을 못 한다.
평상시 같았으면 벌써 내 귀를 물어뜯어 놨을텐데.
눈앞에 숙희바라긔의 우윳빛깔 숙희씨가 앉아 있으니 말이다.
잠시 후 봉구도 사라지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딱히 되고 싶은 것도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
당연히 대학진학이고 뭐고 난 잘 모르겠다. 하고 내 의사를 숙희씨에게 전한 뒤 그대로 교무실을 나왔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뭐가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슬쩍 시계를 들여다보니 쉬는 시간까지 한 이십분 정도가 남은 거 같은데.
교무실과 같은 층인 선호의 교실 팻말이 보인다.
시간도 남는데, 어디 우리 둘째 공부 하는 것 좀 보고 갈까나.
그렇게 뒷짐을 지고 설렁설렁 고고한 조선의 선비처럼(응?) 선호의 반으로 향했다.
그렇게 복도 창문으로 안을 슬쩍 들여다 보니, 칠판에 뭔 영어도 있고, 한글도 있고, 숫자도 있고, 뭔 사진도 있고 (물리시간)
내가 저 나이 때 저런 걸 배웠던가.
교실의 절반 이상이 엎드려 자고 있다.
그 한 가운데 허리를 꼿꼿히 세운 채 수업을 경청하는 한 아이가 보인다.
그 모습을 흡족한 듯 보며 민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역쉬! 그라췌!
역쉬 우리 전교 부회장님. 훌륭해!
2분단 3번째, 한 마리의 고고한 학처럼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선호의 모습이 보인다.
저 녀석 역시 나를 닮은 것인가. 아하하하‥!
그렇게 다시 증세가 자연스럽게 자뻑으로 이어지려던 찰나,
…잠깐.
뭐지? 저 녀석 얼굴이…
[ 쾅…! ]
그대로 교실문을 부실 듯 열어젖히고 교실로 들어선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있거나, 한창 딴짓 중이던 녀석들이 화들짝 놀라 일제히 나를 본다.
교탁 앞의 여선생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너,넌 3학년에 이민우 아니니?”
“……”
"수업 중에 이게 무슨 짓ㅇ…"
시끄러워.
여선생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스윽- 눈을 들여 한 번 노려본다.
그 시선에 여선생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문다.
교실 안은 술렁이다가, 이내 쥐 죽은 듯 엄청난 적막에 휩싸인다.
잔뜩 경직되어 있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는 선호에게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리곤 턱을 쥐고 그대로 들어 올린다. 아이에 입술이 터져있다. 턱에 피멍울도 보인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을 듯 역류하는 느낌이 온 몸을 휘감는다.
뿌득- 꾹 다문 입안에서 이가 갈린다.
“뭐야 이거.”
“형 왜 이래‥”
“어떤 새끼야.”
“왜 이래, 진짜, 나중에 얘기‥”
“말 해. 어떤 새끼야.”
고함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아이들이 하얗게 질려 뻣뻣하게 굳어있다.
당황한 교사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너.너 이게 무슨 짓이니! 당장 교실에서 나가지 못해?”
“형, 좀‥ 이러지 좀 마.”
선호의 얼굴에 곤란한 빛이 역력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삭히려면 놈을 찾아야 한다.
“내가 직접 찾아내? 그럼 일 더 커지는 거 알지, 너.”
“형‥아무 것도 아냐, 그냥‥”
“잡소리 까지 말고, 말 해. 어떤 새끼야.”
넘어졌다는 둥, 긁혔다는 둥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그냥 말해라, 이선호.
나 지금 눈에 보이는 거 없으니까.
그 언젠가 김동완이 그랬다.
- 넌 좀 동생들한테 집착이 심한 거 같다. 이민우.
- 집착은 뭔 집착. 동생들한테 그 정도 신경도 안 쓰고 사냐, 그럼?
- 그래도 과잉보호이긴 하지.
- 그렇지, 정혁아? 문정혁이 이럴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니냐.
너 좀 심해. 그냥 또래 아이들처럼 형제끼리 적당히 싸우기도 하고,
적당히 무관심하기도 해. 넌 형이지, 아버지가 아니잖아.
너흰 우리가 아니잖아. 그래서 모르잖아.
우리 애들은 형이 있고, 아버지가 없잖아.
그러니까 내가 형이고, 내가 아버지야.
내가 그 자리 채워 줘야 해.
누구도 우리 아이들 상처 주지 못 하게.
새 엄마가 오기 전까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혼자라는 마음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절대 그런 아픔은 느끼게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제가 그랬어요."
교실 아이들의 시선이 나보다 먼저 돌아간다.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맨 뒷줄에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작게 웃으며 날 바라보는 녀석이 보인다.
저 새끼 이름이…… 그래, 전 진.
"내가 이선호 때렸다구요. "
“……”
알았으니까 입 닥치고 있어.
곧 다시 '제대로' 만나 줄 테니깐.
목표물은 찾았다.
더 이상 이곳에 볼 일은 없다.
"수업시간에 죄송합니다. "
그렇게 꾸벅 여선생한테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왔다.
손끝에 힘이 실리며 천천히 주먹이 쥐어진다.
전진이라… 오늘 하루, 기대해라.
경거망동의 대가라는 게 얼마나 이가 갈리는 건지,
내가 직접 보여주마.
"너 미쳤어? 이민우가 누군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옆에 앉은 짝꿍 놈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그런다.
지가 쳐맞는 것도 아닌데 왜 지가 벌벌 떨면서 이 지랄이야.
“너 몰라? 이 동네에서 이선호 건드리는 건 자살행위야. 이민우 한 번 꼭지 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무심히 듣다 고개를 돌려 슥 웃으며 그랬다.
“알아.”
“안다고…?”
알지. 이민우가 누군지.
그리고 이선호가 이민우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것도.
이선호가 마치 그들의 성지와도 같다는 것도.
이선호를 건드려야 이민우가 움직이고,
이민우가 움직여야 김동완이 움직이고,
그들이 움직여야 겨우… 문정혁이 움직인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지금, 아주 많이 기대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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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펼쳐지긴,
너는 내 기억에 아주 많이 쥐어터지게 된단다. 진아^^
아무쪼록 모두 즐거운 시간 되셨기를 바라며 ♡
또 만나요, 애정합니다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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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님 코멘트 ㅋㅋㅋㅋㅋ ~ ♡
저 착각하는건 언제 봐도 웃긴 것 같아요 ㅎㅎㅎ
나...나..못살아요진짜 사유님때문에ㅠㅠㅠ
과장님옆자리에떡하니앉아서는
사유님글보면서키득키득거리고
빵터질뻔한걸입술꾹물고참고ㅜㅜㅜㅜ
이러다입술다터지겠네^^
다시 봐도 정말 재밌어요ㅎㅎ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사유님 코멘에 육성으로 웃음이 빵ㅋㅋㅋㅋ
미지공 미지왕 컵흘 완전 내 타입이어요 ㅋㅋㅋㅋㅋ 셩님 톡톡 사이다같은 맛이 ㅋㅋ 물망초셩과는 다른 매력이 있네요 ㅋㅋ 조선의 선비드립 나올 때 마다 미치겄어요 ㅋㅋㅋ
청불이 2012버전이 나왔군요!! 아 너무 재밌게 읽고있어요!!!+_+
원래 숙희씨랑 민우랑 봉구쌤이랑 얘기할때 민우가 교무실나가면서 숙희씨,꽉 봉구쌤말대로 꽉 조여줘ㅡ뭐이런대사가있지않았나요?ㅋㅋ다음편인가ㅋㅋ십년간하도반복해읽었더니ㅋㅋㅋ그림이펼쳐지는느낌ㅋㅋㅋ
우리 미지공씨 성격이 완전 맘에 들어요ㅋㅋㅋ 사유님 소설의 막내오빠는 항상 불가침의 꽃망울같고, 미지공씨는 도도한 여왕님이고, 오빠얌은 멋있고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지막 코멘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주옥같네요 정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 기억에서도 진이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지공 미지왕씨네요♡♡♡♡♡♡♡♡♡ㅋㅋㅋㅋ
혜성오빠 바뀐 캐릭터 좋아요ㅋㅋ
미지공 미지왕...? 흠.... 잘 모르겠지만 ㅎㅎ
사유님 소설은 항상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