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윈스턴 / George Winston 1949년, 미시건주에서 태어난 조지 윈스턴은 전미 각지를 전전하던 끝에 캘리포니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1967년부터 일렉트릭 키보드로 연주해 왔는데 '71년에 위츠 위러의 피아노연주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어쿠스틱으로 전향하여 시정이 넘치는 독자적인 사운드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1년후에 타코마 레이블에서 '피아노 솔로즈' 라는 타이틀로 데뷔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 후 한동안은 세상에 나올 찬스가 없었으나 1980년에 윌리엄 아커만에게 발탁되어 윈덤힐에서 제 1탄 'Autumn'을 발표하여 절찬을 받았다. 계속하여 등장한 'Winter into Spring' , 'December' 와 아울러 북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자연의 정경을 멋지게 묘사나 청초한 사운드 스케치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 3매의 앨범은 미국 전역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현재도 롱세일을 계속하고 있다.
유키구라모토 / Yuhki Kuramoto 1951년 일본의 사이타마현 우라와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적인 재능을 발휘하였다. 학창시절에는 라흐마니노프와 그리그 등의 피아노 협주곡에 심취하여, 아마추어 교향악단에서 독주자로 활동하는 등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그러나 그가 일본의 명문 도쿄공업대학 출신이며 응용물리학 석사라는 사실은 다소 의외이다. 석사학위를 받은 후 음악가와 학자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음악가의 길을 택했고, 피아노 연주는 물론 클래식 작곡과 편곡 그리고 팝 음악 연구에 몰두했다. 전문음악가로서 클래식, 대중음악, 가요에 이르기까지 그의 폭넓은 관심과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첫 피아노 앨범 <Lake Misty Blue>를 발표하였는데, 수록곡중 '루이즈 호수(Lake Louise)'가 크게 히트 하면서 데뷔에 성공했다. 그의 기품 넘치는 부드러운 멜로디의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곡들은 지극히 세련된 절제와 감정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리리컬한 가운데서도 적절한 기복을 담고 있어서, 듣는 이들을 기분좋은 평온한 세계로 이끌어 준다.
데이비드란즈 / David Lanz 데이비드 란츠는 미국 시애틀 출생이고,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4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70년대에 캐나다의 록 그룹 브라만(Brahman)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그후 여러 록 그룹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자극적이고 비 정서 적인 사운드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다시 피아노의 건반과 마주하였다. 오랜 외도를 끝내고 피아노 앞에 돌아온 그는 신명과 정열을 바쳐 완성한 첫 앨범 'Heart Sounds'를 1983년에 출반하고 뉴 에이지 아티스트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였다. 정열이 넘쳐 다소 거친 느낌을 주는 데뷰작에 이어 1984년에 'Nightfall'를 발표했고, 이 앨범은 데뷰작과 함께 그가 발표한 초기의 걸작으로 자리를 잡았다. 1985년, 그가 소속한 나라다 레코드의 대표적 아티스트의 한명인 마이클 존스와 함께 조인트 앨범 'Solstice'를 발표했다. 그는 이 앨범에서 스코틀랜드의 민요 'Green Sleeve'와 조지 윈스턴의 앨범 'December' 에도 수록된 'Improvisation On A Theme, Adapted From Pachelbel's Canon In D Major'를 연주하여 호평을 받았다. 계속해서 동년에 네번째 작품집 'Natural States'를 폴 스피어와 함께 출반한 그는 꾸준한 작품활동과 연주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축적하였으며, 1988년에는 'Cristofori's Dream'을 내놓아 뉴 에이지앨범 차트에서 무려 21주간이나 정상을 차지하는 대중적인 빅히트를 기혹한다. 동명 타이틀곡이 걸작이란 평을 얻었고, 그룹 프로콜 하럼의 대표작 'A Whiter Shade Of Pale'은 그룹에서 키보디스트를 맡았던 매튜 피셔가 직접 가담하여 원작의 정신을 살린 작품으로 인기를 모았다. 1990년에 발표한 후속타 'Skyline Firedance'는 무디 블루스의 'Nights In White Satin'의 원작의 장중함과 애석함을 그대로 표현했고, 동명의 싱글과 'Dark House', 그리고 2월의 내한공연도중 들었던 도깨비에 대한 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Masque Of Togaebi(도깨비의 가장무도회)'가 인기를 누렸다. 뉴 에이지가 군소 장르의 영역에서 벗어나 일반화된 80년대 후반에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데이비드 랜즈는 피아노를 도구로 사용하여 음악세계를 정립한 아티스트이다. 작곡가로서도 안정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그는 정선되고 짜임새가 좋은 일련의 작품들로 뉴 에이지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류이치사카모토 / Ryuichi Sakamoto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일본식으로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는 1952년 1월 17일 일본의 나가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비틀즈 에서부터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이러한 취향은 현재의 그의 음악을 규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열한 살 되던 해인 1963년 동경 예술대학의 마츠모토 교수에게서 클래식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후 1971년 그는 동경예대에 입학해 작곡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고 이어 전자 음악과 민속 음악 작곡으로 석사 학위까지 따내게 된다.1977년, 그는 마침내 일본 정상의 뮤지션들-록에서 재즈, 클래식까지 망라한-과 함께 작곡가, 편곡자, 스튜디오세션 등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체계적으로 쌓은 음악 지식을 바탕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작자 겸 편곡자, 키보드 주자로 뛰어난 활동을 보여주게 된다. 1978년에는 첫 솔로 앨범인 Thousand knives를 발표하고 이어 하루오미 호소노, 유키히로 다카하시 등과 함께 3인조 테크노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하는데 이들의 2집 앨범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고 이어 월드 투어까지 하는 등 인기를 누렸고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테크노 팝의 선구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 당시 사카모토의 관심사는 재즈, 보사노바, 모던 클래식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닿아 있었는데 이러한 그의 취향은 그 후의 음악 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5년여 동안 수많은 앨범을 내놓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YMO는 팝 음악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는데 사카모토는 솔로 활동을 위해 1983년 그룹을 탈퇴하고 - 이 그룹은 1993년에 재결성 앨범 Technodon을 발매한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시작으로 영화 음악 작곡가와 월드 뮤직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당시 그는 월드 뮤직 아티스트인 유수 운두르(Youssou N'dour)를 비롯해 이기 팝, 데이빗 보위, 데이빗 번등과 함께 음악을 하기도 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음악을 만들고 직접 지휘까지 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가 명성을 날리게 된 계기는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에 가담한 것이었다. 배우로도 참여한 이 작품에서 영화 음악을 맡은 그는 1988년에 오스카상, 그래미 상, 골든 글로브 상 등을 석권하며 기염을 토한다. 영화 음악가로서의 그의 위치는 매우 확고하다. 이미 위에 언급한 베르톨루치 감독과 <마지막 황제>와 <리틀 부다>에서 호흡을 맞췄는가 하면 올리버스톤(Oliver stone)과는 <Wild Palms>에서, 페드로 알모도바 (Pedro Almodovar)와는<High Heels> 에서 각각 함께 작업을 하는 등 유명 영화 감독들이 그를 초빙해 음악을 맡길 정도로 지명도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카모토이지만 그의 욕심은 한이 없어 보인다. 흔히 '작곡가'들, 특히 클래식이나 인스트루멘틀 작곡가들이 지닌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분야에서도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 음악 작곡가 이외에 편곡, 프로듀서 등 음악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영화<Merry Christmas Mr Lawrence> 에서 역시 뮤지션인 데이빗 보위와 함께 출연했고, <마지막 황제>에도 얼굴을 내미는 등 영화 배우로서의 활동을 펼쳤다. 또한 마돈나의 뮤직 비디오 <Rain>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1982년엔 철학자인 쇼조 오모리와 함께 <Watching Sound, Listening To Times>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한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 쇼에 모델로 나서는가 하면 유명 잡지의 남성복 모델로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85년엔 스쿠바 과학 박람회에서 멀티 미디어 쇼를 선보이는 실험적 시도도 해 보이고 있다. 작품으로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마지막 황제>,<끝없는 사랑>,<리틀 부다>,<하이힐><폭풍의 언덕>, <스네이크 아이>,<철도원>
앙드레가뇽 / Andre Gagnon 1942년 캐나다 퀘벡주에서 태어나 4살에 피아노를 시작하였고 피아노, 화성,작곡 등 정통 클래식음악 교육과정을 거친 후 파리로 건너가 명 교수들을 사사하였다. 청년기의 가뇽은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 모짜르트의 음악을 주로 연주하였는데 지금의 가뇽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 것은 모짜르트의 영향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1974년은 앙드레 가뇽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와 같은 중대 시점으로 고전리듬에서 벗어나 앙드레 가뇽만의 트레이드 마크인 현대적 연주 스타일이 드러나기 시작한 음반 Sage를 내놓은 해이다. 이것은 첫 앨범 이후 오케스트라, TV주제곡 등 6장의 LP음반과 1장의 베스트 앨범 그리고 연주자로서 12장의 앨범을 낸 후였다. 앙드레 가뇽 스스로 내 어린 시절의 회상이라고 부르는 앨범 Neiges(1975)는 캐나다를 비롯 전 세계적으로 30만장의 판매를 기록하였다. 1983년에 발표한 그의 13번째 앨범Impressions은 그의 고향인 캐나다에서 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호응을 얻어 발매 1달만에 7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를 (당시 일본에서 피아노 연주음악 음반 판매량으로는 기록적이었다.) 기록하였다. 이 음반이 바로 가뇽 스타일을 선보인 첫 번째 앨범이었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의 국내 첫 앨범 Monologue가 소개된 이후 크고 작은 레코드 샾에는 피아노 음악 코너가 생겨날 정도로 음악 애호가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 가뇽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TV 드라마나 미니 시리즈의 메인 타이틀 곡으로 쓰인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CF광고인 'Let's Go' 와 같은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카페나 커피전문점의 음악목록에 가뇽의 음반이 들어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니뮤직의 1년 여에 걸친 발굴 작업과 앙드레 가뇽과의 독점 계약하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해외에서는 97년을 기하여 이미 300만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하고 어떤 뉴 에이지 계열의 피아니스트보다 더한 서정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앙드레 가뇽이 그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 앞으로 한발 다가서게 되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야니 / Yanni 뉴에이지계의 베토벤이라 불리워지는 야니는 그리스(Greece)의 칼라마타(Kalamata)에서 1954년에 태어났다. 따라서 2001년 현재 그의 나이는 48살이다. 본명은 Yanni Hrisomallis(Chrysomallis)이다. 신은 인간에게 두가지 이상의 재주를 주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야니는 어렸을 적에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활약하여, 14살때는 50미터 자유형의 국가 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영향에 의해 그리스의 전통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며 성장하게 된다.
케빈컨 / Kevin Kern 1997년 The Enhanced Garden 이란 첫 앨범을 낸 캐빈 컨은 피아노 솔로의 뉴 에이지 뮤지션이었지만 FM 방송 배경음악, 그리고 수많은 TV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 사용되었던 「IN THE ENCHANTED GARDEN」이 마침내 국내에 라이센스로 공개됩니다. 최근 KBS-TV [가을 동화]에 「SUMMER DAYREAMS」 수록곡 [RETURN TO LOVE]가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 앙드레 가뇽, 유키 구라모토, 조지 윈스턴..등의 비슷한 개열의 음악가들과 별 차이가 없어보여 크게 눈을 끌지는 못하였다.그의 음악 3집과 4집이 나오면서 그만의 독특한 세계가 조금씩 알려지게 된다. 그는 안드레아 보첼레나 스티비 원더와 같은 시각 장애인이라고 한다. 비틀즈를 가장 좋아하며 바흐의 음악에 많은 염감을 받고 있단다...
시크리트가든 / Secret Garden 지난 몇 년사이 우리와 너무나 친숙해진 시크릿 가든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팝 작곡가 Rolf lovland와 아일랜드 태생의 바이얼리니스트 Fionnuala sherry 로 구성된 듀엣 형태의 연주그룹이다. Lovland는 Sherry를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엔리오모리꼬네 / Ennio Morricone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1928년 이태리 로마에서 태어난 엔니오 모리꼬네는 싼토 쎄실리아 예술학교에서 트럼펫과 작곡을 공부한 작곡가이다. 졸업후 본격적으로 영화 음악을 시작하기전 그는 여러가지 실험적인 음악을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팝 레코드들을 어렌인지 하기도 했다. 그는 동문수학한 세르지오 레오네와 작업을 함께 하며 점차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이들은 64년 영화 "A Fistful Of Dollars"라는 서부극을 시작으로 웨스턴 장르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모리꼬네는 당시 기존의 헐리웃 영화계가 마치 정석으로 여겼던 전통적인 작곡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휘파람 소리를 비롯, 차임, 일렉트리 기타, 하모니카 등을 동원 새로운 스타일의 서부 영화음악을 만들어 냈다. 특히 "달러스 3부작" 이후 오늘날까지 마카로니 웨스턴 무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Once Upon A Time In The West"를 비롯 금주법 시대의 미국의 갱스터 사회의 의리를 그린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 이르기까지 레오네의 거의 모든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중 69년의 "시실리안"이 유명하다. 여러 악기들 중에서도 하모니카의 일종 악기를 이용한 그의 음 표현 방식은 아련한 추억을 연상시키는 작용으로 승화되어 관객을 사로 잡았다. 또한 냉냉한 건반음으로 비정한 남자들의 세계 저 밑바닥에 흐르는 따스한 인간미를 마치 숨길수 없다는 듯이 표출하여 감동을 안겨준다. 그는 86년 영화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미션"의 음악으로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으며, 87년에는 "언터쳐블"의 음악을 맡아 호평 받았다. 지금도 그는 본국인 이태리와 헐리웃을 오가며 영화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석양의 무법자>,<황야의 무법자>,<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미션>,<언터쳐블>, <시네마 천국>,<햄릿>,<벅시>,<시티 오브 조이>,<사선에서>,<러브 어페어>,<울프>,<로리타>, <리전 오브 1900>,<미션 투 마스>
케니지 / Kenny G '섹소폰의 마술사', '섹소폰의 연금술사'. 10여년의 짧은 음악 활동으로 KENNY G는 이렇게 불리워 진다. 그는 감미로운 멜로디와 풍부하면서도 포근한 감성, 현대적인 연주 기법등으로 소프라노 색소폰 음악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92년 말에 발표한 최신작 [BREATHLESS]또한 그의 이러한 매력을 모두 담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지금의 KENNY G를 탄생시켰는지 색소폰에 담겨 있는 성공적인 이야기 상자를 풀어보기로 하자. KENNY G는 1957년 워싱톤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케네스 고어릭(Kenneth Gorelick) KENNY G의 'G'는 본명에서 딴 이니셜인데, 1982년 첫 앨범을 발매하면서 친구들이 항상 그에게 "G-man"혹은 "G"라고 불렀기에 지금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KENNY G가 처음으로 색소폰을 불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던 10살 때인 1967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에드 셜리반 쇼"를 보던 중 한 색소폰 연주자의 실제 연주를 본 후 어머니를 졸라 알토 색소폰을 구입한 때 부터이다. 청년기를 거치면서 감정을 잘 다듬는 음악을 표현하려고 많은 기회를 얻게 되는데, 시애틀의 "프랭클린 하이스쿨 재즈밴드"에 참여하면서 1974년엔 유럽순회연주를 한다. KENNY G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갖게 하는 행운이 17세에 오는데, 당시 시애틀에 순회 공연을 위해 온 흑인 음악의 거장 배리 화이트(Barry White)의 공연에 사흘간 게스트로 참가, 솔로연주를 하여 학교 밴드의 일원에 불과한 그에게 프로뮤지션이 되도록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KENNY G는 워싱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대학 재즈밴드에 합류하였는데, 감독관인 로이 커밍스(Roy Cummings)는 그에게 찰피 파커, 존 콜트레인, 소니 롤린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게 하여 음악적인 재질을 갖게 하였다고 회고한다. KENNY는 또한 "Cold, Bolk &Together CC-BT"라는 흑인 펑크밴드에 가입, 소울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이 기간 중 자니 마티스, 새미 데이비스Jr., 스파이너스, 다이안 캐롤 등 리듬 앤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세션 활동에도 참여하게 된다.(1974년~1978년 사이) 대학 졸업 당시 서북부에 위치한 절친한 친구들의 펑크밴드"Pleasure"멤버 하나가 제프 로버(JeffLober) 와의 연주를 취소했을 때 KENNY의 이름이 제프 로버의 관심을 끌게 되고, 둘은 의기 투합하여 전미 순회 공연을 하게 된다. 순회 공연이 끝날 때마다 KENNY에 대한 반응은 대단한 것이었고,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사의 사장 클리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눈에 띄어 첫 앨범 제작에 돌입하게 된다. 데뷔 앨범 [KENNY G]의 특징은 발라드 곡 <Tell Me>를 포함하는 그 다양성에 있었다고 KENNY는 말한다.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신시사이저 연주곡 <Step And Go>, <Mercy, Mercy, Mercy>로 가볍고 흥겨운 비트가 가미된 현대적인 재즈 펑크의 독특한 매력을 연출해 주며, 그룹 이글즈의 발라드 곡을 리메이크한 <I Can't Tell You Why>에선 무드있는 편곡을 선보인다. 앨범 [KENNY G]는 빌보드 재즈차트 10위까지 올랐던 앨범으로 이후 가장 촉망받는 색소폰 연주자로 평가되었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다음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흑인 아티스트 카쉬프(Kashif)를 만나게 되어 두 번째 앨범[G-FORCE]의 실질적인 프로듀스를 그가 담당하게 되었고, 3집인 [GRAVITY] 에서도그와 함께 음반 작업을 같이 하기에 이른다. 2집 [G-FORCE]는 리듬 앤 블루스 앨범이라고 할만큼 흑인 음악의 짙은 배색이 깔린 앨범이며, [GRAVITY]에서는 펑크/재즈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정제된 음악 구성을 보인다. 한편 수록곡 중 <Love On The Rise>는 KENNY G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뉴욕을 활동 무대로 좁게 느낀 KENNY는 LA로 향한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과 휘트니 휴스톤의명프로듀서인 나라다 마이클 월든과 프레스턴 글래스를 맞아 대망의 앨범 [DUOTONES]를 86년 중반에 발표한다. 어느 한편에 치중하지 않고 리듬 앤 블루스, 재즈, 전통과 진보, 분위기를 자아내는 악기 연주곡들과 보컬곡들이 적절히 융합되어 있다. 색소폰의 포근한 연주가 다른 악기들과 대비되면서 마치 수묵화를 감상할 때 느끼는 연주곡 <Songbird>, 여가수 샤데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곡<Sade>, 새로운 음의 영역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한 디지털 윈드 콘트롤러(Digital Wind Controller)라는 일종의 신시사이저와 색소폰의 합주가 곡 전체에서 펼쳐지는 <Three Of A Kind>, 신낭만주의적연주로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배어 있는 <Midnight Motion>, 도시풍의 리듬 앤 블루스곡인 <WhatDoes It Take(To Win Your Love)>는 앨리스 폴의 세련된 보컬이 담긴 팝넘버이다. 첫 싱글인<What Does It Take>가 평범한 인기를 거두었지만, <Songbird>는 1987년 7월 11일자 싱글 차트4위에 오르며 재즈 뮤지션이 아닌 팝스타로서 KENNY G의 인기를 상승시킨다. 또한, 앨범 또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4백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다. 또한,<Don't Make Me Wait For Love>가 싱글 차트 Top15에 기록되어 그칠 줄 모르는 인기를 얻고 본작은 빌보드 지에 의해 "Jazz Album Of The Decade"로 선정되었고, KENNY G 또한 80년대의 "Jazz Artist Of The Decade"로 선정되는 커다란 영광을 누리게 된다. 87년은 KENNY G의 인생을 바꿔놓은 어느 여인, 즉 지금의 부인이 된 린디(Lyndie)에 대한 진실한사랑을 그린 <Songbird>는 국내 팬들에게도 크게 어필하여 '영원한 KENNY G'로서의 위치를 국내 무대에도 다지게 한다.
브라이언크레인 / Brian Crain 헐리우드에서 태어난 브라이언 크레인은 어려서부터 한가지 버릇이있었다. 그것은 휘파람을 부는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만들어낸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었다. 이 사실은 그가 어려서부터 작곡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원래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그는 그 꿈이 실패로 돌아가자 가족의 권유로 작곡으로 전향하게 된다. 그가 작곡해두었던 몇 가지 곡을 시범적으로 CD로 브라이언 크레인의 음악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또는 상실한 우리의 자연성을 되찾아 주는 그런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브라이언 크레인의 장점은 그의 음악에 아름다운 멜로디와 우리의 정서가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스티브 배러킷 / Steve Barakatt 스티브 바라캇 (Steve Barakatt)은 1973년 5월 17에 캐나다 쾨벡주의 음악을 사랑하는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갓 네 살이었을 때 스티브는 음악에 매료되었고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그 후 10년 이상을 클래식 음악과 재즈에 이르는 음악 공부를 하였다. 열 세 살이었을 때 쾌백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솔로 협연을 하였으며 10대 때부터 작곡, 편곡 등에 재주를 보였다. 그는 새로운 음악적 기술을 배웠고 모든 음악 프로그래밍을 완벽하게 마스터하였다. 1992년 그의 재능을 인정되어 일본 음악 기기 회사인 롤랜드(Roland) 가 그를 캘리포니아 아나헤임에서 열린 신상품 전시에 초대하였다. 1997년 스티브는 캐나다의 팝가수인 나타샤 세인트 피어(Natasha St-Pier)의 앨범과 스티브 자신이 작곡한 "Sans le savoir"가 캐나다 라디오 차트 탑5위까지 올랐으며 그의 뮤직 비디오도 캐나다 MTV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1997년 그는 캐나다 가수 Johanne Blouin에게 "C’est une promesse"과 아르헨티나 남자 가수 Guillermo Saldana를 위해 "En la arena"를 작곡해주었다. 홍콩에서도 많은 유명 가수들이 그에게 작곡의뢰를 했는데 1995년에는 Kelly Chen, Joyce Yau, Daniel Chan,Ray Chan 네 명이 부른 "Mou Tian"을 작곡해주었고, 1996에는 듀엣곡 "Song Of Stars"을 알란 탐과 여명에게 선사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명을 위해서 "Fell Leon" 앨범의 "Ni Shi Shui"라는 곡을 작곡해주었다. 1999년에는 Yoko Oginome는 스티브 바라캇 작곡의 "We’ll Be Together"를 불렀는데 이 노래는 일본 NTV 네트웍 TVSHOW 인 "Shitteru Tsumori"의 메인 테마로 사용되었다.그리고 일본에서 스티브는 "Kaze To Kino Uta-Quebec 1608(바람과 나무의 노래 쾨벡 1608)을 작곡하였으며 이 노래는 일본 가수 Sincere가 불렀다. 최근 한국 KBS와 일본 NHK가 공동제작하였고 윤손하가 한국인 여가수로 등장하는 [もう一度キス]라는 드라마에, 200년 11월에 발매된 음반인 "A love affair"의 세 번째 트랙 'Nuit d'amour a paris'가 주제곡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콘서트를 가졌으며 2000년에는 일본에서 오끼나와에서 도쿄로 이어지는 전국 투어를 진행하였다. 한국에서는 최근 스티브 바라캇의 네 개의 앨범에서 곡들을 추린 베스트 앨범을 명음에서 선보인 바 있다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