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학에서 가장 존경받는 외국인"으로 알려진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선교 방법론에 큰 가르침을 남겼다. 그의 사역은 하나의 좋은 실험으로 이해된다. 때는 16세기 말, '예수회' 소속 선교사인 이탈리아 사람 마테오 리치에 의하여 중국 기독교는 영구적인 기반을 갖게 되었다.1) 어떤 선교방법론이기에 그런가?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논의할 현대 선교 신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상황화' 혹은 '현장화'의 초기형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 도착하여 처음에는 불교 승려의 옷을 입고 전도하였다. 현지 문화를 섵불리 판단한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치는 중국 문화의 실체가 유교임을 알아차리고 변신을 시도했다. 마태오 리치는 스스로 유학자의 관을 쓰고 유학자의 옷차림을 하였다.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하여 일종의 '복음의 중국 토착화'를 시도하였다. 만력 황제에게 설교하기를 "하느님이란 바로 당신들이 일컫는 천자라는 것을 하느님은 일찌기 공자와 맹자, 옛날 군왕들에게 계시하셨나이다. 우리가 온 것은 당신들의 성경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옵고 다만 그것을 보완하려는 것뿐이올시다"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중국 선비들이 기독교 관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가교를 제공한 셈이다. 마테오 리치는 소위 '유교를 보완'하고 '유교와 결합'하여 '유교를 초월'하겠다는 자기의 주장을 실행하기 위하여 1595년 남창에서 「천학실의」(天學實義)란 책을 판목에 새겨 유가사상으로 기독교 교의를 논증하려 하였다.2) 이렇듯 선교 현지의 유교 문화를 존중하는 마태오 리치의 선교방법론은 많은 중국인이 복음을 향한 마음 문을 열게 하였으며 그 결과 개종자의 수가 늘어났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 개종자들이 기도를 하면서 드리는 제사도 허락하였다. 그는 다만 제사가 죽은 조상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일 뿐이라고 강조하였다.3)
1611년 마태오 리치가 죽음을 맞기까지 상당히 많은 수의 학자들과 관리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 중의 한 명이 폴 슈(Paul Hsu)인데 그는 중국의 가장 저명한 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한림원의 학사였다. 그는 진실하게 믿었고 그의 신앙을 그의 자녀들에게 물려주었는데 몇 대에 걸쳐 그 기독교 신앙이 유지되었다. 그의 딸은 전문적인 복음 전도자의 훈련을 받고 시골에까지 가서 전도활동을 하였다. 다른 여자의 후손도 결혼을 통해 유명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한사람은 손문의 부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장개석의 부인이다. 비록 중국인의 개종자 숫자(약 2,000명 정도)는 전체 중국 인구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중국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7세기와 18세기에 간헐적인 핍박이 있었지만 기독교인의 수는 꾸준히 늘었다. 마태오 리치의 사망 후 반세기가 지난 즈음 기독교 인구는 마태오 리치 때에 비해 120배정도 성장하였다.4)
초대교회로부터 복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온전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까하는 기본 동기는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중요한 관심사로서 동일하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내가 이로써 기뻐하리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모든 세대의 복음 전도자가 따라야 할 자세이다. 문제는 타문화권 선교에서 복음이 오해되거나 왜곡되는 점이다. 따라서 21세기에도 여전히 복음과 문화, 신앙과 문화, 혹은 상황화로서의 선교는 당면한 문제로 대두된다. 어느 정도 복음이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하는가? 기독교 복음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도 타문화권에서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이 성공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이론이나 모델만 따라서는 불충분하다. 불변하는 복음이 전해지는 문화는 항상 변화의 과정에 있고, 어제의 상황화가 복음을 가두어 버리는 감옥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1세기 위대한 선교의 기회를 부여받은 우리 한국교회는 효과적인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하여 상황화 혹은 현장화에 대한 선교신학적 논의를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선교에 임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상황화의 전이해로서 지난 2000년 동안의 기독교 선교역사에서 상황화 이전의 문화적응 시도 혹은 상황화 유사 형태로 시도된 실험들을 용어 정리와 함께 고찰하고자한다. 그 다음에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상황화 신학의 이론을 모델로 소개하고, 분석, 비평한다. 이런 이론적 배경아래 우리 한국 교회 선교 초기부터 실천해온 상황화(현장화) 노력을 살펴보고 우리 한국 교회 선교의 방향성을 찾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슬람권 선교에 있어 상황화 시도들을 소개함으로써 한국 교회 타문화권 선교 가운데 이슬람권 선교에 새로운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2. 상황화란 무엇인가?
문화의 개념 정의가 어떠하든지 간에 문화를 논의할 때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과 가변성, 문화간의 차이와 갈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화의 속성 때문에 복음과 문화는 완결되기 힘든 "도상의 신학적 문제"이다. 아울러 상황화(현장화)는 신학적 지평에서 사라질 수 없는 계속해서 논의되어야 하는 선교신학적 주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상황화라는 용어 사용의 기원을 살펴보고, 상황화와 동의어는 아니지만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상황화 이전 단계의 용어와 그 내용을 실제 역사 경험과 함께 살펴봄으로 상황화의 의미와 과제를 좀 더 명확하게 찾아본다.
2.1 상황화라는 용어 사용의 기원
"상황화(Contexualization)"라는 단어는 70년대 초 교역을 위한 인간의 교육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WCC의 신학교육기금(Theological Education Fund)이 처음 사용하였으며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여러 신학적인 모델에 대한 총칭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중심 선교가 서구문명과 복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하나의 문화적 패키지로 전한 것에 대한 반발과 반성에서 상황화가 시대의 흐름을 탔다. 즉 이전까지의 선교가 복음의 수용자 문화에 대한 무지, 무시, 편견으로 특징 된다면 - 몇몇 예외적인 경우로 마태오 리치, 로베르토 데 노빌리, 알렉산더 로드, 진젠도르프, 빌헬름 등을 들 수 있지만 - 결국 이전까지의 서구 중심 복음화란 기독교화와 문명화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해결을 위한 시도로 새롭고 가장 많이 쓰인 용어는 상황화 (contextualization 현장화 혹은 맥락화 1971년에 사용된 말)5)와 문화화(inculturation 문화순응 1974년부터 사용된 용어)6)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서구 신학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제3세계 신학의 도전으로부터 제기된 것이다. 이전의 서구 문화중심주의적인 획일적인 기준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선포하고 문화와 종교의 다원화현상에 맞는 현장 중심의 신학, 지역 신학의 도래를 의미한다. 개신교에서 주로 쓰는 상황화의 정의는 "특정 지역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적인 기독교 진리의 빛 안에서 그 자신의 삶을 역동적으로 반성하고 숙고하는 것이다."7)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를 끊임없이 도전하고 재형성하고 변혁해야 하며, 문화를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놓이도록 해야한다. 각각의 문화권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때 자신의 사상과 문화적 선물을 사용함으로써 성육신으로서의 복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주로 카톨릭권에서 사용하는 문화화란 "신앙이 전달되는 문화 공동체가 가진 생활방식의 인식과 감정과 동기에 통합적 부분으로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역문화의 통합적인 부분이 되며 온전하게 기능하는 것으로서, 바람직한 것은 그 문화의 심장과 중심이 되어야 한다.8)" 1973년 방콕 세계교회협의회 세계선교와 복음화 대회 (WCC-CWME) 이후 진정한 신학이란 "특정 장소, 특정 시기에서의 기독교 공동체가 그들의 경험을 숙고하는 것으로서 신학은 본질상 상황화된 신학이다. 신학은 특정 정황에서 나오고 그 정황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기에 쉽게 보편화되는 것을 거부할 때 비로소 적절하고 살아있는 신학이 될 수 있다."9) 1975년 WCC 나이로비 총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한 신앙고백적 상황(contexts)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새롭게 되고 본래적인 것으로 된다 보았다. 1980년 CWME 멜버른 대회에 이어 1983년 벤쿠버 총회는 "새로운 에큐메니칼 의제"로서 문화에 대한 깊은 신학적 이해를 촉구했다. 이것은 문화적 다양성과 이 다양성의 삼위일체론적 원천으로서의 기독론적 중심성 사이의 조심스런 균형을 요구하는 제11차 CWME 살바도르 대회(1996)로 이어진다. 브라질 바히아 살바도르에서 열린 이 대회의 주제는 "하나의 희망으로 부르심: 다양한 문화들 속의 복음"이다. 이것은 1991년 캔바라 총회 때 시한폭탄처럼 WCC의 에큐메니칼 연합과 운동 자체를 위협한 문화적 다양성과 성령론 문제가 표출된 이후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신학적 일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과제를 인식한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살바도르 대회 결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교회 는 그가 서 있는 지역의 문화로부터 명백하게 구별된다는 것과 아울러 그 문화에 헌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30여년간 복음과 문화 문제는 에큐메니칼 경향 뿐만아니라 에반젤리칼 진영 선교학에 가장 의미심장한 선교학 주제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10)
복음과 문화에 대한 주제는 아직도 완결되고 통일된 해결이 없지마는 대략 다음과 같은 공동의 견해에 도달했다고 본다. 문화는 복음화와 지역교회의 신앙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화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문화를 통하여 나타난다. 선포와 예배와 제자훈련과 기독교 공동체 형성, 이 모두는 지역 토착 문화와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 이제는 콜럼버스식 선교, 십자군과 무력 선교, 식민지적 선교는 이 땅의 선교 현장에 설 자리가 없다.
상황화는 아직도 복음화가 안 된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는 가장 적절한 길로 인정된다. 복음이 전해졌으나 지역신학, 자문화신학이 계발되지 않은 교회에 시급한 과제로 현지 교회를 도전한다. 복음은 문화로부터 명확하게 구별되며 동시에 문화에 대한 헌신을 요청한다. 동시에 우리가 선교 현장에서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은 "복음과 문화에 대한 관계를 어떻게 규명하는가"가 아니라, 문화의 감옥에 갇히지 않은 "복음이 어떻게 문화를 해방하고 변혁하며 새롭게 하는가"이다.
2.2 상황화 이전 단계의 용어와 역사적 경험들
상황화란 용어가 복음과 문화에 대한 선교학적인 주제를 드러내는 가장 대중적인 용어로 정착되고 있지만 이미 적응, 차용, 사회화, 토착화, 지역신학 등 다른 용어들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 용어들의 공통점은 복음이 전해질 때 토착 문화(상황)에 더 깊게 뿌리를 내리며 토착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복음으로, 기쁜 소식으로 들려지고 생활화되게 하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
1) 적응(Accommodation/ Adaptation)
선교사가 사역현장에서 선교사와 현지 사람들간의 간격을 줄이기 위하여 자신의 사고, 말, 태도를 현지 백성들의 삶의 양식에 맞게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사도행전 15장 1-29절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가 판결한 사건이다. 이방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는 데 유대 율법인 할례와 안식일 준수가 필수적인가 아닌가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결론적으로 바울의 말과 같이 할례는 마음에 받아야 할 것이요 안식일 대신 주일 성수를 가르쳤다.
본격적인 영국 선교시기를 연 교황 대 그레고리(Gregory the Great)는 "바울의 시대 이후로는 처음보는 주의 깊이 계획되고 계산된 선교 사업"11)을 시도하였다. 590년에 남영국에 도착한 선교사 캔터베리의 어거스틴은 교황에게 선교지의 옛 관습과 축제일과 예배처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문의했다. 601년 7월18일자로 된 그레고리의 편지는 적응의 원칙에 대한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본보기로 간주된다.
그 백성들의 이교 신전들은 파괴할 필요가 없으며, 그 안에 있는 우상들만 파괴하면 된다...... 만약 그 신전 건물이 쓸만하면 잡신 예배와 분리시켜 그것을 참된 하나님의 예배에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 사람들은 잡신들에게 제사를 바칠 때 황소들을 많이 죽이는 것이 습관되어 있으므로 그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축제일을 마련해 주는 것이 온당하다. 잡신을 위해서 소를 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먹이기 위해서 잡는 것이란 점을 알게하라. 그들이 먹고 배부르게 되면 모든 선한 것을 주시는 분에게 감사를 돌리도록 하라. 우리가 그들에게 이와 같은 외면적인 기쁨을 허락해주면 참다운 내적 기쁨으로 나아오는 그들의 일도 또한 더욱 수월해 질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이 한걸음에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 발자욱 한 발자욱씩 차근 차근 올라가거니와 이와 마찬가지로 거친 심령들의 모든 악습들을 대번에 근절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12)
16세기 카톨릭 선교시대로부터 20세기 토착화, 상황화 논의가 나타나기까지 적응에 대한 여러 예들이 있다. 로마 카톨릭 선교사와 학자에 의해 사용된 이 말은 복음 전파자가 선교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 즉 현지 사람들의 옷, 머리 모양, 생활 방식등을 모방하여 복음전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마테오 리치(1552-1611)의 선교방법론이 바로 이 적응에 해당한다. 인도 선교사로서 획기적인 사역을 보여준 로베르또 데 노빌리(Roberto De Nobili 1577-1656)의 방법도 이 적응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현지 문화로 수용하고 브라만 계층의 의복, 신발, 치장, 음식, 숙소 등 모든 것을 힌두 문화에 맞게 자신을 적응시켜 복음을 전하였다. 힌두적 생활의 극단적 수용으로 인하여 그의 예수회 선임 선교사인 페르난데스 신부와 다른 선배들과 심한 갈등을 야기하며 마침내 로마 교황청에 까지 비화되어 결국 큰 논쟁으로 바티칸 심문을 받고 선교가 중단되는 사태로까지 발전되었다.
로베르또 데 노빌리의 선교원칙은 다음과 같다. 카스트의 제한적인 제도성을 수용할 것이며 그 어떤 사회적 관습이나 개념을 거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선교본부에서 이사나와 브라만들이 모여사는 동네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머리털을 조금만 남겨두고 모두 잘라버렸다. 그는 타밀어만 사용했고 브라만 출신의 요리사와 집사를 고용했으며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다른 모든 브라만들처럼 그는 하루 한 끼의 식사만 했다. 그는 자신이 늘 입고 다니던 검정색 성직복과 가죽 신발을 벗어버리고 사프란으로 만든 긴 의복과 나막신을 신었다. 가죽 신발도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마가 노출된 것을 가리기 위해 그는 힌두교의 구루 혹은 스승을 상징하는 백단의 표식을 그려 넣었다. 그는 자신을 사제라 지칭하지 않고 산냐시(sannyasi), 즉 인도의 성인이라고 불렀다. 점차적으로 그는 브라만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잠시 동안 브라만으로서의 지위를 나타내는 명백한 표식인 어깨에서 허리로 걸쳐 내려오는 솜으로 만든 새끼줄 세 가닥을 감고 다녔다. 그는 매일 목욕을 했으며 미사를 집례하기 이전에 자신을 정결하게 만드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노빌리의 사역으로 첫 번째 개종자가 생겼다. 그의 선임자를 기념하여 '알베르토'라는 세례명을 준 수드라 계급의 교장 선생님이다. 1608년 그의 마두라이 도착 이년 째 되던 해에 약 10명의 브라만 청년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1609년 브라만의 산스크리트 학자이며 노빌리에게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산스크리트어로 가르친 시바달마를 개종시켰다. 1609년 말경 노빌리는 약 60여명의 브라만 개종자들을 모으게 되었다.
가히 혁명인적인 노빌리의 선교방법론으로 인해 예수회 선교사들간에 옹호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지고 마침내 교황청에까지 비난과 고소가 들어갔다. 약 5년동안 지속된 선교논쟁이 드디어 1617년 교황 바울 5세는 그다음 해 2월에 고아에서 회의를 개최하도록 허락했다. 1618년 20여명의 신학자들과 사제들이 참석했으며 2명의 교황 심문관도 참석했다. 이들에게 로베르또 데 노빌리의 선교사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책임이 주어졌다. 뜨거운 논쟁이 오갔고 모든 토론이 매듭지어졌으며 마침내 결정이 내려졌다.13)
교황 심문관 1명, 다른 대표 2명, 그리고 노빌리 자신 모두 4명이 옹호하고 나머지 16명은 반대하여 노빌리의 선교방법론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5년후 새 교황이 들어서 노빌리 선교방법론을 찬성하여 규제를 해제하여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다.14) 노빌리는 79세 때 사역지 마드라스 근교에서 죽었다. 그가 죽을 때 소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빌리는 죽었으나 지금 인도에서 그의 사역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카스트 제도처럼 엄연히 살아있다. 1605년 노빌 리가 남인도에 도착했을 때 단 한명도 개종자가 없었다. 그가 죽기 2년전 1654년에 기독교인이 4,183명이었다고 한다. 노빌리 문제는 인도교회의 문제이다. 노빌리에 대한 자료와 기념관은 마드라스 시내에 있는 예수회 대학교 '사비에르 칼리지'에 소장되어 있다.
2)사회(학습)화 (Enculturation)
사회화 혹은 사회학습화란 이 말은 사회학, 인류학, 교육학에서 쓰는 말이다. 한 개인이 동일 문화권 안에서 학습을 통하여 문화를 전수 받고 동화되는 과정을 말한다. 쇼트에 의하면 한 개인이 자기 문화에 적응하는 문화적 학습과정이다. (the cultural learning process of the individual, the process by which a person is inserted into his or her culture).15) 다른말로 하면, 사회화란 사회의 통용되는 가치관, 세계관, 행동 양식을 자신의 주체적인 모델로서 수용하게 하는 사회적 메카니즘을 말한다. 그래서 '엔컬쳐레이션'을 사회화 내지는 내향화로 번역한다. 이런 사회화 과정에 중요한 요소는 언어와 부모와 친척과 선생과 종교이다.16)
3) 문화변용(Acculturation)
문화변용이란 인류학자나 사회학자에 의해 사용되는 말이다. 문화가 다른 개개인이나 집단간에 만남을 통하여 변화가 일어나는 동적인 과정을 나타낸다. 이것은 자유스럽게도 일어나며 계획에 의해서도 혹은 강요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한 문화 내에서도 일어나며 타문화와의 만남에서도 일어난다. 따라서 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다. 전도, 선교적 팽창과 문화간 대화, 종교간 대화등은 사회, 문화적인 변동에 따라 나타나는 문화변용의 한 형태이다. 다양한 문화간, 종교간 만남의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신학적인 용어로 문화순응(inculturation)이라고도 하며, 하나의 새롭고 포괄적인 패러다임의 일부분으로서의 다양한 지역 패러다임들이 생겨나게 된 패러다임 전이의 한 예로서 "간문화 신학"(intercultural theolgoy)을 들 수 있다. 간문화 신학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로, 신과 구원론을 한 주어진 문화의 틀에서, 물론 이 틀을 절대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논의하는 학문이다. 둘째로, 간문화 신학은 사회 상황(context)에 좌우된다. 셋째로, 서구적인 신학 방법론과 교회모델은 대안적인 신학함에 의하여 더 풍부하게 될 수 있어야하며 풍성하게 되어야 한다. 넷째로, 간문화 신학은 서구에서 발전된 합리적-분석적 학문 방법론과 완전히 결별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간문화 신학은 이와같은 비판적 입장이 문화간의, 교회간의, 종교간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전체 과정에 사용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이 총체적인 과정에 서구 신학은 하나의 참여자에 지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17)
4) 지역 신학(Local Theology)
주로 로마 카톨릭과 소수의 개신교권에서 사용되는 영어에서 온 용어이다. 독일어의 로칼(Lokal)은 영어의 지역(local)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구별되어야 한다고 하는 로버트 슈라이터에 의하면 지역신학18)이야말로 문화화 혹은 문화순응의 참된 형태이다. 그는 {지역 신학 건설하기"란 책에서 이 말을 선호하는 이유를 몇가지 제시한다. 첫째로, 이 지역 신학이란 말이 지역 교회란 말을 연상시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신학이 대체로 상황(맥락)에 민감하다고 볼 수 없는데 이 지역 신학이란 말은 상황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신학이다. 셋째로, 이 말을 사용하면 지나친 신조어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라이터는 '토착 신학'(indigenous theology), '민족 신학'(ethnotheology), '문화화' 혹은 '문화순응'(inculturation), '맥락 신학'(contextual theology) 등 많은 신조어를 피할 수 있는 '지역 신학'을 선호한다.19)
5) 토착화(Indigenization)
본래 토착화란 루푸스 앤드슨과 헨리 벤이 제창한 삼자원리 혹은 네비우스 방법을 말한다. 즉 자치(self-governing), 자립(self-supporting), 자전(self-propagating)을 하는 토착교회 형성이 되면 토착화가 된 것이다. 토착 지도력, 토착 교회당, 토착 조직이 이루어지면 선교사나 선교기관에 의해 토착화가 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indigenous"란 "in" (안에)라는 말과 라틴어 gigere (내재화하다, 혹은 특정 장소나 환경의 일부분이 되다)라는 말이 합쳐진 말로서, 어떤 물건이나 행동이나 관념이나 가치를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에 일부분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한 예로, 햄버거가 식품으로서 미국에서 이제는 전 세계로 토착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20)
아직도 토착화와 상황화(현장화) 개념이 혼돈되는 경우가 흔하기에 이 두 가지 선교학적 주제를 비교하는 표를 제시한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 상황화와 토착화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는 이도 있고, 토착화와 상황화를 아래와는 약간 다르게 구분하는 학자도 없지는 않다.
토착화와 상황화 비교표21)
구 분
상 황 화 (현 장 화)
토 착 화
대상과 범위
상황(현장)의 모든 면 강조: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죄와 악이 드러나는 모든 인간 삶의 영역: 부와 가난, 특권과 차별, 풍부와 모자람,
문화영역만 강조
성격
역동적 성격
정적인 성격
시간
현재와 미래 지향적
과거 지향적
문화이해
행동 과정 (열린 문화 이해)과 숙고
문화에 적응(교회 생활, 복음의 전달, 외적 요소), 문화에 대한 닫힌 이해
초점
선교파송국 '여기'와 선교지 '저기' 둘 다 초점을 둠(여기에도 혼합주의 위험 있음)
저기'와 '외국의 선교지'에 초점을 둠
복음과 신학에 대한 입장
복음은 특수한 상황(현장)에 따라 전달, 신학은 구원과 제한된 예언적 성격(conditioning prophetic) 가짐
어디에서나 복음과 신학은 동일하다는 입장
주체
지역 상황에 있는 기독교인
선교사
2.3 상황화 신학의 분류
이미 한 세대를 거쳐 논의되어온 상황화 문제이기에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신학이 제기되었다. 국내외적으로 상황화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논문과 책도 적지 않으며, 계속해서 추구되고 있다. 상황화신학을 분류한 대표적인 것으로 욱퐁(Ukpong)의 분류를 들 수 있겠다. 욱퐁에 의하면 상황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며, 이 두 가지가 다시 여러 종류로 분류된다.22)
첫째, 토착화 모델(indigenization model)로서 이것은 다시 번역(Translation) 모델과 문화화(Inculturation) 모델로 나뉘어지며, 둘째, 사회-경제 모델(socio-economic model)로서 이것은 다시 진화론적(evolutionary) 모델(정치신학, 개발신학), 혁명적(revolutionary) 모델(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 달릿신학 등) 로 나뉘어진다. 욱퐁은 상황화 이전 단계의 형태로 토착화를 보지 않고 상황화라는 큰 틀에서 토착화 모델을 상황화에 포함시킨다. 이 점에서 필자의 입장과는 상반된다. 필자는 토착화와 상황화를 시대에 따라, 그 논의의 내용과 강조점에 따라 위의 도표와 같이 구분하였다. 아울러 토착화의 한 모델로서 문화화를 보지 않고 오히려 문화화를 사회-경제의 여러 모델과 함께 상황화의 한 형태로 본다. 이에 반하여, 데이비드 보쉬는 욱퐁의 분류중 토착화 모델의 문화화와 사회-경제 모델의 혁명적 모델만이 진정한 상황화로 보고 그의 기념비적 책에서 13가지 새롭게 떠오르는 에큐메니칼 선교학의 주제에 포함하여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보쉬는 문화화와 해방신학을 신학적으로 정리, 분석, 평가하고 있다.23)
오늘날 한국교회는 문화 영역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종교를 포괄하는 상황화 신학을 더 탐구해야하며,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와 세계를 끌어안는 상황화 신학의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
아시아 상황화 신학의 대표적인 인물은 코수케 코야마(Kosuke Koyama), 송천성(Choang-Seng Song),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Aloysius Pieris)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스리랑카의 카톨릭 신학자인 알로이시우스 피어리스(1934-)는 평생 불교 연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과 불교도와 마르크스주의자들과의 상호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인물이다.24) 피어리스는 먼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금의 아시아 지역교회의 출발부터 문화화의 부재를 지적한다. 만약 사도 바울이 베나레스, 북경, 방콕 등에 교회를 세우고 그곳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더라면, 아시아에서도 셈족 문화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 우리 교회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필요한 성서적 규범 내지는 사도전승이 생겼을 것이라고 본다. 초대교회가 케랄라의 '성 토마스 그리스도교'라든가 중앙아시아의 경교 같은 예가 없지는 않았지만, 초기에 성문화된 교리와 학설, 초대교회의 권위있는 전승들은 오로지 교회와 셈족 세계와의 접촉, 그리고 희랍-로마 세계와의 접촉에서 나온 것이었지 중국이나 한국, 일본, 인도의 종교세계와의 접촉은 전무한 것이었다. 아시아 교회 대부분은 추종할 만한 선례라는 것이 없다. 따라서 아시아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어야 하는 입장이고 그것의 정통성은 교회와 셈족 세계와의 접촉, 그리고 희랍-로마 세계와의 접촉에서 나온 것의 표본을 갖고 평가할 무엇이 아니다.
그리스도교가 유럽화되면서 유럽의 그리스도교화가 왔다. 그리스도교의 유럽화는 그 자체로도 상황화의 탁월한 표본이다. 아시아 상황에서 볼 때 유럽의 그리스도교화는 네 가지 전통 요소 혹은 모델을 담고 있다.
첫째, 라틴(로마) 모델: 비그리스도교 문화에로의 육화(肉化)
둘째, 희랍 모델: 비그리스도교 철학에로의 동화(同化)
셋째, 북유럽 모델: 비그리스도교 종교에 대한 절충(折衷)
넷째, 수행의 모델: 비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한 참여(參與)
지금까지 서구 중심 신학과 선교학은 라틴 모델과 희랍 모델을 문화화의 표준으로 삼았다. 마태오 리치나 로베르또 데 노빌리의 문화화 시도도 이 모델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가지 모델을 오늘의 아시아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피어리스에 의하면 불가능할 뿐만아니라 만약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 이유로는
첫째, 라틴-헬라 전통에 침투해 있는 '종교 신학'(theology of religions)이라는 것이 아시아에서는 무용하다. 이 종교 신학은 "타종교와 반대되는 그리스도 신학"(Christ-against-religions-theology)의 일종이다.
둘째, 종교를 문화와 분리하거나 (라틴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분리하는 (헬라 그리스도교) 일은 아시아에서 무의미하다.
셋째, 희랍-로마 모델은 문화화를 일종의 도구로 간주하는 이론을 교회에 남겼다. 아시아에서 철학과 종교와 문화를 분리하는 것은 각각의 생명력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피어리스는 "이렇게 (종교성을 빼어버린) 죽은 철학(도구화된 철학)을 갖고 그리스도교 교리 체계를 건설하는 일은 지능적 곡예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놀음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만족할 따름"25)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넷째, 초기 지중해 연안에서 전개되던 교회의 상황과 20세기 아시아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때는 이교도가 약해지고 기독교가 강해지던 때라면, 지금 아시아 상황은 그 반대이다. 지금 위기에 처해있는 종교는 식민주의적 기독교이며, 지금 활력을 다시 얻고 있는 사회-정치적 지배세력은 소위 '이교도들'의 종교이다. 바로 이 종교들이 식민지를 벗어난 국가들의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과 주체의식을 형성하고 나아가서는 그리스도교 이후의 서구사회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현대 영성의 주류를 이룬다.
지난 2 세기 내지 4세기 동안 아시아 상황에서 교회와 선교가 희랍-로마 모델위에 문화화를 시도했기에 결국 실패했다고 본다. 비기독교인들은 이와같은 토착화와 문화화 모델을 "연막전술"과 "카멜레온의 솜씨"로 비유하며 단호히 거절한다.26)
그리스도교화를 시도한 북유럽 모델은 아시아에는 너무 늦었다고 단정한 피어리스는 약간의 유익은 인정한다. 즉 중세 초기 경험인 북유럽 모델은 적어도 아시아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유비적인 도움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의 아시아에 전혀 적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또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우주적 종교'(피어리스는 의도적으로 정령론(animism)이란 용어를 쓰지 않음)와 '초우주적 종교'(기독교, 힌두교, 불교, 도교 등)로 나누며, 이 두 종류의 종교심이 서로 상대방에게 자연적 보완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초우주적 종교가 중세 초기의 유럽과 지금의 아시아에 조금 남겨져 있는 부족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문화화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우주적 종교심의 맥락에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역으로 우주적 종교는 일종의 개방된 영성이어서 초우주적 종교로부터 초월적 방향이 제시되기를 기다린다. 결국 피어리스는 대체가 아니라 조화와 긴장을 추구한다. 아울러 우주적 종교성이 초우주적 종교에 의하여 변화되지 않고 보존하는 전제하에서 문화화를 추구하는 한 아시아 부족사회에 우주적 종교성이 아직도 남아있는 지역(인도, 필리핀, 동남 아시아 일부)에 북유럽 모델을 통한 문화화의 가능성을 둔다. 그러나 대다수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기독교 이외의 다른 초우주적 종교가 우주적 종교성을 길들였기에 문화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27)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에서와는 달리 아시아 종교심의 특징은 우주적 종교가 순수하고 원시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개는 힌두교, 불교, 도교라는 '초우주적 구원사상'에 의해서 사실상 지배당하거나 그 속으로 통합되어 버린 형태로 되었다. 다른 면에서 말하자면, 초주우적 구원사상이 추상적인 경전 속에서(textual)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지역문화의 우주적 종교가 제시하는 세계관 속에서 맥락을 같이하여(contextual) 존재해 왔음이 사실이다. 아시아의 우주적 종교는 '구원을 베푸는 종교'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시아와 다른 지역 종교와의 차이점이다. 이것이 아시아 신학, 아시아 상황화에 중요한 점이라고 한다. 이미 초우주적 종교가 우주적 종교를 길들이거나 동화시킨 아시아에서 어떤 강제나 무력이 아니고는 다른 초우주적 종교가 들어가기다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북유럽의 모델은 아시아에서 좀 늦게 등장했다는 말이다.
마지막 남은 수행의 모델이 아시아 정감에 가장 가깝게 보는 피어리스는 실천은 이론의 첫째가는 요식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수도생활의 전통은 그 자체안에 탁상공론 때문에 잃은 균형을 회복시켜줄 신학을 스스로 감추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서구 수도승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fuga mundi)라는 (영지적) 이상'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행하는 (아가페적) 투신에 의해서 보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수도승의 자발적 가난의 실천이 사실상 아시아 민중에게 제도적으로 부과된 가난을 들어주는 해방의 방향으로 적극 나아가야만 참된 문화화가 이루어진다.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참된 뿌리를 내린다. 이것은 맘몬으로부터 해방된 교회이며, 선택과 결단으로 가난해진 사람들과 환경과 운명으로 가난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참된 인간의 얼굴을 한 기초공동체의 모습을 띈다. 아시아인이 아시아 사람에게 아시아인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할 때 문화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화화는 해방의 차원, 즉 복음으로 어우러진 영적, 육적인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의 적인 맘몬에 대항하여 해방을 이루는 차원을 가진다. 따라서 문화화와 해방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28)
피어리스의 문화화는 아시아 종교성과 가난이라는 영성을 바탕으로 하며 우주적 종교와 초우주적 종교를 구분하여 그 만남과 조화와 균형을 모색하는 대화를 추구한다. 이 때 대화란 상호간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으로서 상당히 불교적이며 급진적인 성격을 뛰기는 하지만, 수행의 모델이 아시아 교회 선교가 지향해야할 바람직한 모델이라는 것과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맘몬니즘에 대항하여 온전한 문화화와 해방을 이루어야 한다는 통찰력은 오늘의 아시아 교회 선교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신학의 패러다임 전이로서의 상황화
3.1 신학방법의 철학사상적, 인식론적 전이
상황화가 논의되기 전 까지 수세기 동안 정통신앙은 헬라철학을 바탕으로 서 있었다. 이론(관념과 원칙)은 실천(적용)보다 선행되고 더 중요하다. 이론은 초역사적이며 초문화적이다. 부차적 단계로서의 실천은 이론(관념과 원칙)을 정당화하고 확증하는 역할을 한다. 정통신앙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단체로부터의 일탈은 이단, 심지어 이교라고 여겨졌다. 이것은 특히 교회가 로마 제국 안에서 정착되기 시작한 후부터 생긴 일이다.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요인들의 역할이 이런 운동들의 초기단계에서는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에 도전하여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 베이컨의 귀납법이다. 헬라적인 연역적 사고방식으로부터 귀납적, 경험적 방법으로 나아갔다. 학문의 시작이 원칙과 이론이 아니라 관찰로 시작한다. 신조와 교의는 더 이상 그것이 영원한 진리와 일치하는지에 의해 판단되지 않으며 그것의 유용성이 판단의 조건이 된다 "교회"는 - 교회의 가르침과 신적 계시 사이의 궁극적이고 논쟁할 수 없는 일치를 주장하는 조직이라는 의미에서 - 같은 마음을 지닌 개인의 단체라는 의미로서의 "교파"가 되었고, 교파 각자는 그들 나름대로 선택한 방법으로 각자의 신앙을 실천할 권리와 존재할 권리를 서로에게 관대하게 부여했다. 교파는 서로 평화롭게 공존했다. 옳은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무엇이 참된가 하는 것이 논쟁의 중심에 있지 않았고 무엇이 더 실천적인가 하는 문제가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가 좋게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이라기보다 명백하게 최상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방법론은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구출하려는 시도이었다. 양자에 있어서 신학은 합리적인 지식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두 가지는 계몽주의의 도전에 대한 응답이며, 더욱이 성경의 시대와 문화 그리고 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현대사회 사이에 열려있는 "흉한 도랑"의 늘어나는 인식에 대한 더욱 특별한 응답이다. 각자는 계속되는 역사를 위협적인 것으로 경험한다. 왜냐하면 그때와 지금의 간격은 점점 더 연결할 수 없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흉한 도랑을 연결하려는 많은 노력이 행해졌다. 성서학자들은 끈질기게 성서 저자의 의도를 밝히려는 시도 하에 고대 문헌들을 연구하게 되고, 독자로 하여금 그 동안의 역사적 사건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원저자의 말을 듣게 하려고 노력했다. 진정한 계몽주의적 방법에서는 학문이 축적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만약 학자들이 꾸준히 연구하고 더 많은 자료들을 모아간다면 그들은 어떠한 합리적인 의심을 뛰어넘어 원저자가 세우려 했던 의도와 원문에 도달하게 된다고 보았다.
프리드리히 쉴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는 이러한 처리방식이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첫 번째 신학자 중 하나였다. 그는 원시교회나 사도교회로의 복구를 시도한 것으로 종교개혁을 해석하지는 않았다. 일단 한번 되어진 일은 간단하게 과거로 되돌아 가지지 않는다. 기독교는 항상 되어지는 과정 중에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의 씨앗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은 과거의 진리를 재건설하려는 시도로 추구되어져서는 안된다. 그보다 신학은 교회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되어져야 한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쉴라이에르마허는 모든 신학은 그것이 변화해 온 상황(context)에 의해 영향 받았다는 관점을 개척했다. 초문화적이거나 초역사적인 "순수한" 메시지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해석되어지지 않은 유산으로서의 기독교 신앙으로 스며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은 이해되어지는 모든 본문들은 특유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가지고 있었고 학자들은 양식비평의 도움으로 이것을 결정해야 했다. 19세기 내내, 더욱이 20세기에는 환경에 의해 신학이 결정되는 그 방법의 인식이 비판적 집단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쉴라이에르마허나 불트만(Bultmann)과 같은 양식비평 학자들도 다음 단계를 실행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해석이 편협하다던가 그들 자신의 해석이 오늘날 비평하고 있는 상황(context)에 의해 조건 되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성경 본문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미리 결정된 관점들과 상황들을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약점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역사비평적 방법 혹은 20세기 중반의 양식비평, 편집비평의 업적을 뛰어넘는 진보를 할 수도 있다. 폴 리꾀르(Paul Ricoeur)와 다른 최근의 문학비평가들은 모든 본문(text)은 해석되어진 본문이며 어떤 의미에서 독자들은 그것을 읽을 때 본문을 "창조"하게 된다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 본문은 "성경에서 빠져나와(out there)" 해석되기를 기다릴 뿐 아니라 우리가 그것과 연관을 가질 때에 본문이 "되어지는 것(becoming)"이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새로운 성서해석의 접근은 그리 진척되지 못했다. 본문을 해석하는 것은 단순히 문학적 방법을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서 해석된다. 우리의 모든 상황(context)은 우리가 성서 본문을 해석할 때 작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신학(혹은 사회학, 정치학 이론)이 그 본질상 상황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화라는 관점에서의 본격적인 발전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진 제3세계 신학의 탄생과 함께 나타났다. 이것은 너무나 혁신적인 사건이어서 세군도(Segundo)는 그것을 "신학의 해방"이라 언급했다. 상황화는 참으로 신학적 사고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전이를 의미한다.29)
상황화는 정통신학과 비교될 때 인식론적 파괴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위로부터의 신학'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신학'이다. 정통신학의 주된 자료가 성경과 전통과 철학이라면, 상황화는 성경과 전통 외에 사회과학이었고, 정통신학의 주된 대상은 교육받은 비신앙인들었던 데에 반해, 상황화의 주된 대상 가난한 자들, 문화적으로 소외된 자들이다.
새로운 인식론에서 중요한 것은 실천의 우선권에 대한 강조이다. 전통적인 서양 인식론에 의하면 진리는 주어진 대상에 대한 정신의 일치로 여겨진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개념은 단지 지금 존재하는 세상을 정당화하고 확증할 뿐이다. 그러나 또 다른 진리를 아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에 의하면 세상은 인간정신이 직면하고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정적인 객체가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되어 진다. 지식은 주어진 것에 대한 정신의 일치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건설과 변화의 과정에의 침투이다.30)
이러한 상황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식론이 의도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양과학과 철학과 신학은 서양의 이권을 만족시키기위해 있다는, 혹은 지금 존재하는 '세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있다는 의심을 받게된다. 둘째, 세상이란 이제 더 이상 설명되어져야만 하는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변화되어야 할 대상이다. 셋째, 신학의 첫 번째 역할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헌신에 있다. 넷째, 신학자는 세상의 고통받는 자와 함께 살면서 신학화한다. 다섯째, 강조점은 행동의 해석학, 실천하는(doing) 신학이다. 여섯째, 상황화는 해석학적 순환(the hermeneutical circle)을 그 해석학적 원리로 한다. 경험과 실천은 다시 이론과 원칙으로, 이것은 다시 경험과 실천으로 상호간 검증받고 변화발전해야 한다. 따라서 이론과 실천은 주객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주체적인 관계이다. 함께 서고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사무엘 라얀(Samuel Rayan)의 말과 같이 상황화의 방법론에서 "실천과 이론, 행동과 반성, 토론과 기도, 운동와 침묵, 사회분석과 종교적 해석, 참여와 관상은 하나의 과정을 형성한다".
3.2 상황화의 한계성
이러한 상황화의 학문의 방법론, 대상, 자료, 인식론 등에서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 전이가 반드시 전통과의 단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속성과 변화를 다 포괄한다. 과거에 대한 충실성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대담성을 의미하며, 상수와 우연성 두 가지 모두, 전통과 변혁 모두를 의미한다. 자연과학 분야와는 다른 점이 이것이다. 그런데 상황화가 두 가지 양상 중 하나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한 아직도 몇 가지 모호한 부분들이 남아있다. 즉 과거와 분명한 단절을 하고 그의 신학적, 교회적 선조와의 연속성을 부정하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첫째, 상황화로서의 선교는 하나님이 세상을 향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언한다.
둘째, 상황화로서의 선교는 다양한 "지역신학"의 형성을 수반한다.
셋째, 상황화는 신학을 특정 상황에 끼어 맞추는 상대주의 위험과 함께 상황주의(contextualism)를 절대화하는 위험도 지닌다.
넷째, 상황화는 상황 혹은 '시대의 징표'를 바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을 희생하면서까지 시대의 징표들,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따라서 복음은 '표준화하는 표준'(norma normans)으로서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지 상황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우리가 읽어낸 상황도 하나의 표준이 된다. 단지 이것은 '표준화된 표준'(norma normata)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읽어지고 우리의 현실에 의미를 주는 복음이 표준이라는 말은 우리의 상황과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비판한다는 말이다.
다섯째, 상황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는 하나 신학적 성찰의 유일하고 기본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여섯째, 상황화는 이론과 실천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다. 상황화의 가장 좋은 모델은 이론(theoria), 실천(praxis), 시적 상상력(poiesis), 이 세 가지를 창조적인 긴장 속에서 함께 묶는 데에 있다.31)
4. 바람직한 상황화의 이론적 근거
4.1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의 원리 혹은 상호보충의 원리
기독교 교회의 선교적인 메시지가 수신자의 삶과 세상 속에서 성육화되는 것 자체(incarnated itself)에 있다는 데이비드 보쉬의 근본적인 논점은 유효하다. 보쉬에 의하면 상황화는 모든 신학의 실험적이고 우연적인 특성을 밝게 드러내 준다. 따라서 상황화 신학자는 매사를 하나의 거대하며 영원히 보편 타당한 체계에 끼어 맞추는 식의 신학을 배척한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본문과 상황 사이에 계속적인 대화가 진행되는 실험신학이요, 본질상 이 신학은 일시적이며 가설로 남는다고 주장하였다.
보쉬도 상대주의 위험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신학의 상황성 강조가 수많은 상황화 신학들과 때로 상호 배타적인 신학들에 대한 무비판적인 찬미를 오도해서는 안된다. 이런 상대주의의 위험성은 제3세계에서 뿐 만 아니라 서방의 역사비평 성서학자에게서도 있게 마련이다. 후자에 의하면 성경의 각 본문이 그것의 상황에 의해 철저히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인상을 갖게 하였으며, 이 상황이란 것이 실제로 한 독립된 신학세계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주의와 억제되지 않은 상대주의는 용납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함께 나누며, 존중하고 보존해야만 하는 신앙전통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신학이 본질적으로 상황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함과 함께 또한 신학의 보편적이고 상황을 초월하는 차원들도 확인해야만 한다. 순수하게 우연적인 신학적 시각은 초신학적(metatheological) 시각의 강조에 의해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보쉬는 상황화의 방법론과 전개를 창조적 긴장으로 해결한다. 그에 의하면, 상황화 신학의 가장 좋은 모델은 본문(text)과 상황(context), 행동과 반성, 참여와 관상을 창조적 긴장 속에서 함께 엮는 것을 말한다. 이론(theoria)과 실천(praxis)과 시적 상상력(poiesis)을 창조적인 긴장 속에서 함께 묶는 것이다. 이 세 영역을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선교와 직결되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보쉬는 상황화가 궁극적 진리, 초월적인 정의를 포함할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곧 상황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며 아울러 "고향상실", 즉 "거룩한 소외"를 의미한다. 고향상실과 거룩한 소외란 진리를 실천하는 결단을 말하며 선교적 실천을 의미한다.
문화인류학에서 나온 본문과 상황,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은 이전의 무비판적인 상황중심의 상대주의와 순수한 외부자의 접근으로부터 '상호 보충의 원리'(혹은 상보성의 원리 complementarity)로 움직이고 있다. 상호 보충의 원리는 비판적 실재론이란 인식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식론에서 인간의 지식은 실재의 사진으로서가 아니라 차라리 우리에게 실재 즉, 현실의 부분적 이해를 주는 지도 혹은 청사진으로써 간주된다.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위해 우리에게 몇 개의 청사진이 필요한 것처럼 실재의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의 상호 보완적인 이론을 필요로 한다. 인류학에서 점점 더 많은 학자가, 제기되는 질문과 검토되는 실재가 어떠냐에 따라 하나 이상의 이론이나 패러다임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외부자의 모델과 내부자의 모델은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간주된다.32)
4.2 토착화 원리와 순례자 원리의 균형
어떻게 하면 죽은 토착교회의 딜레마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셔우드 링엔펠트(Sherwood G. Lingenfelter)는 앤드루 월스(Andrew Walls)의 두 가지 원칙, 곧 "토착화 원리"와 "순례자 원리"를 소개하면서 순례자 원리와 문화 변형이라는 해결점을 찾는다.
토착화 원칙이란 사람들을 보편적 교회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자기 자신들의 문화적 환경에 맞는 독립성을 가진 교회에로 신자들을 몰아넣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고향같이 느껴지는 장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례자 원칙이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뿌리를 두고서 교회들을 신앙의 보편성에로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한다. 바로 예수님의 삶과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이 지상에 사나 천국 시민으로 살며, 순례자로 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순례자 원칙은 문화의 편견과 맹목성에 대한 예언자적 도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 토착화 원칙과 순례자 원칙은 상호 모순 내지는 역설로 보이나 최종적인 결론으로 문화의 감옥 같은 성격을 직시하고 순례자 원칙에 따르면서 문화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 상생과 상호 비판을 통한 새로운 길이 가능해진다.
기독교 이 천년 역사를 상황화라는 관점에서 연구한 앤드류 월스는 기독교가 두 가지 역동적 원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두 가지 원리란 "토착화 원리"(indigenizing principle)와 "순례자 원리"(pilgirm principle)로서 양자는 상호 변증법적이며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지닌다.33) 월스의 방법론은 임의표본 추출 연구 형식으로 이 천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5개 시대 교회를 복음과 문화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그 결론으로 역사적인 기독교에 본질적인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원리를 말한다. 그 본질적인 연속성이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의미, 둘째, 특정한 역사인식의 연속성, 셋째, 성경의 권위, 빵과 포도주와 물의 사용에 있어서 연속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속성들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기독교 공동체 이외 사람들에게, 때로는 같은 공동체 사람들에게 동일 현상의 다른 표현양식임에도 불구하고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상황의 다양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34)
월스에 의하면 토착화 원리란 선교가 이루어질 때 복음이 현지 문화와 역사적 상황의 특수한 가치나 세계관을 수용하게하는 원리이다. 그러할 때 기독교 신앙은 모든 시대와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향과 같이 느껴지는 신앙"35)이 될 것이다. 순례자 원리란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개인적, 사회적 변화와 변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문화와 경제와 정치와 사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이 지상에 완전한 문화가 없다는 것, 그리스도는 궁극적으로 사회와 동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한다. 전통적인 서구신학이나 상황화 신학이나 성경을 공통분모로 하고, 문화적이며 역사적인 편견과 맹목성에 대한 예언자적 도전을 하는 기독교 전통에 공동의 뿌리를 박고 있기에 위의 두 가지 원리는 변증법적으로, 상호보완성의 원리에 따라 논의되어야 한다. 아울러 제1세계, 제3세계 신학자가 공동으로 추구해야할 신학적 과제이다.
복음과 문화의 상관성에 대한 앤드류 월스의 전개방법은 귀납법적 원리와 변증법적 원리를 그 바탕으로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서로 대조, 모순되는 두 가지 원리의 논리 전개 구도에 있어서 크게 세 가지 대칭이 사용된다. 첫째, 복음과 문화의 대칭이다. 둘째, 복음과 문화의 관계가 맺어지는 현장으로서의 역사가 토착화의 원리와 순례자의 원리에 의해 발전하는 것으로 보는 대칭이다. 셋째, 제1세계 신학과 제3세계 신학이란 대칭이다. 이 세 가지 대칭은 창조적 균형과 상호 비판과 보완에 의해 발전할 것으로 본다.
앤드류 월스의 토착화 원리와 순례자 원리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 제이차 세계 대전 이후 각 민족과 문화의 정체성 회복과 모라토리움 운동(선교활동 일시 정지 운동)과 토착화 논의 이후의 시대에 더욱 더 요청되는 것이다. 아울러 복음이 문화를 평가하거나 변화시킨다는 명제를 아예 포기하고 "각 문화의 복음"과 "성경과 기독교 전통 외에 현실태로서의 문화에서 나오는 복음"을 발견해야 한다는 너무 극단적인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유용한 이론적 도구가 된다. 복음이 문화의 포로나 게토화로 정체되어서도 아니 되겠거니와 문화가 시공간에 제한된 "지역신학화된" 복음의 포로나 게토화가 되어서도 복음의 복음됨(성경의 권위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유일성 등)이 드러날 수 없다. 사실 서구신학이 서구 헬레니즘과 계몽주의에 기초한 일종의 "문화화된 신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문화중심주의에 빠져 자기 신학의 절대불변성을 주장한 것이나 선교현장에서 이식되어야 할 교리로 간주한 점은 반상황화요 "문화화된 복음", 변질된 복음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그런데 요즘은 제3세계 신학자 가운데 거꾸로 지난날 서구신학처럼, 제3세계 상황에서 잉태된 "문화화된 복음"을 참복음으로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면에서 월스의 두 가지 원리는 늘 동시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선교신학적 방법론으로 중요한 것은 선교사와 현지인, 제1세계 신학자와 제3세계 신학자가 공동으로 하는 실천신학이 되어야 한다. 지구 전체가 선교현장이 된 오늘의 선교와 세계 문제 해결을 위한 상황화 신학의 형성과 해석과 적용은 해석학적 공동체로서의 전 세계 교회가 해야 할 공동의 과제가 되었다.
토착화 원리와 순례자 원리의 비교표36)
토착화 원리
순례자 원리
복음에 근거(공통점)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받으신다
역사적근거
행'15장의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이방인은 유대인이 되지 않은 채 신자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고통 없이 받아들인 사회는 동방이나 서방이나 고대나 현대나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관
인간은 특정한 시간, 장소, 가족, 그룹, 사회 즉 문화에 의해 조건지워지는 존재이다.
인간이 속한 사회로부터 벗어나도록 촉구한다.
회심관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해서 그의 마음이 진공상태나 빈 테이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다.
문화와 복음
복음은 문화의 옷을 입어서 "고향처럼 느껴져야 한다".
기독교인은 본국이 외국이며 외국이 본국이다.
사회와의 관계
사회의 구성원이 됨
문화와 사회 그룹들의 외부에서 관계를 맺도록 함으로써 보편화시키는 요소
역사와의 관계
각 문화별, 시대별, 개별성을 내부적인 요소로 발전시킨다.
시간, 장소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이스라엘의 역사와 연속성과 연결성을 가진다. 이것이 보편화의 요소가 되며 기존문화에 편안히 안착하지 못하게 하고 각각의 사회 안으로 외부적인 참고들을 들여오게 한다.
교회관
모든 교회나 개인은 예수 믿기 전의 문화와 역사의 영향을 계속해서 받는 '문화의 교회'이다.
각 시대, 종족, 사회, 문화를 초월하는 공동의 믿음, 소망, 사랑을 계승하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이다.
선교관(적용)
한 기독교 집단은 다른 시간, 장소에서 결정되었던 어떤 짐(문화적 요소)도 타 기독교 집단에게 지울 권한이 없다.
기독교는 공동이 신앙유산과 경험과 정체성의 근거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조명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그 상황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경해석에는 시간과 장소에 의한 가정들로 이루어진 문화적인 눈가리개를 가진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한 말씀이다.
상호관계
긴장 관계
긴장 관계
4.3 비판적 상황화와 초문화신학
신학(Theology: 대문자 T와 단수)과 신학들(theologies: 소문자 t와 복수)를 나눈바 있는 폴 히버트는 이미 1985년에 펴낸 "선교사들을 위한 문화인류학적인 통찰력"37)이란 책에서 비판적 상황화를 제시하였다. 그는 시대별로 세 가지 모델을 제시하여 개신교 선교사들이 과거 100년 동안 이 문제를 다룬 방법을 조사한다. 곧 비상황화 모델, 상황화 모델, 비판적 상황화 모델이 그것이다.
그의 핵심 문제제기는 "선교사들이 새롭게 개종한 사람들의 전통, 신념과 관습 즉 옛 문화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선교 현지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미 익숙해져 있던 과거의 문화적 관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선교사들은 문화적, 종교적 공백 상태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형태와 문화가 있는, 즉 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잘 발달된 문화가 있는 곳에 들어갔다. 선교지의 현지인들은 음식을 먹고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녀들의 결혼에 신경을 쓰고 또 죽은 자를 위하여 장례를 치루기도 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토속신에게 기도하며 영들을 달래기도 하였다. 새 복음을 가지고 온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문화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또 반응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질문하는 히버트는 우리는 자민족중심주의와 외국적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비상황화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우리는 상대주의와 더욱 극단적 형태의 상황화 혹은 무비판적 상황화인 혼합주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다른 문화와 믿음의 체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오는 상대주의의 물결을 단호히 헤쳐나가야 한다. 아울러 자문화중심주의 문화에 대응하는 상대주의에 포로가 되지 않고 상대주의 이후의 문화관으로 이동해야 한다. 복음은 상황화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복음은 반드시 예언적으로 남아야 한다. 그러면 이 상대주의 이후의 문화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판적 실재론에 입각한 새로운 인식론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의존과 독립을 뛰어넘는 "상호의존"38)과 "이론의 상호보완성"이다. 이론의 상호보완성이란 본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그 근거로 하는 인식론이다. 인간의 지식은 실제의 사진이 아니라 현실(실재)에 대한 부분적 이해를 주는 지도 혹은 청사진으로 간주된다. 아울러 비판적 실재론은 지식의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이러한 지도나 청사진은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론의 상호보완성"이 요청된다. 반대의견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을 요청한다. 문화인류학에선 공시적 관점과 통시적 관점, 내부자의 관점(에믹)과 외부자의 관점(에틱)의 상호 이론적 보완을 이미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의 상호보완성을 통하여 비판적 상황화를 이룰 수 있다.39)
폴 히버트가 제시한 이제는 고전적인 모델이 된 비판적 상황화의 과정은 첫째로 문화의 주석, 둘째로 성경의 주석과 해석의 가교 , 셋째로 비판적 대응, 마지막으로 새로이 상황화된 관습의 단계를 거친다.40)
신학(Theology)보다 오히려 신학들(theologies)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인간의 주관적인 동의로 축소되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진리의 의미를 상대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과 종교적다원주의로의 위험을 제기하는 히버트는 비판적 상황화의 원칙을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첫째로, 비판적 상황화는 믿음과 삶의 규범으로써 성경에 검증되어야 한다. 상황화된 신학처럼 상황화된 관습은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둘째로, 이러한 접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마음 문을 여는 모든 신자들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깨닫게 한다. 셋째로, 비판적 상황화에서 교회는 해석하는 공동체로서 해석을 점검하고 합의를 추구하는 역할을 한다. 만인제사장직은 신학적 "방랑주의(Lone-Rangerism)"에 대한 허가가 아니다. 상황화가 결국 지역교파주의의 확장과 혼합주의를 가져오지 않느냐는 오해를 극복하는 것도 해석하는 공동체의 지도를 받으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잘못된 해석을 보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을 먼저 보기 때문에 우리의 개인적 편견을 서로 볼 필요가 있다.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편향이 우리의 성경해석을 어떻게 왜곡시켰는지를 종종 보기 때문에 다른 문화 출신의 기독교인을 필요로 한다. 해석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이러한 협동적 성격은 모든 문화의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교회에까지 그 범위를 넓힌다. 주석과 해석이 협동적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몇 명의 지식사회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사회적 결정론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아니다(Karl Mannheim과 Maurice N. Richter, Jr.). 넷째로, 서로 다른 문화의 복음주의 신학자간의 토론이 빈번해지고 있는데 이에 따라 본질적인 신학적 문제에 대한 더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은 종종 자신의 잘못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더 잘 본다. 그리고 신학자는 자신을 비판하는 것보다 다른 문화의 신학자의 문화적 편향을 더 잘 지적한다. 하나의 국제적인 해석의 공동체 안에서 만인 제사장직의 실천을 통하여 중요한 신학논쟁에서 서로 이해하고 합의하여 신학 뿐 아니라 문화의 상황화까지도 검증할 수 있게 되어야한다.41)
5. 나가는 말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며 선교의 원동력은 성령님이다. 하나님 나라에 이끌림 받는 선교는 복음으로 지상의 문화를 변화시키며, 다른 한편으론 신학화되고 상황화된 복음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능을 한다. 문화의 다원성과 특수성이라는 문제가 상황화 논의에 핵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이 두 성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과 조화의 문제이다. 그리고 한국 선교가 직면한 21세기 국내외적인 상황은 문화 따로, 정치, 경제, 사회 따로 논의할 성질이 아니다. 이미 사슬처럼 얽혀 있는 이 모든 영역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천명하는 선교적 과제는 전세계의 교회 공동체가 상호협력과 배움을 통하여 이루어야할 과제이다. 따라서 위에서 제시한 바람직한 상황화의 이론적 근거로서 제시한 "토착화 원리와 순례자 원리"와 "비판적 상황화와 초문화신학"을 창조적 긴장 원리와 상보성의 원리에 따라 적용하여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문화권이나 종교권 혹은 정치, 경제, 사회의 특수성에 맞는 구체적인 상황화의 시도는 연구범위와 지면상 너무 지나치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하고, 상황화가 오늘의 선교실천에 주는 도전을 다시 정리해보고 우리 한국 교회 선교의 방향을 가늠하고자 한다.
첫째, 상황화의 예언자적 도전이다. 이것은 복음이 상황(선교지 사람, 제도,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을 바꾸고 변혁하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인의 참된 정체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있다. 공동의 신앙을 고백하는 전세계 교회는 보편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천명하고 공고히 해야한다. "참된 정체성은 - 삼위 하나님의 선물로서 - 성경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을 믿는 공동의 믿음으로 이끌고, 성령 안에 있는 공동의 경험으로 인도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의 소망으로 안내한다. 이 모든 것은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다."42)
둘째, 상황화의 해석학적 도전이다. 우리가 문화라는 다양한 렌즈를 통하여 복음을 보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 넓히며 새롭게 표현하게 한다. 예를들면, 다음 도표와 같이 세계교회가 나누어야 할 해석학적 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세계교회가 나누어야 할 공동의 유산43)
지역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라틴마메리카
배울 수 통찰력
신비, 하나님의 초월성
공동체로서의 기독교 몸 개념
의식의 자연스러움, 교회의 치유력
정의를 위하는 교회의 역할
셋째, 상황화의 인격적 도전이다. 선교사가 더 이상 자신의 상황과는 다른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이전의 자신과 동일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선교사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와 아울러 선교사를 파송, 후원, 관리하는 본국 교회의 자기개혁과 갱신이 요청된다. WCC-CWME 살바도르 대회 보고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복음과 문화의 진정한 상호작용을 위하여는 교회가 문화적 정체성을 복음과 혼동하여 그에 충성을 다하거나 아니면, 복음이 교회의 문화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아니된다.44)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
한국의 목회와 선교현장에서 생각해 볼 때 전통적인 서구신학방법론에 더 주눅들지 말고 우리현장의 경험과 실천을 신학의 원자재로 하여 상황화해야할 긴급한 과제가 놓여있다. 기독교에 대하여 매력을 잃고 복음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맘몬니즘과 물질주의에 젖어든 한국인에게 깊은 정신적, 영적 결핍과 갈망을 신학화하여 응답하는 과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본래의 소금 맛과 빛의 광명"을 찾는 상황화의 인격적 도전에 응전해야 한다. 물론 상황화의 해석학적 도전도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아직도 한국의 불신자들에게 "고향으로 느껴지는 종교"가 아니라 "외래종교"로 인식되는 것을 직시하고 교회건축, 교회지도력, 교회조직, 예배, 기도, 찬송가, 절기(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교회연합과 일치운동 등에 대한 상황화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 혹은 해외선교의 실천에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제삼위로 타문화권 선교사(9000명 이상)를 파송하고 있는 것을 결코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해외선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아직도 칼럼버스 식 선교, 즉 먼 이방 오지에 가서 죽도록 고생만하고 어떠하든지 세례 많이 주고 예배당 많이 지으면 훌륭한 선교라는 도그마를 신봉하고 있다. 회심자가 많아지고 교회가 불어나며 예배당을 새로 짖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문제이다. 소위 자생적인 교회가 아직도 없는 "미전도 지역"에서야 그러할 수 있겠지만, 지금 선교지는 서양선교사의 발자국이 지나가지 않은 지역은 거의 없다는 사실과 이미 현지에 크든 작든 교회가 선교의 동반자로 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복음주의자 선교대회인 1989년의 마닐라 대회(제2차 로잔 대회) 때 "오늘의 선교 최전방은 오지나 시골이 아니라 대도시다"라고 천명하였다. 이제는 교통, 통신, 정보의 발달로 다양한 선교방법론이 사용되어야 한다. 대도시로 몰려드는 직업인, 학생, 외국인 근로자, 특파원, 외교관 등에 대한 관심과 함께 대도시에 가려워진 슬럼가, 영세민주거지, 장애인에 대한 선교도 중요한 도전이다. 이들에 대한 상황화적인 선교실천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한국교회 선교사는 문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대한 확신을 견고히 하며 선교현지 문화와 상황을 자문화중심주의로 비판하지 말고 올바를 이해를 해야 한다. 현지인과 사회를 문화의 산물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교지의 문화유산과 역사의 전승 속에 나타난 복음적인 요소들을 살펴보고 그 가운데 복음의 이해를 바르게 하는 가교가 될 구속적 유비의 가능성들을 발견해내고 잘 살려서 복음전달과 양육에 힘써야 한다. 이러한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상황화에 대한 이론을 잘 실천하고, 경험에서 나오는 상황화의 요소들을 신학화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상황화를 실천하는 선교사와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본을 보인 성육신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왜냐하면, 성육신은 상황화에 대한 기본적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 속에서,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는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자세히 말해진 하나님이다."45)
<주석>----------------------------------------------
1) Ruth A. Tucker,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박해근 역, 『선교사열전』,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0), 75쪽.
2) 『기독교사상』1992년 11월호, (서울: 기독교사상 출판부, 1992), 131∼132쪽. 1601년에 이름을 바꾸어 『천주실의(天主實義)』라 하였다. 정안덕, "기독종교와 불교의 호교론적 변론에서 본 명말청초 종교대화의 정신" 제3회 한중국제학술대회 자료집 "21세기 동아시아의 변화와 기독교의 역할"(장신대 2002. 10. 23-25), 155쪽.
3) Ruth A. Tucker, 위의 책, 77쪽.
4) 위의 책, 79쪽.
5) Shoki Coe, "In Search of Renewal in Theological Education," in Theological Education 9 (Summer 1973), p. 233-43.
6)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란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개념의 혼돈을 가져오며, 문화화(inculturation)란 말에 이미 인카네이션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에 여기서는 따로 쓰지 않는다. 사실 문화화(inculturation)란 용어는 성육신 (incarnation)이란 신학적인 용어와 문화 변용(acculturation)이란 사회 과학 용어가 결합하여 탄생한 신조어이다. Louis J. Luzbetak, "'Inculturation': A Call for Greater Precision," in Verbi Praecones: Festschrift f r P. Karl M ller, SVD: zum 75 Geburtstag, eds. K. Piskaty and H. Rzepowski. (Nettetal: Steyler Verlag, 1993), p. 49.
7) Dean S. Gilliland, ed. The World Among Us: Contextualizing Theology for Mission Today (Dallas: Word Publishing, 1989), p. 12.
8) Luzbetak, 'Inculturation', p. 44-45.
9) WCC-CWME, "Bangkok Report," 1973 in IRM, April 1973, pp. 188-190.
10) James A. Scherer, S. B. Bevans, eds. New Directions in Mission and Evangelization 3: Faith and Culture (New York: Orbis Books, 1999), pp. 11-12.
11) Stephen Neill,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홍치모, 오만규 공역, {기독교 선교사} (서울: 성광문화사, 1993), 79쪽.
12) The Venerable Bede,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Nation, Bk 1:30. Stephen Neill, 위의 책, 80쪽에서 재인용.
13) Alan Neely, Christian Mission: A Case Study Approach (New York: Orbis Books, 1995), pp. 42-50.
14) 1623년 고아 회의의 결과가 로마에 보고되었을 때 당시 새 교황 그레고리 15세는 그의 칙령 Romanae Sedis Antistes (1623. 1. 31)에서 노빌리의 선교방법론을 찬성하였으며 브라만 개종자가 문화적 상징물인 세 가닥 실과 쿠두미(kudumi, 상층 카스트를 드러내는 자르지 않은 한 다발 머리카락)을 하용하였다. Alan Neely, 위의 책, 256-57쪽.
15) Aylward Shorter, Toward a Theology of Inculturation (New York: Orbis Books, 1988), p. 5, 10-13.
16) Karl M ller, Theo Sundermeier, Lexikon Missionstheologischer Grundbegriffe (Berlin: Dietrich Reimer Verlag, 1987), p. 183.
17) 위의 책, 183-84쪽.
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ecclesia particularis를 영어로 번역할 때 보통 쓰이는 말이 "지역교회"(local church)이기에 지역 신학과 혼돈할 가능성이 높다.
19) Robert Schreiter, Constructing Local Theologies. 황애경 옮김, {신학의 토착화} (서울: 가톨릭출판사, 1991), 24-27쪽. 그런데 이 책의 옮긴이인 황애경은 27쪽에서 슈라이터의 신학적 핵심인 지역 신학을 "토착 신학 혹은 신학의 토착화"로 바꾸어 번역함으로써 개념을 모호하게 하였다. 이 용어의 토착화를 시도한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토착화란 말이 슈라이터의 지역 신학이 제시하는 개념과 상통한다고 한 점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나 저자의 신조어를 신조어로 살리는 편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옮긴이는 전문 신학서적의 신학적 전문 용어를 너무 일반화하여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혼돈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는 이미 여러 가지 개념을 '서문'에서 잘 구별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쪽에 맥락화, 지역화, 토착화, 적응, 문화화를, 24-27쪽에 걸쳐 토착 신학, 민족 신학, 맥락 신학, 지역 신학을 잘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 문제는 inculturation을 indigenization과 마찬가지로 "토착화"로 번역한 것은 다른 카톨릭 문헌이 전자를 '문화화' 혹은 '문화순응'으로 번역한 것을 무시한 것으로서 개념의 혼돈을 더 가져온다. 비교) Aloysius Pieris, Theologie der Befreiung in Asien: Christentum im Kontekt der Armut und der Religionen, 성염 옮김, {아시아의 해방신학: 가난과 종교 속의 그리스도교} (왜관: 분도출판사, 1988), 71, 77-8, 87, 97, 99-115쪽 등.
20) Alan Neely, Christian Mission, p. 6.
21) ) Y. Tomatala, Teologi Kontekstualisasi: Berteologi dalam Konteks. (Jawa Timur: Yayasan Penerbit Gandum Mas, 1996), p.9, Charles R. Taber,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Culture" in Modern Protestant Missions (Macon, Georgia: Mercer University Press, 1991), pp. 174-77.
22) Justin Ukpong, "What is Contextualization?" Neue Zeitschrift fuer Missionswissenschaft, vol. 43, 1987, pp. 161-168.
23) David Bosch, Transforming Mission, pp. 432-447(Mission as Liberation), 447-457(Mission as Inculturation).
24) 인도에서 철학, 이탈이라에서 신학, 런던에서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베니스에서 고대음악, 스리랑카에서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초로 불교철학을 전공하였다(박사, 1972). 1972년 이래로 피어리스는 하나의 세계적 학자로 활약하고 있다. 유니온, 캘리포니아, 버밍엄 대학 등에서 강의하였고, 마닐라 '동아 사목연구원'(EAPI)의 아시아 종교, 철학 초빙교수로 강의하였으며, '제3세계 신학자 초교파협의회'(EATWOT: Ecumenical Association of the Third World Theologians)의 웨나푸와 회의(1979)와 뉴델리 회의(1981)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74년부터는 콜롬보의 일치운동 연구원에서 내는 대화(Dialogue) 지의 논설주간으로 있다. 대표적인 저서는 앞에서 언급한 "아시아의 해방신학"이다.
25) A. Pieris, 아시아의 해방신학, 104쪽.
26) 위의 책, 105-6쪽.
27) 위의 책, 109, 176-181쪽.
28) 참다운 문화화(문화순응)과 해방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며 상호 수렴되어야 한다는 점, 이것은 아시아에서만이 아니라 제3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게 된다는 의견 일치가 198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5차 '제3세계 신학자초교파협의회'(EATWOT)의 최종 문서에 잘 나타나있다. V. Fabella, S. Torres eds. Irruption of the Third World (New York: Orbis Books, 1983), pp. 201-2.
29) David Bosch, 위의 책, 420-423쪽.
30) 위의 책, 423-25쪽.
31) 위의 책, 425-32쪽.
32) Paul Hiebert, Anthropological Reflections on Missiological Issues, 김영동, 안영권 옮김, {인류학적 접근을 통한 선교현장의 문화이해} (서울: 죠이출판사, 1997), 111-2쪽.
33) 앤드류 월스(Andrew F. Walls)는 1928생으로 시에라리온과 나이지리아에서 선교사역을 하였으며, 비서구세계 기독교에 대한 연구를 한선구자요 선교학자이다. 1985년에 은퇴하여 에딘버러 대학교의 명예 교수로 봉사하는 월스는 많은 잡지를 창간해서 발행하였다. 스코틀랜드 감리교회의 활동적인 평신도 설교가이기도 한 그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선교사 운동: 신앙의 전달에 관한 연구들"(1996), "선교의 유산들"(1993), "선교학에 있어서 구조적인 문제들"(1991) 등 주요 저서를 남겼다. General H. Anderson, Biographical Dictionary of Christian Missions (New York: McMillan, 1998), p. 714. 오는 2001년 장신대 개교 100주년 "국제선교학술대회"에 주 강사의 한 사람으로 한국에 와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월스의 상황화 이론은 1982년에 처음 선을 보이고 후에 수정보완한 "문화에 갇힌 자와 해방자로서의 복음"(The Gospel as Prisoner and Liberator of Culture)이란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것은 최근에 나온 James A. Scherer, Stephen B. Bevans, New Directions in Mission and Evangelization 3: Faith and Culture (New York: Orbis Books, 1999), pp. 17-28에 제1장으로 다시 수록되었다.
34) J. Scherer, S. Bevans, New Directions, p. 21.
35) 이 말은 앤드류 월스가 인용한 말이다. 처음 F. B. Welbourn과 B. A. Ogot이 쓴 책제목이 A Place to Feel at Home이다. 위의 책, 21-22쪽.
36) J. Scherer, S. Bevans, New Directions, pp. 21-23.
37) P. Hiebert, Anthropological Insights for Missionaries, 김동화 외 3인 옮김,『선교와 문화인류학』, 199
38) 여기에서 히버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기의 위대한 인도 선교사 스탠리 존스가 선교현장에서 적용한 일종의 상황화 이론인 "교회와 세계의 두 가지 기준의 상호의존"을 차용한다. 폴 히버트, 『선교현장의 문화이해』, 111쪽, E. Stanley Jones, Christian Maturity (Nashville: Abingdong, 1957), p. 211.
39) "과학과 신학의 인식론적 근거"와 "인식론 변화의 선교학적 의미"는 폴 히버트, 위의 책, 21-65쪽을 참고하라.
40) 위의 책, 113-116쪽 참고.
41) 위의 책, 116-118, 120, 131-132쪽.
42) J. Scherer, S. Bevans, New Directions, p. 205.
43) J. Scherer, S. Bevans, New Directions, pp. 42-53.
44) 위의 책, 205쪽.
45) David Bosch, Transforming Mission, p. 425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