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⑤
* 고구려에 대하여
고구려는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졸본(환인) 지방에서 출발하였다. 이 지역은 대부분 큰 산과 깊은 계곡으로 된 산악 지대였기 때문에 농토가 부족하여 힘써 일을 하여도 양식이 부족하였다.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고 평야 지대로 진출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압록강 가의 국내성(집안)으로 옮겨 5부족 연맹을 토대로 발전하였다. 그 후, 활발한 정복 전쟁으로 한의 군현을 공략하여 요동 지방으로 진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쪽으로는 부전 고원을 넘어 옥저를 정복하여 공물을 받았다.
초기 고구려는 부여와 마찬가지로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렸다. 그리고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통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
중앙 집권 이후에는 형, 사자 계열의 관등을 기본으로 하며 수상은 대대로이다.
또, 고구려에는 서옥제라는 풍속이 있었다. 그리고 건국 시조인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 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고, 10월에는 추수감사제인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아울러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다.
지배층은 절풍이나 나관 위에 새 깃털을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착용하고, 난방으로 온돌(구들)을 이용하였다.
① 옥저와 동예는 국왕이 없고 각 읍락에 읍군이나 삼로라는 군장이 있어서 자기 부족을 다스렸다.
② 부여의 풍속에는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것은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으로 12월에 열렸다.
③ 신라는 진골 귀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가 있어, 국왕을 폐위시키거나 새 국왕을 추대하는 등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기도 하였다.
④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지역인 소도가 있어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다. 천군이 주관하는 소도는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죄인이라도 도망을 하여 이 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다. 이러한 제사장의 존재에서 고대 신앙의 변화와 제정의 분리를 엿볼 수 있다.
⑤ 고구려는 수도에 태학을 세워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가르치고, 지방에는 경당을 세워 청소년에게 한학과 무술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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