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학교’를 상상한다
2022-11-11
이원영 (수원대 교수, 국토미래연구소장)
1. 경숙의 이야기
2024년 서울의 K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경숙은 입학하자마자 ‘생명의 학교’ 캠퍼스가 있는 익산으로 떠난다. 원광대에 인접하여 자리잡은 그 캠퍼스는 농사를 짓는 실습장도 갖추었다. 평소 아토피로 고생해온 경숙은 깨끗한 먹거리와 그 농사에 관심이 많았고, 그 실습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생명의 학교에서 1년간 학점을 이수하면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등록금은 K대학에 납부했기에, 생명의 학교에는 약간의 실습비만 추가납부하면 된다. 이 학교의 재정은 국가가 대부분 지원한다고 한다. 원광대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크게 생명분야와 교양분야로 나뉘는데 후자인 교양분야는 K대학으로부터 온라인강의에 접속해서 공부한다.
전자인 생명분야가 바로 이 학교의 중심교과과정인데, 여기에는 생명철학과 지구과학이라는 기초과목외에 생명농사와 생명먹거리가 1학기 2학기 모두 필수 과목이고 생태건축및목공 생명농업경영 협동조합 녹색금융 에너지기술 생태관광(도보여행포함) 등 실습이 수반되는 과목들이 ‘생명의 학교’의 중심과목이다.
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권유하고 있다. 먹거리와 농사실습의 일원화를 기하는 시스템이다. 기실 현재 한국의 먹거리는 과거와 달리 깨끗하지 못하다. 농사과정에서의 농약 등 환경호르몬 뿐 아니라 GMO변형 식재료들이 넘치고 있어서 온전한 먹거리를 찾기가 어렵다. 이 학교에서는 가급적 스스로 지은 농산물로 먹거리를 만든다. 이 부분이 경숙에게는 매력적이었다.
필수실습과목인 생명농사와 생명먹거리의 진행은 다음과 같다. 3월과 4월에는 생태농사와 먹거리의 기초지식을 배우고 퇴비만들기 실습을 한 후, 5월과 6월에는 본격적인 실습이 진행된다. 주요작물을 생태적으로 재배하는 일을 이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직접 배우면서 진행한다. 그리고 7월과 8월에는 방학이지만 일부 농사일정은 공동으로 진행한다. 9월 10월에는 수확철 농사, 11월 12월에는 농사이론 먹거리실습 등을 학습한다, 1월 2월은 작품(혹은 논문)발표 및 수료식 겸 방학이다.
선택과목들은 대개 동아리 활동과 연계하여 진행한다. 생태건축및목공 생명농업경영 동물복지 협동조합 녹색금융 에너지기술 생태관광(도보여행포함) 등의 과목들은 하나하나가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 가능하다. 진숙은 먹거리와 관계되는 동물복지 동아리에 들기로 했다.
이 분야의 실습지도교수는 기존 농과대학의 교수들이 아니다. 전통농법과 생태농사에 대해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가 지도한다. 학교의 정원은 40명으로써 강의는 함께 듣지만. 실습은 두 반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경숙은 여기서 자연스레 뜻을 함께 하는 친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단순히 전공분야만 비슷한 일반대학생들에 비해 친구복을 얻을 수 있었다.
2. 형덕의 이야기
수도권 사립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형덕은 평소 전통건축과 생태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수학여행때 보았던 민속마을의 초가집은 에너지 절약적이면서 웰빙건강을 실현할 수 있는 훌륭한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천식을 앓는 누이가 아파트생활에 지쳐 좀더 건강한 주거생활을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규대학에서 이런 기술을 습득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런 전문가가 지도하는 대학이 없지는 않지만 그 지방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생명의 학교에서 생태건축과 목공동아리에서 그 기초를 닦을 기회가 생겼다.
물론 농사를 위시한 다른 과목들도 이수를 해야 하지만 학습해둘 가치가 있는 유익한 과목들이다. 생명농사와 생명먹거리에 대한 지식은 100세수명시대에 훌륭한 동반자다. 이 기숙사가 있는 생명의학교에서 체류하면서 생태건축/목공 동아리에서 1년간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있다면 건축가가 될 자신에게 훌륭한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훈련은 게스트하우스를 에너지절약형 생태건축물로 짓는데 그 모든 과정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공사에 참여하면서 실질적 체험을 쌓아갈 수 있었다. 전통방식의 온돌시공에서부터 창호와 단열재의 활용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다.
3. 희숙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지방국립대학 환경공학과에 입학한 희숙은 ‘생명의 학교’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기후위기에 실천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녹색대학이나 대안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도 검토했지만 그곳에서는 정규대학의 과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결함이 있었다.
‘생명의 학교’는 각대학과 학점이수에 대한 MOU를 체결하여, 학생에게 정규교과목 이수와 같은 효과를 주기에 대학1년을 그곳에서 평소 관심있었던 분야를 망라해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기실 일반대학의 1학년 교양과정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기에는 그럴싸 했지만 관심 분야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환경공학 혹은 환경학을 다루는 학과에서 실제로 기후위기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대학 고학년의 환경전공분야에 있어서도 생태적인 부문에 대한 커리큘럼이 부족하고 교수진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농학분야도 생태적인 농사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런 터에 자신의 요구를 안성맞춤으로 충족시키는 학습/실습의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학비도 기숙사비외에는 추가로 드는 게 별로 없다. 국가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인재를 기르는 취지에서 대폭 재정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4. 현기의 이야기
현기는 어느 지방사립대학의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어릴 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고는 에너지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하여 진로도 전기공학을 선택했다. 고교 때 교통사고로 장기입원하는 바람에 학과공부에 공백이 많았지만, 수학만은 그럭저럭 진도를 따라 갈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쯤 기존 전기공학과의 커리큘럼을 보니, 에너지전환에 대해 상세하게 가르쳐주기보다는 전기공학관련 그 자체의 이론과 응용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에너지전환의 기술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는 듯했다. 그리하여 ‘생명의 학교’ 소식을 듣고는 에너지전환에 대한 제반 지식과 실질적 기술을 익히고 싶었다.
태양광 패널의 설치와 관리, 소형 풍력발전설비 등 현장에서 자주 활용되는 기술 등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이 실습의 경험은 학부에서 전공공부를 할 때 보다 생생한 도움이 될 것이다.
5. 미정 카이의 이야기
미정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아버지가 한국에 유학와서 한국인 어머니와 결혼해 낳은 2세다. 피부색은 검지만 엄연한 한국국적이다. 그녀는 한국어 교사가 되어 말리와 아프리카로 진출할 생각이 있다. 이때 좀더 기여할 기술은 무엇일까 살펴보다가 이 학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아프리카에 너무 소중했다. 그녀는 아예 처음부터 이 학교가 있는 원광대의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공부하기로 했다. 1년코스의 생명의 학교이지만 경우에 따라 좀더 반복해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이나 녹색금융 같은 것은 아프리카에서 절실했기 때문이다.
미정에게는 기숙사생활을 통해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의미가 컸다. 한국인들은 피부색이 검다고 해서 차별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친밀하게 지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정에게는 소중한 학교가 되었다.
Q & A
[‘생명의 학교’는 어떤 개념의 학교인가?]
십수년전에 출범한 대안학교의 형태로 ‘녹색대학교’가 독립적으로 설립된 적이 있었다. 취지와 내용이 충실했어도, 기성제도의 학위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때인가부터 대학의 이름은 사라지고 배움터로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적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RE100을 필두로 그린뉴딜, 탄소중립의 무대를 이끌고 갈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존의 체제를 송두리째 바꾸지 않고도, 그리고 학습자로 하여금 양자택일의 고민을 하게 하지 않고도 기존대학의 운영체제속에서 생태적 지식의 학습과 실습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이다.
[‘생명의 학교’의 교육의 철학은 무엇인가?]
한국은 지금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지난 50여년간 산업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체제로 국민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왔다.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정보화시대 인공지능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스스로 계발하는 학습능력이 중요하다. 가르치는 입장이 주도하지 않고 공부하는 주체가 스스로 판단해서 학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시스템의 교체가 필요하다.
또하나의 교육개혁의 방향은 탈자본세상을 열어갈 주체를 길러내는 것이다. 자본의 하수인에 그치기 십상인 현재의 교육패러다임을 전환해서 지구를 생각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학습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다. 100세수명시대의 개개인에게도 올바른 삶의 방식이다.
[운영은 어떻게 하는가?]
한 학급에 20명 두 학급 해서 모두 40명이 전교생이다. 입학심사는 종합적으로 진행된다. 지원동기와 지원자의 내력에 대한 평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일단 첫단계(2~3년)는 원광대의 교양과정으로 개설하되, 운영은 ‘생명의 학교’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한다. 관심있는 대학들과 학점인정 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그 대학들의 입학생이 이 과정에 관심을 갖고 지원할 경우 첫1년을 이곳을 선택할수 있는 옵션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즉, 신입생들은 선택에 의해 ‘생명의 학교’에 와서 1년간 과목 이수한 다음 자신의 대학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등록금은 자신의 대학으로 납부하되, 생명의 학교에는 실습비 일부와 기숙사비만 납부한다. ‘생명의 학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학습과정이므로 국가가 지원한다. ‘생명의 학교’에 있는 녹색학습과정은 모든 전공을 망라하여 학제적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재정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입법한다.
[‘생명의 학교’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가령 바이든 정부가 집권기간 2천조원이 넘는 그린뉴딜 예산을 편성해도, 우리나라가 160조원 규모의 그린뉴딜 예산을 편성해도, 이를 제대로 집행하고 소화해낼 인재가 부족하다.
기후위기시대에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은 기존의 학과에서는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태반이다. 바로 기후대책, 탄소중립, 에너지전환 등 녹색부문의 지식이다. 개별전문지식은 쌓이고 있을지언정 교육과 학습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실습이 필요한 부문이 많다. 거기에 기여한다,
대학입학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학교다. 1년이지만 이 코스를 겪고 자신의 전공을 공부하게 되면 학제간 시너지 효과가 커진다. 자신의 공부에 방향성이 풍부해진다.
현재 전환이 요구되는 세상에서 야성의 리더를 기르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인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는가?]
강의토론과목과 실습과목 두 영역으로 나뉜다. 전자인 강의토론과목은 생명철학 지구과학 생명농사및먹거리 생태건축 생명농림어업경영 동물복지 협동조합 녹색금융 에너지전환기술 생태관광 등이다. 실습과목은 이 과목들 중 실습이 요구되는 과목으로 하되 필수와 선택으로 나뉜다. 실습필수는 생명농사및먹거리 및 생태관광(현지도보여행)이고 실습선택은 생태건축 생명농림어업경영 에너지전환기술 등이다.
교양부문은 학생 각자가 필요한 과목을 자신의 대학과 온라인 연계학습하거나 원광대에서 수강할 수 있다.
[왜 원광대학교에 첫 캠퍼스를 만드는가?]
원광대는 지방명문 종합대학으로서 의과대학과 종합병원도 있다. 재단(학교법인)은 원불교로서 생명사상과 그 실천을 중시하는 곳이다. 재단 차원의 격려와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원광대 캠퍼스와 그 주변은 땅이 넓고 농사실습장을 운영하기에 좋다. 전국에서 접근하기 좋고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장기적인 비전은?]
초기에는 원광대 캠퍼스 한 곳이지만, 점차 국내 여러 캠퍼스로 확산하고 장기적으로 지구촌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아마도 미네르바스쿨을 변형시킨 모델로 온라인학습과 현장체험을 융합한 모델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지구촌 각국에 ‘생명의 학교’캠퍼스를 운영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학생들은 1년에 3~4 장소를 옮겨가면서 학습을 할 수도 있다. 한국에 오고자 하는 지구촌 젊은이들을 받아들이는 예비학교가 되고, 지구촌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선행체험을 제공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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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줄여서 한겨레온에 게재하였습니다.
http://cms.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