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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탈타의 생애 (제03강) - 도올
제 3강 : 싯달타의 생애
최근에 제가 신문을 보다가 느낀 문제가 있어서 말씀드리는데, 달라이라마가 오는게 중요하고 아니고가 아니에요. 최근 달라이라마는 몽골 초청으로 울란바토르를 가는 길에 항공기 환승을 위하여 인천공항에 2시간 머물 계획이었으나 그것조차 거절되었다. 달라이라마가 못오는 건, 순전히 중국 때문에. 중국이 오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중국이 하라는데로 할 이유가 없는 나라에요.
가장 큰 문제는, 압력 가하는 수단으로써 통상, 경제 문제일 거에요. 마늘 문제로 우리 농민들 슬퍼하고 그랬는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잘 살아간다는 것이, 그것이 주체성을 잃어가는 것은 골란하다. 비굴해진다는 것이. 일본에는 수십번 말해도 중국이 아무말도 못하는데, 김포공항 머무는 것도 중국 눈치를 바야하는가. 왜 우리 나라가 점점 이꼴이 되 가는가? 걱정이에요. 싯달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요. 세계문명의 4대 성인 1)공자(BC551-479) 2)석가(BC566-486) 3)소크라테스(Socrates, BC470-399) 4)예수(Jesus, BC6-AD30) 4대 성인의 생몰연대는 모두 불확정적이다.
이 4사람, 4대 성인 배워왔음. 전 대단하게 생각하는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최소한 인간인 한에 있어선 인간일 뿐이다. 역사에서 여기 내려와서 살아있은 동안에는 밥먹고 똥산 사람이에요. 나같이 생각한 사람일꺼고, 그것이 성인의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뛰어난 생각을 해서, 틀을 주었고해서, 의미를 부여한 것일진데, 성인 - 우리 문명의 가치관의 거대한 틀을 부여한 사람들. 싯달타 강의를 할 수 있는 것도, 불교 선전하려는 거 아니에요. 싯달타, 이건 역사적 싯달타다.
종교적 교주에서 싯달타를 찾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 어디있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악수도 해 보고 싶고, 토론도 해 보고 싶다는 거에요. 역사적 붓다. 이건 연구가 치밀하질 못해요. 역사적으로 20대기 신학의 주류. 예수. 예수도 분명히 유대 땅에 살았던 예루살렘 성전을 뒤엎고, 갈릴리에서 성장하고,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 - 예수를 역사적 실존 개인으로서 탐구하는 20세기 신학의 주요 사조 그런데 비교적 역사적 싯달타 연구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많이 있다하더라도, 우리에게 전달된바가 많이 없어요.
예수하고, 싯달타를 연구해보면, 반대되는게 많아요. 싯달타는 거대한, 카필라성에 왕국의 왕자에요. 예수라는 사람은 상당히 천한 사람아니에요? 마굿간, 양 외양간. 성장기 목수했다잖아요. 나사렛 가보면, 빈촌이에요. 옛날에 나사렛 가보고, 금호동 있었잖아요. 나사렛이 꼭 그만합니다. 그 정도 느낌이에요. 목수짓하고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면 출신이 천해요. 싯달타는 출신부터가 다르다. 예수는 자기 동네에 대접을 받았어요? 못 받았어요? "어디서나 존경받는 선지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13:57 이 싯달타는 성도 후에도 엉청난 대접을 받았어요.
자기 가까운 사람부터 불법을 해 나갔기 때문에, 대조됩니다. 죽는 것도 어떻게 했어요? 예수는 요절했어요. 일찍, 33세. 젊은 사람이 일찍 죽은 건데, 싯달타는 80넘게. 잘살다가, 죽을 때도 고귀하게. 예수는 로마에서 재판받고 강도취급 받아서, 강도와 같이 벌 받으며 죽은 사람. 예수와 싯달타 알고 있는 이미지가 대비됨.
예수 싯달타 출생 빈천하다 고귀하다 고향 배척 환영 죽음 사형,요절 천수,화장 가장 중요한 차이는, 뭐냐면, 예수의 일생을 지배하는 이야기는, 예수님을 존경하게 믿게되는 것은 신화적이에요. 탄생부터, 동정녀 마리아. 아버지 없이 태어난거에요.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니까, 신화적이라고 표현한 거에요.
죽은 자를, 나사로를, 썩어서 송장 냄새나는 사람을 살렸잖아요. 이야기가 신화적이고,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잖아요. 승천했잖아요. 신화적이라서 존경하는 거에요. 근데 싯달타 지배하는 이야기는 신화적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요. 날 적에 마마부인 옆구리에서 나왔다. 그거 제왕절개 정도 이야기지. 엄마, 아버지가 이리해서 나왔다. 이 양반은 성도했다 한 후에도, 예수도 성도한 시점이 있어요. 4장, 광야에서 시험 받은 후. 인류를 구원해야 겠다는 자각이 있어요.
예수나 싯달타, 사탄, 마라, 같아요. 마라 - 수행중에 석가를 유혹한 악마의 이름. 서양의 사탄에 해당. 그런데 성도를 하고, 설법을 했지만, 싯달타란 사람 성도 38세. 45년 동안. 설법을 했지만, 싯달타 아무 기적적인 이야기없습니다. 진리를 조용하게 이야기하신 분. 돌아가실 때도 편안하게. 죽을 때도 주위 사람들이 다비식. 뼈를 묻을 때.그 뼈 20세기, 고증학증적으로 2차례나 나옴. 1898 - 펫페(Peppe)가 피프라흐와 고탑에서 명문이 확실한 유골단지 발견 1958 - 바이샬리 무덤유적지에서 진신사리단지 발견 20세기 고고학적 발견으로 확증되는, 다비한 뼈가 확실하다. 사건이 2건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적에 싯달타란 사람은 매우 모든게 인간적, 하나도 다른게 없는. 우리에게 나타난 모습은 예수는 그렇게 신화적인 모습인데, 인간적으로 나타나요. 털이있고. 저 사람 예수같이 생겼네. 형태라든가, 미켈란젤로가 동네 거지를 모델로 그렸데. 양떼를 모는 모습. 설교하는 모습이라든가. 리얼하게 다가오는데. 인간적, 역사적으로 존재가 확실한 싯달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매우 신화적. 삶의 모습 우리의 느낌 예수 신화적 역사적 붓다 역사적 신화적 절당에서, 귀가 내려오고, 머리는 왜 그렇게 꼬실꼬실한지. 흑인계통인가? 머리 꼴실꼬실한 사람많잖아. 전부 정형화되어 있는. 거기 인간적으로 역사적으로 숨쉬는 싯달타를 느껴 본 적 있어요? 없어요? 막연하게, 벙한 거에요.
그러나 예수는 역사적 예수 쫒아가려면 매우 어렵습니다. 전기 자료 자체가 신화 투성이인데, 역사적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단 말이야. 예수가 태어나서, 세세하게, 20대에 돌아다녔어요. 그 일찍이. 얼마나 극성이든지. 사막을 다 돌아다녔다고. 그런데도 전혀 감이 안와. 실존했던 인물인지 감이 안온단 말이야. 싯달타는 이번에 인도를 다니면서, 감을 잡아보려고. 달라이라마에게 말한게, 제가 인도에 온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싯달타가 어떤 사람인지가 자료가 너무 없단 말이야. 그래서 정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을 보러왔다. 성지란 성지는 돌아다녔는데, 역사적 싯달타 보려고 들어가려면, 재미난 문제가 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싯달타, 역사적으로 매우 확실한 인물. 역사 만든 놈들이 날조하기 쉬운 거 아니에요? 없었던 사람도 있었던 것 처럼. 했는데. 최소한 싯달타는 말이죠.
이 사람이 활약한 이후에 2세기 후에 아쇼카 왕이라고. 아쇼카 대왕(AShoka, BC269-232통치) 마우리야 제국(Mauryan Dynasty)의 제 3대 왕으로서 인도 전역을 최초로 통일 최초적 제국으로 통일한 인물. 왕은 의심하지 않을 거아니에요. 복희씨는 의심할지 모르게지만, 진시황은 의심하지 않잖아요. 아쇼카 왕이 싯달타를 흠모했다. 그때는 100-200년 사이에요.
스리랑카의 역사서에 의하면 붓다는 아쇼카 대관식해보다 298년 먼저 태어났다. 그 때에 아소카왕이 느낀 시탈타는 정보 정확할거 아니에요. 이건 싯달타가 뭘 한거다. 기념비를 세웠어요. 붓다의 4대 성지 룸비니(탄생지), 보드가야(대각지), 사르나트(초전법륜지), 쿠시나가르(열반지)는 역사적 고증이 확실한 유적이다. 실달타의 유적이라는 건, 절대 날조가 아니여. 관광사업부에서 관광 위해 만들어 놓은게 아니란 말여. 실달타, 태어난 성. 카필라성. 카필라바스투 - 틸라우라콧트 유적. 싯달타의 탄생지. 지금은 네팔 영토에 속해 있다.
1967년 일본 입정대학과 네팔 고고학국이 공동발굴 실제로 20세기 초에 발굴을 했단 말이에요. 카필라성 대단한 거 같지만, 순천 벌교 앞 남안성 아시죠? 그만한 그정도 일꺼에요. 그거보다 조금 클 꺼에요. 1967년 발굴의 결과 그 유적의 크기는 동서 400m*남북 500m 정도로 판명되었다. 그 동네 사는 제일 큰 사람이래야 봤자, 얼마나 대단하겠어? 감이 오죠?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싯달타 전기문확의 특수. 싯달타는 대단한 호화찬란한 문명에서 살았던 사람은 아닐꺼다. 내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요.
훌륭한 사람이 나면, 이야기하길 좋아합니다. 듣는 입장에서도, 사실적보다 튀겨서. 재미있게. 나중에, 대게 전기문학 이런 것이 부처님 무덤에 경배를 하러 온 사람들 몰려들거든. 탑돌이하고. 차도 없고하니까 오면 몇 달씩 살다 가요. 모여서 살게 된다고. 탑돌이만 하는게 아니라, 빼어난 사람은, 카필라성의 왕자였습니다. 구라치는 사람들, 먹고 산 사람들이 있어. 이야기꾼. 석가의 전기 만들어낸 사람들, 장본인이에요.
싯달타의 이야기는 나중에 굉장히 문확적으로 바뀐 것이다. 지금 전해오는 이야기도 지금 그대로 믿어도 재미있다. 싯달타,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있잖아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있다고 했잖아요. 장자라고, 스님들에게 들어 본 적있죠? 수달장자 - 사위성 사람으로 붓다시대의 가람, 기원정사를 걸립. 고독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급식을 많이 배풀어 급고독장자라고도 부른다. 이 장자라는 말이, 대게 바이샤 계급을 말하는 거에요. 돈 많은 상인 계급. 크샤트리아, 왕 계급. 왕 계급 위에 종교적 브라만 계급. 이런 상황에서 본다면, 계급에서 본다면, 싯달타는, 역사적 싯달타는 크샤트리아 계층이라고 생각되겠죠.
역사적 싯달타가 카필라성의 왕족인 한에 있어서는 크샤트리야계층으로 추정된다. 카필라성이라는 조그만 종족 성의 왕족 추정하지만, 역사적으로 브라만 계층인지, 수드라 계층인지 나와서 위대한 사상을 낸 사람인지 모르는 것. 우리가 이 사람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인도라는 문명이 있잖아요. 방대한 대륙이 있잖아요. 모양 때문에 대륙이라 안하고, 서브콘티넌트(Subcontinent) - 아대륙으로 번역되는데 주로 인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도라는데는, 인도 자체로 여기 자체로 존재하질 못했어요. 항상 위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했었어요.
인도 문명이 인도의 역사는 북방대륙과의 끊임없는 교류의 역사다. 그것은 정복왕조의 교체였다. 그래서 여기 원래에 드라비다족이라든지 있었다고 생각되나, 드라비다족(Dravidians) - 아리안족이 오기 전으 ㅣ인도대륙의 원주민. 인더스강 문명의 주역으로 간주된다. 현재는 인도의 남부에 분포 인도라는 문명은 항상 북에서 침입자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한 역사. 근데, 여기에 인도에 역사에서 가장 중시하는 칩입자가 누구냐? 아리안족이라 그래. 아리안족(Aryans) -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코카서스 원종으로 BC1500-1200년 사이에 인도대륙에 정착 근데 아리안이라는게, 세계인종 4대 인종으로 나누자면, 소위 기골이 장대하고, 코가 불뚝하고 희고, 서양 사람들 할 때, 그 전형이 코케이셔스. 대게 어디가, 이것도 전혀 모르는 학설이나, 카스피 어디서 부터 유래한 종족. 이들이 서유럽쪽으로 진출하고 이란, 거쳐서 들어온 것. 예를 들어서 히틀러같은 사람은 독일민족이야 말로, 아리안 민족의 전통이다.
아리안족의 우위를 주장하는 신화는 19세기 고비노(Gobineau), 샴버레인(Chamberiain)과 같은 사상가에 의하여 고취되어 히틀러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없는 날조에 불과하다. 유대인들, 아리안족에 끼지도 못하는 민족이니, 없애버려야 한다. 사실 유능한 사람 많기에 쓸어버리려 했던 것. 아리안 내려와서, 갖고 온 언어를 산스크리트어라고 해요. 산스크리트(Sanskrit) - 고대 인도아리안족의 언어 BC 1800년대부터 나타나며 베다(Rigveda)문학을 형성하였다. 불교의 원전이 되는 언어는, 아리안족의 언어 산스크리트. 그 당시 말했던 언어. 변화가 심한 언어. 산스크리트어에는 남성, 여성, 중성, 단수, 양수, 복수가 있고 여덟개의 격이 있으며, 형용사, 동사도 다 굴절한다. 이 산스크리트어는 아리안족어 임으로, 서양 언어의 가장 조형적 형태라고 여겨지는 언어. 유러피안 언어의 조형으로서의 산스크리트의 발견은 큰 충격이었으며, 언어학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산스크리트어까지 올라간다.
싯달타 동양사람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다. 불교를 낳은 고대인도문명은 동양문명과는 단절된 것이었으며 오히려 서양문명과 동질적 인종, 언어의 구조 속에 있었다. 근원적으로 서양 문화. 이 사람들이 인도를 와서 지배하면서, 인더스강 주변으로 정착하기 시작해요. 하랍파 문명 멸망시키고 고대 인더스강 문명은 모헨죠다로와 하랍파 양대문명으로 구성되는데, 그 전성시기는 BC 2500-1700년이다.
지금 파키스탄 이쪽으로 동인도, 서북 인도쪽으로 하다가 여기서 상당히 오랜 세월 살다가 동진을 합니다. 이쪽 지금 델리에서 갠지스강 알라하바드(Allahabad) - 야무나강과 간지스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신성한 도시 꿈브 멜라라는 대 풍요기원축제가 열린다. 거기서 올라가, 내려오는 만나서 내려갑니다. 비하라는 지역인데, 인도, 북인도인데, 가운데야 간지스강의 중류지역으로 이 아리안족의 문명이 점점점점 들어오면서 철기 문명이 보급되고, 작은 종족들이, 옹기종기 살았는데, 통합해 가면서 아리안인들이 침공해 오면서 엉청난 사회 변화가 일어나요.
부족국가들이 대국가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 인도 전역 통솔한 인물이 아쇼카 데제. 꼭 중국의 진시황이랑 비슷하거든요. 아리안족이 인더스강에서 간지스강쪽으로 대이동하면서 Bc 500년 경, 철기문명을 꽃피운다. 마우리야 왕조 - BC322-180년 동안 인도대륙을 통합한 최초의 대제국. 그 설립자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야 그 손자가 아쇼카 대제이다. 진시황 시대랑 겹쳐요. 아쇼카 시대랑. 독자적으로 갔지만, 형성된 문명이 시기가 비슷해요. 인류문명은 부족국가시대로부터 통일제국에 이르는 공통도니 운명을 겪었다. 이러한 공통의 조류를 나는 보편사(Universal History)라고 부른다. - 도올 - 중국에 뭐가 있었죠? 전국이란게 있었죠. 그건 황하문명중심으로, 제나라, 노나라 있었잖아요. 있어가지고, 서로 왔다갔다하면서, 유세객들이 있어서, 사라고 했잖아요.
춘추시대를 거쳐서, 전국시대를 거쳐서 어디로 가요? 진시황의 대제국으로 갔잖아요. 이런거와 마찬가지로 갠지스강 유역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어요. 춘추전국 느낌의 시대가 붓다가 살았던 시기. 희랍이란 곳도 마찬가지. 이태리가 있고, 아테네 부근으로 해서 도시국가들이 있다가 서로 싸우다 나중에 결국 뭐가 통일되었죠? 알렉산더 대왕이 통일을 하잖아요. 세계가 같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을 때, 페르시아 전쟁 아테네 승리하고, 펠리크리아, 델로스 맹주, 아중에 스파르타 깨지고. 희랍 판도 변해감. 알렉산더가 통일. 이 때 나온 인물들, 희랍에서는 소피스트라고 부름. 소피스트 - BC 5세기 중엽부터 4세기까지 희랍에서 성행한 전문 유세객들. "궤변론자"라고 보통 번역하지만, 그 참 뜻은 "지혜와 전문기술을 소유한 자"이다.
소피스트를 우리 번역할 적에, 괴변론자라고 하는데, 소피, 소피아랑 같은 말. 지혜로운 사람이다. 나쁜 말이 아니란 말이지. 소크라테스도 어떤 의미에서, 소피스트에서 한 사람이란 말이죠. 가장 대표적, 프로타고라스라는 사람인데,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485-410) - 희랍의 대표적 소피스트.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라는 말로 유명. BC 415년 아테네에서 추방됨.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이랬거든요. 뭐냐면, 여기서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인간은. 개인이에요. 만물의 기준이 되는 것이, 개개인. 이 사람 생각이든, 저 사람 생각이든 다른데.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니가 보는 거랑, 내가 보는 거랑 다른데, 누가 진리다 할 수 없다. 소피스트. 우리 극단적상대주의. 상대주의의 심화 회의주의. 희의하고, 상대주의적성격이 있고, 진리 절대적 기준 믿지 않고. 이들 모든 인간 문제에 대해서 모든 통념 깨는 말, 시각 냄. 기존 가치관 뒤엎어요.
소피스트들은 상대주의(relativism), 희의주의(skepticism)를 고집했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가치관을 이성의 심판대에 올려놓는 날카로운 비판적 지성이었다. 그런식으로 중국에는 사가 나오죠. 유세객들이 나오고, 공자도 그 중 한 사람이죠. 이와 마찬가지도, 인도 중류지역에도, 작은 부족국가들 나오면서 상공업이 발달되면서, 크샤트리아 비대해지고, 브라만 지위 떨어짐. 그들 지위 얻어서 유세하던 사람들 늘어남. 사문이라하는데. 사문(sramana) - 간지스강 중류지역의 부족국가를 유행하던 유세객들의 일반명칭. 그 원뜻은 "노력하는 사람"이다. 인도학 용어. 히라마나라고 하는데, 사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유세를 하면서 진리를 설파하는 거야. 설파하고, 거기에서 모여든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아. 먹고 살아. 프로페셔널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모이게 되잖아요.
집단을 형성하게 되고, 이걸 승가라 해요. 승가(samgha) - 집합, 무리를 뜻하는 일반명사의 한역일 뿐이며 전혀 불교의 특수용어가 아니다. 사문은 모두 승가를 거느렸다. 승가라는 말은 불교 용어가 아니에요. 붓다, 인도 당시의 보편적 현상. 불교에도 육사외도라고 많은 것들이 기술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인간의 존재, 7요소의 집적테다. 파쿠다 카차야나 - 육사외도의 한 사람. 인간은 지,수화,풍,고,락,생명의 7요소의 집적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칼로찔렀다. 이거 나쁜 것이라 할 수 없다. 찌른 사람도 지수화풍이고, 뭐가 나쁜 짓이냐? 극단적인 유물적인. 업, 윤회 모두 브라만들이 우리 속이기 위해 지어낸 거다. 챠르바카 - 육사외도 중의 한 학파. 희랍의 에피큐리아니즘과 비슷하다. 철저한 유물주의. 신,영혼,사후세계, 추리와 인과의 타당성을 모두 부정했다. 인도는 이런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활약했던 시대. 역사적 패턴은, 카필라성 운운하기 전에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싯탈다는 많은 사문 중에 한 사람 이였을 것이다. 그죠?
많은 사문 중 한 사람. 그들 중 뛰어넘어 위대한 역사 운동일으켰던 인도청년. 나보다 젊은 청년 시절에 깨닳음. 절대 싯달타에 대한 고귀한 것 가지지 마세요. 그 사람의 정확한 계급도 추정할 수 없고, 그가 살았던 카필라성. 남안성 정도, 부자라 해봤자, 내가 살던 곳보다 조금 더 잘 살았을 거에요. 촌장 도련님 정도. 이왕이면, 환상적으로, 그 아름다운 왕자로 생각하고 읽어나가자.
불경은 문학적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깨닳기 위한 것이지, 믿어라. 그런 거 없어요. 불타라는 사람은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리지만, 이 사람이 나중에 깨닳았다고 하잖아. 보리수 밑에서 깨닳았다. 우리 사람들, 깨닳았다. 도닦어. 전파해야 겠다. 교주를 만들고, 그래요. 추접은 거에요. 붓다는 깨닳은 다음에 생각한 거는, 절대 남에게 말하지 않겠다. 왜냐면, 말해봐야 나는 어렵게 깨닳음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내 지금 무엇을 말하랴! 탐착에 물든 자들이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어둠의 뿌리로 뒤덮인 자들이여 - 마하박가 -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람 종교를 만들려던 사람도 아니고, 죽을 때도 내가 후계자를 만든다. 불교에는 후계자가 없어요. 그런거 없어요. 죽으면서 내 종교를 가지고 가서, 종단을 이끌어가라. 이런 말 한 적도 없고,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귀의처로 삼으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으라. 남전 - 대반열반경 - 일체 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말라. 불교는 종교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한 청년이 깨닳아서, 처음에는 절대 설법 안하겠다. 사함파티라는 범천은 다음과 같이 종요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아는 자가 있을 것이외다." -마하박가- 그럼 할 수 없이, 한 두마디 이야기한 것이야. 처음 승가라는 것은, 불경 잘못이해하는데, 그 당시에는, 불교도라는 말도 있을 수 없어요.
그리고 스님이라는 개념도 절대 있을 수 없어요. 불다는 걸식하면서, 이쪽 중류가, 강변 유족해졌어요. 코살라족이니, 중류지역이 풍족해졌단 말이야. 먹을게 많았단 말이야. 먹고나면, 찌꺼기가 많이 나왔어. 그래서 걸식이 많이 나왔어. 사문들이 다녔던 거고. 남은 거 먹으면서 진리만을 생각하고 그랬던 것이고, 거기 제가신도, 비제가신도 싯달타 따라다니는 사람하고 구분 있었던 것도 아니여. 처음에는 단지 인간에게 한 이야기지. 비구니나 그런 자에게만 이야기는 아니에요. 싯달타 비구, 비구니에게 한 말이 있거든요.
그건 벌써 후기에 바뀐 경전들. 원래의 붓다의 이야기를 전하는게 아니라는게 근대 불교. 싯달타란 사람의 위대성은 소박한 인간이고. 평생 그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진리, 진리이외에 남긴게 없는 종교를 남긴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다르마라고 해요. 다르마(Dharma) - 법으로 한역되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진리를 뜻한다. 이 다르마, 법만을 남기고 간 사람이다. 이것만 기억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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