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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데버 스크랩 참된 목사의 특징(2) / 마크 데버(워싱턴 DC 의 케피톨 힐 침례교 담임목사)
한아름 추천 0 조회 85 12.08.28 17: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참된 목사의 특징(2)

 

설교일반 조회 수 448 추천 수 0 2010.03.02 10:17:15

마크데버 *.206.231.102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며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회중을 보살피는 일에 있어 교회의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청지기(steward) '라는 단어는 목회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고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사이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합니다. 우리가 맡은 주된 업무는 하나님의 비밀. 즉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에 대한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청지기는 충성하도록 부름 받은 자이니다. 바울은 계속 말합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바울의 진술에는 고린도 성도 가운데 있는 충성스럽지 못한 교사에 대한 암묵적인 정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청지기이지만 복음사역자는 특별히 신뢰할 만해야 한다고 진술해야 합니다 (벧전 4:10).  하나님의 말씀 가르치는 선생인 우리는 더 엄격한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약 3:1). 우리는 막대한 예금을 맡아 보관하는 은행원과 같습니다. 말씀 사역자인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 매우 값지기 때문에 그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창성이 아닌 신실성입니다.
     만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이런 메시지에 헌신한다는 이유 때문에 바울을 하찮게 보거나, 만일 다른 사람들이 바울을 면직시키거나, 만일 심지어 바울 자신이 그 메시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면, 이 중 어느 것도 바울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 중 어느 것도 바울에게 맡겨진 메시지를 바꿀 수 있는 권위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음 사역자인 바울의 할 일을 결정하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 4:3~4). 바울은 자책할 것이 없었지만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신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심판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물론 바울이 자기 검증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후반부에서 바울은 사실상 자기 검증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만(9:27; 참조 고후 13:5). 자기 평가 혹은 깨끗한 양심이 그가 말하는 주제가 아닙니다. 타락한 본성은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가진다 해도 여전히 잘못을 범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양심이 교육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자기 존중(self-esteem)은 최종적인 평가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 바울이 강력하게 시도하는 것처럼, 우리는 임시적인 판단(provisional judgments)을 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마 7:6의 명령처럼). 그러나 바울이 4장 4절에서 말하듯이 인간은 최종적인 재판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 심판받을 것입니다(참조 2:10~16).
    여러분은 궁극적인 심판자 - 즉 오직 단 한 분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심판자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누리는 자유를 아십니까? 우리를 가장 잘 아는 분이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이라는 진리는 참으로 놀랐습니다. 돈 카슨
(Don Carson)은 이것을 잘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시는 것이다." 1)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판단을 확신하십시오. 그러면 다른 사람의 판단에 대해 더욱 정확한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산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저는 스코틀랜드 목사 존 브라운의 편지를 종종 떠올립니다. 브라운 목사는 목회를 준비하는 한 젊은이를 훈련했는데 그가 최근 작은 회중을 섬기는 목사로 안수받았습니다. 이 편지에는 브라운 목사가 젊은 목회자에게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주는 조언이 담겨 있습니다. 브라운은 이렇게 썼습니다.

            
자네 마음의 허영심을 잘 알고 있다네. 주위 자네 동료들의 교인들에 비해,
            자네의 교인들이 너무 작아 기분이 상함을 알고 있네. 그러나 이 늙은이의
            말을 명심하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리스도에게 자네의 교인들을 계산하게
            될 때, 자네는 너무 많은 회중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될 걸세.
2)

    여러분은 이 말에서 청지기이자 목회자인 그가 외치는 음성이 들립니까? 이 말씀 역시 명심하십시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잣니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히 13:17)
     바울에 따르면 참된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장차 임하실 유일한 심판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현재는 궁극적인 심판을 위한 시간이 아니며 그 심판은 고린도 성도들이 행하는 판단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히 13:17) . 아마도 고린도 성도들은 세속적인 규범으로 감동을 주고 화려한 모양과 태도로 웅변하는 교사들의 모습에 시험을 받아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워싱턴에서 뛰어난 연설가는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와 관계없이 특정 사람을 대변합니다. 그들의 자신감은 연설의 진정성보다 뛰어난 웅변 기술에서 비롯됩니다. 고대 고린도 지방에서도 웅변가는 높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유명했고 존경과 부요함이 그들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유명했고 존경과 부요함이 그들을 따랐습니다. 이런 웅변가들에 대한 관심이 교회에 슬며시 들어왔습니다. 실제 메시지의 내용에는 관심 없이, 웅변가가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아도 얼마나 훌륭하게 자신을 드러내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칭송이 따랐습니다.
    그런 웅변 기술은 기독교 사역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바울에게 있어 어떤 교사가 다른 교사에 대해 세속적인 우월감을 갖는 현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참된 기독교 교사는 모두 같은 주인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받아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함으로 하나님 영화롭게 하는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임명된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처럼 당파심을 허용하면, 이런 메시지의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들은 다양한 설교자와 그들의 특이한 은사에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특정한 설교자를 따르기 쉽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섬기는 교회의 마지막 목자로 부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회중이 여러분에게 충성하도록 하십니까? 우리 목자들은 청지기 직분을 수행하는 동안 회중의 충성심이 어디로 향하는 지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바울은 계속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함려 함이라"
(고전 4:6) . 학자들은 이 이용의 출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기록된 말씀(it is written) "이라는 것은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할 때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성경을 떠나지 않도록 권면하면서 설교자들이 전해 준 메시지에 충실하고 설교자들에게 신실해야 할 것을 격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목회자로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도구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신실해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에게 서신 서두에서 세심하게 설명했듯이, 바울과 아볼로는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가진 은사는 직접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전 4:7) .
    이 세 질문은 기독교 역사상 성경에 언급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마르틴 루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이 구절을 통해 사람을 강력하게 감동시키고 겸손하게 하시며, 자신을 높이셨습니다. 잠시 이 질문이 당신의 영혼에 메아리치게 해보십시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생애 마지막 주일 밤, 존 낙스는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기뻐하거나 자랑하라는 시험을 사탄에게 받았지만, 자신의 하인에게 나는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으로 사탄을 물리쳤다고 말했습니다."
3)  고린도전서 앞 부분에서 바울은 자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1:31) .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과 공의, 자비와 거룩함을 만족시켰고, 자신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면서 이 사실을 온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진정한 사역자는 자기 메시지의 중심에 십자가를 둡니다. 또한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사역자로서 자기 사역의 중심입니다.


마크 데버  / 워싱턴 DC 의 케피톨 힐 침례교 (Capitol Hill Baptist Church) 담임목사


출처 : 십자가를 설교하라 (마크 데버 외 6인 공저, 이심주 옮김 / 부흥과 개혁사),  p. 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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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 A. Carson, From Truimphalism to Maturity (Grand Rapids, MI: Baker, 1984), p. 80.
2) (James Hay). (Henry Belfrage, Memoris of the Rev. Alexander Waugh (Edinburgh: Oliphant and Son, 1839), pp. 64~65.
3)  Thomas M' Crie, The life of John Knox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989), p.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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