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말도 안되는 내용의 소설을 써가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양의 관중석 위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조명탑 밑에서 폭죽 소리를 들으며 환호하고 마음껏 소리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실제상황이 아니라 소설입니다. 혼동하지 마시길 바라며)
2004년에 연고지를 옮기면서 '서울 FC'로 이름을 바꾼 LG는 부산아이콘스를 제치고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으로 입성한다. 이들은 안양에선 시도조차 하지 않던 다중 마케팅을 시도하고, 홍보했다. 그들의 홍보 전략의 핵심은 '대한민국' 으로 대표되는 팬들의 응원 코드를 '서울민국' 으로 바꾼다는 데 있었다. 자연스럽게 '타 지역에 대한 배타성' 도 가미되게 되었다. '지방대학' 이라 무시하는 것처럼 '지방팀' 이라 무시하고 깔보는 것을 노렸던 것이다.
2004년 4월 3일에 LG와 부산이 맞붙은 상암 월드컵경기장. 진순진감독은 이미 10년이 되었지만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부산아이콘스 POP와 안양의 레드 서포터스 클럽, 그리고 서울의 신생팀을 원했던 서울 유나이티드측과 그 전해 해체된 서울시청팀 서포터스가 연합하여 안티 LG 퍼포먼스를 펼쳤고, 유니폼 화형식도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그 와중에 진순진감독이 본 것은 경호원들과의 몸싸움,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경기장...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왔을 때는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당시 LG구단의 구단주와 단장이었던 허창수, 한웅수와 서울시장 이명박이 축구팬들에게 붙잡혀 계란세례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식을 듣고 출동한 전경들은 다짜고짜 축구팬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난 말이다.. 이명박씨와 허창수씨의 얼굴을 본 순간, 주위에 쇠파이프가 없나 하고 둘러보고 있었어... 이때는 정말 죽이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더구나. 축구팬들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동정심 따위는 없었지.. 하지만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저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어. 나중에 한꺼번에 갚아줘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지. 내 40년 인생 중에 가장 끔찍하고 가슴아픈 장면이었어.."
진순진 감독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아니, 어느 누가 잊겠는가.
지금 얘기를 듣고 있는 나와 호철이도 잊지 못한다. 10년전 그날의 악몽. 나와 호철이도 축구팬들과 함께 계란 세례에 동참했었다. 전경이 내 몸에 휘드르던 몽둥이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호철이는 등에 각목을 맞고 쓰러져 한참동안 숨을 쉬지 못했고, 나는 날아오는 몽둥이 속에서 싸우다가 옆구리를 다쳤던 기억... 언론에 기사 한 줄 뜨지 않던 처참한 기억...
하지만 LG는 그 기억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했다. 첫시즌의 경기당 관중은 13000명 정도 들어왔지만 그마저도 원정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이 상당수 있었다. 일본의 도쿄 베르디처럼, LG는 서울지역의 연고팀이라는 의식을 전혀 심어주지 못했다. 관중의 절반 정도는 동원된 LG 직원들이었고, 이들은 축구보단 즐길 거리를 원하고 있었다. 결국 치어리더가 동원되었고, 막대풍선과 풀삐리까지 경기장에 반입되었다. 응원구호는 예전에 레드가 사용하던 '슈퍼파워 LG' 였고, 노래는 1990년대 잠실야구장에 울러퍼졌던 '나~가자 LG~' 였다.
그러나 LG는 팀 성적 만큼은 상위권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우승을 차지했고, 나머지 해에도 준우승 3회, 3위 4회 등 상위권을 독식했다. 유럽 빅리그 출신의 선수 몇 명이 노장 시절에 LG를 거쳐간 덕분이었다. 평소 유럽축구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유럽축구팬들이 가끔 상암을 찾아주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LG는 성적에선 성공했지만 흥행면에선 참패를 거듭했다. 2013년의 리그 평균 관중은 6000명 선이었다.
2009년 창단한 '산울림 FC' 는 K2에서 출발했다. '산울림 FC' 의 창단후 첫 경기. 진순진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관중들은 하나였다. 진정한 안양지역의 팀이 안양에 새로 지어진 15000석 규모의 아담한 전용구장에서 경기를 갖게 된 것이다. 이미 경기장 표는 예매 10분만에 매진되었다. 표 한 장당 7000원. K2리그 중에선 가장 비싼 티켓이지만 안양 시민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2003년 이후 5년동안 쉬다가 첫 중계를 다시 맡게 된 경기여서 이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다. 과거 레드가 사용했던 '청년폭도맹진가' 와 '싸나이' 등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안양팬들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마침내 후반 26분, 신재필의 패스를 받은 한정화가 단독드리블 뒤 땅볼 밀어넣기로 '산울림' 팀의 첫 골을 기록한 순간, 관중들과 서포터들은 모두 울부짖었다. 5년동안의 가뭄을 말끔히 해갈해 준 골이었다. 안양 전역에서 축하 폭죽이 10분간 점화되었고, 안양지역을 운행하는 버스들은 모두 경적을 울리며 안양 시민구단 '산울림 FC' 의 골을 축하했다.
'섬머 할리데이' 가 울러퍼진 가운데 '산울림 FC' 는 1-0으로 서산 시티즌을 물리쳤다. 이것이 안양팀의 첫 경기였던 것이다. 구단의 지원으로 TV방송을 할 수 있게 된 나와 호철이도 그 순간에선 체면을 의식하지 않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 다음날, Wave의 게시판에는 '골 넣은 순간, 무슨 말을 하는 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는 내용의 글들이 쇄도했다.
당시 K2는 승강제를 앞두고 매우 활기를 띄었다. 그 해 리그 1,2위는 승격, K1리그 하위 2개팀은 강등되게 되었다. K2에서도 매우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 2006년부터 용병을 영입할 수 있게 된 K2리그의 주요 팀들은 이미 수준급의 용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산울림 FC' 는 올시즌에 리그 3위를 기록하며 승격권에서 아깝게 탈락했고, FA컵에서는 K1 팀들을 연거푸 물리치고 지금 결승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의 성적은 신통치 못했다. 리그 7-8위권을 기록하며 K2에서도 하위권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팬들의 지원만큼은 대단했다. K2 팀들 중 가장 비싼 표값이었지만 평균 관중은 12000명을 넘어갔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관악산 앞에 자리잡은 경기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관중들의 3분의 1 이상이 노란색, 푸른색, 흰색이 조화된 '산울림 FC' 의 유니폼을 입었다. 경기장 주차장은 안양지역의 택시들과 자전거들이 집결했고, 경기장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관중들은 경기장 바로 앞의 축구카페에 들어가 안양팀의 경기를 TV로 지켜봤다. 덕분에 Wave의 안양경기 방송은 안양지역 내에서 홈경기 15%, 원정경기 1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오늘 상암에서 벌어지는 LG와의 경기. 지금 안양과 서울을 잇는 경부선 전철은 산울림 FC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산울림 FC의 응원석인 상암 S석에는 속속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와 시민들이 들어차고 있다. 경기시작 1시간전... 진순진 감독, 그리고 그 옆에 침묵을 지킨 채 앉아있는 이영표 코치, 그리고 안양 시민구단 창단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었던 서포터들.. 말은 안하지만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다.
진순진 감독, 이영표 코치를 비롯한 스탭들에게 우황청심원 하나씩을 건네고 중계석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꼭 이겨주세요. 그래주셔야 해요. 아니....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주세요. 원망하진 않아요. 우리들은... 이미 승리자니까........ 저 패륜아 LG와 붙는다는 것 자체가, LG놈들에게 이긴거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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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커월드의 뿌리[안양레드의 셔포터스 김완근회원였음]의 글을 본인의 허락없이 글을 퍼왔습니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