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교회
Dr. Jelle Faber
박상현
이번 강의 가운데 세 번째이자 마지막 강의는 “하나님 나라 속에서의 교회”라는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이 주제에서 두 가지 영역, 즉 “교회”와 “나라”가 토론에 제시됩니다. 우리의 관심을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특별히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이전 강의에서 성경에 교회 교리에 대해서 이미 말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 성경에서 사용했던 몇 가지 이미지들을 다루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백성의 모임으로서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밤에 이러한 것들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욱이 “왕국”이라는 용어가 성경에서 포괄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왕국을 강조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나는 교회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오늘밤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경에 비추어서 나는 하나님의 나라 개념이 교회 개념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방어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나라의 일부이며, 나라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는 나라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 안에서 당신의 나라에 대해서 계시하시는 바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봅시다.
1. 나라
복음서에서 우리는 반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서 서두 세례 요한의 설교에서 곧바로 이 단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왔다”(마3:2)였습니다. 요한의 이 말씀은 우리를 토론의 요지를 마주하게 하는데, 다시 말해서 마태복음서에서 우리는 자주 “하늘나라”에 대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복음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두 표현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태가 “하늘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몇 가지 해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마태가 “하늘나라”라는 표현을 선호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유대인들을 위해서 길을 썼고, 그 당대 유대인들의 관례는 아무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 거룩해서 죄인의 입술로 선언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를 들어 세례 요한에 대한 주 예수의 질문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 세례가 하늘로부터인가 사람으로부터인가?”(마21:25) 우리는 예수께서 이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라고 질문을 던지시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하늘의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마태가 하늘나라의 비유에 대해서 말할 때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납니다. 나는 마태복음 13장을 생각합니다. 동일한 비유들이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로 제시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내게 “하늘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이름과 같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여러분은 또한 마태가 “하늘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생략한 형태를 사용한다고 말함으로 마태복음서와 다른 복음서 기자 사이에 이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영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혹은 하늘나라 개념은 성경에서 이에 대한 숫한 면모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늘나라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이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행위의 총체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포괄적인 사역입니다. 이것은 온 우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더 자세하게 나아가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 혹은 “하늘나라”라는 표현이 무엇보다도 먼저 영토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주 예수께서 하늘나라에 “들어감”에 대해서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혹은 하늘나라는 영토, 영지로 묘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앞 구절에서 동일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19절) 이 말씀은 영지의 일부를 상기시킵니다. 동일한 사실이 마태복음 23장도 해당됩니다. 여기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을 반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13절) 여기에서 다시 하늘나라가 여러분이 들어갈 수 있고, 여러분이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쳐서 닫아 놓을 수 있는 일종에 영지로 그려져 있습니다.
왕권
하지만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닙니다. 영토, 영지를 제안하는 것 말고도, “나라”라는 단어는 왕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혹은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의 이 중요한 측면을 고려할 때에,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했던 바와 같이, 신약만 아니라, 구약도 생각해야만 합니다. 나는 시편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반복해서 우리는 시편 몇 편에서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편 47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6ff절) 하나님이 온 땅의 왕이시며, 하나님이 모든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이 주제는 반복해서 시편에 등장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시편을 읽기 시작한다면, 시편 93편에서 여러분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왕권”이라는 주제를 접하시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시93:1) 시편 95편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3f절)라고 말합니다. 시편 96편도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1,8,10절)라고 합니다. 아니면 97편도 “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1절)라고 말합니다. 시편 99편도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1,4절)고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에 대해서, 시편이 어떻게 하나님의 왕권에 대해서 말하는지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기 위해서 시편 찬송가에서 몇 가지 표현을 빌려왔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왕권이라는 이 개념은 우리가 창조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합니다. 시편 95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4f절)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을 일으키셨고, 그래서 친히 땅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이 창조주이시기에, 그분이 영원한 왕이시기에 땅을 다스리십니다.
사람
그러나 우리가 구약에서 하나님의 왕권에 대해서 말할 때에,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이 당신의 대리자로 피조물 안에 사람을 두셨다(창1:26ff)는 사실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를 다스리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과 사람의 입지 사이에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암스텔담 말씀 사역자였던 나의 사랑하는 교사인 더 흐라프S.G. de Graaf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만물이 사람에게 복종하고, 사람은 하나님께 자원하는 순종으로 순복하는 나라이다.”[S.G. deGraaf, De Rechten des Verbonds, Wageningen, p.26] 나는 더 흐라프 목사가 시8편과히2장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사람의 입지를 아주 바르게 강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사람의 이러한 입지를 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의 역사에 대한 중요한 것도 이해하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사람이 죄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에 사단이 이 세상의 임금이 되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제한을 받았고, 그래서 하늘나라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하늘나라라는 이름을 설명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자기 입지를 차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이 만왕의 왕을 반역했습니다. 사람이 배도함으로 사단의 종이 되었고, 사단에게 소위 땅을 넘겨주었습니다. 여러분은 구약 성경 전체가 당신의 피조물, 당신의 우주, 당신의 세례를 다시 주장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이 도래하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구원사역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다시 지상에 당신의 왕국을 세우십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에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나라의 재 설립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의 재 설립이라는 표현이 신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이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이러한 재 설립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유다에 대해서 읽어보면, 유다에게서 통치자, 새로운 통치자가 나올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49장 8,9절을 생각해보십시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에 대한 이 예언에서, 우리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 하나님의 나라 안에 하나님께 완전하게 자신을 순복시키게 될 도래할 새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의 자원하는 완전한 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안에 만물이 순복하게 될 분이 되실 도래하실 새 사람에 대한 예언을 봅니다. 하나님 아래 있는 왕으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이 예언은 구약성경 전체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예언을 생각해보십시오. 왜냐하면 이 계보가 유다에서 다윗까지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주님을 위한 집을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다윗의 도래할 아들에 대한 이 중요한 예언을 사무엘하 7장에서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당신이 다윗을 한 집으로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12ff절)
사무엘하 7장의 하나님의 이 예언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말하는 이 모든 경이로운 시편에 기본 사항입니다. 우리는 신정체제,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신다는 통치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 2편 6절은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라고 합니다. 시편 45편은 자기 신부를 신부의 내실로 이끄실 왕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합니다. 시편 72편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를 다스리실 다윗가의 왕에 대해서 말합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캐나다 자치령”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 로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라는 표현은 이 대양 대서양에서 저 대양 태평양까지를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시편 72편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시편 72편은 다윗가 출신 왕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1절)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8절) 여러분은 다윗에 대한 이 약속이 나오는 시편 89편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20절) 그 다음 여러분은 사무엘하 7장에 대한 직접적인 관련 어구를 발견할 것입니다. “내가 또 그의 손을 바다 위에 놓으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놓으리니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25f절) 이 시편들은 이 시편들의 최종적인 성취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 아래서 왕이 되실 도래하는 메시아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성탄절 때에 배우는 이사야의 예언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은 임마누엘에 대한 경이로운 예언들입니다. 이사야 9장은 태어나시게 될 아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아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6절) 이사야 11장에서 온 땅에 평화를 있게 할 이 도래하는 메사야 나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5장에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이 신실한 약속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다윗에 대한 일관된 확실한 사랑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구약성경의 이러한 예언들은 신약성경에 반복되었는데, 이 말씀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선언에서 인용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그의 열조 다윗의 보위를 그에게 주실 것이며, 그의 왕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을 위해 작성된 마태복음에서 정확하게 메시아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마태복음은 다음과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인 선언으로 끝냅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마28:18) 그분은 다윗가 출신의 왕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성취하게 됩니다. 그분은 유프라테스 강부터 지중해까지 다스릴 뿐 아니라,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대양에서 저 대양까지 전 세계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시편 72편의 이 약속은 심오합니다. 히브리서 2장은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대리자로 삼으셨다는 시편 8편의 예언을 인용합니다.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8f절) 따라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왕적인 통치의 재 설립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료입니다.
드리고…오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것이기 때문에, 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21절)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번역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개정역 각주는 “너희 안에”로 읽을 수 있다는 선택 사양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나라가 영적인 어떤 것이며, 외적이지 않으며, 너희 안에 있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본문 자체의 번역이 더 낫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징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 그들은 여기에 있다고 말하지 말라 아니면 여기다! 보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있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소위 성육하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에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들은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여전히 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다시 주님이 성경에서 당신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 또 다른 측면들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현재 실재로서 이 나라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또한 여전히 오고 있는 실재로서 나라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하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왕권은 역동적인 실재이며, 이것은 이를 테면 왕국의 완전함이 올 때까지 역사 내내 자신만의 길을 싸웁니다.
2. 교회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개념이 상당히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온 우주, 온 지구, 온 행성, 별, 천사와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 이 나라와 관련하여 정확히 교회는 무엇입니까? 내 책 개혁주의 교리 소논고Essays on Reformed Doctrine(pp. 131ff)에, 내가 캄펜 신학교에 학생이었을 때에, 자유파 태동 직후에 썼던 글을 포함시켜 놓았습니다. 이 소논고에서 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몇 가지 소논문을 비롯해서 바울 서신서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박사학위를 출판했던 워스터링크H.J. Westerink 박사의 견해를 토론했습니다. 나의 소논고에서 나는 분명히 교회와 나라 사이에 차이가 있으며, 둘을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시킬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분리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으로서 교회에 대한 이 정의로 다시 끄집어내고자 합니다. [1장을 다시 보라.]
총회
구약성경은 주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총회의 날”(신9:10)에 모으셨던 회집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 문맥에서 여러분은 또한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이 총회의 날에 왕이 되셨다는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 위에 당신의 왕권을 놓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을 생각해보십시오. 여기에서 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언약의 열 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 그분은 자기 백성들에게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5f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 제사장 왕국이었습니다. 왜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기 나라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총회의 날에 왕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은 신명기 마지막에 나오는 모세에 의한 경이로운 축복에서 동일한 이 생각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모으셨던 총회의 날에 여수룬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신33:5). 이렇듯 여러분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총회로 제시되어 있었다고 말해도 됩니다.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의 은혜로 다시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제 그 나라의 백성의 총회에 함께 나오게 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들이 있습니다.
에클레시아
여러분이 구약성경에서 발견한 바가 분명히 신약성경에서도 확실하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내가 여러분과 토론하지 않았던 한 가지 논점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라는 용어, 에클레시아는 히브리어 카할이라는 단어를 번역했을 뿐 아니라, 이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신약시대 세계에서 정치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도행전에서 대단히 분명한 방식으로 이것이 증명되어 있음을 봅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우리는 에베소 사람들의 소란한 모임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3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나중에 같은 장에서 여러분은 39절에서 바울이 말하기 때문에 그 지역 서기장의 부드러운 말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절에서 “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에클레시아를 여기에서 반복해서 볼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이 단어는 헬라 세계에서 도성의 시민들의 집회를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정치학”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도시”는 도시국가입니다. 그 도시의 시민들의 모임이 항상 교회라고 불렸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에서 교회에 대해서 처음 말씀하시면서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정치학의 세계, 나라의 세계로부터 취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에 해당되는 이름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이미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긴밀한 관계를 여러분은 또한 신약에서 사용된 이 정치적으로 포장된 표현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서 우리가 하늘나라의 시민이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시민이라고 말할 때에(20절)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의 모임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늘에 시민권이 있으며,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 안에 왕으로 계십니다.
3. 교회와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 사이에 이 긴밀한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조사해봅시다.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을 다스리는 머리”와 “교회의 머리”로 표현합니다. 그 다음 여러분은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의 대리인으로서, 자기 백성과의 그의 특별한 관계로서의 그리스도의 입지에 대해서 생각해도 됩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복음서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반복해서 나라,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동시에 그분은 당신의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에, 그분은 이들 열두 사도가 된 이 열두 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즉 새로운 이스라엘을 일으키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 안으로 모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형제, 내 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식솔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설교하셨는데, 오 호라, 이로부터 교회가 나오게 되리라고 내다보지는 못하셨다”는 말로 대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대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라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고, 교회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여러분은 교회와 나라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18f절)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도 다른 제자들에게 당신의 교회, 당신의 회집과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교회를 지을 것이라고 너희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리라.”
하늘나라 안에서 교회의 중요한 입지를 보여주는 것이 정확히 마태복음 16장의 그 본문입니다. 아무나 지상의 나라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지상의 나라는 개울과 강과 산과 언덕을 총 말라하지만, 이 지상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나라도 포괄적입니다. 이 나라에는 해와 달과 별과 행성과 천사들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안에는 이 나라의 백성, 이 나라의 백성의 회집이 핵심입니다. 이런 생각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하늘나라의 열쇠들을 너희에게 주리라.”
교회와 나라의 이 긴밀한 관계는 사도행전에서도 발견됩니다. 사도행전은 부활 하신 뒤에 40일 동안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주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분이 이 당시에 이스라엘을 위해 나라를 회복하실 것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하시면서, 주 예수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7)라고 하셨습니다. 달리 말해서 복음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유다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와 헬라와 이탈리아에 교회들을 묶어, 제자들이 이 나라의 도래에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렇듯 사도행전에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시라고 사도들이 설교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때를 설명하는, 사도행전 맨 마지막 장을 살펴보십시오. 거기에서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설교했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아니면 28장 23절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이 예수는 하나님이 지상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구약에 약속된 하나님의 사람, 즉 메시아였습니다. 나라의 복음의 설교를 방편으로 해서,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왕국의 복음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시민이 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서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봅니다. 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늘 우편에 그리스도를 좌정하게 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20절)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리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 바울은 예수가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는 권세를”(22절) 받으셨다고 첨언합니다. 이것은 시편 8편 6절의 성취입니다. 만물이 하나님 나라의 대리자인 새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만물을 다스리는 머리로 삼으셨습니다.”(23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바울은 곧바로 “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23절)라는 말씀을 첨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대리자인 하나님의 이 나라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만물의 충만입니다. 그분이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특별히 당신을 당신의 몸인 당신의 교회의 머리로 드러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교회의 왕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특별한 통치영역입니다.
여러분이 에베소서 1장에서 발견한 바를, 여러분은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부친 편지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영향력에 대해서 말하는 바를 읽을 수 있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16ff절) 바울이 하나님의 우주적인 왕국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러한 입지에 대해서 말할 때에, 그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그 몸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13절에서 아버지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바울은 만물(하나님 나라)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입지와 그의 몸(교회)의 머리로서의 그의 입지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도, 여러분은 서두에 이러한 인사말 속에서 같은 사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의 초태생이며, 지상의 왕들의 왕이십니다.”(5절) 요한계시록 5장에서 여러분은 유다 지파에서 나온 사자에 대한 꿈을 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 위에 있고, 이 세상 역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작정을 담아놓은 두루마리를 열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죽임을 당하실 때에 인내하신 어린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다 지파 출신 사자이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분은 세상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작정을 집행하십니다. 이 왕이 요한이 묵시 속에서 촛대 사이를 거니시면서 땅을 종횡무진하시면서, 승리하시고, 당신의 교회를 모으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충만함을 일으키십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나는 우리 신앙고백서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 사이에 놓고 있는 긴밀한 관계에 대해서 몇 가지 논평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 개혁 신앙고백서들은 경이로운 방식으로 교회와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정리해놓았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2주일에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만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며, 우리를 당신의 말씀과 영으로 다스리시며,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구속 안에서 우리를 방어하시고 보전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합니다. 주의 날 제12주일의 “그리스도가 당신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보존하시는 영원한 왕이시다”는 진술은 즉각적으로 21주일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본 고백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성령과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선택하신 교회를 보호하시고 보전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왕이시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분이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구속 안에서 당신의 말씀과 성령으로 당신의 교회를 다스리시고 보호하시고 보전하신다는 뜻입니다.
누구든 주의 날 제19주일의 표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우편에서 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교회의 머리로 드러내시기 위하여 하늘에 오르셨고, 성부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훨씬 더 축약된 방식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에베소서 1장과 골로새서 1장의 가르침의 요약을 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그를 통해서 아버지께서가 만들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본 교리문답은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이 영광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분은 우리를 모든 원수들에 맞서 보호하시고 보전하십니다.”
제31주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십시오. 여기에서 복음 설교와 교회의 권징에 대해서, 믿는 자들에게는 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닫는 하늘나라에 대해서, 하늘나라의 열쇠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31주일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해서 말합니다. 왜냐하면 출교는 죄인이 기독교회의 장로들과 그리스도의 나라로부터 친히 하나님에 의해서 배제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기독교회가 그리스도의 이 나라에 핵심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기독교회로부터 출교된다면, 동시에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출교되었습니다.
비슷하게 여러분은 주의 날 48주일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주의 날은 기독교 강요의 많은 부분을 상기시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기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의 나라가 임하옵시고”라는 말을 “우리가 주님께 더욱 더 순종할 수 있도록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로 해설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의 나라의 순종하는 시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교회를 보존하여 주시고 늘여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주의 교회가 주의 은혜로 원리상 주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의 회집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에 대한 주기도 해설에서, 본 교리문답은 교회의 보전과 성장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이 두 개를 분리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교회와 나라 사이에 풀어헤칠 수 없는 연결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서
이 사실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해당될 뿐 아니라, 우리 벨직 신앙고백서에도 해당됩니다. 27항을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이 고백 첫 항을 잠시 보십시오. 이 조항은 “이 교회는 세초부터 있었고 세말까지 있을 것인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백성들이 없을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시라는 사실 때문에, 이 고백서는 성경적으로 백성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추론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백성이 없는 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백성이 없을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왕권에 순복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기에 항상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분은 벨직 신앙고백서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진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진리로부터 자연스럽게 추론하는지를 봅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입니다.
첫댓글 이 글은 Dr. Jelle Faber, Lectures on the Church, Pro Ecclesia, Western Australia, 1994, pp. 27-31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