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 욜 1:15 - 2:11
본문 - 요엘 1: 15- 2: 11
제목 -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컴퓨터는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직장마다 모두가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보는 것이 일반화 된지 오래입니다. 학교엘 가도 가정엘 가도 심지어는 구멍가게에도 컴퓨터 없이는 고객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컴퓨터는 우리 일상에 중심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컴퓨터가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심각한 역기능을 초래할 때도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블래스터라고 하는 바이러스를 전세계에 유포시킨 사람이 미국 FBI 사이버 수사대에 의해서 추적되어 결국 구속이 되었는데 범인을 잡아보니까 미네소타주에 사는 18살 먹은 젊은이였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우 운영체계 중에 있는 약점을 이용해서 블래스터 바이러스를 유포시켰는데 전 세계적으로 약 50만명 이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기업이나 가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한 최근 무차별로 각종 사이트나 메일을 통해 침투하는 포로노 사이트로 인한 피해는 심각한 지경입니다.
같은 날, 우리 평안의교회 홈페이지에는 C3TV에서 제작한 e-교회채널에 평안의교회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약 2달 전에 취재진들이 와서 취재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교히의 역사적 자료들을 준비해 갔는데, 드디어 지난 금요일에 소개가 된 것입니다. C3TV는 하루에 접속건수가 약 9만명에서 10만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인터넷 방송 채널로서 기독교TV와 함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역하는 방송 선교매체입니다.
얼마 전에는 호산나 테니스선교회가 기독교타임즈에 특집으로 크게 소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선교에 새로운 도전을 받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호산나 축구선교회는 창단된지 14년이 되어 교계에 널리 알려졌지만, 테니스선교회는 아주 드문 경우여서 좋은 뉴스감이라며 찾아온 기자들이 반가워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엘서에 나타나는 가장 강력하고 분명한 신학적 주제 곧 여호와의 날에 대한 말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실 여호와의 날에 대한 소개는 아모스 선지자가 제일 먼저 언급을 하였습니다. 아모스 5장 18절에 보면 (새번역) ‘아이고,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들이여, 여호와의 날이 너희에게 무슨 소용이냐.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사자 앞에서 도망하다 곰을 만나고, 겨우 집에 이르러 손을 벽에 기대다가 뱀에 물린 거와 같다. 여호와의 날이 어두움이냐. 빛이냐. 그 날은 깜깜하여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엘 선지자는 이 여호와의 날에 대한 개념을 조금 더 발전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메뚜기 재앙과 연결시켜 여호와의 날이 메뚜기 재앙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백성들이 겪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그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음이 다른 선지자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말할 때,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미 천국을 경험하고 있거나 혹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음이 요한복음을 통한 주님의 의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미 천국을 맛보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직도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요 3:18)
이제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날이 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를 보겠습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성전에도 기쁨과 즐거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의 재물이 끊어지고 나면, 제단의 제사도 끊어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7절입니다.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극심한 가뭄 때문에 농사가 전혀 되지 않아서 곡식창고들이 텅텅 빌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18절입니다.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 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짐승들이 먹을 풀이 없어서 울부짖으며 괴로워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해서 재앙을 만나면 우리로 인해서 짐승들도 고통을 받고 자연도 고통을 받는 줄 믿습니다.
지난 여름에 요한선교회가 부부동반으로 저 대부도 주변에 한 작은 섬에 수양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하루 동안에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좋았습니다. 갯벌에 가서 호미로 갯벌을 들추면 큼지막한 조개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와요. 그 곳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되서 정말로 조개 캐는 재미가 시간가는 줄도 몰랐어요. 갯벌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땅에 살면서 온갖 오폐물을 다 쏟아 냅니다. 그것이 시내를 통해서, 하수도를 통해서 결국은 바다로 흘러 가는데, 바다에 바닷물에 닿기 전에 갯벌은 그 인간이 쏟아 놓은 오폐수를 다 받아들이면서 갯벌에서 정화해서 깨끗하게 해서 바다로 내려보내는 겁니다. 마치 사람에게 있어서 허파와 같은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갯벌을 가리켜 지구의 허파라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그 갯벌을 막아서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고 하면은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허파를 띄어 버리는 것과 같아요. 스스로의 정화기능을 포기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스스로 그런 일을 잘 못하니까 유네스코에서 김포와 강화도 남쪽에 있는 갯벌을 지정해서 보존하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청계천에 있는 삼일고가도로가 철거를 하고 이제는 흉물스러웠던 고가도로가 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복개했던 청계천의 복개지역도 다 철거하고 옛날처럼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고기떼가 노는 청계천으로 회복시킨다고 하는 프로젝트가 한창입니다. 주변에 청계천 상가에 있는 분들이 굉장히 힘들어 해서 시위도 하고, 항의도 합니다만 그 분들도 자연을 친화적으로 만드는 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공사를 하는 동안에 받을 상업적인, 경제적인 손해에 대해서 적절하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에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고가도로를 철거하면서 어느 기사를 보니까 박정희대통령 시대에 그 고가도로를 건설했던 책임자가 이제는 은퇴하셨는데, 그 분이 그런 고백을 했어요. 이 고가도로를 만드는 동기가 이런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워커힐로 행차를 하실 때 길이 막히지 않기 위해서 삼일고가도로를 만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화와 편리함 때문에 많은 폐해가 있었어요. 그것을 수 십년이 넘은 후에야 바로 잡을려니까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요.
이제 이 사회는 무엇인가 잘 못된 것을 바로 잡아가는 과정에서 진통이 많아요.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는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이 아프면 큰 다는 말처럼 이 사회가 그런 진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치유적인 모습으로 이 사회가 강건한 체질로 바뀌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 속에서 빛이 되고, 세상 가운데에서 소금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이 이 사회 속에서 해야할 일들이 많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요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할 때에 이 엄청난 재앙, 마치 메뚜기떼의 재앙 같이 동물들조차도 신음할 수밖에 없는 이 엄청난 재앙들을 맞이하면서, 왜 하나님이 이러한 일들을 우리에게 주셨는가에 대해서 우연으로 생각하지 말고, 기상이변으로 생각하지 말고, 때때로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자연재해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신학적, 신앙적 의미가 이 속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오늘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분별하기를 간절히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메시지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삶에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생길 때에 그냥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로 재수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예요. 아이고, 우연이다. 우연이 어디 있어요?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우리 평안의 교회는 우리의 모든 삶이, 우리의 모든 세계가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줄을 믿고 고백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 고백이 되지 않으면 이 평안의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수가 없구요. 평안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구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교회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평안의 교회는 분명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을 주장하시고 역사하실 때 때때로 그것이 고통으로 임하고, 때때로 우리에게 재해로 임할 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당신의 말씀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 심각한 여호와의 날을 맞이해서 이 여호와의 날을 그들이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가 다른 선지자와 여호와의 날의 개념이 조금 다른 것이 그 부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재앙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기회라고 하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2장 1절에 가서 우리에게 여호와의 날이 기회요, 사랑의 기회가 됨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라.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라. 이 땅 거민으로 다 두렵게 하라. 이는 여호와의 말이 이르게 됨이니라.’ 호각을 불던지, 나팔을 불던지, 무슨 말입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주위를 집중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하나님 앞으로 모으라는 거예요. 요즘 같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핸드폰을 걸라, 전화를 해라, 인터넷을 통해서, 이메일을 통해서 소식을 전파해라.
저도 이번 주에 있을 베델성서대학 14기 개강에 가장 그 일을 연결해야 할 분에게 오늘 아침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 4일 오후 8시30분 베델성서대학이 개강합니다. 문자메세지를 보냈어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임박한 여호와의 날에 알리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종을 쳤습니다. 30분전에 초종을 쳤구요. 5분전에 재종을 쳤습니다. 멀리 산골짝 계곡 계곡에 5리, 10리가 떨어져도 그 종소리는 그 계곡을 타고 은은하게 들렸어요. ‘아, 지금은 초종을 치는구나!’ 초종을 치는 것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지금 집을 나서라. 그 말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성도의 자세이지요? 재종 치는 것은 뭐예요? 이제 예배가 시작됩니다. 그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있어요. 초종을 치면 ‘아, 이제 교회에서 예배가 가까웠구나.’ 재종을 치면 그 때 옷을 주섬주섬 입는 사람이 있어요.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예배애 늦지요. 습관적으로 예배에 늦는 사람들은 고쳐야 합니다.
우리 예배 지각하지 않기 운동 포스터가 붙어 있지요? 예배에 지각하는 사람은 옐로우 카드를 제시해요. 그 카드를 다 한번 드렸는데, 그 카드를 죄송해서 못 드리고 있습니다만, 여러분 만약 매주 지각하면 옐로우 카드를 받는다면 퇴장당하는 사람이 여기 몇이나 되겠어요? 축구경기는 2번 받으면 퇴장입니다.
어느 교회는 주보에다가 정각이 딱 되면 스템프를 찍어요. 늦으셨습니다. 주보에 늦었다고 하는 스템프를 딱 받는 순간 여러 가지 마음에 생각이 복잡할 거예요. 창피하다. 자존심 상한다. 늦게 온거라도 고맙지. 그런 생각부터 시작해서 아, 다음부터는 내가 일찍 와야지. 그런 긍정적인 생각까지 다양할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자세를 새롭게 하자는 겁니다. 이제 어떤 모양이던지 나플을 불던지, 호각을 불던지, 여호와께로 성회로 모이는 일을 위해서 최선을 경주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국회에서 주5일 근무제 내용이 담긴 개정법이 통과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미 외국인 회사를 중심으로 주5일 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년부터 시작한다고 하지만, 올해부터 시작하려는 회사도 많고, 또 그것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는 그런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5일 근무는 대세입니다. 반대하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도 주5일 근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5일 근무를 했을 때 노동자에게 시간급여에 대한 휴가일수에 대한 보상을 얼마나 할 것이냐, 얼마를 대우해 줄 것이냐 하는 이런 세부사항에서 서로 의경이 안 맞는 것이지 주5일 근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벌써 대한민국은 영화도 토요일 개봉이 없어졌어요. 토요일 주말일 때는 토요일이 대목이었어요. 이제는 금요일 개봉입니다. 토요일 개봉하는 영화사 없어요. 금요일 밤이면 12시, 1시, 2시까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우리사회는 벌써 주5일 체제로 거의 바뀌어 가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걱정합니다.
주5일 되면 자가용 타고 산으로, 들로 가면 주일날 예배는 텅텅 빌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한 번 차를 타고 가족들이 나가면 아무리 못 써도 10여만원 이상은 써야 할 것이고, 금요일날 나가서 일요일에 오는 2박3일은 최소한 30만원은 들텐데, 매주 52주를 그렇게 할 재간이 있습니까? 그것도 한 두 번이지요.
문제는 주어진 그 귀한 시간들을 어떻게 선용하느냐에 있습니다. 교회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그 2박3일에 소중한 시간을 그들이 성도들이 바로 쓸 수 있을까에 고민하고, 그런 프로젝트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제 모든 교회의 행사들은 토요일날 모이는 것으로 선교회, 월례회, 무슨 모든 교회에 행사들은 토요일 모이는 것으로 모든 지도자 분들은 생각을 바꾸셔야 할 거예요. 토요일엔 모여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기도회를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거나 전도를 하거나 그런 일을 하고, 주일에는 예배에 집중해야 하는 그런 컨셉이 딱 잡혀야 합니다. 야외에 나가는 일, 친교 하는 일, 이런 일들도 이제는 모두 토요일날로 날짜가 잡혀야 하는 거예요. 교회가 오히려 앞서가는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의 날에 대한 그 심각한 재앙을 두려워 하면서 벌벌 떨고 있을 것만 아니라, 오히려 요엘 선지자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날이 회개의 날이요, 오히려 성회에 모이고, 금식으로 모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은총의 기회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무너진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들을 다시 한 번 회복하고, 가정들이 회복되고, 내 신앙이 하나님 앞에 회복되어지는 은혜의 기회를 삼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너희는 금식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찌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니 이르게 됨이니라.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 오히려 성회를 선포하며 주님 앞에 눈물로 고백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여호와 앞에 몰수히 모이기에 힘쓰며, 나팔을 불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 앞에 모여 부르짖으므로 이 날이 은총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