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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땅이름에 불교가 끼친 영향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이우용
우리 나라에 불교(佛敎)나 유교(儒敎)와 같은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하늘을 숭배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그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태양. 하늘. 신을 숭배하는 우리의 고대문화를 '밝' 사상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런 고유 민족종교의 바탕은 하늘에는 밝은 세계가 있어서 빛과 더운 기운을 가진 태양이 최고 주재신(最高 主宰神; 하느님)으로 세상을 안돈(安頓)하게 한다는 사상이며, 이러한 생각은 하늘은 아버지이고 땅은 어머니이며,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이 하늘을 따르고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하는, 다시 말하면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제천(祭天) 의식을 행하였다.
이러한 하늘과 인간세계가 통하는 곳이 바로 큰 산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큰 산의 봉우리를 통하여 하늘나라의 하느님과 인간이 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큰 산봉우리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으로 보아서 신성하게 여겼다. 따라서, 큰 산을 '밝달' (삼국사기 고구려 지명에는 산을 達(달)로 적고 있다)이라고 했으며, 제천에 있는 '박달재'도 이러한 지명의 흔적으로 보인다.
'밝'을 의역(意譯)한 대자(對字)로서 '白'을 써서 '밝달'을 '백산(白山)'이라고 기록하였고, 우리 나라에는 태백산(太白山), 소백산(小白山), 함백산(咸白山) 등 '白'자 계열의 산이 도처에 많다. 이러한 산은 태양신에게 제사지내던 곳이었으며 이 소신산(小神山) 중 태백산, 즉 백두산이 가장 중심적인 곳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 신앙의 터는 산수 수려한 큰 산밑에 자리잡게 되었으며, 이러한 곳이 삼한시대 제의(祭儀)가 행해지던 소도(蘇塗)터이다. 이런 소도에 대한 기록은 국내 사서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없으며,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서(魏書) 한전(韓傳)에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天神)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이들 여러 나라에서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 곳을 소도라고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도망자가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 보내지 않아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소도를 세운 뜻은 마치 부도(浮屠)를 세운 것과 같으나 그 행해진 바 선악은 달랐다”
라고 하였다.
소도는 청동기시대인 부족국가 때에,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제의(祭儀)가 행해지던 신성 지역이며 읍간 경계표라 할 수 있는데, 성읍(城邑)국가에서 철기문화를 가진 고대 왕권국가(王權國家)로 발전한 삼국시대에 외래종교인 불교를 새로운 정치 지배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전통 신앙 중심인 소도 지역에 불교사찰을 창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큰 사찰인 경우 거의 창건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부석사의 경우를 살펴보자.
〈삼국유사〉에 부석사 창건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으므로, 의상을 사모하던 선묘가 변한 용(龍)이 다시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었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해서 절이름을 '부석사('浮石寺)'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지금도 무량수전(無量壽殿)뒤에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도둑의 무리 500명이 살았다고 하는 땅은 삼한시대의 소도로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민족 고유 신앙은 그 터를 왕권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불교에 내주고 백성들 생활 속에 민속신앙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전국에는 관음산,(봉)(觀音山,(峰)) 문수산,(봉)(文殊山,(峰)), 보현산,(봉)(普賢山,(峰)) 등의 불교에 영향을 받은 지명이 많이 있고, 또한 불교식 지명이 아니더라도 산이름과 산 밑에 있는 절이름이 동일한 경우에 산이름과 절이름 중 어느 이름이 먼저 생겼는가? 그 유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을 본 발표자는 항상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산 동남쪽 기슭에 있던 성주사(聖住寺)의 예를 보고자 한다.
성주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중건되지 못하여 현재는 폐사 터만 남아 있지만, 문화재로는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월 光塔碑)와 4기(四基)의 석탑과 석등, 석불입상,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성주사는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백제 법왕 때에 창건된 오합사(烏合寺)가 이 사찰이라는 사실은 1960년부터 수집된 기왓조각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백제 멸망 직전에 큰 적마가 나타나서 밤낮으로 여섯 번이나 절을 돌아다니면서 백제의 멸망을 예시해 주었다는 전설이 있는 것을 보면, 백제 시대에도 중요한 사찰의 하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 문성왕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이 절을 중창하고 주지가 되어, 선도(禪道)를 선양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성주산파(聖住山派)의 중심 사찰이 되게 하였다.
'성주사'라는 이름은 '성인(聖人)이 거쳐하는 곳'이라 하여 왕이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 . 이를 미루어 보면 성주사라는 사찰 이름을 좇아서 '성주산'이라는 산이름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옛날에는 지금과 같이 모든 산마다 이름이 생기기 전이라, 큰 사찰이 건립되면, 그대로 산이름이 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산이름은 불교의 영향이 지대하였으며, 이 외에도 불교의 영향을 받은 지명을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1) 보살(菩薩) 신앙의 영향
불교가 창시된 후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소승(小乘)불교와 불타(佛陀)나 보살의 은공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대승(大乘)불교로 갈라졌다.
소승불교는 동남아 방면에 퍼졌고, 대승불교는 우리 나라를 포함한 동북아 여러 나라에 퍼졌다. 대승불교는 종래의 수행관(修行觀)에 있어서 자기해탈(解脫)을 주장하는 대신 대중의 구원을 선행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열반(涅槃)의 상태에 안주해 버리는 소승불교의 최고 성자 아라한 대신에 보살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였다.
보살은 범어로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역(音譯)인 보리살타(菩提薩 )의 준말로, 대승경전에는 관세음(觀世音:관음;(觀音))보살, 문수(文殊)보살, 보현(普賢)보살, 지장(地藏)보살, 미륵보살 (미륵보살은 다음에서 별도 설명) 등 수많은 보살이 있으나, 이들은 석가모니가 아니며, 별개의 개성을 가진 개개 인격으로서, 과거와 미래에 다수의 부처가 있다는 다불사상(多佛思想)을 낳게 하였다.
이러한 보살 중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서원(誓願)하는 관세음 보살을 신앙대상으로 하는 관음신앙과 석가모니불을 좌우에서 협시(脇侍:좌우에서 가까이 모심)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신앙대상으로 하는 문수, 보현 신앙이 삼국시대 이래 전승되었다.
문수보살은 여래(如來)의 왼편에서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고,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 행덕(行德)을 맡고 있어, 일체 보살의 으뜸이 되었다.
그래서 양 보살은 언제나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하기 때문에, 이러한 보살을 신앙대상으로 하여 관음사, 문수사, 보현사가 오래 전부터 창건되었으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찰 이름이 산이름이 되고 마을이름이 되어, 행정지명으로까지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북한산 문수사 뒤에 있는 봉우리가 문수봉이며, 그 동남쪽의 것이 보현봉이다. 우리 나라의 문수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화엄경》에 의하면 중국 산서성(山西省) 청량산(淸凉山 :일명 五臺山)을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라고 하였는데, 자장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가지고 와서 중국의 청량산과 비슷한 지형인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하고 문수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만들었다.
그 후에 이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청량산'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고, 오대산도 문수신앙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2) 미륵신앙
한국 불교에서 '미륵신앙의 성지'로 존숭(尊崇)되고 있는 금산사(金山寺)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행정구역 이름도 절이름을 좇아서 금산면, 금산리라고 한 것을 보면 무척 오래된 유서깊은 도량(道場)인 것을 알 수 있다. 금산사 앞에 큰 사하촌(寺下村)이 있는데, 마을이름이 용화동(龍華洞)이니, 미륵불을 모시는 미륵신앙의 중심지다운 마을이름이다.
미륵불은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수기(受記)를 받은 후, 현재는 도솔천(兜率天)에 계시다가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56억 7천만 년 뒤에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용화수(龍華樹)밑에서 성도(成道)한 다음, 중생을 구제한다늗 미래불이니, 미륵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부지런히 덕을 닦고 노력하면, 이 세상을 떠날 때 도솔천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날 뿐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미륵이 성불할 때 그를 좇아 염부제(閻浮提:현세의 인간세계를 뜻함)에 내려와서 제일 먼저 미륵불의 법회에 참석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미륵신앙에서 보이는 여러 지명이 민중의 염원을 담아서 나타내고 있다. 도솔산, 도솔봉, 두솔산, 두솔봉은 미륵이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 하는 염원이며, 미륵산, 미륵도, 용화산, 용화동 등은 미륵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지명이다.
또한 미륵불이 하생(下生)하여 교화하는 용화회에 참여하여 미륵불에게 향을 공양할 수 있기를 발원한 것이 향목(香木)을 해변에 묻어 두는 풍속으로 행하여지고 있어 미륵하생 신앙의 뿌리깊음을 말해주고 있다. 강원도 고성 삼일포 매향비(高城 三일浦 埋香碑) 및 사천 매향비(泗川 埋香碑) 등에 이러한 것이 잘 나타나 있으며, 최근의 미 공군 사격연습장으로 문제가 되고 있은 매향리(화성군,우정면)도 미륵신앙이 배어있는 지명이다.
3) 사자산(獅子山)
전국적으로 사자산, 사자봉, 사자암(절,바위) 등 사자를 뜻하는 지명이 많다.
사자는 호랑이와 함께 고양이과의 동물중 가장 강력한 동물이며, 예로부터 고상하고 용기있고 싸움 또한 잘하여 사람들로부터 "백수(百獸)의 왕"으로 불려왔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자를 신의 불가사의한 힘과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동물로 생각 하였으며, 아시리아나 그리스사람들은 여신 옆에 반드시 사자를 그려넣기도 하였다.
초기 기독교의 그림에서도 예수나 성인을 나타낼 때 사자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호랑이는 확실히 아시아에서만 분포된 맹수임에 틀림없지만 사자는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 서아시아, 인도 등 더운 지방에 걸쳐 많이 살고 있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서식하지 않는 동물이었다. 예전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사자를 실물(實物)로서 본적이 있는 동물은 아니었다. '사자'야말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온 동물이다.
불교의 교조(敎祖)인 석가모니(釋迦牟尼, BC563-483)는 북인도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카필라(kapila)왕국의 석가족의 왕자로서, 본래의 성(姓)은 고타마(Gautama)이며, 출가 전의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였다. 석가모니는 샤키아무니(Sakyamuni)를 한자로 적은 이름인데, '석가'는 종족 이름이고 '모니'는 성자(聖者)라는 뜻으로서, 곧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즉, 사자는 석가족이 숭배하는 동물이며, 석가의 모든 말씀인 법문(法文)은 다른 진리보다 우뚝선 불변의 진리이가 때문에, 사자는 석가모니를 나타내는 상징 동물이고, 또한 사자는 불교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사자산 중 대표적인 산은 강원도 영월, 평창, 횡성에 걸쳐 있는 높이 1,167m의 산으로,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흥녕사(興寧寺)가 있었는데 구산선문(九山禪門)중의 하나로서 이른바 사자산파(獅子山派)를 배출한산이다.
현재 이 곳에는 법흥사(法興寺)가 있는데, 법흥사의 적멸보궁은 법흥사의 본존(本尊)으로서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이다.
4) 가야산(伽倻山)
가야산은 전국적으로 7개 정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은 해인사를 품고 있은 경상남도 합천과 성주에 걸쳐 있는 산과, 충청도 예산과 서산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합천 가야산의 이름은 가야산 외에도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 기달산( ?山) 등 여섯 가지가 있고, 예산 가야산도 상왕산, 서우산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야산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가야산이 있는 합천 고령지방은 1~2세기경에 일어난 대가야국의 땅으로, 신라에 멸망한 뒤로 처음에는 대가야군으로 불렸고, 또 이 산이 대가야 지방을 대표하는 산으로, 가야국 기원에 관한 전설이 있는 까닭에, 옛날 가야 지방이라는 역사적 명칭에서 '가야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說)이 있으나, 가야산의 정상인 주봉(主峰)이 상왕봉(象王峰)이고, 또다른 이름이 상왕산, 설산인 것을 보면 불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범어에서 '가야'는 코끼리(象)를 뜻하는 말이고, '상왕'은 《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가야'는 인도 남부의 도시 가야(Gaya)를 음역한 것으로, 그 남쪽 30리에 부처님이 성도(成道)한 땅, 즉 불교의 성지 부다가야(Buddagaya)의 주요 설법터로 신성시되던 가야산에서 그 이름을 가져온 것으로 사료된다.
가야산을 상왕산, 상왕봉이라고 같이 부르는 것은 부처님 계신 산이라고 믿고, 또 부처님께서 오시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불교신앙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불교는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이긴 하지만, 우리 땅이름(특히 산이름)에 끼친 영향은 무척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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