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씨(許氏)는 연원을 멀리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에 두고 있다.
허황옥은 원래 인도(印度)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16세때 배를 타고 지금의 경남 창원시 웅동면 용원리에 있는 부인당(夫人唐)으로 들어와 정박을 했는데 김수로왕이 의장(儀仗)을 갖추어 영접한 후 왕비로 맞이했다고 한다.
그 후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맏아들 거등(居登)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허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許氏)로 사성(賜姓)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歸依)하여 하동칠불(河東七佛)로 성불(成佛)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허황후의 30세손인 허선문(許宣文)의 후손은 공암(孔岩:양천), 허사문(許士文)의 후손은 태인(泰仁), 33세손 허강안(許康安)의 후손은 하양(河陽), 35세손 허염(許琰)의 후손은 김해(金海)로 분관(分貫)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그러니까 김해김씨는 부성, 허씨는 모성을 각각 계승했다고 하여 오늘날에도 두 성씨는 상혼(相婚)을 피하고 있다.
허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등의문헌에 5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태인(泰仁),양천(陽川),하양(河陽),김해(金海),함창(咸昌),
수원(水原), 양주(梁州:양산) 외에는 모두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불과한 것이며
그중에서도 현존하는 본관은 양천(陽川)·하양(河陽)·김해(金海)·태인(泰仁) 4본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허씨는 조선조에서 20대 명족(名族)으로 손꼽혔으며 비록 많지 않은 인구로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명문으로서의 지위를 굳혀왔다.
또 인천이씨(仁川李氏)는 허씨에서 갈려나온 성씨이다.
신라 허기(許奇)가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을 때 마침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현종(玄宗)을 호종하여 그 공으로 당나라 황실의 성(性)인〈李氏〉를 사성받고 소성백(邵城伯:소성은 지금의 仁川)에 봉해져 인천이씨의 연원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양산이씨(梁山李氏)는 인천이씨에서 분관(分貫)되어 나왔다.
따라서 김해김씨, 허씨, 인천이씨, 양산이씨는 이성동족(異姓同族)으로 한 핏줄인 까닭에 서로 결혼을 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