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그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날이 그날이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내일을 위해 노력은 해 볼일이다. 그 노력 중 하나가 저녁이 되면 헬스장을 가는 일이다.
이마에 땀이 조금 맺히기 시작한다. 러닝머신에서 걷기를 한 지 막 십오분이 지난다. 옆에서 같이 걷기를 하던 남편이 멈춘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본다. 그만하라는 신호다. 이제 막 몸이 덥혀지기 시작하는데 그만두기 싫다. 무언의 압박에도 그냥 걷기를 계속한다.
남편이 한마디 던진다. “운동에 미쳤나” 말문이 막힌다. 내가 운동에 미쳤다면 그럼 지금 헬스장에 있는 근육질의 사람들은 모두 운동에 미친 중증환자들이다.
남편은 운동을 아주 싫어한다. 내가 운동 좀 하라고 등을 떠밀면 하루 종일 일하고 운동까지 하는 것은 죽으라는 이야기라며 투덜거린다. 맞는 말인 것도 같아 굳이 강요하지는 않는다. 젊을 때는 딱히 아픈 곳이 없어 상관없었다.
어느 날부터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팔꿈치가 아프고 다리도 어깨도 아프다며 짜증을 내었다. 병원에 가니 노화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단순 염증이라고 했다. 아, 노화! 이제는 젊지 않은 나이란 뜻이다.
노화 중의 하나가 근육의 소실이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저절로 사라진다. 근육이 사라지면 몸 여기저기가 이유 없이 불편하고 아프다. 아프지 않으려면 근육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운동뿐이다.
남편은 아프지 않을 때도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었다. 그래서 마치 순례를 가듯 여러 헬스장에 등록하고는 했다. 대부분 등록비를 내는 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즉 등록하는 첫 날은 의기가 하늘 높이 승천해 철인삼종 경기에라도 나갈 것 같았다. 그것이 운동의 시작이자 끝이다.
가끔은 돈이 아까워 샤워라도 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러면 피곤하다는 말로 내 입을 막았다. 등을 떠미는 나도, 안 가려 버티는 남편도 힘들었다. 신경전은 은근히 서로에게 스트레스였다. 다만 등록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은 큰 숨을 내쉬며 “휴 이제 끝났다” 했다. 끝났다? 뭐가 끝났는데 하고 물으면 헬스장 이용 기간이 끝났다는 것이다. 운동은 가지 않아도 마음에 부담은 되었던 것이었다.
결국 노화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또 돈을 버린다 생각하고 함께 헬스장에 등록했다. 나는 매일 하던 수영을 주 삼일로 바꾸었고 저녁에는 근력운동을 할 작정이었다. 운동에 미쳐서 그런 것이 아니다. 혼자 가기 싫다는 남편을 위해 도우미 삼아 등록한 것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삼십분 운동하기로 정했다. 운동은 시작하는 순간이 가장 힘들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헬스장을 가기위해 집을 나서기만 하면 운동은 끝을 보게 되어 있다.
나는 원래 헬스장에 도착하면 몸을 이완시켜주는 준비운동을 이십여분 정도 한다. 오늘은 그것을 생략하고 걷기만 하던 참이다. 이제 겨우 몸이 풀리는데 남편은 그만 하라고 압박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말을 들어야 한다. 어차피 나는 곁다리다. 남편이 싫증을 내면 내일부터 헬스장 출입은 사라질 것이 뻔하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함께 근력운동을 한다. 적당히 무게감을 주며 등과 어깨운동을 하니 안 쓰던 근육에 통증이 느껴진다. 온 몸이 뜨거워지고 이마와 등줄기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린다. 이 때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운동은 사십분을 넘기며 마무리 한다. 무게에 시달린 근육이 평화를 찾고 심장은 박하잎을 머금은 듯 ‘화아’해진다. 남편은 운동 시간을 초과했다며 의기양양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얼굴이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윤기 나는 얼굴에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야시’ 같은 미소를 짓는다. 미소는 은밀하고 비굴하다.
입술을 내 귀 가까이 댄다. 은근한 목소리로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운동을 하러 온 첫날에도 하던 말이다. 겨우 서너 번 운동했을 뿐인데 뭔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기에 할 때마다 몸이 자꾸 좋아진단 말인가.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한 잔하면 안 되겠나?” 소리가 비단이불처럼 사각거린다. ‘야시’같은 웃음은 유혹하기 위한 공작의 날갯짓이었던 것이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남편은 저녁만 되면 매일 소주 한잔이었다. 집에서 마시는 것이니 딱히 실랑이 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 가서 주사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늦게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한 잔 하는 날 저녁은 모든 것이 편했다. 저녁상을 차릴 필요도 없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맛있는 별미까지 만들어 바친다.
요즘은 술 마신 다음 날은 어김없이 ‘술을 끓어야 겠다’ 혼잣말을 한다. 분명 어디가 불편한 것이다. 내일 불편하더라도 오늘은 저리 비굴하게 사정하는데 이길 재간이 없다. 허락 한다고 마시고 안한다고 안 마실 것도 아니다. 원하는 말이 떨어질 때까지 보채고 조를 것이다.
허락 한 마디에 남편은 신이 난다. 옅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어쩌랴, 운동을 해서 어딘가는 좋아졌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설렁설렁하는 하는 운동이지만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도 거북목증후군으로 책을 읽으면 어깨가 아프고 두통이 생겼었다. 근력운동을 시작하고 신기하게 어깨가 덜 아프고 두통은 사라졌다.
운동은 안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하면 몸이 좋아진다. 남편의 말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적당히 술이라는 당근을 주어서 자주 운동을 하게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인지 모른다. 비록 한 달에 열 번 남짓 하는 운동이지만 꾸준히만 할 수 있다면 오늘의 술 한 잔도 적절한 보약이 될지도 모른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안주를 만들며 아예 큰소리로 ‘비와 당신’이란 노래를 부른다. 저렇게 좋을까 싶다. 술이 들어가면 수다가 시작된다. 혀가 살짝 꼬인 사람의 수다를 맑은 정신으로 듣는 것은 곤욕이다. 하지만 한 두 해 겪어본 것이 아니니 다 방법이 있다. 그냥 귀를 닫고 적당히 상황에 맞는 단답형의 대답만 하면 된다. 그것은 내가 또 선수다.
함께 운동을 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와 한 잔하는 저녁이 여러 날이면 좋겠다. 아프면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떠는 날은 몸과 기분이 좋은 날이다. 또한 아무 일도 없는 날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그날이 그날 같은 별다를 게 없는 일상, 나는 그런 날의 저녁이 좋다. (2021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