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점
(어느 학급에 들어가 보면 마찬가지로 항상 말썽을 피우는 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썽쟁이 중에서도 폭력을 사용하는 애들은 제일 골치 아픈 일이다. 이번 이야기는 학생들의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멋지게 변화시킨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2004년) 나는 작년에 1학년 3반 담임으로 있을 때, 나는 항상 학급의 쓰레기 문제로 고심하고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이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린다. 또 어떤 학생들이 음료수를 먹고 난 뒤 유리창 뒤로 음료수병을 숨겨 놓는다. 게다가 어떤 학생들이 분리수거를 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 버린다. 그럴 때마다 궁리끝에 나는 환경보호활동에 대한 경험담을 말해준다. 어떻게 해서라도 학생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유도해 보려 하지만 뒤쪽에 앉아 있는 몇 명은 비웃듯이 큰소리로 웃어 대곤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대책을 내놓아도 잠시뿐 학생들의 쓰레기 버리는 습관은 여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급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의견이 나왔다. 그 내용은 자기 주변에 가장 많이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학생 옆에 아예 쓰레기봉투를 가져 놓자고 하였다. 학생들은 이 의견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였지만 뜻하지 않게 학생들의 폭력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 문제의 발단은 우리 반의 형인이라는 학생이 잠든 사이에 발생하고 말았다. 친구들이 장난치려고 내 자리에 일부러 쓰레기를 몰래 던져 놓았던 것이었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쓰레기를 본 나는 약속한 대로 형인이 자리 옆에 쓰레기봉투를 놓게 되었고 학생들은 나를 ‘미스터 쓰레기’라고 놀려 대기 시작했다. 그 날 하루 종일 형현이는 처분한 쓰레기, 코푼 휴지며 온갖 쓰레기 냄새를 맡아야 했다. 도저히 참지 못한 형현이는 저녁 자율학습시간에 장난친 친구를 불러내 서로 치고 받았던 것이었다. 결국 형현이는 다른 학생의 이빨을 부러트리고 입술이 터지는 피해를 입혔다.
내가 이 싸움 사실을 안 것은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학생부 앞에서는 싸움한 학생들과 몇몇 학부형님들이 찾아 와서 난리였다. 피해를 입은 학생 측에서는 형현이를 고소한다고 난리였다. 모두 다 어떤 처벌이 내려 질 것인가 걱정하면서 교무실 복도에서 걱정하고 있었다. 학생부에서 조사를 한 것을 보니 쌍방이 피해를 입었고 둘 다 잘못이 있었다. 잘못 하다가는 그들 모두 경찰서에 불려갈 수도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학교로 전학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학생부 담당 선생님은 처리 결과에 따라서 학교를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협박하였다. 하지만 그 애들은 같은 마을에서 자라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에 다녔다. 모두 다 잘 처리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폭력을 행사한 사실을 안 이상 학교 측에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담임으로서 고심하고 있었고 담임의 책임하에 사회복지시설에 데리고 다니면서 지도하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몇일 후 다행스럽게 그 애들에게 사회봉사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몇 일전까지만 해도 봉사활동을 이야기를 해 주면 비웃던 놈들과 봉사활동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 실시과정
토요일! 그 애들에게 사회봉사명령이 떨어 졌지만 그 학생들은 봉사활동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봉사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 학생들은 나를 찾아 온 것이었다. 나는 거의 토요일과 휴일마다 평안마을로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사제동행으로 봉사활동 하러 갔다. 그 애들에게 맨 처음 주어진 일은 할아버지를 목욕시키는 일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수족을 못 쓰셨는데 대소변을 못 보시기 때문에 하루라도 목욕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를 매일 목욕시키는 봉사자가 있는 데 오늘은 사정상 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4명의 학생들에게 할아버지를 들고 목욕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를 목욕시키는 일은 학생들에게는 무척 힘이 들은 것 같았다. 학생들의 얼굴에는 힘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처음부터 부담이 되는 봉사활동을 시킨 것 같았다. 그 할아버지를 목욕시킨 후 다시 휠체어에 태우고 방에까지 모셔다 드렸다. 나는 그곳을 나오면서 방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들은 방안에 누워계시는 것을 보았다. 정말 할머니들의 건강이 염려되어 잠시 찾아보았다. 그런데 할머니와 이야기 하는 사이에 그 아이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봉사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될까봐 무척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 애들이 혹시 봉사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큰일인 것이다. 그 놈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찾아봐야만 했다. 다른 애들에게 물어 보니 게이트 볼 장에 가서 게이트볼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애들이 할머니들와 게이트볼 치는 것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 때 게이트볼 장에서 스틱을 들고 우뚝 선 모습에서 강한 리더를 보는 듯 했다. 그 때 형현이는 나를 보고는 혼나는 줄 알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계속 하던 일을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곳 할머니들은 게이트 볼 실력이 엉망이었다. 할머니는 게이트에 공을 넣을 줄만 알지이기는 방법이라든지 경기 진행 방법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형현이는 할머니들에게 간단한 시범을 보이며 할머니들의 자세를 교정해 드리고 할머니들에게 스틱을 올바로 잡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나는 마침 할머니들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을 찾고 있던 터라 나도 모르게 게이트볼 장으로 점점 이끌려가고 있는 듯 했다. 나중에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게이트볼을 언제 배웠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 애는 초등학교 때 사회체육으로 게이트볼을 배웠다는 것이었다. 게이트볼을 배운 것은 그 애뿐만이 아니라 까불이들이 다 할 줄 알았다. 나는 그동안 게이트볼을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서 하지 못햇다. 그러나 이제 게이트볼을 하면서 아이들이 서로 잘 어울린다면 까불이들이 앞으로 서로 좋아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게다가 방안에 할머니를 게이트볼 장으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할머니들의 건강 증진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에 나는 게이트볼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였다.
그 다음날 수업에 들어가서 어제 일요일 날에 있었던 게이트볼 이야기를 꺼내면서 은근히 칭찬해 주었다. 그랬더니 까불이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학생이 봉사활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선수를 뽑기 위해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게이트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게이트 볼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거 구멍에 공을 넣는 거요?”,
“야! 구멍이 아니라 게이트에 공을 넣지.”
“아! 이런 할머니들이나 하는 거예요?” 한 학생이 일어나 모션을 쓰자 교실 안은 폭소를 자아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교실은 난장판과도 같았다. 나는 게이트볼에 대해서 잘 못알고 있는 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만해. 너희들이 게이트볼이 잘 모르고 있구나. 게이트볼은 3가지가 우리에게 유익해서 좋다. 우선 제일 먼저 게이트볼을 칠 때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 위 사람, 가족들, 아니면 친구들이 어울려 치기 때문에 항상 예의를 배울 수 있어서 좋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게이트볼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게이트볼을 하다보면 서로 남을 위해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겨서 좋다. 마지막으로 나는 게이트볼은 생각보다 머리를 써야 되기 때문에 치매예방에 좋은 운동이란다.” 내가 게이트볼에 대해서 설명해주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그 다음부터 나는 학생들에게 게이트볼을 지도하면서 게이트볼에 대한 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냉담하던 까불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인 평안마을에서 게이트볼을 시작하였다. 나는 처음 할머니들에게 위해서 규칙도 알려주고 게이트 볼 잘 치는 방법부터 시작하였다. 그 밖에도 나는 게이트볼을 치면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법도 알려 주셨다. 어는 정도 게이트볼이 익숙해지자 우리는 할머니들을 데리고 면천 게이트볼 장에 가서 게이트볼 대회를 가졌다. 물론 할머니들과 어울려 게이트볼만을 친 것이 아니라 게이트볼장 관리도 해드렸다. 할머니들은 힘이 없으셔서 게이트볼 장이 관리가 되지 않아 엉망이었는데, 우리는 롤러를 밀고 다니며 땅을 고르고 게이트볼 장 주변 청소하는 일도 참여하였다. 그러다 보니 까불이들도 봉사활동이 점점 익숙해져 갔고 까불이들도 어릴 때처럼 사이가 점점 좋아졌다.
(3) 실시결과
마침내 사회봉사명령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봉사활동은 계속되었다. 나는 까불이들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워 주었다. 까불이들은 삽교천 청소활동을 통하여 애향심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식목일 날에 무궁화를 심으며 나라사랑의 길도 배웠다. 사회복지시설과 경로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랑과 믿음을 터득했다. 노인들과 게이트볼을 치면서 에티켓도 배우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배웠다. 사회복지시설의 봉사활동에도 참여하여 노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에 그 학생들은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종전보다 더욱 화목해져 갔다.
그들이 꾸준히 노력한 결과 그 해 각종대회에서 각종상을 휩쓰는 등 가시적인 효과도 거두어 들였다. 그 해 봉사 활동과 관련하여 2004년에는 ‘청소년자원봉사박람회’에서 충남자원봉사센터소장상을 수상하였고, <사랑의 일기>에도 나가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005년에는 청주에서 있었던 ‘전국청소년충효대회’에 나가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이어 ‘전국중고생자웑봉사대회’에 나가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장 영광스런 자리는 2004년 말에는 한국청소년자원봉사상에서 동아리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는 데, 대표자로 참석하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나는 그 때 우수상 프로피를 받아 드는 순간 그 멋진 탈바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과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학교로 전학 갈 뻔도 했고 아니면 까불이로 남아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봉사활동은 그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는 바로 스스로 나서서 우유총책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다. 그 애들에게 이렇게 변하는 것을 보고는 무척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다. 올해는 충무교육원도 가고 금강산도 다녀오고 건강하고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학급반장 일을 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총학생장의 꿈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