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1:1-17> 번제의 영적 의미와 예배, 피의 제사, 속죄, 화제, 향기로운 냄새, 어린양, 예물
1. 배경말씀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 다음에 나오는 레위기의 첫 번 째 말씀으로 제사법 중에 번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레위기는 내용적으로 출애굽기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성막을 짓고 제사장이 준비됩니다. 이제 제사를 드려야 하므로 레위기 시작부터 제사법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연속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레 1:1절에서 계속용법을 사용하여 “그리고 모세를 부르시고”로 연결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데 필요한 ①하나님의 법이 주어지고 ②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성막과 제사장이 준비되니 ③ 이제는 거룩해지는 바른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레위기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과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건물이 있고 목회자가 있고 성가대가 있고 교회 조직이 있고 피아노가 있는 것은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 바른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거룩함을 위함입니다. 레위기는 제사를 통해서 거룩해지는지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사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몇 번의 설교가 될지 모르지만 구약제사를 통해서 오늘날 참 예배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제사법에 대하여 (바른 예배)
▶ 구약의 제사법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입니다 (1:1). 제사의 절차와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 곧 받으시는 제사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3-4절).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가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것처럼 예배도 마찬가지로 받으시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가 하나님 받으시지 않으시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상숭배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일부는 동물을 잡아 놓고 그 앞에 절하면서 제사를 드립니다. 마치 구약에서 이루어지는 동물제사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드리는 동물제사가 구약에서 말씀하는 제사와 같은 것인가요? 아닙니다. 모세가 받은 구약제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도 아담의 후손이므로 아벨의 제사의 흔적 (창 4:4)도 있을 것입니다. 노아의 후손이므로 노아의 제사의 흔적 (창 8:20)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에게 주어진 제사법과는 다르게 아류로 변질되어 갔다고 봅니다. 제사의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다양한 귀신들이 되었고, 동물이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대신 피를 흘리는 대속적 의미도 없어지고 좋은 것 드리고 싶은 의미로 드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음식도 놓습니다. 골고루 드시라고~~ 변질된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구약의 제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같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구약 제사에 있어서 동물이 죽어 피를 흘리는 것은 대속적인 죽음입니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죄를 지고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짐승 대신 죄 없으신 에수님께서 어린양 되셔서 대속적인 죽음을 한번에 이루셨으므로 오늘날 예배에 있어서 참된 제물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빠진 예배는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성령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예배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 제사에서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비록 동물을 가지고 구약의 제사를 드려도 이제는 잘못된 예배입니다. 이제는 그 제물이 예수님이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변질된 구약적 제사를 드리면 더더욱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예배의 진행 절차, 순서보다도 제물되신 예수님이 예배의 중심이 되고 성령임 역사하시면 참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대속적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고백을 할 때 참된 예배의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배에서의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 번제에 대하여
이제 번제를 통해서 조금 더 상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 번제(올라, burnt-offering, burnt sacrifice – 번제물, 올라가는 것, 오르막 길의 뜻)는 가죽을 제외하고 내장과 정강이를 씻은 후 각을 떠서 전부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인간이 취하는 것은 가죽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를 “온전한 제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5대 제사법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번제임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우리들은 영적인 번제를 가장 먼저 드려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영적인 번제는 자신이 산 제물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상번제라 하여 아침, 저녁으로 제사장이 드렸습니다 (민 28:3-4). 이것은 아침, 저녁은 하루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삶의 전부를 드리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자들은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번제와 같은 삶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1)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물(제물)이 필요합니다 (2절).
번제 뿐만 아니라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모든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예물이 필요합니다. 예물없는 제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나아갈 때에는 빈손으로 뵙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명기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① 예물은 원어가 “코르반”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나오는 단어입니다. 예물, 제물, 헌물을 뜻하며 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 제물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7: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이 단어는 드리다, 가까이오다, 접근하다의 뜻인 “카라브”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2절에 “드리려거든, 드릴지니라”가 이 단어입니다. ① 그러므로 예물, 제물(코르반)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예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으면 정해진 흠 없는 예물을 함께 드리면서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오늘날 흠 없는 정해진 예물(제물)은 무엇일까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② 그래서 예물은 아무것이나 드리면 안됩니다(2-3절). 정한 예물이 있는 것입니다. 제사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정결한 가축입니다. 흠이 없어야 합니다. 화목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수컷입니다. 다만 소제는 곡식을 드리는 제사이지만 동물제사와 함께 드려졌습니다.
번제의 경우 흠 없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수컷이 드려지고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드립니다.
먼저 수컷을 드리는 것은 희생제물이 남자이신 예수님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또 죄를 지은 아담이 남자로서 인류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컷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의 모두가 십자가에서 어린 양으로 죽으신 예수님이 중심되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가축이 드려져야 합니다. 산짐승 잡아서 드리지 못합니다. 가축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기르던 정이 든 짐승입니다. 가축의 죽음이 자신들의 죽음과 동일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구약 제사에서 가축이며 수컷이며 흠 없는 구별된 정해진 제물은 오늘날 예수님인 것입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의 수컷은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유일한 참 제물이 되십니다. 구약의 제사 예물이 정해진 것처럼 오늘날 예배도 예물이 정해져 있는데 바로 어린양 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예물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면 안됩니다. 다른 피, 다른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동물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과 일부 동일시 될 수 있지만 완전하지 못합니다. 완전한 희생양이 되기 위해서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흠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참된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잘 해석해 놓았습니다.
[히브리서 10:4]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시 40: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히브리서에서는 분명히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 10:1절에서는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 온전하게 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히 10:8절에는 이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한 몸은 바로 흠 없으신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의 제물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므로 한 영원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다시는 짐승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구약의 제사장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물과 제사장은 다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해마다 죄를 지어 생각 날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온전한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배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히 10:1)
인간 제사장은 손으로 지은 성막에 들어가서 중보했지만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은 단번에 하늘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히 9:24).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통한 제사를 “한 영원한 제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 10:12)
첫째의 것인 구약적 제사가 폐해지고 둘째의 것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배가 세워진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오늘날 신약적 예배, 제사에서의 예물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고 선언한 이유입니다. 돈으로 드리는 헌금이 없어도 예수님이 그 예배 가운데 있다면 참 예배가 가능합니다.
오늘날 구약적 개념의 예물에 집착하여 헌금이 강요되어진다면 잘못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도 오직 예수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어지는 성령님이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 바탕 위에 예배자가 감동이 있어 내 생명까지 드리고 싶지만 당장 드릴 수 없으니 생명 다음으로 여기는 돈으로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성령의 감동에 따라 드려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③ 예물은 여호와께 드려지는 예물입니다(2절).
예수님께서 어린양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전히 여호와께 드려진 예물이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제물을 받으시고 그를 믿는 자 모두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완전한 예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동일하게 오늘날에도 영적 번제를 드리심으로 자신이 산 제물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바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주님처럼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헌금으로 드리는 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죄성으로 예물이 잘못 사용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예물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예물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늘의 불로 제물을 태우기도 하고 제사 장소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기도 합니다.
예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신다는 이 중심이 없으면 흠이 있는 예물이 드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또는 교회에 적선하는 마음으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또 복권을 사듯이 기복적인 마음으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내가 드렸으니 몇 배로 하나님께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잘못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영적 번제는 나를 통째로 드리는 예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드리는 그런 예배가 아닙니다. 내 생명까지 다 드리겠습니다의 고백인 것입니다.
④ 예물은 여호와 앞에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려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서의 원문은 “여호와의 얼굴 앞” 입니다. 여호와의 얼굴 앞에 드리는 것이 예물입니다. 마치 지금 눈 앞에 여호와께서 그 예물을 받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두가 여호와께 드리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기쁘게 드려야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희생제물로 기꺼이 내어 드렸습니다.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피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들이 드리는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인색함이나 억지로 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회막은 출애굽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세워진 성막입니다 (출 40:17). 그 성막 문 앞에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막 문 앞은 제단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알 것은 번제를 드리기 전에는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사 전에는 이 성막 문 앞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거룩함을 입은 후에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영적 번제단을 거친 자가 성소에 들어가 기도하고 말씀의 떡도 먹고 성령의 조명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