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퀸★단비 http://cafe.daum.net/dododanbi7
1.
당신은 누구십니까?
여름은 끝이 안 보인다. 그게 매력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지독한 더위는 왜 한 풀 꺾일 줄도 모르지? 대단히 자존감 높은 계절이다.
새벽에 울던 매미는 오전에도 오후에도 계속해서 운다.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우느냐고 묻지 말라. 제 짝을 만나 사랑하기 위해 열심히 울부짖는 것이니.
시골매미보다 도시매미가 더 시끄럽게 목청을 높인다고 한다. 내 방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붙은 매미도 아주 악을 쓴다. 여름이면 밤낮없이 사랑하고 싶어 안달난 매미의 쪽쪽 소리를 들어 줄라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매미야, 너도 좀 쉴 때 되지 않았니?
나는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볼륨을 더 키웠다.
어제 본 드라마 「빛의 눈물」 시청률이 궁금해서 포털사이트의 연예기사면으로 마우스를 돌렸다.
“역시.”
굵고 큰 글씨로 ‘빛의 눈물, 수목극 1위 굳히기!’ 기사 제목이 반기고 있었다.
클릭해서 읽어보니 무려 35%가 나왔다. 지난주보다 3%보다 더 올랐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곧 사십 프로 넘겠는 걸? 장원이 좋아하겠네.”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며 인기리의 방영 중인 이 드라마 남자주인공 이진기의 찬양기사도 수두룩이다.
기사 밑에 악플도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는 학생, 아가씨 할 거 없이 아줌마, 아저씨들의 마음까지 훔쳤다.
나 또한 요즘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꽃미남 배우 덕에 지루한 여름방학을 조금이나마 억울하지 않다.
이진기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헤-”
이진기 기사 옆에 한 여가수와 스포츠선수의 열애설 기사를 읽어보다 자주 가는 댄스카페에 접속했다.
방학이라 접속한 회원이 많았다.
자유게시판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사이트 메인에 가면가이 또 출몰!]이라고 적힌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 글을 클릭해보지도 않고 ‘가면가이’란 단어만 보고 바로 카페를 나와 사이트 메인으로 빠르게 마우스볼을 굴렸다.
어머나, 어쩜 좋아. 또 올라왔대!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침이 바짝 바짝 마른다. 얼른 보고 싶어서 손가락이 부르르 떨릴 정도다.
이럴 때 엄마나 오빠가 부르면 안되는데……
다행히 어떠한 방해 없이 사이트 메인에 오른 가면가이의 동영상을 클릭할 수 있었다.
쿵쿵쿵. 쿵쿵쿵. 쿵쿵. 쿵쿵. 쿵!
어깨가 들썩이는 힙합음악에 맞춰 가면가이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가면가이는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이진기와 양대 축을 이루며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스타다.
그가 한 번 동영상을 올리면 반나절 만에 십만 네티즌이 그의 춤을 본다.
대단하지 않은가? 십만이라니!
가면가이가 이진기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거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늘 은색가면을 쓰고 춤을 춘다. 그래서 네티즌은 더욱 열광한다.
나도 그의 얼굴이 몹시 궁금하다. 빨리 가면이 벗겨졌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재빨리 댓글을 단다.
: 공개해! 한 번만. 보고 싶어요..
: 얼굴 못생겼어도 괜찮아요. 공개 부탁ㅠㅠ
: 형한테 장가갈래요.
상상 안에 그를 가두기엔 아깝다.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외모를 가졌는지 궁금증은 날로 더해져간다.
그리고 이는 동영상을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더 하다.
내 입은 하마처럼 벌어진다.
경이로운 영상 때문에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번엔 크럼핑 댄스다!
(*저자설명 : Krumping, 미국 흑인 힙합 댄스의 한 형태로 분노를 절제하는 감정 표현을 하는 획기적이며 역동적인 춤이다. 흔히 발생하는 길거리 폭력을 춤을 통해 순화하고자 개발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춤을 출 수 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가슴을 퉁퉁 튕기며 분노를 억제하는 표현을 한 그의 춤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몇 번을 보고 또 보았다.
절도 있는 동작은 깔끔하게 떨어지고, 거친 댄스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강한 힘이 느껴진다.
1분 45초부턴 정말 화가 나 모니터로 튕겨져 나올 것 같은 춤 동작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춤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3분밖에 안되는 시간동안 언제나 그는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안겨준다.
겨울이면 늘 감기로 고생하는 우리 큰 오빠를 보여주면 아마 벌떡 일어날 거다.
나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크럼핑 댄스를 따라해 본다. 쉽지 않다.
“오리야! 전화 왔다!”
너무 급작스럽게 추다가 발가락에 쥐가 났다. 발가락이 분노하는 구나.
엄마의 소리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얼른 발가락을 주물렀다.
“오리야!”
“끄응… 네! 받아요!”
발가락을 원상복귀 시켜놓고 방문을 열고 거실로 뛰어 나갔다.
끈질긴 누군지 전화벨은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려댄다.
“여보세요?”
“뭐하니?”
끈질긴 누군가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장원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가면가이 동영상 봤어. 진짜 대단해! 올라온 지 2시간 정도 된 것 같은데, 조회수 삼만이 넘었어. 너 봤니?”
“아직 못 봤어.”
“당장 컴퓨터 켜서 봐.”
“응. 그 전에 두 가지 소식이 있어. 기쁜 소식, 나쁜 소식.”
“나쁜 소식부터.”
“나… 또 떨어졌다.”
장원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깨가 축 쳐져서 고개를 옆으로 늘어뜨리는 장원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얼마 전 청소년 시조 공모전에 나간다고 생일 날 미역국도 안 먹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했었다. 반드시 옆 반 전교 2등 유시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며 각오를 다지곤 했는데… 쓴 고배를 마셨다는 소식에 내 마음도 안 좋다.
“또 유시인?”
“속상해죽겠어. 이름값은 해야 될 거 아냐. 왜 항상 미끄덩하는지. 겨우 참가상 받은 거 있지, 문화상품권. 그것도 오천원짜리!”
“친구야. 우울해 할 거 없어. 나도야.”
“너도?”
나도 미역국 먹었다. 일주일 넘게 연락이 없으면 자연스레 떨어진 거다. 우리집 전화벨이 안 울리는 건 당연하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합격시킬 리가 있겠는가.
“기쁜 소식은 뭐야?”
“우리 오빠 드라마가 또 1위라는 거! 꺄호!”
여기서 오해는 마시라. 장원이 정겹게 부르짖는 ‘오빠’는 절대 혈연관계가 아닌, 만인의 연인 배우 이진기라는 사실을.
“나도 알아. 에이, 기쁜 소식이 그거였어?”
“당연히 아니지. 우리 여행가자!”
“여, 여행? 에-에취! 콜록콜록.”
갑자기 공격한 청량고추 냄새에 재채기를 했다. 부엌에서 거실로 솔솔~ 넘어와 계속해서 코를 간질이더니만.
“왜 그래? 감기 걸렸어?”
“아니. 집에서 멸치 볶고 있어서. 하던 얘기 마저 해봐.”
“여행지는 내가 정했어. 합천이야!”
“합?”
오, 맙소사!
“장원아? 혹시, 설마, 그곳?”
“딩동댕동. 오리 네가 지금 떠올리고 있는 그곳, 맞아.”
합천이라면 섭씨 35도에 육박하는 폭염 경보가 내려앉은 그곳이 아니던가.
동시에 이진기가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옥의 더위를 맛보며 죽을둥 살둥 촬영하고 있다는 이진기의 말을 연예소식프로그램에서 들은 적이 있다.
지금 그런 곳에 가자는 거야?
“아유, 장원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잖니? 지금 현관문을 살짝 열어놓고 밖에 발을 디뎌 봐. 그럼 합천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거야.”
“추억이잖아! 우리의 추억! 추억은 기억 속에서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훗날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떠올리면서 아, 내가 집에서 빈둥빈둥, 프라이팬에 붙은 부침개처럼 방구석에 눌러앉아 있었구나, 같은 씁쓸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거야?”
장원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건 정말 싫다. 최악이다.
내 눈 앞에 있는 큰 달력은 무심하게도 아쉬움 가득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붙잡고 싶어도 날짜는 지나간다.
“그래도 합천은 좀 무리가..”
“그래서 우리가 합천에 가야 한다는 거야. 뜨거운 여름을 즐길 줄 알아야 매서운 겨울도 즐길 수 있거든. 분명 새로운 경험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너도 진기오빠 보고 싶다며. 으! 생각만 해도 이렇게 떨리다니. 내 마음은 벌써 합천에 가 있다구. 가자, 응? 가서 진기오빠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빼앗아 오자.”
장원이가 ‘제발’을 외쳤다. 들떠서 날 설득하는 이 아이의 애절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들린다.
“가줄 거지, 친구? 응? 응?”
나는 돌돌 말린 돼지꼬리 같은 전화선을 긴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린다. 음…….
“방학도 얼마 안 남았어. 이건 아주 슬픈 얘기다. 우린 곧 머리에 떡지도록 문제집만 파는 고3 수험생이 될 테고, 수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될 거라는 말이야. 이런 자유는 이번 여름방학 때 뿐이란 걸 알아야 해.”
결국 난 마시멜로우를 덥석 물었다.
승낙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것 같다는 말을 장엄하게 덧붙였다.
장원이는 쾌재를 불렀다. 동시에 우리가 즐거울 때면 같이 추는 해피댄스도 잊지 않고 덩실덩실 추고 있을 게 뻔하다.
머릿속으로 정리해보니 합천에 가야 할 이유는 적어도 두 가지는 넘었다.
심심하게 보낸 여름방학을 단 하루로 보상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가장 크게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냥 방에 앉아 인터넷 서핑이나 하는 것보단 한 번쯤 모험을 해보는 편이 훨씬 나답지.
이번 방학 땐 수영장 근처도 못 갔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꽤 억울할 것 같았다. 어딘가에 발도장이라도 쿡 찍어야지. 장원이 말대로 이대로 텁텁한 고3이 되긴 싫다! 끔찍해!
그리고 드라마 촬영장이 아니던가.
아, 한 가지 정확하게 말해두지만 이진기를 열렬히 좋아해서 가는 건 아니다. 물론 완전 그를 배제하기는 어렵다. 한 30% 작용될라나? 개학을 코앞에 둔 여학생 둘을 합천으로 끌어당기는 마력은 아무에게서나 발휘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객관적으로 이진기는 엄청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원이만큼은 아니지만 호감은 간다.
아무튼 새로운 걸 많이 보고 경험할 수 있을 거다.
드라마 세트장에선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배우들의 연기도 생생하게 볼 수 있겠지?
피식. 환상의 세계가 펼쳐질 거라 상상하니까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과연, 이 선택이 쓰디쓴 에스프레소일까?
아니면, 몸에 좋은 생강차일까?
* * * * *
1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 타보고, 이번이 두 번째 기차여행이다.
처음 기차 탔을 때와 다른 게 있다면, 나와 장원이 앞에 친한 친구들 대신, 심하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마녀 같은 여자가 앉아있다는 거다.
“진짜 이럴 거야? 죽는 한이 있어도 기차시간은 맞췄어야지!”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가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든다.
“빠져가지고. 짜증나게. 됐어! 끊어!”
여자는 무참히 핸드폰을 큰 핸드백 속으로 던져 넣는다. 이는 흡사 슬램덩크를 하는 농구선수를 보는 듯 했다. 어찌나 과격한지, 핸드폰 액정이 무사할까 걱정스럽다.
B사감과 러브레터에 등장하는 사감선생 같은 이미지의 그녀를 앞에서 보기가 무지 껄끄러운데, 다행스럽게도 1차 폭격 후 조용히 노트북에 코를 박고 타자만 쳐댄다. 어찌나 손이 빠른지 신기할 정도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하고, 조용해진 분위기에 우리는 안정감을 되찾는다.
장원이가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주섬주섬 꺼낸다.
내가 좋아하는 키스 초콜릿이다. 건네받으려는 순간, 사감선생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어. 새로 나온 맛이다.”
그녀가 아까와는 매우 다른 달콤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타자치는 것도 멈추고 먹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장원이는 당황스러워 쓴 미소를 날리다가, 나에게 초콜릿을 하나 주고 또 하나를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하나 드실래요?”
“그래도 될까요? 고마워요! 나 이 초콜릿 사랑하거든요. 이 초콜릿 만든 사람도요.”
“하하.”
약간 숨 막히는 외곬스타일이겠다 판단해서 말도 못 걸고 숨죽이고 있었는데 초콜릿 먹는 모습을 보니까 어린애가 따로 없다.
키스 초콜릿 하나로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아깐 미안해요. 좀 시끄러웠죠? 파트너가 약속시간을 안 지켜서 열 뻗쳤거든요.”
“이해해요. 현대인에게 시간은 금이잖아요.”
“으음. 오우, 오, 이제야 열이 가라앉네.”
그녀는 온갖 감탄사를 내뱉는다. 초콜릿 하나 음미하면서 이렇게 요란한 건 처음 본다. 나랑 장원이는 재밌어 킥킥 웃었다.
“어디로 가요?”
“우린 합천에 가요.”
내가 답했다.
“합천? 나도 합천 가는데.”
“아, 그래요?”
이 여자도 혹시 이진기 팬인가?
이 기차 안 곳곳엔 ‘LEE JIN KI’라고 쓰여 있는 이진기 팬클럽 티셔츠를 입은 팬들이 앉아있다. (그 옷을 입겠다는 장원이를 겨우 말렸다.)
조금은 촌스럽지만 단결된다는 힘을 자랑하는 상징인 티셔츠를 입지 않은 거 보니 여자는 팬클럽은 아닌 게 확실하다. 눈 밑에 그늘이 져 초췌해 보이긴 하지만, 합천에서 나고 자란 얼굴은 아니고. 그냥 내 느낌이다.
“난 취재하러 가요. 요즘 이진기 나오는 드라마가 대세잖아요.”
와! 순간 우리 두 사람의 엉덩이에 힘이 팍 들어갔다.
장원이는 나보다 더 했다. 그 여자에게 입이라도 맞출 기세로 얼굴을 심하게 들이밀었다.
“기자예요, 언니?”
바로 언니소리가 나오는 장원이다.
그녀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기자를 처음 본 난 그녀가 새롭게 보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눈으로 샅샅이 훑어본다.
수수한 듯 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세련된 느낌이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던진다.
“어디 기자인데요?”
“뷰티풀우먼이라고, 알아요?”
그 유명한 여성잡지를 왜 모르겠는가!
치과에도 있고 미용실에도 있고 사우나에도 있고 장원이네 안방에도 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그 잘 나가는 잡지 기자라니.
“알다마다요! 정기구독해요. 언니, 우리 진기오빠 기사 좀 잘 써주세요.”
“그럼요. 아. 잠깐 인터뷰 해줄래요? 이진기씨 관련된..”
“좋아요! 진기오빠에 관한 인터뷰라면 모든 지 할 거예요. 제 이름도 꼭 넣어주셔야 해요! 그리고 말 놓으셔도 돼요.”
“그럴까?”
적극적인 여고생들의 환희에 그녀는 얼굴이 환해진다.
우리에게 명함을 준다. 궁서체로 ‘김수연’이라는 석자가 정확하게 박혀있다.
어른의 명함엔 알 수 없는 힘이 보인다.
우리는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수연언니는 우리가 물어보는 모든 것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어떻게 기자가 되었고 어떤 일을 하며 실제로 본 연예인에 대해 낱낱이 이야기 해주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대충 누굴 얘기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도 했다. 늘 꿈을 꾸는 로맨스 말이다.
“기차 여행은 뭔가 신비로워. 운명적인 사람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거든.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기차를 많이 타봤는데 지금까지 내 앞이나 내 옆에 남자가 앉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파트너 빼고. 어쩜 그러니. 늘 너희 같은 어린 학생이나 할머니, 아줌마였어. 근데 난 그게 내 운명이라고 믿어. 분명 에단호크같은 근사한 남자가 앉게 될 거야. 그리고 난 기다렸다는 듯 데이트 신청을 하겠지.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어우, 나 이러다 결혼 못하는 거 아닌지 몰라.”
기차 로맨스, 사랑이란 달콤함을 부여하니 기분이 색다르다. 언니의 말을 듣고 가슴이 뛴다. 어린 우리나, 다 큰 언니나 여자라면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기는 매한가지다.
언니는 첫 인사과 다르게 무척이나 소탈해서 우리를 즐겁고 편안하게 해줬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죽이 잘 맞기도 어려운 거 아닌가. 행운이지 싶다.
창밖으로 흐르는 시골의 넓은 황금 들판과 푸르고 화창한 실록을 배경삼아 우리는 행복한 공상에 젖어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최신 가요부터 클래식까지 음악도 함께 듣고 계란도 깨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차 여행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번뜩이는 여름의 태양.
끈적이는 땀이 짜증과 함께 온 몸에 스며든다.
가만히 서서 입만 벌려도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와 청바지를 척척하게 만드는 오후 3시.
합천이다.
“학. 숨 막혀. 여기 완전 사우나야!”
후끈한 지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목덜미를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분홍색 머리끈으로 묶으니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든다. 기분만! 시원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거짓말 주문을 외울 뿐이다. 여긴 꽤 쌀쌀하다고.
나와 마찬가지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있는 장원이 생수병을 건넨다.
“그러게. 장난 아니다. 하. 그래도 좋다. 이제 우리오빠 볼 수 있는 거야! 야호!”
곧 있으면 만난다는 희망에 한껏 들떠선 더위를 무시하고 방방 뛴다.
“오빠~ 기다려요. 이 소녀가 갑니다.”
“누가 들으면 감격의 이산가족 상봉하는 줄 알겠다.”
장원이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아이처럼 두 볼이 발그레하다.
나는 사람의 체온을 넘어선 이 무자비한 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합천이란 곳은 정말… 정말 더웠다. 말로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도저히 웃을래야 웃을 수가 없는 날씨라고 하면 이해할까?
합천 땅에 발을 딛자마자, 마음 속 후회의 파도가 일렁였다. 아! 오지 말 걸.
뜨거운 열이 얼굴에 훅 끼쳤을 땐, 당장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다.
이곳 더위에 비하면 서울의 더위는 추위나 다름없다. 사막이 이럴까?
두 발목에 젖은 빨래를 묶어놓은 듯 내 움직임은 둔해진다. 이진기가 바로 옆에 와도 고개를 못 올린 정도니 말 다했지.
살이 쪽쪽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다이어트로 쫄쫄 굶는 친구들에게 추천해줘야겠다.
굶을 필요 없이 살 빠지는 방법이라면, 합천은 난리가 나겠지? 안 그래도 이진기 팬들로 이렇게 북적이는데.
“아, 아영하세요.”
합천 영상 테마 파크 입구로 걸어가는 도중, 누군가 인사를 한다.
슬쩍 보니 아줌마가 이진기 얼굴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까 기차에서 일본어로 통화하는 걸 얼핏 들었다. 일본 아줌마 팬이구나.
“안녕하세요. 이진기씨 보러 오셨어요?”
“아! 네! 맞스무이다. 저는 이진기씨 팬이무이다. 반갑스무이다.”
어설픈 우리말에 살짝 웃음이 났다. TV에서 개그맨이 흉내 내던 일본인의 생생 발음이었다.
일본 아줌마는 남편 식사는 못 챙겨줘도 이진기가 출연한 영화며 드라마는 꼭꼭 챙겨본다고 했다. 그리고 그를 만나러 합천까지 온 것이다.
솔직히 말로만 들은 한류열풍이 이렇게 거센지 몰랐다.
TV에서 이진기가 일본 하네다 공항에 내리면 기다리고 있던 천여 명의 팬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감이 나지 않아 특별히 놀랍지 않았다.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데 그의 인기를 이곳에 내려와 직접 체감하게 될 줄이야.
“진기씨가 좋아서 한국말을 배우게 되었으무이다.”
“와, 정말 잘하세요.”
“하. 아니예요.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어려워서.. 잘하고 싶스무이다.”
“한국엔 처음이세요?”
“아니요.”
일본 아줌마 팬이 수줍게 웃으며 열손가락을 펴 보인다.
“한국 좋아요. 한국 정말 예뻐요.”
대단하구나, 이진기.
아줌마 외에도 드라마 촬영을 보려고 미국, 중국, 태국 등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외국인 팬들로 매표소는 북적거린다.
서울도 먼 거리라 한 번 오기가 쉽지 않은데, 사랑 하나 만으로 바다를 건너오다니. 팬의 스타 사랑은 역시 파워가 있다.
새삼 한류스타 이진기가 애국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우리오빠야. 모두의 여름을 뜻 깊게 해주잖아.”
“그래. 맞아.”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합천영상테마파크에 들어갔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별 세계였다.
드라마 세트장은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놓아 타임머신을 타고 옛 시대에 착륙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오래된 전철, 한자와 한글, 일본어가 섞인 간판들, 건물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풍경을 직접 보니 심장이 뛰었다.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느낌에 한동안 멍해졌다.
내 옆에서 코흘리개 어린이들이 구슬치기를 할 것 같고, 낡은 옷을 꿰매 입은 까까머리 고교생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 고무신을 신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난 주 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던 드라마 속 이진기의 모습도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오리야, 저기서 촬영 중인가 봐! 얼른 가자!”
장원이가 가리킨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조선총독부 건물 앞이었다.
번쩍이는 조명기구, 회색털 달린 마이크가 서있는 거 보니 촬영하는 곳이 틀림없다.
장원이는 나의 손을 잡고 뛰었다. 더위에 지친 것도 잠시 우리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마냥 신이 났다.
우리보다 먼저 와있던 팬들이 촬영장소를 둥그렇게 메우고 있었다.
“꺄! 어쩜 좋아! 진기오빠야!”
까치발을 하고 열심히 고개를 기웃거리던 장원이 외쳤다.
“조각미남이다!”
나도 기린처럼 목을 쭉 빼고 이진기를 봤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코디에게 부채질을 받으며 대본을 읽고 있다.
매끈한 우유빛 피부에 눈이 부신다.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눈을 크게 떴다.
아까 잠깐 대화를 나눈 일본 아줌마가 용기를 내어 사람들 틈을 뚫고 나아가 “악수해주세요!”라고 외치자, 이진기가 빙그레 웃으며 대본을 놓고 일어섰다.
동화 속 왕자님처럼 경호원에게 제지당하고 있는 아줌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이진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헉.”
내가 얼마 전까지 이진기에게 호감만 있다고 했던가? 아니! 정정한다. 사랑한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생겼다.
웃으면 쏙 들어가는 양 볼의 보조개는 귀엽다. 미끄럼틀 타도 될 정도의 높은 콧날과 섹시한 턱선, 도톰한 입술, 반짝거리는 눈에 빠져 팬들은 허우적거린다. 나도 같이 수영을 한다.
“일본에서 왔으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길 오느라 힘드셨죠?”
멋진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 매너 좋은 거 봐!
일본 아줌마가 악수를 성공하자, 너도 나도 손을 내민다.
이진기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손을 잡아준다. 사랑받는 법을 잘 아는 남자다.
장원이 다음으로 나도 이진기와 악수를 했다. 보드라운 손이 여자 손보다 더 곱다.
하마터면 손등에 볼을 대고 부빌 뻔했다. 내 자신을 컨트롤 했다는 게 대견스럽다.
그는 나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착각이 아니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가졌던 후회는 온데 간데 사라진다.
“이름이 뭐예요?”
그가 나에게 물었다. 목구멍이 떨려온다.
“이, 이오리요.”
“와. 이름 멋지네요. 기억할게요.”
어, 머, 나.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장원이 말대로 의미 없던 여름방학이 최고의 여름방학이 될 것 같다!
그의 한 마디에 쓰러지고, 그가 가는 곳이면 지옥의 불구덩이라도 함께 뛰어들겠다는 팬들의 심정을 알겠다.
이진기는 팬들을 한 명 한 명 챙긴 후, 어린 스태프들과 촬영소품을 날랐다. 그 모습마저 우리를 기절하게 만들었다.
“왜 아직도 안 와?”
머리숱이 없어 대머리에 가까운 드라마 PD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 앞에 비를 맞은 것처럼 땀으로 옷이 홀딱 젖은 조연출이 쩔쩔매고 있다. 안 그래도 작은데 더 작아 보인다.
“연락을 해봤는데요. 거의 도착했답니다.”
“아까 전에도 그 얘기 했잖아. 대체 배우 스케줄 관리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오늘 해지기 전에 찍고 끝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죄, 죄송합니다.”
팬들이 많아 큰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PD는 충분히 화가 난 듯 보였다.
촬영하는 걸 빨리 보고 싶은 나도 괜히 짜증이 났다.
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 모르나?
이진기도 스탠바이 시간이 길어지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날은 뜨거워 죽겠는데. 다시 연락해봐. 10분 안에 못 오면 진기씨 컷만 들어간다고 해.”
“네.”
조연출이 구석진 곳으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 든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모르는데… 때 마침 다행스럽게도 검은 저고리를 입은 여자주인공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아이쿠. 감독님! 선배님! 제가 너무 늦었죠? 아잉, 몰라.”
난 혀 짧은 5 살배기가 온 줄 알았다.
여자주인공이 생글거리며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필살 애교로 화를 막고, 사슴 같은 눈망울로 동정을 구하니 미워할 수가 없다.
PD도 언제 화났냐는 듯 곧 바로 촬영 들어간다는 사인을 보낸다. 역시 예쁘면 뭐든 용서가 되나보다.
“보조출연자 준비해주시고요. 이진기씨, 바로 슛 들어갑니다.”
“네!”
이진기의 우렁찬 대답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카메라가 돌기 시작한다. 모두 숨 죽이고 연기하는 이진기를 바라본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날리는 이진기는 스타 이진기가 아니라,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으로 변해있었다. 바로 감정에 몰입하는 걸 보고 천상배우구나 싶었다.
단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PD는 여자주인공과 보조출연자들에게 빨리 움직여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이진기씨한테 우르르 달려가면 됩니다. 준비되었으면, 갑니다! 레디, 액션!”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와 아저씨들, 아줌마 손을 잡은 어린아이들이 뛰기 시작한다. 너무 열의가 앞섰는지 댕기머리 아이가 넘어졌다.
NG가 났고 다시 뛰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나는 다친 아이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촬영장 밖에서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던 아이의 엄마는 달려가서 깨진 무릎팍을 어루만져 주기는커녕 빨리 일어나서 제대로 하라고 코치한다.
“무서운 엄마다.”
“또 넘어졌다간 PD보다 엄마한테 먼저 혼나겠는 걸?”
“애는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억지로 끌려온 게 분명해.”
나와 장원이는 아주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크게 말했다가 아이의 엄마가 들으면 우리에게 날카로운 이와 손톱을 드러내며 할퀴려고 할 지도 모를 일이니.
나는 스태프가 나눠준 드라마 홍보용 부채로 부채질을 하며 PD의 사인을 기다리는 보조출연자를 살폈다. 더위에 대기시간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이 땀을 흘리지만 주인공인 이진기는 최고 대우, 저들은 최저 대우.
3만 원 정도 받겠지? 엑스트라니까. 안됐다.
잠깐.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 낯익은 한 보조출연자 때문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왜 그래?”
“스치듯 본 옆모습이 누굴 닮았는데.”
“누구?”
나는 피리를 불면 단지에서 나오는 뱀처럼 몸을 이리저리 빼었다. 뒷모습만으론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에이, 설마. 닮은 사람이겠지.
선생님인데, 선생님이 여기 있을 리 없잖아. 그것도 보조출연자로!
상상력이 풍부한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다.
“오리야, 왜?”
“아니야. 아무것도.”
“자자, 한 번에 갑시다.”
감독이 외쳤다.
“레디, 액션!”
보조출연자들이 아까처럼 뛰기 시작했다.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절모를 쓴 보조출연자를 주시했다.
그의 얼굴이 살짝 드러나는 순간, 나와 장원이의 손에 든 두 개의 부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믿을 수 없어.”
“오, 이런.”
내 시력이 2.0, 맞구나. 맞아.
* * * * *
우리 반은 꼴찌 반이다.
1학년 때 공부 못한 아이들만 모였다고 으레 수업 들어오는 선생님 마다 우리를 구박했다.
우리는 그건 오산이라고 늘 부르짖었지만, 1학기 기말고사까지 그 오명을 벗을 순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꼴찌였다.
한 가지 다행스럽다고 느끼는 건, 담임선생님이 우리가 1학기 마지막까지 꼴찌하는 모습을 안 보고 떠나셨다는 거다. 우리들의 성적표를 보면 태교에도 안 좋았을 거라 추측해본다.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임산부인 담임선생님은 우리가 기말고사에 열중하고 있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져서 학교를 관두셨다.
시험이 끝나고 안 이 사실에 우린 당황했다.
인사도 못 드리고…….
행여 시험에 방해가 될까 말도 못하고 떠난 담임선생님을 우리는 한 3일간, 아주 짧게 그리워했다.
헌데 진짜 당황스러운 건, 새로 우리 반을 맡은 담임선생님이었다.
담임선생님 없이도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었는데, 여름방학을 일주일 남겨 둔 어느 날 아침.
앞문을 열고 말끔하게 생긴 남자가 들어왔다.
난 그 때 나른한 오후 햇살의 느낌을 받았다.
“반갑다! 내 이름?”
백묵을 잡고 초록색 칠판에 [신.이.남.] 이라고 신나게 휘갈겨 썼다.
“미남이라고 불러도 된다.”
우린 하나같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새로 온 담임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이름 그대로 신이 난 선생님에게 우리는 질문을 던졌다.
“임시 담임인가요?”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매일 얼굴 볼 담임.”
우리가 아무리 꼴찌반이라고 해도 이는 너무 한 거 아닌가? 학교에 출근한지 2달도 안된 초짜배기 선생님을! 1학년도 아닌, 2학년에게!
만약 신이남을 처음 보았더라면 “와! 조각미남이다! 배우 같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겠지만, 소문이 무성한 신입 선생님한테 기대감이란 제로(0)였다.
타이즈를 신고 발레를 가르치는 발레리노, 즉 무용선생님인 신이남은 게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런 신이남을 우린 담임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뭐, 얼마 안되 방학을 해버려서 담임의 존재를 잊은 지 오래지만…….
방학 중에 나와 장원이는 신이남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것도 이진기 주연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말이다.
이진기의 팬 대 드라마 보조출연자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신이남은 한국 무용을 하는 기생 대역이었다.
중절모를 쓴 행인 역을 하던 그는 조연출의 부름을 받고 급하게 분장차로 들어가더니, 얼마 후 고운 분홍색 한복에 가채까지 틀어 올려 완벽한 여장을 하고 나타났다.
나와 장원이는 그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주워 올린 부채를 떨어뜨렸다.
놀랄 노자다.
“……왠일이니.”
“기가 막힌다.”
우리가 기막혀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이진기의 외국인 팬들과 사진까지 찍는 여유를 부렸다.
사실, 여장을 했으면 안 어울려야 정상인데…… 그는 예뻤다.
촬영 현장으로 들어왔을 때, 여자인 줄 알았다.
화장을 진하게 하기도 했지만 발레리노라 그런지 몸매가 여느 여자보다 늘씬했고, 얼굴 선도 가늘어 보기에 괜찮았다.
우리는 이진기보다 그의 행방을 더욱 열심히 쫓았다.
두 번째 촬영은 기방인 명월관 세트에서 진행되었다.
넓은 정자 아래, 이진기가 앉아있고 신이남이 세 명의 기녀들과 고고한 학춤을 선보인다.
카메라는 익스트림 롱 샷 (*저자설명 : 최대로 멀리 카메라를 피사체로부터 떨어져 잡는 것)으로 그를 잡는다.
고운 우리 가락에 맞춰 한국 전통 무용의 아름다움과 기개(氣槪)를 뽐낸다.
하얀 꽃잎이 새겨진 한복이 움직일 때마다 꽃을 피우는 것 같았다.
어깨에 물이 찰랑 흘러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춤사위에 모든 사람들은 탄복을 금치 못했다.
나 또한 오금이 저릴 정도로 놀랐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이 몸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클래식 발레에 물들어 있는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기저기서 캠코더를 꺼내 찍기 시작한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동영상을 돌려 신이남의 모습을 담았다.
장원이도 이미 그의 춤에 빠져 버린 듯 넋이 나가있었다.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얼음동상처럼 서있었다.
그는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도 책임감이 묻어나왔다.
그냥 동작을 외워서 추는 기계적인 춤이 아닌, 장인정신이 깃든 섬세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콩닥… 콩닥…….
아까 이진기와 눈이 마주칠 때 콩닥거리던 심장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은…… 합천의 열기보다 뜨거우니까.
.
.
“오케이!”
NG없이 단 한 번의 OK.
마지막 동작을 할 때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 또한 연출되어 있음을 난 알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앉은 의자를 놔두고 내내 서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감독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숨죽이고 있던 스태프들과 이진기도 마찬가지로 그를 연호했다.
명빈관에 있는 모든 팬들은 박수갈채를 날렸다. 그 중 감격스럽다고 흐느끼는 팬도 많았다.
난 머리카락이 쭈빗 서있는 걸 느꼈다. 아직도 그 감흥이 남아 있어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감독은 신이남이 정자에서 내려오기가 무섭게 끌어안았다. 고맙다고, 날 살렸다고 몇 번을 얘기한다.
“장원아… 나 지금 꿈꾸고 있니?”
“꿈 아니야. 더운 걸 보면. 우린 지금 합천이야.”
우리의 두 눈은 신이남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온 몸에 전율이 느껴져.”
“나도. 모차르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 감동 이상이야.”
“우리 선생님 맞지?”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매일 얼굴 볼 담임, 맞아.”
감독과 이진기와 함께 찍은 장면을 확인하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나서야, 선생님은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오? 내 눈이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겠지?”
무거운 가채를 쓴 그가 두 손으로 가채를 붙잡고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우릴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은 짧으니까.
“오리, 장원이!”
얼굴은 알아도 이름은 모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우리의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여기서 보다니. 놀라운 걸!”
“더 놀란 건 우리죠, 선생님.”
장원이 말했다.
“제자들을 놀래켜 줄 계획은 없었는데.”
선생님은 미소를 머금고 우리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아르바이트야. 즐기는 아르바이트. 그런데 너흰 이 더운 합천까지 왜 내려… 아, 이진기 팬이구나?”
“전 아니예요.”
“전 맞구요.”
“으흠. 알겠어. 뭐, 이왕 왔으니까 즐겨야겠지. 그런데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
우린 귀를 쫑긋 세웠다.
“숨길 건 없지만 그래도… 알리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학교에나, 여기 촬영팀에게나.”
“아……, 네.”
그 때, 뒤에서 이진기가 담임을 불렀다.
“형!”이라며, 아주 친근하게 담임 등 뒤로 다가와 한 번 꼭 껴안고는 떨어진다.
“저 가요.”
“벌써 가는 거냐? 나도 곧 올라가. 옷 갈아입고.”
“형, 또 뵈요. 서울서 술 한 잔 해요. 이번엔 형한테 얻어 마실 거예요.”
“돈도 많으면서. 알았다!”
“헤헤.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너도 수고했어. 12회 시청률, 대박.”
“고마워요! 먼저 갈께요!”
이진기가 담임에게 친근하게 굴다가 뒤돌아 간다.
난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멍해져서 바라보고 있는데, 이를 놓칠세라 장원은 제안을 하나 했다.
“선생님. 여아일언중천금. 대신, 조건이 있어요.”
장원이의 두 눈이 반짝거린다. 난 이 아이의 두 눈이 무얼 말할 건지 짐작하고 있다.
“진기오빠랑 데이트 한 번만 하게 해주세요!”
담임은 피식 웃는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지.”
술까지 마시는 사이라면 분명 친한 거다!
너무 쉽게 조건이 받아들여지자, 장원이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나를 부둥켜안았다.
“약속 잡아볼게.”
기쁘기도 하지만, 난 무엇보다 담임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에게선 번쩍 번쩍 빛이 난다!
관심도 없었고, 인정할 수도 없었던 초짜선생을 한 꺼풀 들춰서 볼 계기가 된 거다.
“서울 올라갈 거면 태워다 줄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그 가면인가?? 이진기가 남주에요?? 샘이 남주에요?? ㅋㅋ 계속보면 알겠지만~~ 단비님 홧팅!!
선생님이 남주인건가요? 궁금해지네요
샘이남주아님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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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기가 남주같은데...아닌가? 담임이 남주같기도 하고...
와우 그럼누구 남주인공이지 ..?
선생님이 주인공이에요~?? 저는 이진기아님 가면아인줄...
오리랑 선생님이랑 잘 되는건가?
뭐, 설마 선생님이 가면가이인건 아니겠죠...?
선생님이가면가이라....................
헐..ㅡ ㅡ
ㅎㅎ 내 고딩 담임쌤도 이런 쌤 이었으면 좋겠당
너무 재미서요..ㅋ 가면가이가 샘아니에요?
쌤멋저요!!
누가 남주일까나?
그 신이남쌤 ㅋㅋ 가면가이같기도 ㅋㅋ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요 +_ +
진기...............왠지끌리는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면이 선생님이 아닐까요??ㅋㅋㅋ
센쎼이~ 그대는 누쿠~
샘`````
하...나만 진기가 온유라고 생각한건가...
동감,계속 온유 생각이 나풀나풀
온유? 아수라장 스케치북의 다애의 첫사랑 온유요?
혹시 그 선생님이 가면속의 댄서??
하. ... 진기야 ㅋㅋㅋㅋㅋㅋ 저도 온유생각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어요!
우왕 샘의 정체는 뭘까영?
어머 담임선생님 능력있으신디...ㅋㅋㅋㅋㅋㅋ
진기야!!온유야....?계속 온유생각이.....온유를무척좋아해서!여주랑 진기랑 됬음좋겠네요!무튼재미있어요!
온유생각나 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선생님의 그 가면속의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신이남 너무멋있다~~
남주가누군지궁금해져여 ㅋㅋ 진기인줄알았는데 왜 선생님쪽으로 쏠리는지... ㅋㅋㅋ
아,,, 진기,,, 이남.... 머릿속에서 두 명이 자꾸 핑그르르 돌고돌고...ㅋㅋㅋㅋ 아. 재밌네요 역시
재밌어요!
누가 남주던 너무 멋있네요!!!가면이 가장 궁금하다는.....ㅠㅠ
우후 고3이라 오랜마ㄴ에...ㅠ
아~!!완전 잼있어요>_<ㅎㅎ
재밌어요~ 이남샘이 우리 체육샘이랑 비슷해서 놀랬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