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김지연
"Everything that kills me makes me feel alive!
(나를 죽일 수도 있는 모든 것들이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만들어주네!)“
-밴드 One Republic의 노래말 중에서-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다. 또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억지로 삼키는 음식물처럼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중년 들어서 찾아 온 무기력증은 친구인 불면증까지 데리고 왔다. 밤에는 불면증이 잠자리를 괴롭힌다. 무기력증과 불면증 두 악당이 휘돌리는 소용돌이가 정신과 육체를 쇠진시켰다. 속이 빈 상자나 수액이 빠져나간 곤충 사체, 혹은 요즘 영화나 소설의 단골 소재인 좀비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렇게 형편없는 건강상태에서 예상되는 걱정을 무시하고 우겨서 남편과 함께 200여 km의 도보 순례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정 동안의 일과는 세끼 식사와 평균 25km 정도 걷기, 그리고 잠자기가 전부이다. 통쾌할 정도로 단순하다.
하루에 만 보는 고사하고, 걸어서 3분 거리의 동네 편의점에도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가는 우리 부부가 도보 순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웃긴 일이다. 더구나 천주교 신자, 기독교 신자이기는커녕 굳이 이름을 매기자면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오로지 걷기 위해 특정 종교의 성지를 향한 순례길에 나선다니 주변 사람들은 쌩뚱 맞은 고생을 하기 위해 돈낭비 말고 차라리 동네 뒷산이나 매일 걸으란다. 또 혹자는 인생 자체가 고난의 순례길인데 고생이 부족해 순례길을 걷는 거냐며 놀리기도 했다.
논리적인 설득력이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고만 싶다는 이유 없는 욕망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다. 어차피 인생 모든 일에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대부분의 세상사는 거의 이유가 없거나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지 않은가.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을 향해 가는 도보 순례 여행의 첫날이었다. 남프랑스 생쟝-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스페인 북동부를 향해 피레네 산맥을 넘는 험한 일정이었다.
시작부터 길은 생각보다 가파로왔다. 거기에다 길 위의 작은 돌멩이들이 날릴 정도로, 초속 30m에서 40m의 태풍급 바람이 으르렁대며 순례객들을 협박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려하지만 걸음을 띄기가 쉽지 않았다. 땅에서 발을 떼는 순간,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바람에 날려가 버릴 것 같았다. 감히 이기려드는 걸음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무서운 기세로 부는 바람은 어느 새 비바람으로 변했다. 우비를 입고 있었지만 바지는 이미 푹 젖어 있었고 그로인해 체력도, 체감온도도 뚝 떨어져 있었다. 성난 비바람은 어느새 눈보라로, 그리고는 우박으로 바뀌었다. 작은 우박 알갱이들이 세찬 바람을 타고 얼굴을 후려쳐 얼굴이 아파 얼얼할 지경이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산 정상에서 산악 기후에 무지한 탓에 옷도 장비도 제대로 갖주지 않은 우리 부부 두 얼간이를 스스로 원망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봄이 한참인 4월 말에 무슨 우라질 눈보라에, 우박 태풍이란 말인가. 몇 년 동안이나 열망하던 이 여정의 첫날부터, 온 우주가 힘을 합해, 앞으로 걸어가는 내 발걸음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와, 오기인지 독기인지 나 자신도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꾸역꾸역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래, 불어라 바람아, 때려라 우박아,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피레네 산 정상에서 죽어 보자.
“체온을 올려야하니 우리 빠르게 걸읍시다.” 걱정스러워하는 남편을 채근한다. 우리는 거센 바람을 이기기 위해 팔짱을 낀 채 머리를 최대한 숙이고 걸음을 바삐 했다. 슬슬 체온이 올라갔다. 덜덜 떨리던 걸음걸이는 어느새 경쾌한 구보로 바뀌고 있었다. 함께 걷던 순례객 무리를 시야 멀리 재치고 앞으로 전진했다. 남편과 나는 승리감에 취한 병사들처럼 웃고 까불며 소리친다. “이깟 것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우리를 꺾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자구!” 온몸으로 뚫고 가야만 하는 이 눈보라 따위는 무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배낭에서 사과까지 꺼내 베어 물고 장난기 어린 구령을 붙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일행에 앞서 걷다보니 눈보라 속 먼발치에 ‘대피소’라고 씌여진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호기심에 다가가 문을 열어젖히니, 좁고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 온갖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동굴 속 박쥐 떼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합창하듯 외친다. “Please, shut the door! (제발 문 좀 꼭 닫아요!)"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그 날의 대단한 바람과 눈, 우박은 스페인 뉴스에 보도될 정도의 예측하지 못한 기상이변이었다고 한다. 또 이런 예기치 않은 기상이변으로 가끔씩 이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례코스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전해 들었다. 결국 그 순례길 코스는 일시적으로 폐쇄 되었고, 대피소에 있던 남편을 포함한 저체온증 환자들과 모든 사람들은 차례로 스페인 구조대의 차량을 타고 산 아래로 내려와야 했다.
여정은 이렇게 험난하게 시작 되었지만 나머지 십여 일 동안의 도보여행은 천국을 방문한 듯 무너진 마음과 몸을 위무해 주었다. 눈을 비비며 현실감을 의심하게 할 정도의 파란 하늘, 바람에 물결치며 끝없이 펼쳐져 있는 푸른 밀밭, 인적 드문 산길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 양귀비들, 머리와 폐를 명징하게 만들어 주었던 유칼립투스 숲의 향내, 숲속 종달새들이 주고 받는 샘물처럼 맑은 노래 소리, 햇빛을 산란시키며 흔들리는 올리브나무 잎들, 시골 마을의 정갈한 모습의 돌담과 돌집들, 마을 작은 성당의 투박하고 조악한 예수상, 걷기에 지친 몸을 위로해 주던 마을 선술집의 시원한 맥주....온 우주가 힘을 합쳐 오감의 향연을 베풀어 주는 것 같았다. 온 우주가 힘을 합쳐 삶을 찬양하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걱정과는 달리 순례객들에게 흔히 있는 근육 경련, 인대나 관절 염증, 물집, 발톱 빠짐 같은 증상이 하나도 없이 우리 부부 두 사람의 도보 순례 여행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길에서 만난 순례객들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왜 이 길을 걷느냐고 물었을 때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여행을 끝내고 난 지금은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딘 지도 모를 마음 속 깊은 곳에 버려져 있던 살아있다는 느낌,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찾고 싶은 내재된 본능이 나를 그 먼 순례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미친 듯 불어대던 눈보라, 강렬하게 내리쬐던 맑은 햇살, 붉게 샛노랗게 아우성치던 산길 야생화들이 내 귀에 소리쳐 외치며 알려주지 않았던가. 삶은 좋은 것이라고, 살아있음을 찬양하라고.
언젠가 그 외침들이 너무나 그리워 질 때 나는 다시 그 순례길을 떠날 것이다.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성스러운 본능이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기 위해서 난 또 그 순례길을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