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향지문(自香智文)
鹿井 서영석
얼마 전에 가입한 소그룹 성격인 문학인의 동인 모임의 모토 공모에 응모하여 확정된, 동인으로서 추구하는 창작의 이념이 된 말입니다.
-자유로운 생각으로 향기롭고 깊이 있는 미래 지향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이란 의미를 함축한 단어로, 내가 지향하던 가치이기도 합니다.
2012년 12월 6일 경기도문인협회에서 ≪경기도문학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경기도문학상 공로상≫ 수상자 통보를 받은 제 마음은 많이 들떠 있었고, 한 달여의 시간이 아주 행복했습니다. 아내는 예쁜 꽃다발을 준비해야 하겠다며 들떠 있었고, 나는 휴가를 내어 아침부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내는 동네 꽃집을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시상식장에는 가질 못했습니다. 대설주의보 일기예보는 있었지만, 눈이 내리리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침부터 하늘은 맑았습니다. 정오 무렵 갑자기 쏟아지는 눈발은 교통을 마비시켰습니다. 이원용 포천문인협회 회장님은 의정부역에서 약속시각에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버스로 5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에나 걸려서 가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 또 전화가 왔습니다. 버스가 2시간 동안 간 거리는 평소에 7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으며 우리는 그 길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회장님께서 대리로 받아 다시 시상식을 하겠다는 말씀을 뒤로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새삼 느꼈습니다.
세상일이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욕심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인데.
발정 난 개처럼 끙끙거려도 내게 허락되지 않는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자유를 얻는다는 것.
자유롭게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다가오는 시간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낸 두 시간 안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한 달여의 행복했던 시간들은 그 짧은 시간 안에서 분해되어 흩어지고 짜증과 분노로 바뀌어 갔습니다. 아내는 폭설이 내린 버스 밖의 풍경이 아름답다며 탄식을 했습니다. 조바심으로 불안 해 하는 내 표정을 살피는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내 가슴속의 기대가 꺾이며 흐려지는 내 얼굴에 아내는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심지어 아내가 들고 있는 꽃다발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꽃다발을 미리 주문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만들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탓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워야 할 꽃다발이 그토록 추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스스로의 관념을 구속에서 풀어 놓아야 느낄 수 있는 자위적인 것입니다. 내 스스로 아무리 아름답고 향기 나는 글을 쓴다 해도 내 가족과 지인들과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언어들로 쓰여 진다면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
맑고 투명한 언어 안에 삶의 고뇌와 진리,
잔잔한 행복과 추억 그리움과 사랑을 녹여
가슴으로 쓴 영혼의 노래가 담긴
순수하고 왜곡되지 않은 시어에서
사람들은 향기와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저녁 6시까지 수원으로 갈 길을 되돌린 우리들은 집에서까지 티격태격 하며 서로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한 달여의 행복했던 시간이 흩어지고 상처를 남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서로를 탓하며 서로에게 아픔을 남기면서도 그 순간은 자신이 무었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바라보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서로의 감정을 할퀴었는지 허무하기만 합니다. 진정 원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를 극복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유로워진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고 향기로워 질 것입니다.
내 비록 지금은 슬프지만
현실을 받아드리고 마음을 비운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며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고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며
지금의 아픔은 새로운 도전의 불씨로
내 미래의 자산이며 삶의 불꽃입니다.
나와 아내.
우리는 그 시간 동안 한 주기의 삶을 경험 했습니다.
하루의 시간. 그 안에는 희로애락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풀고 저녁을 시켜먹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엔 새로운 시간이 도래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한편의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이 멀어져가고 또 다른 현실이 다가왔습니다.
자유로운 생각은 자신을 내려놓고
다가오는 시간을 겸허히 받아드리며
욕심을 버리는데서 얻을 수 있고
향기로움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는 과정에서
주변으로 발산되는 자연스러움이며
감칠맛 나고 깊은 맛의 언어는
맑고 투명한 영혼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순수하게 쓰는 시어에서 느끼는 맛으로
세상 사람들과,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내 가족의 시각에
아픔은 녹이고 슬픔은 공유하고 추억은 그리워하며
사랑과 행복은 더욱 향기로워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가 바라는 “자향지문(自香智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