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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소리 울려퍼진 이색 라이브 클럽 싱어롱 전문 '코러스' 이상래·김형철·금은동·신재형 등 거쳐가 캠퍼스 통기타 동아리 '청음반'도 맹활약
70년대 통기타 문화를 경험한 80년대 젊은이들은 단순히 음악만 감상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가수처럼 노랠 부르고 싶어했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준 게 코러스였다. 일단 홀에 들어가면 합창할 수 있는 포크송 모음노래집이 책장에 비치돼 있었다. 입구에서 한 권씩 빼들고 테이블에 앉아 무대의 가수와 함께 합창한 뒤 나갈 때 반납했다. 당시의 코러스 스타들이 현재 대구 통기타 가수들의 맏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러스의 별명은 '합창의 집'이었다. 모든 출연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안녕하세요. 합창의 집 코러스입니다"를 오프닝 멘트로 앞세웠다. 코러스를 만든 사람은 석씨 3형제였다. 막내인 석소현 사장(현 서울유아아동복 유통업체 대표)이 3대, 4대가 엄중용, 마지막 사장은 자그마한 체구의 통기타 가수 이용철이었다. 코러스는 82년 태동해 96년 삼덕동으로 잠시 이전했지만 포크음악 쇠퇴로 문을 닫는다. 하지만 그 시절 멤버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폭소 만발 멘트의 진행자 금은동, 신촌블루스 출신의 김형철,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대표적 여성 통기타 가수로 활동하다가 대구에서 현재 동아스포츠 센트 맞은편에 라이브 카페 퀴릭스 알레를 개업한 신세은, 신촌블루스 객원 보컬로 2장의 앨범을 낸 뒤 대구로 와 현재 옛 동인호텔 근처에 자리잡은 라이브 클럽 8090스쿨에서 노랠 부르고 있는 신재형, 튼튼영어 강북지사장인 박종남, 특이하게 '왼쪽잡이' 통기타 가수로 20여년간 팔공산 등 라이브 무대를 지키고 있는 정두천, 재즈와 포크의 세계를 넘나드는 여성 피아니스트 강주희 등 대구에서 통기타 좀 친다는 뮤지션들은 예외없이 코러스 무대를 스쳐갔다. 1층 입구로 내려가면 전속 가수 타임표가 보였고, 그 옆에 공연자들의 닉네임과 경력이 적혀 있었다. 입구 왼쪽 중앙에 무대가 있었다. 무대 오른쪽에 뮤직박스가 있었다. 입구 오른쪽 바에서는 각종 음료와 차를 사 먹을 수 있었다. 무대 왼쪽엔 출연자 대기실, 입구 반대 비상구쪽 계단 벽엔 온갖 열정적 메모가 적혀 있었다. 자연 골수 단골이 생겨났다. 대구에 내려온 서울의 가수와 심지어 미스코리아들도 그곳을 아꼈다. 그 무렵 다운타운 통기타 가수들은 노래만 불렀지 노래와 관련없는 사적 멘트는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코러스에선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었다. 자연 통기타 가수들이 코러스를 더욱 아껴주고 싶은 맘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업소에서 일찍 일이 끝나면 모두들 코러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록 그룹 각시탈 멤버로 훗날 탤런트 채시라와 결혼하는 김태욱, 경북대사대부설초등학교를 졸업한 록그룹 백두산의 리더 기타리스트인 김도균도 코러스의 열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인터불고 호텔 갤러리 쁘라도를 운영하는 윤장열, 미도백화점 5층 물랑루즈를 열었다가 현재 카센터를 운영하는 전우창 등도 코러스 멤버였다. 그곳 출신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수는 이상래(42)이다. 경북대 토목학과 출신으로, 능인고 시절 레드애플이란 록그룹 활동과 83년부터 KBS 젊음의 스튜디오의 고정 MC로 활동했다. 88년 대구통기타가수협회장으로 활동하다가 90년 서울로 올라가 뮤직디자인에서 1집 앨범 '아직도 너를 사랑해', 97년 2집 '긴 아픔을 딛고'를 내놓았다. 현재 대구MBC FM 96.5 라디오 노래자랑 심사위원으로 활동중이다. 또한 대학 통기타 붐도 만만찮았다. 현재 성광고 교사로 있는 박운용이 79년 3월 경북대 안에 대구 첫 대학캠퍼스 통기타 동아리인 '청음반'을 만들어 초대 회장이 된다. 77년 MBC대학가요제가 대학가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지역 대학가에 이렇다할 만한 통기타 서클이 없었다. 박운용은 일단 경북대 전교생 대상 기타 강습회를 여는 한편 단과대 축제와 여학생회 산행대회에도 초청돼 통기타 음악 확산에 힘을 쏟는다. 일부 학생들은 대학가요제에도 출전했고, 정문 앞 라이브 레스토랑 '백악관' 등에서 노래를 불러 용돈을 벌기도 했다. 박운용은 이때 위기감을 느낀다. 청음반 회원들이 상업적인 흐름에 휩쓸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긴급회의를 통해 회원들이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는 걸 금지시켰다. 청음반의 가장 큰 공적은 80년부터 시작된 복현가요제다. 복현가요제는 달구벌 대학가요제의 효시다. 첫해에는 기성곡만 출전할 수 있었고 81년부터는 창작곡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 가요제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다른 대학에서도 벤치마킹을 했다. 복현가요제 대상곡 '비익조'는 한 음악인에게 넘겨져 강변가요제에서 입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에선 청음반이 너무 서정·순수지향적이란 비판도 받았다. 캠퍼스 곳곳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금관의 예수' '타박네' 등 민중 가요가 붐을 일으켰다. 일부 회원들 사이에선 "이렇게 계속 서정적 포크송만 부를 것인가"란 자성도 있었다. 그 과정에 일부 회원들이 탈퇴해 '소리타래'를 만들게 된다. 현재 예술마당 솔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소리타래는 대구의 '노찾사'였다. 소리타래의 주역은 복현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바 있는 조형제이다. 그는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U대회) 때 시민위원회 기획국장을 역임했고, 얼마전 동구 팔공문화원 내에 스튜디오를 만들어 음반 제작에도 간여했다. 그동안 청음반을 거쳐간 회원 500명은 아직 통기타 선율을 앞세워 돈독한 우의를 다지며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시리즈를 마치며… 2년간 '대구추억기행'을 애독해준 독자 여러분과<주>금복주, 시리즈와 관련해 궂은 자문에도 늘 자상하게 조언을 주신 죽순문학회장 윤장근·전 대구일보 사장 신해철·전 영남일보 상무 강판룡·원로 작곡가 이병주·대구가수 1호 고화성·전 대구MBC경음악단장 조정영·대구연예협회 지회장 서정하·트럼펫 주자 박대욱·뉴욕뉴욕레스토랑 대표 박세환·레스토랑 아트리움 대표 김동환·DJ 도병찬·김병규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일제 시대 향토 자료를 제공해주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전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상근부회장 박영규님의 명복을 다시한번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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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그렇군요. 코러스의 옛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합창의소리 이색라이브카페...코러스...."명소 코러스카페" 새롭게 부활하다~~^^* 그날을 위해 열심히....화이팅!! 빨리 벌어서 멋진곳에 건물부터 사야겠다.....아자!!
기사 엉터리다.. 누가 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