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토마) 의사 遺墨 목록
志士仁人 殺身成仁 (지사인인 살신성인)
지사와 어진사람은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
안의사는 유가사상의 4가지 덕목중 의를 가장 중시했지만 인,예,지에 관한 글도 남겼다. 이는 바로 인의 성취에 대한 안의사의 심회가 담긴 글이다. 현재 안의사 기념관에 사진이 전시되고 있고 광장 옥석에 조각하여 살신성인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고 있다.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보물 제1150-1호
여순법원의 당시 검찰관 야스오카 세이시로가 친절하게 대해준데 대한 보답으로 친필한 이 묵서는 이후 야스오카의 장녀 우에노도시코씨가 감추어 소장해 오던것을 동경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원장이 헌납받아 76년 2월 11일 안의사 기념관에 기증했다.
爲國獻身軍人本分 (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보물 제1150-2호
안의사가 여순감옥에서 공판정을 오갈때마다 경호를 맡으면서 안의사의 사상과 인격에 감복, 안의사를 스승으로 받들었던 간수 일본군헌병 지바 도시치에게 써 준 것으로 전한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보물 제596-6호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 '의를 보고 행하지 않는것은 용감함이 아니다'는 뜻을 담고 있다.
日出露消兮 正合運理 (일출로소혜 정합운리)
日盈必○兮 不覺其兆 (일영필측혜 불각기조)
해가뜨면 이슬이 사라지나니
천지의 이치에 부합되도다.
해가차면 반드시 기우니
그 징조를 깨닫지 못하는도다.
제국주의 정략인 침략전쟁을 일삼는 일본의 패망을 예언한 말로 안의사의 동양평화사상에 연결되는 대목이다. 이 글은 정-반-합으로 전개되는 변증법적 우주운행 원리를 해가 차고 기울어지는 것에 비유해 일본 제국주의의 종말도 오래지않아 다가올 것이라고 예언한 말이다.
戒愼乎其 所不賭 (계신호기 소불도)
아무도 보지않는 곳에서 근신한다.
뤼순감옥에 교매사로 근무한 일본인 승려 진전해순에게 써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용에 나오는 문구로 하늘의 이치는 잠시도 쉬지않고 운행하기 때문에 큰 뜻을 이루려는 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개안민)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화국미성유강기 정략불개진가련)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침략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
보물 제596-5호
안의사의 동양평화에 관한 지론이 담긴글이다.
동양대세의 관계와 평화정략으로 동양3국이 단결해야 '서세동점'의 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세계관을 갖고있었다.
天堂之福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가톨릭 신앙은 안의사의 정신적 기둥이었다. 아버지 태훈의 천주교 입교에 따라 가톨릭신자가 된 안의사는 19세에 토마스(도마)란 영세명을 얻는다.
이 유묵은 최서면씨가 81년 일본에서 확인, 사진을 보내와 현재 안의사 사진첩에 전하고 있다.
人無遠慮難成大業 (인무원려 난성대업)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보물 제596-8호
안의사는 부친 별세후 1906년 봄 가족을 이끌고 진남포로 이주, 조국독립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에 착수한다. 선비와 국민이 흥하여 나라를 일으킨다는 뜻의 삼흥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을 통한 구국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안의사는 사리사욕에 급급하지 않고 사재까지 털어 교육사업을 벌였지만 조국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결국 의병투쟁과 하얼빈역의 거사로 치닫게 된다.
白日莫虛渡 靑春不再來 (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앞 글귀와 마찬가지로 만 3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한점 부끄럼없고 빈틈없이 살아온 안의사가 후세에게 들려준 처세철학이다.
五老奉爲筆 靑天一丈紙 (오로봉위필 청천일장지)
三湘作硯池 寫我腹中詩 (삼상작연지 사아복중시)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삼아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보물 제596-9호
안의사는 청소년시절 가장 즐기던 것으로 첫째 친구와 의를 맺는것이요, 둘째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요, 셋째 총으로 사냥하는 것이요, 넷째 날랜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다. 라고 했듯이 의리와 호방함을 갖춘 무인적 기질의 소유자였다.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백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보물 제596-1호
인내를 강조한말.
선현들의 구전글귀로 "한결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세상에는 어려움이 없다."와 짝을 이루는 말이다.
歲寒然後知松柏之不彫 (세한연후지 송백지부조)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
보물 제569-10호
달리 말하면 날씨가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평상시에 애국자니 충신이니 하고 떠들어대도 나라가 위험할 때야 비로소 스스로 희생하는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機似雲
(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사운)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연한 자세와 굳센 기개가 드러나 글이다. 오른쪽 윗부분에 증맹경시라고 쓰여 있는 점으로 보아 여순감옥을 찾아온 일본인경찰관에게 써준 것으로 보인다.
庸工難用連抱奇材 (용공난용 연표기재)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
보물 제569-7호
큰 인물이 아니면 뛰어난 인재를 기용하지 못한다는 말로, 불의를 보면 참지못하고 구국운동에 앞장선 안의사의 지도자관이 잘 나타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金刀 山刀水 慘雲難息(검산도수 참운난식)
검이 산을 이루고 그 칼 끝이 처참하여
구름조차 쉬기 어렵다.
침략전쟁을 일삼는 당시 국제정세를 풍자한 글이다.
안의사 며느리인 정옥녀씨가 소장하고 있다가 후손이 간직하고 있다.
臥病人事絶 嗟君萬里行 (와병인사절 차군만리행)
河橋不相送 江樹遠含情 (하교부상송 강수원함정)
나는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는 만리 먼길 떠나가는가
다릿못에 같이나가 보낼 길 없고
강언덕 나무숲에 정만 어렸네
중국 당나라 시인 송지문의 시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黃金百萬而 不如一敎子 (황금백만량 불여일교자)
황금 백만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명심보감' 훈자편에 나오는 "황금 한 궤작짝이 자식에게 경서 한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라는 내용과 같다.
思君千里 以表寸誠 (사군천리 이표촌성)
望眼欲穿 幸勿負情 (망안욕천 행물부정)
나라를 걱정하며 천리밖에 나와
당신을 향해 바라보니 눈이 뚫어질것 같소
나의 이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나 이정을 버리지 마소서
보물 제569-11호
안의사의 우국충정을 나타낸글이다.
쓰러져가는 조국의 운명과 백성의 비운을 생각하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각오가 되있음을 시사한 비장한 글로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에서 임금에 대한 간절한 충절을 한 여인이 지아비를 사모하는 마음에 비유한 것과 같은 뜻이다.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보물 제569-4호
가난하고 천한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안의사의 인생관이 반영된 말이다.
博學於文約之以禮(박학어문 약지이례)
글공부를 널리 하고 예법으로 몸단속하라
보물 제569-13호
안의사의 수신철학이 담긴 글이다.
이 유묵은 예를 강조한 유일한 글이다. 이 내용은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수감되고 사흘뒤인 11월6일 미조부치 검찰관에게 제출한 '한국인 안응칠 소회'에도 들어있다.
喫蔬飮水藥在其中(끽소음수 락재기중)
나물 먹고 물마시니 그 속에 낙이 있네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는 탈속의 심사가 드러난 구절이다. 안의사에게 부귀는 한낱 뜬구름에 불과했다.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보물 제569-2호
안의사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명구로 실천운동에 참여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경구라 할 수 있다.
言語無非菩薩手段擧皆虎狼(언어무비보살 수단거개호랑)
말은 보살 아닌 것이 없건마는
하는 짓은 모두가 사납고 간특하다.
을사조약 정미 7조약 등 일제가 한국을 집어삼키려던 의도들은 모두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뒤로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위한 사전기도였던 사실을 비난한 글이다.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년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하네
보물 제569-3호
자연의 섭리는 그대로이나, 세월따라 사람들은 변하고 있다는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걱정하는 구절이다.
貧而無諂富而無驕(빈이무첨 부이무교)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마라
'논어'학이편에 나오는 구절의 인용이다.
弱肉强食風塵時代(약육강식 풍진시대)
약한 나라를 강한나라가 침략하는 제국주의시대를 풍자한 말이다.
영-미-일-로 등 당시 강국들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글이다.
天與不受反受其殃耳(천여불수 반수기앙이)
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게 된다.
보물 제569-24호
안의사는 이등박문이 스스로 하얼빈에 온 것을 하늘이 준 기회로 확신하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를 감행했다.
貧與賤人之所惡者也
가난하고 천한 것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富貴貧賤에 대한 올바른 생활철학이 간결하게 표현된 유묵이다. 論語 里仁편에 “부귀는 누구나 탐내는 것이나 올바른 도리로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말며 사람마다 가난과 천함은 싫어하는 바이지만 그 도로 얻음이 아니더라도 버리지 말고 감수하라”라고 한 글귀에서 인용된 것이나 간결한 재구성의 표현이 돋보인다.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 무난사)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것이 없다.
안의사의 순국일인 1910년 3월 26일자 『만주일일신문』에 사진본으로 보도되어 안의사 유묵으로는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원본의 전래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안의사의 성실한 인생관이 투영된 휘호이고 ‘百忍堂中有泰和’와 짝을 이루는 글귀라고 할 수 있다.
人類社會 代表重任 (인류사회 대표중임)
세계의 지도층 인사는 책임이 막중하다는 뜻.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불인자 불가이구처약)
어질지 못한 자는 궁핍한 곳에서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뜻.
論語 里仁편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안의사의 어진 성품과 인내심을 엿보이게 하는 휘호로 평가된다.
敏而好學 不恥下問 (민이호학 불치하문)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
論語 公治편에 “敏而好學 不下問 是以謂之文也”라고 한 문구에서 인용하였다. 尙武의 기질을 갖은 안의사지만 학문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주는 글귀이다.
澹泊明志 寧靜致遠 (담백명지 영정치원)
담백한 밝은 뜻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오래 전수된다.
조선일보사 조사부에 사진본이 소장되고 있다. 유묵소재와 진부여부를 확인중이다.
臨水?魚 不如退結網 (임수?어 불여퇴결망)
물에 다달아 고기를 부러워 함은 물러가서 그물을 뜨니만 못하다.
長歎一聲 先弔日本(장탄일성 선조일본)
큰 탄식으로 먼저 일본의 멸망을 조문한다.
일본 東京 舊 대만총독부 관리를 역임한 집안에 전래하는 유묵으로 근래 金光萬씨가 확인, 국내에 사진본이 공개된 것이다. 진위 여부와 전래과정들은 밝혀지지 않음
첫댓글 歲寒然後知松柏之不彫 (세한연후지 송백지부조)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가슴에 새길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인쇄하여 두고 두고 읽으며, 가슴에 담아야 겠어요.... 감사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