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돈이 오가는 계약을 맺을 때는 보통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다. 매매 계약서에 들어갈 내용으로 빠질 수 없는 것이 당연히 금액인데, 한글로 먼저 금액을 적고 다시 괄호 안에 아라비아 숫자로 금액을 적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금십이억삼천육백오십팔만오천육백원(\1,236,585,600원)’과 같이 적는다.
우리의 문자 생활에서 수를 적을 때 한글로 쓰기도 하고 아라비아 숫자로 쓰기도 하는데,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여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한글 대신 한자로 적기도 했는데 이제는 한자로 적는 일은 흔하지 않다. 큰돈이 오가는 매매이다 보니 금액을 변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이다.
‘십이억삼천육백오십팔만오천육백원’처럼 한글로 쓰면서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도 않는다. 이 역시 변조를 막기 위한 방법이다. 많은 글자가 이어져 있어 읽기에 불편하고 그만큼 금액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빈 중간에 한 글자를 써 넣어 금액을 변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막는다.
꼭 금액을 밝힐 때만 한글로 수를 적는 것은 아니다. 위의 예처럼 복잡할 때는 잘 안 쓰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한글로 수를 밝히기도 한다. 변조의 위험이 적을 때 수의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규정이 한글 맞춤법에 있는데 만 단위로 띄어서 쓰도록 하고 있다. 즉 ‘십이억 삼천육백오십팔만 오천육백’처럼 쓰도록 하였다. 우리말에서 만 단위로 헤아리는 표현이 바뀌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만, 억, 조, 경’ 단위로 띄어서 써야 한다.
때로는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를 섞어서 적기도 한다. 이때도 같은 규정이 적용되어 만 단위로 띄어서 적어야 한다. ‘12억 3658만 5600’처럼 적어야 한다.예전에는 십진법에 의하여 띄어 쓴다고 하여 ‘십 이억 삼천 육백 오십 팔만 오천 육백’처럼 적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너무 작게 갈라 오히려 의미 파악에 지장이 있다는 의견이 있어 맞춤법이 개정되면서 규정이 만 단위로 띄어서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