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씨가 왕손이며 명문 이어서 우리 성씨와는 근본이 다른 또 다른 '선산김씨'가 있다. 두 '선산김씨'도 모두 김알지 후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선산김_일선김씨에 대해 서로 다른 김씨가 아닌지? 고향은 같은 건지?
궁금해 하는 분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김씨는 김선궁을 시조로 하는 일선김씨 또는 선산김씨 이다.
선산의 옛 지명이 일선이다보니 일선김씨라 불리다가 조선 태종때 지명이 선산으로 바뀌어 그 때부터 선산김씨로도 불렀다. 그래서 우리 김씨는 일선김씨 또는 선산김씨라고 한다.
우리와는 시조가 다른 선산김씨(들성김씨)가 1986년 발간한『선산김씨대동보』를 보면 우리 쪽에 대해서는 '일선김씨'로 표기하는 한편 순충공 후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선산김씨'는 '일선김씨'로 표기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선산김씨'라며 이를 명기(明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와 같이 문성왕에 뿌리를 두고 문성왕 아들 안(安)의 두 아들 민공(敏恭)·민선(敏善) 형제 중 큰 아들 민공이 경순왕 대로 이어져 경순왕의 아들 8형제 중 일곱 번째인 김추(錘)가 자신들의 시조이고 우리는 둘째 아들 민선의 후손인 선궁 님이 '일선김씨'의 시조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순왕의 큰 아들 일(鎰)의 후손에서 부안김씨와 통천김씨, 둘째 아들 황(湟)의 후손에서 나주김씨가 나왔고, 셋째 아들 명종(鳴鐘)이 경주김씨· 낙안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고 있다.
또 넷째 아들 은열(殷說)의 후손에서 안동김씨· 김해김씨· 수원김씨가 나왔고, 다섯째 아들 석(錫)이 의성김씨, 건(鍵)이 강능김씨, 여섯째 아들 선(鐥)이 언양김씨,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일곱째 아들 추(錘)가 '선산김씨'와 삼척김씨· 온양김씨· 희천김씨· 진주김씨· 원주김씨, 여덟째 아들 덕지(德摯)가 울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척김씨는 추(錘)는 삼척김씨의 조상임을 내세우며, 선산김씨(들성김씨)와 조상에 대해 고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선산김씨(추계)는 그들의 시조 추(錘)는 알지의 29세 손이고 우리 '선산김씨'의 시조 선궁 할아버지는 알지의 30세 손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엄연히 자신들도 경순왕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산김씨(일선계)쪽에서는 이들을 경순왕 후예로 보기 보다는 농암 할아버지와 남매지간인 김기(金起)의 후손인 '들성김씨'로 보고 있다.
또 신라 원성왕 후손으로 고려시대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한 원평공 한충(漢忠)님을 시조로 하는 또 다른 '선산김씨'가 있다.
이들은 어디에서 세거하고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문헌상으로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어찌됐건 이들을 무조건 외면하거나 폄훼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체도 인정하는 것이 옳을듯 싶다.
어느 분이 '우리들의 조상이 다 그러하듯 선인(先人)들의 불분명한 소목을 지금에 와서 이렇다 따질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신라왕조의 같은 후손이라든지 아니면 조선시대 들어와서 우리와 혈연을 나눈 외손이라고 하더라도 왈가왈부 따지기보다는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어느 성씨를 막론하고 동성동본이족(同姓同本異族)은 있다. 가령 김해김씨는 수로왕계· 경순왕계· 귀화계 등 세 계통이 있고 남양홍씨도 '당홍(唐洪)'과 '사홍(士洪)', 안동김씨도 '신안동김씨'와 '구안동김씨' 두 계통이 따로 있는 사실은 유명하다.
또한 진주정씨는 가장 복잡한 성씨이다.
세상에선 흔히 '진양팔정(晉陽八鄭)'이라고 하는데 이는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정씨'가 여덟이나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중 몇몇은 정시양(鄭時陽)을 시조로 내세우고 파조를 그 '후손'으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진양팔정' 중 혈족이 아닌 동성동본이 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을 시사하고 있는 점이다.
이 밖에도 경주김씨나 광산김씨도 그렇거니와 순천김씨· 의성김씨· 해평김씨· 수원김씨·삼척김씨· 안노김씨· 영덕김씨· 경주이씨· 연안이씨· 여주이씨 등등 성씨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두룩 하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명문거족일수록 이 같은 시조가 다른 이족동성동본 성씨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기서 길게 언급할 수 없지만 과거 족보가 '진(眞)'보다는 '가(假)'가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