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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지도>
[벨리즈(Belize)] 수도: 벨모판(Belmopan) 면적: 22,965㎢(한반도 1/10) 인구: 30만 인종: 메스티소 44%,
크레올족 30%, 마야족 11%, 가리푸나족 7%, 언어: 영어(English), 스페인어(Spanish), 크리올어(Creole)
종교: 카톨릭 50%, 신교 30%, 기타 8%, 기후: 아열대 1월~4월 건조한 무더위, 에메랄드 바다와 블루 홀
벨리즈는 유카탄반도에 위치하며, 서쪽엔 과테말라, 멕시코 국경, 동쪽으로 카리브 해가 있으며, 마야 산을
중심으로 서쪽과 남쪽으로 무수한 강들이 길게 연결되어 있고, 기후는 아열대이다.
역사: BC300경~ AD900년 마야문명이 번영했던 마야왕조의 심장부로 16세기 스페인의 멕시코 부왕령이었으나
1638~40년 영국이 삼림자원을 얻기 위해 정착이 시작되었다.
18세기 말 마호가니 나무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 노예들이 들어왔으며, 1859년 과테말라와 영토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였고, 1862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영국령이 되어 군주국가가 되었다.
(벨리즈는 독립을 유지하려고 영연방에 남아 군주권을 주장했고, 과테말라는 계약이행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1991년 과테말라 대통령이 된 호르헤 세라노는 벨리즈해안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벨리즈 군주권을 승인했다.)
1864년 자치정부를 달성하여 1965년 선거에 의해 국민연합당의 당수인 조지 프린스가 잡았으며, 1973년 영국령
온두라스에서 벨리즈로 국명을 바꾸고, 1981년 영연방에서 독립했다.
국민연합당 권력은 연합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1984년까지 계속되었으며, 그 후로는 2당이 번갈라 정권을 잡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나라로 2008년 선거에서 승리한 연합민주당은 최초로 흑인 총리 딘 배로가 취임했다.
아직도 명목상 영국의 왕을 군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 왕이 임명한 총독이 당수당의 당수를 총리로 임명하고,
총리의 추천에 따라 총독이 내각을 임명하며, 12명의 상원의원과 29명의 하원의원으로 입법부를 구성한다.
1987년 우리와 수교했으며, 멕시코 주재대사가 업무를 담당하고, 1991년 북한과도 수교를 했으며, 2004년
우리는 1,450만 달러를 수출하고, 507만 달러를 수입했으며, 교민은 30명 정도라고 한다.
<1. 벨리즈시티 해변에 있는 벨리즈 글자 2. 벨리즈에서 유명한 블루 홀>
[7일] 16년 1월24일 일요일
●일정: 체투말(131km 2.5h)→ 벨리즈 코로잘 국경통과→ 알툰하 관광[마야유적 마솔린 신전(13개 신전, 2개
중심 광광, 마야 최대의 흙 두상)](54km 1h)→ 벨리즈시티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아침산책을 하다가 상가 셔터에 LG 로고를 만나 반가웠으며, 9시에 벨리즈로 출발했는데
호텔 천정에 있는 그림에 대한 것을 물었으나 통역 때문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체투말은 목재를 얻기 위해 생긴 도시이고, 마야인들을 스페인 사람이 많이 학살했으며, 1935년 멕시코 대통령의
대한이야기는 이해가 안 되었으나 그도 이 도시인들이 학살한 것 같다.
우리가 묶었던 호텔은 목재 생산하던 자리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며, 가이드 캔은 마야인이라고 했고, 200만
정도의 마야인이 살았지만 지금은 30만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체투말은 체투말 주의 수도로 스페인의 문화가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체투말 비행장을 지나 10시 쯤 국경에서
30분간 입국수속을 밟고, 벨리즈에 입국했다.
<1. 1~2. 새벽의 체투말 3. LG 로그 4. 체투말의 학살 5. 멕시코 대통령 6. 체투말 비행장 7. 벨리즈 입국장>
14년 전 칸쿤에 왔을 때 벨리즈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었는데 오늘 보게 되어 반가웠다.
벨리즈는 따뜻한 나라이어서 양말을 신지 않아 주문해야 하기에 특별이 양말만 취급하는 가게가 따로 있다고
하며, 세계 어디 가도 자리 잡고 있는 중국인들, 그들이 살고 있는 ‘코르젤 타운’을 지나갔다.
타이완 빵집, 타이완 철물들의 간판이 있다고 하며, 지나가는 ‘코잘’ 마을은 운전기사와 같은 종족인 인디오가
많이 살고 있는데 벨리즈도 사탕수수로 인한 고통을 스페인과 영국에 받았다고 한다.
이 나라국민의 30%인 크레올 족은 사탕수수재배를 위해 온 흑인과 원주민 인디오의 혼혈인 삼보(Sambo)라고
하며, 한 30분 달리다가 이번여행에서 처음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차를 세웠다.
과일을 사는 동안 잠시 그들이 사는 모습도 엿 볼 수 있었다.
과일 중에 특이한 것은 작은 피망이나 파프리카 같았으나 매운 맛이 강한 고추였는데 과일과 함께 파는 것은
우리 눈에 조금 색달랐으며, 과일 값도 엄청나게 싸서 우리가 먹은 것이 모두 12달러라고 한다.
벨리즈도 개고기를 먹는데 방법은 샤브샤브 식이지만 우리가 옛날 개를 잡는 방식을 듣고 놀랐다고 했으나
사실 엽기적 방식이라 문화에는 미개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이야기하기엔 부끄러운 일이다.
<1. 벨리즈 출입국 건물 2. 출입국장 내부 3. 고추처럼 매운 과일 4. 쁠라따노(삶아 먹는 바나나)
5. 쁠라따노 꽃 6. 이름 모르는 꽃나무>
[마야문명의 대한 이야기]
마야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위에서 했으나 그곳에 없는 이야기만 여기에 기록했는데 마야문명의 80%로는 땅 속에
있으며, 더러는 그 위에 사람이 살고 있고, 돈과 인력이 부족해서 20%만 발굴했다고 한다.
마야문명이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스페인들이 가톨릭을 전파하는 구실로 마야의 희생 제물에서 찾았다고 하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미개한 문명을 없애기 위해 파괴하였다.
그로인해 오늘날 전해지는 것이 적었으며, 또 보물을 찾기 위해 파괴한 것도 있으며, 제물로 선택된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버섯이나 마약 종류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학생 때 읽었지만 그 후로는 본적이 없어 의심을 했었는데 오늘 확인하게 되어 반가웠으며, 미국의
필라델피아 대학이 마야유적 발굴에 참여 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교의 석학교수들과 벨리즈정부, 특이 과테말라 정부와 손잡고, 티칼에서 발굴 중이라고 한다.
[벨리즈의 알툰하(Altun Ha) 관광]
유적지 맨 먼저 본 것은 벨리제의 국화, 국기, 국수, 국조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곳인데 국화(National Flower,
나라 꽃)라는 검정 난(Back Orchid) 이며, 다음은 벨리제 국기((National flag)이다.
국기 옆에 국수((National Tree) 마호가니(Mahogany) 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는 영국이 18세기 말 이 나무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 노예들을 데려왔고, 체투말 도시가 생길 정도로 가구 만드는 고급 목재로 기타도 만든다.
국조(National Bird)는 코뿔 새 투칸(Toucan)은 나무로 만들어 놓았는데 브라질의 국조이기도 하며, 이 새는 라틴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새로 앵무새와 싸우는 것을 브라질에서 보았다.
긴 부리 때문에 앵무새는 맥도 쓰지 못하고 듣기 싫은 소리만 질러 데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새의 부리는
약해서 부러지면 보호대를 대 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1. 코뿔 새 투칸 2. 검정 난 3. 마호가니 나무 4. 벨리즈 국기>
다음은 자료실 같은 곳에서 캔의 설명을 들었는데 알툰하는 사람이 살던 도시가 아니고, 사람이 찾아오는 신전이
있던 곳으로 BC 200년 전에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었으나 400년 전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화살촉, 나무를 자르는 도구, 옥 등과 당시 생활상, 지배자의 무덤 등을 볼 수 있으며, 이 부자는 이런
것을 사기 위해 카카오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스페인 식민지시대에도 이들의 화폐는 카카오이었다.
캔은 오직 영어를 알아듣는 한 사람만 바라보고 설명한 후 오~케이 하면 그만이어서 둘이 웃을 때 따라 웃어 줄
수가 없었는데 TC는 자기 임무 때문에 통역은 못하고, 저녁에 찾은 정보를 말했다.
하다가 틀린 곳은 교정해 주기도 했으나 TC가 아예 통역을 못하는 것은 그냥 넘어 갔으며, 그녀가 혼자 말을
하거나 가끔 이야기를 해서 짐작만 할 뿐이었는데 TC는 아예 포기하고, 미영씨에게 맡기면 좋을 텐데...
이미 알고 있었던 마야 지식이 오늘 대충이라도 알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는데 카카오나 옵씨디안 등은 통역을
못 들어도 괜찮았으나 궁금한 것이 문제였지만 다 포기하니 마음은 좀 편해 진 것 같다.
조각이 새겨진 큰 옥(Jade, 비취)은 이 나라의 국보라고 하며, 태양의 신을 조각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키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 진품을 두지는 않을 것 같았고,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현장으로 향했다.
<1. 화살촉 2. 지배자의 무덤 3. 화폐로 쓰였던 것들 4. 부와 권력의 상징 물 5. 태양신 얼굴을 조각한 큰 옥>
처음 만난 명패는 마미 애플(Mamey Apple)이라 적혔는데 아보카도 같은 열매가 달콤하고 맛있으며, 이 나무는
이곳에서는 키가 커 재목감이지만 우리나라는 화분에 심으며, 자라면 잎이 고무나무와 비슷하다.
다음에 만난 나무는 시더(Cedar, Cedro)라는 명패를 가진 나무인데 열매는 못 먹고, 집 짓는 재목이라고 했는데
시더는 히말라야 삼나무 속에 속한 모든 나무를 총칭하는 것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신전 앞에서 이곳에서 발굴된 사람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의 무덤에서는 자료실에서 본 것 같이 300개나 되는
보물을 가지고 있어서 엄청난 부자 일 것이라고 한다.
많은 보물은 죽어서도 가지고 갈 수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바닥은 돌로 되어 있으며, 13명의 신이 있고,
그 신을 위한 13개의 방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13은 좋은 의미의 숫자라고 한다.
TC는 가만히 있으면 더 좋을 텐데 끼어들어 통역까지 못하게 하여 참 답답하게 했는데 하여튼 죽은 사람 중에
어린아이와 성인 중에 목을 매고 죽은 사람들은 다 천국에 갔다고 했다.
모두들 목맨 사람이 천국에 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 ‘아마도 자살공양이 아닌지’ 말 한다는 것이 깜박하고
인신공양이라고 했더니 TC는 다량의 뼈가 나오지 않아 인신공의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피의 공양은 있었다고 말했는데 알면서도 통역 안 하는 것은 뭔 처사인지? 갑자기 궁금해지네.
<1. 마미애플 2. 신전위치 3. A 광장에서 본 신전들>
높은 신전에 오른다고 해서 처음엔 다리 때문에 망설였으나 뚱뚱한 캔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따라 올라 간 곳은 A-1 신전이었는데 신발이 샌들이라 조금은 불편했으나 잘 올라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아까 TC한테 자살공양을 인신공양으로 잘 못 말한 것이 생각나 다시 팀에게 말했더니 자살공양이라면
이해가 된다고 모두들 동의 했는데 미영씨가 직업을 물어 보았는데 여행 때마다 받았던 질문이다.
가장 높은 곳은 귀족들의 가족이 살았다고 간단하게 설명했으며, 사진만 찍기에 바빴는데 이곳에는 인신공의를
위한 게임도 없었고, 오직 신전만 있었다고 하며, 마야인들은 야채만 먹고 고기를 먹지 못해 키가 작았다고 한다.
한 계단은 오를 때마다 무릎 꿇고 경배를 했다고 하며, 제사장의 무덤이라는 곳에 있는 ‘돌 헤드(Stone head)'는
설명을 들으니 얼굴 형태가 보였는데 이들이 섬긴 신의 얼굴이라고 했다.
그 모습은 이곳에서 발견 된 흙으로 만든 마야의 최대 두상이라는 ‘킨치 아하우’와 많이 닮았고, 숙주(宿主)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기생(寄生) 나무를 중미에서는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숙주는 서서히 죽는다고 한다.
뱀에 물렸을 때 잎이나 줄기를 즙을 내서 먹으면 뱀독이 몸에 퍼지지 않는다는 식물을 찾는 방법은 붉은 가시가
뱀의 이빨을 닮은 나무를 찾으라고 했는데 이빨보다 갈라진 뱀 혀 같이 생겼다.
<1. A-1 신전 위에서 본 신전들 2. 돌 헤드 3. 기생나무 4. 뱀독 해독나무>
바닥에 놓여 있는 바위에 희미하게 그려진 것이 마야의 달력이라고 했으며, 양력과 음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도 촐킨 달력과 하얍 달력에 대한 이야기 같았으나 너무 어려워 통역을 못 했다.
캔이 말한 양력(Sun, 히얍)은 20일×18개월=360일 이고, 음력(Moon, 촐킨 )은 20일×13개월= 260일 이며, 해는
시계방향으로 돌고, 달은 반 시계방향으로 돌아 이들은 52년 만에 만난다고 했다.
간단하게 하얍 달력과 촐킨 달력이 13년마다 순환하며, 4 사이클로 되어 있어 52년 주기는 대단히 중요시 했는데
다음은 5125년이라는 먼 이야기가 나오고, 너무 복잡해서 끝없이 반복한다는 걸로 마무리했다.
작은 연못이 있었던 곳은 제사장이 제사할 때 목욕을 했던 장소이고, 물이 있어 살기가 편했기에 귀족들이
살았다고 하며, 1마일 떨어진 곳에 큰 연못은 따로 있다고 한다.
<1. 마야달력 2. 물탱크>
돌은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을 조합해서 쌓았으며, 시원하게 만들었다는 장소는 실제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고,
광장 B로 향했는데 어린이를 묻었다는 장소에서 B4 신전에서 발굴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무덤 주인의 뼈와 소장품이 보였으며,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신으로 선기는 36개의 재규어 털과, 1개의
돌 거울과 있었다고 하며, 죽은 사람은 소장품을 하늘로 가져갔다고 한다.
하늘로 가져가기 쉽게 모든 소장품에 구멍을 뚫었고, B4 태양신전의 계단 옆에는 A1 신전처럼 ‘돌 헤드(Stone
head)'와 닮았으나 파인 윤곽이 반대이었으며, A1이 더 실물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잉카제국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했는데 잉카제국은 이마가 좁고 머리가 뾰족(∧)하도록 어려서부터 관을
쓰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옥수수 머리(Corn head)라고 했다.
모양은 잘 알 수 없지만 이곳 지배자들도 뼈가 무른 어린 시절 머리 쓰고 있었다는 설명을 했고, B4 신전에 올라갈
사람은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해서 캔이 간다면 나도 나섰다.
올라갈 때 좀 힘들어도 올라가면 좋은 것은 멀리 볼 수 있는 것과 사물이 발아래 있다는 뿌듯한 마음일 것인데
신전 전체는 잘 보여 좋았지만 지대가 낮은 곳인지 숲에 가려 멀리 보이지는 않았다.
<1. 시원한 바람구멍 2. B4 신전의 발굴된 사진 3. 돌 헤드 4. B4 신전 위에서 본 신전들>
내려오면서 살구나무 잎처럼 생긴 ‘이슈아난’이라는 풀 앞에 섰는데 이 식물은 벌레물리고, 상처 난
모든 피부병에 좋다고 하며, 만병통치약처럼 쓰인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다음은 구멍 뚫린 땅이었는데 설명 안 해도 알겠는데 거대한 거미인 타란툴라(Tarantula)라는 '독거미'로 알고
있으나 약한 독을 가지고 있다고, 백과사전엔 기록되어 있다.
코스타리카 가이드는 타란툴라를 독거미로 얘기 했고, 땅 속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새들을 잡아먹는다고 했다.
우리 사과나무 같은 커스터드 애플(Custard Apple) 나무로 열매는 어른 주먹만 하며, 모양은 부처님 머리를
닮은 대만의 석과와 비슷한데 속의 흰 과육을 먹는 고급 과일로 맛은 달다고 한다.
2시에 늦은 점심을 이곳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맛은 없었으나 음악이 좋았고, 이제는 벨리즈시티로 향했다.
<1. B 광장에서 본 신전들 1. 이슈아난 2. 타란툴라 거미 굴 3. 커스터드 애플>
▶알툰하의 마솔린 신전: 알툰(바위) 하(물)는 영어로 ‘Water of the rock’ 우리는 암반 수, 석수(石水)'인데
한자는 물 하(河)로 안툰 하와 발음이 같은데 이곳은 AD250~900년경 마야 제례의식을 치르던 중심신전이다.
이곳엔 13개의 신전, 2개의 중심광장, 마솔린 사원의 제단이 있으며, 흙으로 만든 마야의 최대 두상 ‘킨치 아하우
(Kinich Ahau)’가 발견 된 곳으로 1961년에 발굴 되었고 벨리즈시티에서 50km 북쪽에 위치한다.
※옵씨디안(obsidian): 우리는 흑요석(snowflake obsidian)이라고 하며, 화산이 많은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제
등 중미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이 돌을 깨면 날카로운 날이 저절로 생긴다.
그 때문에 선사시대 이후로부터 돌칼이나 화살촉 같은 무기들을 만드는데 사용되어 왔으며, 화산활동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화산유리(volcanic glass)로 반투명한 자연산 유리이다.
고대 마야 인들은 광택을 내어 거울을 만들거나 그들의 신상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했으며, 흑요석은 이집트
(Egypt)에서도 발견된 보석종류이나 비싸지 않아 공예품으로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
※시더(Cedar, Cedro): 히말라야 삼나무 속에 속한 모든 나무를 시더 트리라고 하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드는 향료로 쓰였고, 우리는 삼나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목재는 향기가 나고 붉은빛이 도는 갈색으로 배, 집, 다리, 가구, 큰 통, 장식용 조각품 등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잎으로는 향(香)을 만들고, 추출한 오일은 고대로부터 향으로 쓰였다.
오늘 날에도 치료용이나 훈향으로 사용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성스러운 나무이라서 소중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B 광장에서 본 신전들 1. 킨치 아하우 2. 칼날 같은 자연석 옵씨디안 3. 옵씨디안으로 만든 칼
4. 옵씨디안의 빛 투과 5. 시더 트리>
[블루 홀(Blue hole)과 벨리즈시티]
이 나라 해역에 있는 블루 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풍요를 상징하는 임신한 여인을 블루
홀에 제물로 바쳤는데 이곳에서 다이빙을 하던 사람들이 건저 올린 돌에서 그 증거를 발견했다고 한다.
폭은 300m, 깊이 180m나 된 바닥을 아직 아무도 들어 간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렀다면 입구에서 건졌나?
블루 홀은 팔라우 등 여러 군데 있으나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것은 벨리즈 것이며, 세계 10대 기이한 자연현상
중에 하나라고 하고, 잠수부들의 장비를 만드는 것에도 기여를 했다고 한다.
내일 옵션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볼 수 있다고 했으나 포기했으며, 벨리즈시티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카리브 해도
오늘로서 마지막인데 내려달라고 했더니 차가 세우기 좋은 곳에서 내리기로 했다.
캐리비안은 지금 새우 잡는 철이라고 하며, 부자동네를 지나면서 임기 5년인데 지금 3번째 연임한 다는 총리 집엔
국기가 있었고, 좋은 집은 우리 돈으로 5억이라고 해서 좀 놀랬으며, 이들 소득에 비해 무척 비싼 편이다.
캔은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지 집값 땅값에 능통했으며, 한 곳에 내려 캐리비안을 구경하고, 5시도 안 되어 ‘Belise
Biltmore’ 호텔에 일찍 도착했는데 오늘 일정은 뚤룸에서 출발해도 좋을 것 같았다.
※벨리즈시티(Belize City): 동쪽엔 카리브 해가 있으며, 이 나라의 가장 큰 도시로 인구 약 7만 명이고, 벨리즈
강이 도시를 통과하며,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고전적인 카리브의 풍경이다.
경제, 상업, 무역의 중심지로 원래는 영국령 온두라스 수도였으나 허리케인의 피해를 자주 받아 1970년 내륙에
건설된 신도시 벨모판으로 옮겼다.
<1. 벨리즈의 블루 홀 2. 카리브 바다와 요트 3.등대 4. 벨리즈 총리의 집 5. ‘Belise Biltmore’ 호텔>
[8일] 16년 1월25일 월요일
●일정: 벨리즈시티→ 후난투니치 관광[모판 강 언덕 마야유적](127km 2h)→ 과테말라 멜커(84km 1.5h)→ 페텐
호텔의 나무들이 진기해서 여러 장 사진에 담은 것은 뒤편에 따로 취급하겠지만 로열 팜 나무의 열매 맺는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물건을 사고 받은 돈이 다행히도 보고 싶었던 벨리즈 2달러짜리 지폐였다.
아침부터 좋지 않는 소식에 걱정을 하게 되었는데 블루 홀을 갈 사람이 5명으로 이중 여자분 2명이 인천부터 못
마땅했던 남자와 같이 타고 싶지 않아 따로 갈 방도를 찾는 것을 그 사람이 알았다.
그가 ‘설치지마라, 한국에 가거든 정신병원부터 가 보라’라고 했다는데 ‘그건 자기가 다니던 병원 아니야?’ 하고
말했던 것 같았는데 그나마 들을 수 있었던 통역은 어찌할꼬?
우리보다 더 큰 일은 그의 도움으로 경우 직무를 수행했던 TC이였으며, 통역도 문제지만 이 험한 분위를 어떻게
아무 탈 없이 이끌 것인지도 문제였는데 난 통역이 없으면 정말 큰일인데...
어찌되던 시간은 흐르고 그들이 좀 늦게 도착하여 예정 시간보다는 늦게 후난투니치로 향했는데 벨리즈 강은
멕시코에서 흐르는 벨리즈 강은 이 유역에서 생산 되는 과일과 농산물을 운송하는 강이라고 한다.
시내를 벗어나자 1877년부터 조성됐다는 공동묘지가 길 양쪽에 있었고, 부자들만 갈수 있는 묘지라고 했으며,
죽은 사람은 묘지로 가고 산 사람은 집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기도 한다고 한다.
<1. 호텔의 나무 2. 2달러짜리 앞면은 엘리자베스 2세 3. 뒤면 중앙은 후난투니치 마야유적
4. 벨리즈 강 5. 부자들의 공동묘지>
[벨리즈의 수난투니치(Xunantunich) 관광]
웨스턴하이웨이를 따라 2시간 가면 과테말라 국경 근방에 있으며, 유적지 본래 이름은 캇 위즈(Kat Witz)라고
하는 후난투니치에 도착하면 푸른 물에 카약을 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 모판 강이 있다.
모판 강엔 다리가 없고, 로프로 끄는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데 큰 차도 실은 수 있는 크기였으며, 강을 건너면
유적지까지 지프를 타고 갔으며, 먼저 설명한 것은 빨간 꽃이 예쁘게 핀 것이 진저(ginger, 생강)이라고 한다.
생강 꽃은 마야인들의 데코레션(decoration, 장식) 했는데 우리나라 생강은 줄기와 잎이 갈대 같지만 여기 것은
고무나무와 비슷했으며, 크기는 엄청난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잎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
입장하기 전 돌을 갈아 석회(石灰) 가루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돌 쌓을 때 중요한 재료로 이 가루에
열을 가하면 생석회가 되며, 생석회와 물을 반죽하면 단단한 물질이 된다.
석회가루는 칼슘이 들어 있는 무기화합물인 석회암이며, 이곳도 유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료실에서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당사자가 통역을 거부해서 난감하게 되었는데 TC통역을 어떻게 믿어?
<1. 모판 강을 오가는 케이블 배 2. 카누 3. 진저 4. 석회 만드는 도구>
[답답한 TC]
이곳 유적지는 1881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그림에도 젊은 여성이 횃불 들고 신전에 올라가는 그림도 있고,
'마야의 어머니, 젊은 어머니'라는 말도 했으나 TC는 통역도 아니고 이미 했던 이야기만 했다.
여성 한분이 길게 한 쉼을 내 쉬었는데 그도 나중에 ‘어찌 그런 사람을 보냈냐?’고 말을 더듬을 정도로 크게 분노한
적이 있었으며, ‘오~케이’만 외치는 가이드! 니만 ‘오~케이’이고, 난 ‘노~ 케이’이다.
17분 동안 TC는 뭔 놈의 오리지날만 외치다 말았는데 ‘오리도 지랄하면 날 수 있다는 얘긴지... 참 답답하다.
불행의 4박자는 돈만 챙긴 SH사장, 양심 없는 TC, 재수 없는 지성인(지랄 같은 성질의 인간), 욕심 많은 내 탓!
말 안 해도 알고 있는 공놀이 신나게 열심히 설명, 공놀이 방법은 설명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코판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그래도 이곳에서 얻은 귀한 자료는 그들이 믿는 세이바 나무의 우주관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미영씨를 뒤 따라 가면서 챙긴 것은 이 유적지는 총독 알프레드 말론(Governor Alfred Malone)이 재직 시절에
발굴에 힘썼고, 영국의사 토마스 갠(Thomas Gann)도 참여해서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제는 현장으로 향하면서 ‘파킹’이라는 열매 하나를 들고 마야 언어로 ‘싹멕’이라는 원숭이가 혈압이 없는 것은
이 열매를 때문이라고 했는데 열매보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그것이 알고 싶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한들 우리가 어떻게 알아’라고 말하는 걸 보면 모두들 의심이 되는 모양이었고, 아마도 영국의사
토마스 갠이 말해 주지 않았을까? 4명의 엘리트 무덤을 지나 실내에 2개의 큰 돌이 있는 곳에 들어갔다.
이 돌들은 무덤의 관 같이 보였는데 3명의 시체가 있었으나 지배자는 머리가 있고, 2사람은 머리만 발견되어 목이
잘린 것으로 보고, 과테말라와 마야와 전쟁을 했다는 것 같았다.
벽에 있는 사진엔 마야달력이라는 단어가 보였는데 갑자기 우리가 미국인으로 보이는 것 일까? 아니면 통역도
못하는 것을 아는 것 일까? 이젠 가이드도 통역할 시간도 주지 않았는데 아~ 정말 답답하다.
이제는 설명은 듣지 않고 사진만 찍는 사람도 생겼으며, 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다가 TC한테 아래는 하층민 높은
곳은 귀족이 살았다고 하는 들으나 마나한 이야기를 했다.
3월과 6월에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했으며, 치첸이사를 말하며 길게 애기하고 또 ‘오~ 케이?’라고 해서 단호하게
‘노~케이’라고 했더니 또 길게 애기했으나 결국 ‘노~케이’인 것을, TC가 더디어 정식으로 통역을 부탁했다.
단호하게 ‘저 사람 때문에 No~’라고 거절했으니 이를 어찌 하리! 이젠 할 수 없이 가이드에게 ‘오~ 케이’ 해서
이동을 시작한 후 그 사람 없을 때 물었더니 3월과 6월에 제사지내고, 축제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3월, 6월, 9월, 12월 달의 21일 즉 춘분, 하지, 추분 동지 날은 마야 마더 날로 여인들이 횃불을 들고 제사를 하면
달(우리나라의 견우와 직녀처럼)과 만난다는 치첸이사의 신앙전통이 이곳까지 행해졌다고 얘기했다.
<1. 4명의 엘리트 무덤 2. 후난투니치의 모형도 3. 마야의 어머니 4. 세이바 나무의 우주관
5. 전시된 지배자의 유골 6. 마야달력과 3명의 시체가 있었다는 곳>
[비밀의 문과 트릭(trick)]
이제야 마야마더, 그림 등이 조금이해가 되었고, 이젠 약사인 왕언니 주도로 그 사람을 빼고, 우리만 따로 설명을
설명을 들었는데 이곳에 한 통치자의 능력을 아무도 믿지 않아서 한 꾀를 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조상이 자기에게 능력을 주었다고 해 놓고, 비밀을 문을 만들어 놓고 갑자기 사라지는 트릭(눈속임)으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여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신전의 비밀 문에 대한 설명이라고 한다.
제단의 계단 옆에 새겨진 얼굴은 잘 생긴 마야인의 얼굴이며, 비와 태양의 신을 의미한다고 했다.
※마술: 트릭은 우리말로 ‘눈속임’이고, 종교학 용어로는 주술(呪術)이며, 이 기술을 마술(매직, magic)이라고
하는데 조로아스터(배화)교의 제사장들은 점성술(占星術)이나 마술(魔術)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이 제사장을 '마고스'라고 부라고 부르고, 마태복음 2장 원문에 '마고이'로 표현한 그들이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찾아간 '동방박사'들이고, 다니엘도 박수장으로 동방박사와 같은 사람으로 선배라고 할 수 있다.
마고스는 고대 페르시아어(語)의 마구시(magush), 중세 페르시아어의 무그(mugh) 또는 마기(magi)로 그리스어의
마고스(magos)에 해당되며, 이 ‘마기(magi)'가 마술(magic)의 어원이다.
<1. 비밀의 문이 있었다는 1번 신전의 정면 2. A-3 광장과 신전 3~5. A-2 광장의 신전들>
[1번 신전과 케찰(Quetzal)]
이젠 유적 중에 가장 높은 1번 신전을 캔을 따라 모두가 오르면서 숨을 헐떡이는데 우리에겐 뚱뚱한 캔이 있다.
‘캔은 우리를 올라가게 하는 힘이요, 용기이니 저런 사람들이 가이드 해야 한다.’고 했더니 모두들 동감했고,
이런 곳을 다니는 캔이 살이 안 빠지는 이유가 좀 궁금했다.
잠시 쉬면서 설명을 했는데 코너마다 있는 특색은 동쪽은 빨간색, 서쪽은 검은 색, 북쪽은 흰색, 남쪽은 노란색.
중앙은 블루와 그린인데 중앙 비의 신이 있으며, 그곳에 과테말라의 국조인 케찰 새가 있다고 한다.
꾀꼬리’로 과테말라 국민의 53%가 마야 인으로 그들 조상이 케찰의 깃털을 화폐로 사용한 것에 착안하여 1925년
화폐단위를 페소(peso)에서 케찰로 채택했으며, 케찰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 중에 하나이다.
케찰은 꼬리가 긴 새로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 꾀꼬리’이였고, 이곳에서 과테말라라는 이름을 많이 듣게 되는데
이유는 바로 서쪽 가까이 과테말라의 티칼 유적이 있기 때문이며, AD 900년대 같은 시대의 유적이다.
제단 중간에 있는 조각들을 보고 입장할 때 왜? 석회 만드는 것을 보여 주었는지 이해가 되었는데 이 석회로 만든
조각과 돌 사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이 유적의 특징 중에 하나인데 그래서 흰색이 많은 보인다.
분화구모양의 유적은 1800년대에 보물을 찾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다고 하는데 폭파로 보물을 찾는다?
파진 깊이로 보아도 조금은 의심이 되었으며, 지금 보는 것은 오리지널이 아니고 재건축 한 것이라고 한다.
다 오르니 탁 터인 것이 멀리까지 보였고, 한쪽을 가르치며, 과테말라라고 했는데 난간이 없어 겁이나 떨어지기
싫어 사진은 앉아서 찍었고, 이곳에서 산 사람을 피부를 벗겨 공양을 했다고 한다.
치첸이사, 티칼 등을 들먹이며, 길게 설명했으나 그 사람 피할 길이 없어 통역불가, 내려오는 길이 더 위험했고,
이곳에 있는 경기장에서 골대는 없어지고 밑 부분만 있었다.
<1. 평화의 신 2. 달의 신 3. 비의 신 4. 1번 신전 위에서 본 신전들 5. 석회가 많은 보이는 유적
6.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다고 하는 곳 7. 인터넷 백과사전에 있는 케찰 새>
[경기장과 개기일식]
이곳도 치첸이자처럼 승자가 제물이 되었다고 하며,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고, 패자의 잘린 머리로
게임을 했으며, 승자는 영광으로 생각하여 심장을 바쳤다고 하는데 패자에 대한 것은 처음 들었다.
이제까지는 제물이 되기 위해 승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죽기 위해 이겼다는 소리로 들려 두려움을 가진 인간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왜? 승자가 되려고 했는지 좀 이해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공양으로 바치다가 해가 달그림자에 가리는 개기일식이 되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하여
너무 좋아하여 광란의 축제를 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끊임없이 인신공양을 한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신관이 개기일식과 월식을 예언하고 맞힘으로 지배자 권위를 상승시키고, 복종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한다.
왜? 신관들이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이해가 되었으며,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마야를 이해하는데 아주
소중한 정보를 듣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잃을 가봐 걱정이 되었다.
40년 되었다는 마호가니 나무가 많이 컸고, 후난투니치의 의미를 물었더니 영 마더는 알아들었는데 메이든을
몰라 통역을 못했으나 가이드 설명에도 ‘마야의 어머니, 젊은 어머니'라는 말도 했다.
그래서 후난투니치 영어로 ‘Young Mother(maiden, 소녀)’이라고 결론을 얻었다.
후난투니치의 최고 높은 신전이 41m인데 가이드의 알툰하 B4 신전이 42m라고 말한 것은 후난투치를 말한 것
같은데 계단수를 세어도 50개 미만으로 1계단을 30cm계산하면 15m이다.
▶수난투니치: 과테말라와 멕시코까지 이어지는 모판 강(Rio Mopan) 언덕에 AD300~900년 마야의식을 행하던
곳으로 그들이 남긴 최대의 업적 중 하나라고 한다.
티칼처럼 메아리 소리가 퍼져 신전 위에서 한말이 아래까지 들리며, 2달러 도안에도 있다.
<1. 경기장 2. 티칼 유적지가 있는 과테말라 국경 쪽 3. 벨리즈의 국경마을>
[과테말라 입국]
유적지 안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1시간 쯤 달려서 과테말라 국경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했으며,
과테말라 교민을 만났는데 이 나라에서는 소지품을 조심하라고 조언을 들었다.
이번 가이드는 젊고, 잘 생긴 전형적인 인디헤나였는데 이 사람은 통역할 시간도 주지 않고 혼자 말했는데 아마도
우리를 미국사람으로 봤는지 쉬지 않고 이야기했으나 들으나 마나했다.
Peten Esplendido 호텔은 호수 안에 있는 인공 섬 플로레스를 들어가는 다리 옆에 있었고, 섬이 잘 보여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같이 갈 사람도 없지만 살인율 세계 3위 나라이라서 포기했다.
※페텐(Peten, 뻬뗀): 과테말라 북부지방으로 열대 정글 속에 마야문명의 티칼유적이 있으며, 페텐이차(페텐이사,
Peten Itza)라는 C자 모양의 호수가 있고, C자 아래 부분에 인공 섬 플로레스가 있다.
이 섬 안에 있는 플로레스라는 도시 중앙광장 주위엔 교회, 정부건물들이 있으며, 이 도시는 잇싸인들에 의해
세워져 마야의 여러 의식을 치르던 곳이었으나 스페인인들의 침략 후 교회와 공공건물들이 들어섰다.
[과테말라(Guatemala)] 수도: 과테말라시티 면적: 108,890㎢(남한크기) 인종: 인디헤나(Indigena, 몽골계
마야인) 53%로 마야문명의 적통후예, 메스티조 45%, 백인 2% 종교: 카톨릭 인구: 1천2백 60만, 언어: 스페인어
기후: 저지대 열대기후(25~30℃), 고지대는 온대기후(16~20℃)로 더위로 해발 1,500m 이상에서 생활한다.
지리: 이 나라는 험준한 산악지대와 울창한 정글로 되어 있고, 주산업은 커피가 주요 수출품이며, 옥수수, 면화,
바나나가 생산되며 추잉 껌의 원료인 연성 치클고무가 천연림에서 채취된다.
<1. 호텔에서 본 페텐 섬 2. 추잉 껌의 원료가 되는 치클고무 나무>
역사: 과테말라는 '삼림의 나라'라는 뜻으로 과테말라의 흑요석화살촉 추정연대는 12,000년 전, 피텐 지방은
3,500 전에 사람이 살았고, 북동부와 유카탄반도는 마야족의 문명 중심지이었다.
페텐 호수 북쪽 지방은 BC300~900년에 마야족의 고도의 문명이 있었으나 1524년 코르테스 부하 알바라도
(Alvarado)가 정복하였으며, 1543년 중남미 최초의 스페인식민지로 과테말라총독이 지배했다.
1821년 멕시코독립이 자극받아 독립선포 했고, 1824년 중앙아메리카연방 일원으로 독립했으며, 1847년
과테말라 공화국으로 정식 발족했다.
1871년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바리오스의 친미정책은 미국자본이 과테말라를 지배했으며, 19세기 후반 독일
이민들 커피재배를 시작하여 영국도 투자하여 과테말라의 경제는 외래인이 완전장악 했다.
1944년 아레바로가 대통령 당선되어 노동법개정, 사회보장, 자국산업자본의 육성 등 정치민주화에 전력했다.
1951년 대통령이 된 아르벤스 구스만은 혁신정당의 지원 밑에 적극적으로 농지개혁 및 주요 산업의 국유화 착수
하였고, 1954년 혁명에 의해 카스티요 아르마스의 정부가 수립했다.
1960년 이후 게릴라의 유혈내란을 겪었고, 1986년 1월 민간정부가 출범하여 50년간의 군부집권이 종료됐지만
그후 혼란을 겪었으며, 2015년 10월 소수정당 FCN의 지미 모랄레스(46, 코미디언)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주 경제사업인 농산물은 커피, 옥수수, 면화, 바나나가 생산되며, 추잉 껌의 원료 연성치클고무가 천연 밀림에서
채취되고, 민속악기 '마림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중앙아메리카연방: 1823년~38년 사이 산살바도르를 수도로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의
4개국이 연방을 형성하였으나 내분으로 1838년에 해체되어 각각 독립하였다
해체 원인은 인종적으로 과테말라 인디오 53%, 엘살바도르 메스티소 52%, 온두라스 메스티소 91%, 코스타리카
백인 80%로 인종의 구성요소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테말라를 점령한 알바라도>
[9일] 16년 1월26일 화요일
●일정: 페텐 플로레스(66km 1.4h)→ 티칼 관광[마야유적(그랑플라자, 비명의 신전, 문도페르디도르, 아크로
폴리스) 등]→ 플로레스 공항→19:00 TA7973(1.2h)→ 20:10 과테말라시티
아침식사를 마치고 식당 아래 있는 물고기를 구경하다가 빵조각을 던져 주었는데 처음엔 고기들이 모여 들었으나
물고기의 천척인 거북이 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면서 고기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갈매기도 합세했다.
저 멀리서 빵조각을 먹겠다고 열심히 달려오는 거북이들 때문에 웃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8시 넘어서
가이드가 도착하여 티칼유적지로 향하면서 TC가 조사해 온 티칼유적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티칼 유적지 앞에도 작은 호수가 있어 깊이와 넓이를 물었는데 가이드는 피텐이자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악어도 산다고 했는데 모두가 티칼 유적지 앞의 호수를 피텐이자 호수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과테말라의 티칼(Tikal) 마야유적 관광]
10시 쯤 유적지에 도착하여 제일먼저 만난 것은 투칸이였으며, 3가지 색깔이 있다고, 길게 설명했으나 통역불가,
쿠바 구아마 섬에서 본 나무를 먹고 산다는 개미집을 이곳에서도 보았다.
<1. 빵조각 먹는 거북이와 갈매기 2. 개미집 3. 투칸>
까마귀 울음소리와 비슷하다는 스파이더 원숭이도 보았으며, 가이드는 짐승을 부르는 소리를 냈으나 소용이
없었고, 그때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가이드는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하울러 몽키’라고 했다.
긴장하면 숨죽이고 있었으나 원숭이는 보이지 않았는데 다음에 또 들리는 소리를 듣고 아무리 원숭이가 크다고
해도 숲속을 울린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알아차렸고,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여자들은 계속 속고 있어 남자하고는 사물판단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감쪽같이 속이는 가이드가
연극을 잘 하는 편인지 여자들이 잘 속는 것인지 모르겠다.
처음 만난 피라미드에서 아주 길게 설명을 했는데 통역이 있다고 해도 그 설명을 다 기억하기엔 힘들다는 생각을
했지만 눈치로 짐작만 했으며, 그 지성인은 모두가 사정해도 사과를 하지 못 하겠단다.
피라미드 앞에 있는 9개의 기둥은 사람이 임신했을 때 9개월 동안 어머니 배속에 있던 것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그 의미를 맞추느라 고생한 것 같기만 하고, 맨 앞 재가 있는 곳은 지금도 제사를 지낸 흔적이 있다.
지금도 결혼을 하면 신성한 곳이라고 여기는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세이바 나무를
태우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영혼이 하늘에 올라갈 수 있다는 믿었다고 한다.
이 나무 꼭대기는 이마, 좌우 가지는 어깨, 가지가 시작되는 가운데는 가슴, 그래서 성당에서 신앙고백 하기 전
손으로 긋는 十 성호(聖號)가 바로 인디오의 신앙이라고 한다.
<1. 9개의 기둥과 피라미드 2.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곳과 우리를 미국인으로 생각하는 가이드>
티칼(Tikal)은 마야어인데 영어로는 ‘City of Voice(에코, echo)’이라고 하면서 손뼉을 치면 메아리쳐 오는데
이런 현상은 로마원형 극장, 성당, 마야신전 여러 곳도 이런 현상을 보았다.
마야의 아즈텍 문명에서는 옥수수를 신성시했으며, 옥수수 4가지 색깔은 수난투니치에서 이야기했던 동쪽은
빨간색, 서쪽은 검은색, 북쪽은 흰색, 남쪽은 노란색으로 옥수수 다 있는 색깔이다.
유적지 중에 지붕이 있으면 진품, 없으면 모조품이라고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이곳은 지붕이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들어 올 수 없었던 곳인데 지배자, 귀족, 부자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서 있는 돌에는 지배자의 얼굴과 상형문자가 있었다고 하며, 좀 더 가면 1호 신전의 뒤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모두들 좀 흥분해서 사진 찍기 바빠 설명들을 여유가 없었다.
정사장님은 아마도 보관 때문인지 세워서 찍으면 안 되고, 배경이 잘려도 안 되어 여러 번 찍었다.
앞 쪽이 더 화려하다고 해도 이곳에서 떠나줄 몰랐는데 올라가다 왼편에 보이는 곳이 남쪽 아크로폴리스이며, 1호
신전과 사이에는 공놀이 하던 경기장이 있었고, 선수들이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더 가면 유적의 중심이 되는 대 광장이 나오고 이 광장 동쪽엔 1호 신전이 있으며, 북쪽엔 2호 신전과 4호 신전
등의 신전 군이 있으며, 북쪽에도 아크로폴리스가 있고, 남쪽에도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1. 부자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 2. 1호 신전 뒤편 3. 경기장 4. 남쪽 아크로폴리스 5. 북쪽 아크로폴리스>
[그랑플라자(Gran Plaza)]
유적지 중심의 대 광장으로 관광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인신공양의 제사는 북쪽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진행했고,
제사장이 신전 구멍에 해가 들어오는 가장 밝은 시간에 신호를 보내면 제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석 앞의 둥근 돌 위에 인신공양의 제물이 올려 지며, 피는 이 나라 꼬깔이라는 나무와 섞어서 태우면 연기는
하늘과 연결시켜 준다고 믿었고, 2,000 정도의 군중이 모여 재규어 춤을 추면서 행사를 했다고 한다.
서쪽은 1호 신전, 동쪽은 2호 신전이 있고, 남쪽과 북쪽엔 아크로폴리스가 있으며, 지금도 마야 인들이 결혼 등의
중요한 날에 찾아와서 불을 지피고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 광장의 중앙에 있다.
가이드의 긴 설명도 무용지물이며, 대 광장에서 35분간의 자유 시간을 가졌으며, 아무도 가지 않아서 혼자 북쪽
아크로폴리스로 갔는데 이곳에도 지금까지 봤던 큰 바위 얼굴 ‘킨치 아하우’가 지하에 있었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높이 38m인 2호 신전에 올라갔다가 마지막으로 남쪽 아크로폴리스를 보고, 약속 장소에
모여 지성인이 없으면 ‘이젠 듣자’라고 말하면 미영씨 주위로 모여 설명을 들었다.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여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차 안이나 이동 중이거나 그와 떨어질 수 없는 시간은
통역을 듣지 못해 불행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되었다.
<1. 2호 신전 위에서 본 1호 신전 2. 대 광장 3. 중요한 날 찾아와서 불을 지피고 제사를 올리는 제단
4. ‘킨치 아하우’ 5. 2호 신전 위에서 본 북쪽 아크로폴리스>
[1~5호 신전]
1호 신전은 저승을 의미하는 9단 기단이며, 높이는 50m(4번째)이고, 상부 신전입구에 있는 조각이 재규어이라
재규어 신전이며, 기단 경계에 있는 4각형의 구멍은 기단을 쌓을 때 대나무 발판을 고정했던 곳이란다.
아즈텍의 테오티와칸과 같은 건축양식으로 700년경에 만들어 졌고, 신전 중에 가장 잘 만들어졌다.
1호 신전과 마주보고 있는 2호 신전(가면신전)은 7단 기단의 구조로 700년경에 만들었으며, 장식 지붕에 있는
얼굴의 부조 때문에 ‘가면의 신전’이라 불리고, 높이는 38m(5번째)로 가장 낮다.
3호 신전 2호 신전 뒤 동쪽에 있으며, 높이는 55m(3번째), 24호 비석의 기록에 건축 시기는 810년이고, 상부
들보에 있는 조각에 의해 ‘재규어 신관의 신전’이라고도 하며, 현재는 수리 중이다.
서쪽 끝에 있으며, 이곳만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데 4호 신전은 높이 72m(1번째)로 이 신전은 콜럼버스가
오기 전까지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기록에 의하면 건축 시기는 741년이다.
신전에 오르면 초록빛 정글 속에 가까운 곳부터 3신전, 2신전, 1신전의 꼭대기만 보인다.
남쪽신전 건물 군 동쪽에 높이 57m(2번째)의 거대한 5호 신전의 건축 시기는 700년경이며, 뒤 면은 밀림이 덮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북쪽이라 이끼가 많다고 했으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왔다.
<1. 1호 신전의 4각형구멍 2. 2호 신전 3. 3호 신전 4. 4호 신전 5. 4호 신전 위에서 본 1,2,3호 신전>
[아크로 폴리스(Acro polis, 높은 언덕)]
남쪽 아크로폴리스의 중앙에는 광장이 있으며, 이곳에는 200여 개의 건물이 210m에 걸쳐 있고, 6개의 정원과
궁전이 있으며, 2~3층의 넓은 건물군은 지배층의 거주지이고, 건축시기 AD300~600년이다.
북쪽 아크로폴리스엔 수많은 건축물이 겹겹이 세워져 있는 것 중에 가장 오래 된 것은 BC200년경이며, 발굴을
위해 600~900년 건축된 상부는 들어내고 남은 하부는 300~600년 것이다.
지하 묘실에서 발견된 유물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신전 내부에 있는 경이로운 거대한 마스크 조각이 있으며,
그 외로 박쥐궁전, 마주본다는 뜻인 콤플레호(Complejo) 피라미드도 있다.
▶아크로 폴리스: 아크로(높은) 폴리스(언덕)는 고대도시의 관공서와 종교건물들이 있는 곳을 말한다.
※비명(碑銘)의 신전: 1호 신전 뒤 동남쪽 끝에 1951년 발견된 신전 상부의 커다란 지붕에 신성문자가 많이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766년 기록됐었으며, 규모도 커서 6호 신전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문도 페르디도르(Mundo Perdido): 아크로폴리스 광장 서쪽으로 더 가면 푸른 잔디밭의 공간이 ‘잃어버린
세계’로 중앙에 높이 30m의 복원된 정사각형의 피라미드가 있다.
<1. 북쪽 아크로폴리스 2. 북쪽 아크로폴리스에서 본 2호 신전 3. 남쪽 아크로폴리스>
[4호 신전에 오르다]
가이드를 따라 4호 신전으로 향했으며, 마야 인들은 머리로 무거운 짐들을 날랐기에 목이 짧고 상체가 넓다고
캔이 말한 것을 또 했으며, 멕시코 치첸이자에서는 넥타이가 안 팔린다고 했다.
치첸이자 식당의 무대에서 여인의 춤도 머리에 항아리와 도자기를 잔뜩 이고서 추는 춤이라 목 짧은 사람들에겐
딱 맞는 춤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야인 캔과 과테말라 가이드도 다 목이 짧았다.
가는 도중에 많은 설명을 했으나 들은 얘기는 티칼은 한 때 10만 명이 살았으나 가뭄 등으로 물자가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떠난 것이 버러진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
이젠 4호 신전에 도착했는데 2,000년부터 발굴을 시작했으며, 2020년 정도가 되면 발굴이 완성될 것이라고
하고, 지금부터는 올라가야 하는데 캔도 없으니 누구를 보고 올라가야 하나!
신전을 쳤다보니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으나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해서 큰 맘 먹고 나섰으며,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르니 견딜 만 했으며, 언제나 가지는 희망은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한 여름이면 땀 깨나 흘렸겠지만 겨울이라 다행이었으며,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들었고, 하도 시야가
좋아서 울산도 찾아보고 싶었으나 눈이 나빠 포기했으며, 30분 후에 만나기로 해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1. 4호 신전 위에서 본 신전들 2. 티칼 지도>
오늘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유적지 안에 식당으로 향하면서 추잉 껌을 만드는 치클 나무에 대하여 물었더니
무척 반가워하면서 그 나무를 찾아가서 나무에 상처를 낸 후 원료를 얻는다고 한다.
자기 나라는 껌 만드는 기술이 없어 싸게 수출하고 비싸게 사온다고 하며, 오늘 점심은 멕시코 전통음식인
또르띠야(Tortillas)인데 우주인들이 무중력상태에서 가루가 날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먹었다 한다.
싸 먹는 속은 시어서 별로이었고, 식당에서는 이 나라 민속악기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림바'를 둘이서 함께
연주하고 있었고, 내려오다 크기로 유명한 세이바 나무를 보았는데 너무 커서 사진 속에 다 넣을 수가 없었다.
※또르띠야: 케이크라는 뜻의 스페인어 또르따(Torta)에서 유래했지만 기원은 BC 10,000년 전 마야인들이라고
하며, 전통방식은 돌 판에 돌 방망이로 옥수수 가루를 내서 20~30초 구어 낸다.
이상적인 두께는 0.3mm 정도, 지름은 15~20cm 정도 되며, 지금은 전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음식이라고 한다.
▶티칼 마야유적: 고대마야 문명이 있었던 가장 큰 도시로 BC800년 처음 마야 인이 정착했고, AD300~900년경
가장 번성하여 오늘과 같이 최대의 유적을 남아 있어 1955년 국립공원지정, 1979년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1979년 세계문화유산이 되었고, 약 16㎢ 면적에 피라미드 신전, 화려한 궁전, 광장, 운동경기장, 무덤, 제단, 비석,
침실과 목욕탕 등 3‘000여 개의 유적이 있으며, 당시 최선성기에 10만 명 살았다.
그들은 2~30m 큰 돌들을 운반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고 하며, 마야 신전은 가파른 계단이 특징이지만 이곳은 더
가파르고 더 높다고 하며, 정글 속에는 3,000여 개의 유적들 대부분은 발굴 되지 않았고 한다.
피의 공양을 하기 위해 사용했던 가오리 꼬리가 발견됐으며, 마야 인이 가장 소중한 보석은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은 옥(Jade) 3kg는 왕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과테말라시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 치클 나무를 설명하는 가이드 2. 또르띠야 3. 거대한 세이바 나무>
[플로레스(Flores)와 페텐이차(Peten Itza) 관광]
차는 ‘페텐이사’라는 호수에 있는 인공 섬 플로레스에 도착하여 40분의 자유 시간을 가졌는데 날씨가 무더웠으며,
시간이 많아 중앙광장 주위엔 있는 교회와 정부건물들을 보려고 했다.
언제 배를 흥정했는지 타라고 해서 지성인과 TC만 빼고, 10명 전원이 배에 올라 선장이 인도하는 데로 구경을
했는데 이 호수 안에는 또 다른 작은 섬이 있어 무조건 상륙했다.
하도 작아서 갈 곳이 없었으나 바나나, 세이바 나무, 가장 큰 수확은 3종류의 이구아나를 볼 수 있었는데 중미가면
실큰 볼 줄 알았던 이구아나를 이곳에서 못 보았다면 큰일 날 뻔 했다.
선장은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노력했으나 약속 시간이 지나 되돌아오게 되었는데 단 돈 2달러짜리 여행이지만
이번여행에서 가장 멋진 여행을 했으며,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교회와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이제는 안티구아로 가는 비행기기는 30명 정도 타는 소형이었는데 이런 경비행기는 처음 타 보았으며, 과테말라의
가이드는 첫 인상이 안 좋았지만 내일 하루만 참자라고 생각했고, Crowne Plaza 호텔에 들어갔다.
<1. 상륙했던 작은 섬 2. 비석과 세이바 나무 3. 3종류의 이구아나 4. 아름다운 교회와 도시건물>
[10일] 16년 1월27일 수요일
●일정: 과테말라시티(35km 0.6h)→ 안티구아 관광[1. 안티구아 성당 2. 식민지 박물관 3. 아르마스(국민) 광장
4. 커피 박물관]→ 콰테말라시티 관광[1. 왕궁 2. 중앙시장 3. 국립고고인류학 박물관 4. 중앙 공원
5.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6. 과테말라 모형도]
오늘이 여행의 절반을 지나 10일 째 되는 날로 나라도 절반인 5개 나라를 구경했고, 오늘은 안티구아로 향하면서
TC의 일정을 들었는데 내일 일정은 4시에 기상해야 한다고 하니 몹시 바쁜 날인가 보다.
차는 대형이지만 뒤 문이 흔들려서 매우 시끄러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가이드 설명이
있었으나 TC는 아무 말이 없더니 갑자기 가방 조심하라고 하며, 아까 얘기했던 화산이야기를 다시 했다.
미영씨가 과테말라시티 인구를 물었더니 TC는 7만이라고 했는데 차라리 모른다고 하지, 이 나라 33개 화산 중에
3개의 활화산이 있고, 그 중 하나가 안티구아에 있다고 한다.
이젠 안티구아의 3개의 화산이 한꺼번에 보이는 장소에 내렸으나 큰 도로 옆이라 좀 위험했으며, 이곳에서
아주까리 잎과 열매가 달린 것은 아주 큰 나무여서 신기했다.
우리나라는 1년생이고, 키 큰 식물이지만 지금은 잘 심지 않는 농작물인데 한국에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경남
고령에는 그런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미영씨가 내려서 한 이야기는 과테말라 인구는 1,500만 명이라고 하고, 수도의 광역 대 인구는 400만 정도이며,
티칼 쪽은 저지대이고, 고지대에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하며, 이곳은 고지대라고 한다.
<1. 과테말라시티에 있는 기아영업소 2. 안티구아의 3개 화산이 보이는 곳 3. 아주까리 나무>
[세로 데 라 크루스(Cerro de la Cruz, 십자가 언덕)]
다음에 정차한 곳은 안티구아 시내 전경이 다 보이는 북쪽에 있는 십자가 언덕으로 오늘은 날씨가 좋아 아구아
화산까지 잘 보였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요건물을 알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미국교민을 만났으며, 친구가 여기 살아서 오게 되었다고 하며, 오늘 오전만 관광한다고 했더니 좋은
온천도 많고, 너무 볼 것도 많은 곳인데 아쉽다고 했으며, 이젠 커피 박물관으로 향했다.
<십자가 언덕에서 본 아구아 화산과 안티구아 시내>
[커피 박물관(El Museo del Cafe) 관람]
1883년부터 커피를 재배했다는 ‘라 아소테아 농장(Finca La Azotea)'은 커피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가이드는 커피는 BC2,000년 전부터 있었으며, 염소가 먹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 보고 발견됐다고 했으나
사실과 좀 다른 얘기였으며, 커피는 해발 900~1,600m 재배되기에 고지대인 이곳이 적당하다고 한다.
900m 이하는 열대커피라고 하고, 1,600m 이상은 맛 이 떨어진다고 하며, 길게 설명했으나 간단하게 말하면
밭에서 잔까지를 말하며, 재배, 수확, 특성, 볶기, 분쇄, 혼합 등이다.
그리고 제조에 쓰이는 기구와 기계, 주전자와 잔, 식민시절 최초 커피수출문서와 경로지도를 전시해 놓았으며,
커피도 맛 볼 수 있고, 판매도 해서 혹시나 해서 사 두었는데 그 후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이 농장을 이룩한 가족사진과 뒤 마당에 햇볕에 말리고 있는 커피콩은 대단한 량이었고, 커피나무에 달린 열매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이 달렸으며, 바나나 그늘 아래서 키우는 것을 못 본 것이 아쉽다.
※과테말라커피: 1750년대 처음 소개되었으며, 19세기 초반에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었고, 품종은 아라비카
(Arabica) 품종인 타이피카(Typica)와 버본(Bourbon)종을 주로 경작한다.
미네랄이 풍부한 화산재 토양, 뚜렷한 건기와 우기, 큰 일교차와 습도는 커피 재배에 이상적이고, 주로 그늘
(Shade Grown)과 습식법(Wet Method)으로 경작하며, 2008년 20만 톤으로 세계 11위이다.
기계를 사용해서 대량생산하는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커피보다 손으로 농사짓는 이곳 커피가 품질이
좋으며, 특징은 키가 큰 바나나 그늘 아래서 키우는 것이다.
<1. 어린 커피나무 2. 커피나무 3. 열매의 공정 4. 커피 내릴 때 필요한 도구들 5. 커피농장 가계도>
※커피: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이며, 케파(카파)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자라서 이름의 어원이 되었고, 15세기경부터
재배되었으며, 회교들의 종교의식에서 대중적인 음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정통 사제들은 그것이 사람을 도취시킨다고 '코란'에 의하여 금지시켰으나 엄한 벌칙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와
그 주변국들로 급속히 퍼졌으며, 1652년 런던의 한 커피 점에서 음료로서 인기를 얻었다.
이 커피 점은 정치, 사회, 문학의 중심지였고 상인들의 집합지이기도 하였으며, 1689년 유럽에서도 커피 점들이
번창하였고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등 북아메리카의 도시들도 대중화되었다.
이전까지 세계의 커피 공급은 남아라비아의 예멘 지방에 의존하였으나 소비가 증가되어 재배는 급속히 전파되어
1658년 세일(호주 동남부 해안도시)와 1696년 자바와 인도네시아 섬에서 재배를 시작하였다.
18세기에 들어서 중남미 전체와 하와이로 이어졌으며, 유명한 모카커피는 예멘이라는 나라에 '모카'라는 항구에서
수출한데서 어원이 왔으나 지금은 초콜릿 향기가 나는 커피를 말한다.
한국에 커피가 소개된 것은 고종 32년 1895년 을미사변 때 러시아 공사가 고종에게 시음하게 한 것이 최초로
이때부터 고종은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고 고관들의 기호식품으로 애용하게 되었다.
친로파 몰락에 불만을 품은 김홍륙이 고종과 세자가 마시는 커피에 독을 풀어 살해를 음모하였던 사건은 가비라는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유명하고, 1925년 서울에 최초로 다방이 생겼다.
커피 값이 너무 비싸 돈 있는 사람만 멋으로 마시고, 한국 최초 오페라 가수이자 대중가요 가수인 윤심덕도 종로
다방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1. 커피 이동도 에티오피아→ 예멘→ 사우디→ 중동→ 유럽→ 카리브 해(17232년)→ 남미(1727년)
↳ 인도(1600년경) ↳ 스리랑카(1616년)→ 인도네시아 2. 세계 커피생산량>
[안티구아(Antigua) 대성당 관광]
대성당을 찾아 가는 길은 자갈이 들어나 걷기도 불편하지만 승차감 또한 불편할 것 같았으며, 길게 늘어선 건물
입구엔 학교, 호텔 등의 글자가 보였는데 입구가 작고 초라해서 믿기지 않았다.
1773년 지진 때 2,000여 명의 사망했을 때 성당도 많이 파괴됐으며, 밖에 있는 조각은 스페인들의 성인이고.
독일인들이 보낸 성금은 이 성당을 재건할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아주는 것은 성당 안에 있는 58개의 아이콘 때문이라고 하고, 3월 사순절 카니발 때
이 성당 앞에서 출발하며,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말라고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3월 부활절 행사 때 유리 상자 안에 있는 58개의 아이콘은 카펫을 깔고 성당 밖으로 꺼내어 시내를 행진하는
사진을 본적이 있으며, 잠시 내부를 둘러보고 나왔다.
※사순절(lent), 사육제, 카니발(carneval), 고난주간
절기들의 기원부터 기록하려면 너무 복잡하여 간단하게 기술하면 이 절기들은 부활절이 기준으로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만월(보름)이 지난 후 첫 일요일이라서 날짜의 편차가 큰데 3월 말 쯤 된다.
이렇게 복잡한 것은 부활절이 꼭 주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며, 사순(40)절은 부활절로부터 일요일을 빼고
40일전으로 2월 초순과 중순의 중간쯤에 해당하고, 사육제와 카니발은 같은 축제일이다.
카니발은 라틴어로 'carne(고기)'와 'val(격리)'의 합성어로 '고기를 사양하는 잔치’로 한문으로 표기하면
사육제(辭肉祭)이며, 3일간의 사육제가 끝나는 날 모든 고기를 먹어 치우고, 부활절까지는 먹지 않는다.
사순절이 시작되면 금욕생활을 해야 하므로 그전에 실컷 먹고 마시고 놀아보자는 취지가 담겨져 있으며,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은 유럽인의 이주가 많았고 또한 가톨릭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교는 너무 무절제하다는 이유로 금지하였으며, 고난 주간은 부활절 전의 일주일간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는 주간이고, 첫 일요일이 부활절이다.
<1. 안티구아 대성당 외부 2. 58개의 아이콘 가장 유명한 고난의 예수님 3. 화려한 아이콘>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국민) 관광]
안티구아 대성당 앞에 있으며, 시청광장(Plaza Mayor)이라고도 하고, 1543년 이 광장중심으로 총독부, 시(市)
청사, 대성당, 아름다운 분수대, 중미 최초의 대학 산 카를로스, 식민지 예술박물관, 시의회 건물들이 있다.
과테말라시티로 옮겨간 대학 자리에 박물관이 있고, 노란색은 바오르 2세가 추대한 성인 베드로형제 성당이고,
주위엔 성인이 세운 병원과 공원이 있으며, 5명의 수녀와 교황특사로 건설된 산타클라라 수도원이 있다.
산타클라라 성당과 수도원(1702 건설, 1734 증축, 1773 파괴)은 규모가 대단히 크고, 지진으로 파괴 된
콜로니얼(식민지) 건축들을 복원했으며, 화산석으로 포석(鋪石)한 도로는 승차감이 나쁘다.
<1. 아르마스 광장의 아름다운 분수대 2. 베드로형제 성당 3. 화산석 도로>
[엘 아르코(El Arco, 아취) 거리 관광]
이 도시에서 가장 번화가인 거리로 옛날 산타클라라 수도원 정문에 있었다고 하는 시계탑과 남쪽 아구아 화산이
잘 어우러진 거리로 아마도 성 프란시스코 교회라고 생각되어 지는 곳에 있는 철문 안으로 들어다 보았다.
그곳엔 예수님이 로마병정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 지고가다 넘어지고, 최후에 십자가에 매달리는 모든 과정을
조각으로 만든 것이 있었는데 아마도 3월 행사 때 사용하고, 보관하는 장소인 것 같다.
거리에는 그림 파는 사람, 수제품을 파는 원주민들, 사진을 찍으면 물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집의 간판엔 ‘La Bosada Bon Rodrigo(La Casa D Los Leones)’라고 적혀 있었다.
호텔도 아니고 정부에서 허가해준 숙박시설인 까사(Casa)가 있었는데 가이드가 허락을 얻고 들어가 보았으며,
스페인 남부의 아랍형식의 파티오(Patio, 안뜰) 정원도 아름답지만 식물도 좀 특이했다.
파티오는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집 가운데 있는 정원을 말하는데 까사가 이렇게 좋은 정원을 가져도 됐는지!
<1. 아구아 화산과 시계탑 2. 성 프란시스코 교회 안의 행사용 조각들 3. 케찰 새 그림 4. 까사 대문
5. 아름다운 파티오 6. 물건 파는 원주민들>
이 거리에 보이는 건물은 대문에 해당하여 별로 특이해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이 집을 통해 알았으며, 중앙 광장(Parque Central)에서 3개의 화산이 한꺼번에 보였다.
‘푸에고 활화산’은 아직도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관광객이라면 모두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 도시 사람들은 저런 활화산을 옆에 두고 불안하지 않은지 물었다.
화산이 터지기 전 화산재가 미리 징후가 나타나고, ‘푸에고 활화산’ 아래에는 골프장이 있어 그들이 먼저 알려 줄
것이라고 해서 웃었으며, 좀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지나간 곳은 안티구아 지방청 건물(시청)이다.
파티오 정원이 아름다운 한 곳을 더 들리고, 일정에도 없는 수공예 점을 들렸을 때 지성인한테 버스 안에서 설명을
들을 수 있게 좀 해달라고 했으나 괴변만 늘어놓아 설득을 포기했다.
<1. 중앙광장, 광장 건너가 총독관저 2. 푸에고 활화산 3. 안티구아 시청 4. 안티구아 성당 5. 또 다른 파티오>
[성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성당 탐방]
가톨릭 2개의 큰 교단 중에 라틴어로 ‘일요일’을 뜻하는 ‘도미니카’ 교단이고. 다른 하나는 ‘프란시스코’ 교단으로
이 성당은 ‘프란시스코’ 교단에서 세운 규모가 대단히 큰 성당이다.
지금 성당은 대지진 때 무너지고 남은 일부이고, 이 성당은 사진을 찍지 못하며, 안에 들어가 200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인 된 성 요셉 베드로라는 사람의 애기를 들었는데 아래에 정리해 두었다.
그는 프란시스코 회원이고, 수도사이며, 선교사인데 그의 무덤은 치료의 상징으로 초콜릿 등을 놓고 기도하면
치료에 효과가 있고, 원하는 치료마다 켜놓는 초불의 색깔이 7가지가 있다고 한다.
사랑은 빨강, 아이는 파랑 등인데 7가지 색을 따 켜놓으면 모든 걸 다 이루어진다고 했으며, 이곳도 값어치가 있는
진품은 과테말라시티로 가져갔다고 하고, 설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외벽에 베드로 부조(입체) 조각상이 있고 그 앞에는 3가지 식물은 그가 멕시코에서 치료를 위해 가지고 온 것으로
하나는 이름을 모르고, 불염포에서 솟아 나온 안슈리움이며, 포인세티아인데 아래에 정리했다.
성 프란시스코 교회는 16세기 건설되어 복원과 파괴를 번복됐었고, 성인 베드로 묘지가 있으며, 규모도 크고,
성인이 사용했던 물품과 기도로 병이 나아 두고 간 목발 등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작업자들이 열어둔 철문으로 정원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베드로 동상과 기숙사 같은 건물을
구경했고, 과테말라시티로 향하면서 오늘 본 것을 TC가 반복해 주었다.
<1. 성 프란시스코 성당 2. 성 프란시스코 성당 내부 마당 3. 성 요셉 베드로의 동상이 있는 정원>
※성 요셉 베드로: 그의 본 이름은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St. Petrus de Betancurt, 1626~67년)이며, 1655년
프란치스코 교단에서 성 요셉의 베드로(Pedro of St. Joseph)라는 이름을 받았다.
과테말라에서 부르는 이름은 성 에르마노 뻬드로(Santo Hermano Pedro)인데 그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섬에서 태어났으며, 서인도 제도의 노예와 원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650년 신앙심이 강한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소명을 느끼고, 과테말라로 향했으며,
1655년 프란치스코 입회하면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아프리카 노예, 비인간적인 노동에 고통 받는 인디오, 이민자들, 버려진 아이들의 사도가 되어 헌신하였고,
1658년 작은 오두막집에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병원을 만들어 병원 이름을 ‘베들레헴의 성모님’이라 했다.
노숙자 쉼터, 가난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학교 그리고 뜻이 같은 남녀 젊은이들을 모아 베들레헴 형제회와
베들레헴 자매회를 만들고, 베들레헴 수도회를 설립했으며, 1667년 41세로 과테말라시티에서 죽었다.
그는 안티구아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에 묻혔으며, 198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2년
교황의 아메리카 순방 중 과테말라시티에서 시성되었으며, 중앙아메리카 출신으로는 그가 처음이다.
<환자를 돌보는 성 요셉 베드로>
※포인세티아(Poinsettia): 꽃말은 '축복합니다. 축하합니다.', '나의 마음은 타고 있습니다.'이며, 꽃에 대한
전설은 2가지가 있는데 이 꽃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생긴 이야기이다.
하나는 효성이 지극한 소녀가 무의(巫醫, 무당의사)의 말에 따라 어머니 병을 고치려고 낭떠러지에 있는 약초는
구했으나 떨어져 다쳤는데 그 때 피가 물든 것이 포인세티아의 빨간 잎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16세기 크리스마스이브 때 예수님탄생을 축하하며 제단에 선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지만 한 가난한
소녀는 바칠 선물이 없어 길가의 잡초들을 모아서 교회로 갔다고 한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나 잡초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 것이 바로 포인세티아이고, 스페인어로 ‘노체 부에나(Noche
Buena,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하며, '성스러운 밤의 꽃'이라는 이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멕시코에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사용하게 되었으며, 잎 모양이 베들레헴의 별을 닮았고, 붉은
잎은 예수님의 피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는데 크리스마스의 상징적인 꽃이다.
더운 멕시코가 고향인 식물이라 추위에 매우 약하므로 조심해야 하며, 멕시코 원주민 아즈텍족은 포인세티아
수액을 의학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였고, 잎은 빨간 염료를 만드는 데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꽃 이름은 'Mexican Fire Plant(멕시칸 불꽃식물)', Painted Leaf(채색된 잎)'라고 불렸으나 1825년 아마추어
식물학자였던 조엘 로버트 포인세트(Joel Roberts Poinsett)는 멕시코 초대 미국대사였다.
그가 귀국하면서 처음 소개하여 인기를 얻었고 1851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이름을 따서 포인세티아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으며, 잎은 처음엔 녹색이나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지면 붉게 변한다.
안슈리움(Anthurium)은 '꽃'인 안토스(anthos)와 '꼬리'라는 오라(oura)가 조합된 말로 꽃말은 '불타는 마음'이다.
<1. 성 요셉 베드로 부조 2. 안슈리움 3. 포인세티아>
★안티구아(Antigua): 1524년 코르테스 부하 알바라도가 이곳을 정복하였고, 1543년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여
총독부를 두어 식민지(콜로니얼, colonial) 수도로 삼았는데 이것이 중남미 대륙에 첫 식민지이다.
본래 도시명은 안티구아 과테말라(Antigua Guatemala)이나 줄어서 안티구아라고 하는데 해발 1,520m 이며,
옛 과테말라 왕국의 화려했던 옛 수도로 인구는 3만 5천여 명의 소도시이고, 3개의 화산이 있다.
1개 화산은 인근에 천지처럼 물이 있었으나 지진으로 다 빠지고 말라 버린 ‘아구아 화산’은 죽은화산이며, 2개 중
오른 쪽에 죽은화산 ‘아카테난고’이고, 왼쪽은 불의 뜻을 가진 ‘푸에고 화산’은 지금도 불꽃이 튀는 활화산이다.
3개의 화산으로 지진과 홍수피해가 끊이지 않았는데 1773년 대지진으로 건물들이 파괴되었고, 1775년 수도는
과테말라시티로 옮겼으며, 1960년대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 했고,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 70여 개나 되는 어학원이 있으며, 산타 카테리나 수도원의 시계탑(아르코)이
인상적인데 이곳엔 크고 작은 성당이 32개, 수도원 18개, 기도원 15개가 있다.
그리고 교회 10개, 병원 5개, 학교 8개가 있고,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었으나 1773년 대지진 이후 방치된
상태로 있었으나 19세기 때 커피농장의 산업이 발생하면서 콜로니얼(식민지) 풍으로 재건되기 시작하였다.
툭툭(Tuctuc)이라는 3룬 오토바이택시가 명물이며, 치안이 안 좋아 철망에 갇힌 도시로 총을 든 사설경비가 있다.
복구 않는 이유 1. 필요치 않음 2. 경제력 없음 3. 식민지 유산 4. 세계문화유산 취소(조지아 나라 쿠타이시
바그라티 성당처럼 65% 유지 못하면 세계유산 최소, 세계유산 되려고 울산 암각화는 물막이 못함)
※식민지 박물관(Museo de Arte Colonial): 1676년 샤를 2세 때 중미에 세워진 최초의 대학인 '보로메오 산
카를로스 대학교(San Carlos de Borromeo)'로 건축 중 1751년, 1773년 지진으로 중단되었다.
1936년 유네스코 지원을 받아 4개 교실을 전시실로 개관했으나 현재는 3개가 늘어났으며, 이곳엔 정복시대부터
현재까지 그들을 삶을 엿볼 수 있는 그림, 조각, 가구 등 130여 점을 전시해 놓았는데 16~18세기 것이 많다.
중앙공원북쪽 성당 맞은편에 있고, 이 나라 100케찰 지폐에 도안되어 있으며, 내부는 촬영금지구역이다.
<십자가 언덕에서 본 안티구아 시내>
[실망한 한식식사]
19일 여행 중 오늘 점심이 유일하게 먹는 한 끼의 한식이 있었는데 사장님이 메뉴를 보여 주면서 10달러까지만
주문할 수 있다고 하여 오늘 한 끼는 잘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은 실망이 되었다.
차라리 호텔식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고, 식당사장님은
한국식당은 4곳만 있지만 중국식당은 무척 많다고 하며, 이 나라의 치안에 대해 잠간 이야기 해 주었다.
차의 유리는 안을 볼 수 없게 진한 선팅을 해야 하며, 절대로 열지 말아야 하고, 뒤에서 오는 차량이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신호를 위반해서라도 피해야 한다고 했으며, 자기들도 사설경비를 쓰고 있다고 한다.
종업원을 잘 못하면 언제 총 맞을지 모른다고 했는데 좋은 조국도 있는데 이런 험한 곳에서 사는지? 좀 궁금했다.
(뭔 놈의 부자 동네여?)
점심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과테말라시티 관광을 시작했는데 설명도 없이 도착해서 8분 쯤 열심히 걸으면서
경찰 앞에서 무단횡단까지 하면서 도착 곳은 시내 전경이 잘 보이는 곳이다.
일정에 없는 ‘라자 베르린(Laza Berlin)'라는 곳인데 매연으로 시야가 좋지 않는데다 철조망까지 시야를 방해하여
걸어 온 보람을 감소시켰고, 다음은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단지 최상류 급만 사는 부자 동네라고 했다.
앞에서 뭔 놈의 부자 동네여? 라는 소리가 들렀고, 우리나라에 부자 집이 없어서 이곳까지 구경하러 왔나?
철조망울타리를 가진 EU 대사관은 건물이 보이는데 이 나라에 얼마나 잘 못했기에 미국대사관의 담벼락은 높기도
하지만 담벼락에 초소와 총을 쏠 수 있는 구멍까지 만들어 성벽을 방불케 했으며, 건물은 보이지도 않았다.
<1~2. 부자 동네 집들 3. 철조망 안의 EU 대사관 4. 건물은 보이지 않는 미국대사관 벽>
[메트로폴리탄 대성당(Cathedral Metropolitan)관광]
수도를 옮긴 후 1782년 건축을 시작해 많은 건축비가 소요되었고, 1815년 완성된 네오 클래식 풍의 흰색 건물로
내부가 매우 웅장하며, 안티구아 대성당의 중요한 물품들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종탑은 1867년에 완공되었으며, 내부는 촬영금지이고, 내부든 외부든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은 하나의 대도시가 주변 중소도시에 영향을 미쳐 전체가 하나의 통합된 구역으로
형성된 넓은 지역으로 메트로폴리탄(플라자, 철도, 미술관, 오페라, 박물관 등)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수도대주교는 로마가톨릭의 속주수도에 거주하면서 교회선교를 목적으로 속주와 지역을 관장하는
주교를 일컫는 말로 대주교가 거주하는 성당(Cathedral Metropolitana)을 뜻한다.
<1.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2. 성당 안마당>
[엉망인 과테말라시티(Guatemala City) 관광]
성당을 나와 오전에 식민지박물관을 안보여 주었으니 국립고고인류학 박물관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태도가 바뀐 가이드는 3시 40분밖에 안 되었는데도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고 했으나 모두가 믿지 않았다.
우리가 재촉하자 이 성당에도 박물관이 있다면 데리고 들어간 곳은 성당역사박물관이어서 안 본다고 했더니
우리를 중앙공원 광장으로 데려가 다행이도 대통령궁과 국립문화궁전은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면서 박물관은 문 닫았다고 고집해서 그럼 과테말라모형도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차를
다시 태우고 중앙광장에서 점점 멀어져 갔는데 모형도는 대성당 뒤 지도공원에 있다고 했는데 이상했다.
차는 한적한 곳에 도착해서 우리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현지인들에게 묻더니 모형도가 없다면서 다시 찾아
가야 한다고 해서 예상한대로 이 자식이 우리를 모른다고 속이는 것이 틀림 없었다.
이 도시에 살면서 그 만큼 가이드를 했는데 모형도 있는 곳을 모르일 없으니 속이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고의로
욕보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팀은 가이드는 입장료가 있는 곳은 피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우리 팀은 인류학 박물관으로 가자고 고집했고, 차는 박물관으로 향했으나 가는 길에 엄청나게 교통체증이 있어
아무래도 고의로 이런 길을 택한 것이 아니가? 생각했으나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2시간을 허비하고 5시 45분에 박물관에 도착했으나 철문은 이미 닫힌 상태이여서 건물만 구경했으나 지금부터
급한 것은 빨리 변소를 찾는 것이었는데 어제 우리가 도착했던 비행장이 옆에 있어 다행이었다.
<1. 국립문화궁전 2. 국립고고인류학 박물관 담 벽과 주위 도시건물>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해가 지고 어두워졌는데 Crowne Plaza 호텔은 비행장 가까이에 있어 일찍 들어
갈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 도저히 이렇게는 여행할 수는 없어 SH여행사 사장한테 전화를 했다.
피곤해도 늦게까지 전화했지만 통화가 되지 못했고, TC는 밤새 본사와 얻은 결론은 아주 나쁜 소식이었는데
이 자식하고 오늘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니카라과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 참을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었는데 더 기가 찰 일은 그 만큼 잘 아는 가이드도 없다는 것이며, 대신
스페인어만 하는 가이드 한명을 더 보내 주면 그는 영어로 통역하고 그의 영어를 TC가 통역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갈수록 태산이라 여행하는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으며, 다시는 이 여행사와는
여행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이 가이드의 이름은 'Jemie 또는 Jamie'라고 한다.
우리는 ‘제이미’ 또는 ‘지미 x x 놈’라고 부르고 싶은데 만약 이 자식을 만나면 절대로 초반에 기를 잡던지 아니면
돈에 환장한 놈이니 좀 보태 주던지 해야 하며, 우리를 화수분으로 알던 인도 가이드 샌디가 생각나게 했다.
오늘 일을 더듬어보면 자메이카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가이드가 쇼핑을 권했을 때 안사도 응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우리가 갑이라고 너무 힘으로 이기려고나 하지 않았는지?
부자동네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가는 길에 있는 인류학박물관이 문 닫을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틀림없지만
우리가 고집부리지 않았으면 최소한 광장주위에 있는 모형도나 중앙시장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지미’는 5일 동안 지가 유리한데로 하려고 우리를 초반에 제압하는 방식으로 내말 안 들으면 손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팁을 더 주고서라도 잘 했으면 여행은 보다 더 잘 했을 것 같았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1. 오로라 국제공항과 푸 에고 화산의 야경 2. 치사한 인간 ‘지미 x x 끼’>
▶중앙공원(광장)과 국립왕궁: 중앙공원(Central Park)을 중심으로 도시가 설계되었고, 1980년대에 재건하여
지금 모습이 되었는데 대통령궁은 1939~43에 건축했으며, 1990년 대통령은 단층 관저로 이사 갔다.
현재는 박물관이나 국빈을 대접하는 연회장은 미국서 수입한 2톤짜리 샹들리에가 있으며, 안뜰(courtyard)은
무데하르양식으로 꾸며져 있고, 두 손과 꺼지지 않는 불은 30년 내전을 끝낸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호화재료를 사용하여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 이곳을 ‘Palacio Nacional de la Cultura(국립문화왕궁)’라고 한다.
※국립고고인류학 박물관: 진열된 유품은 BC 250 전 것이 대부분이고, 돌로 돌을 쪼아 만든 조각, 흙을 구어 만든
자기와 오카리나와 피리의 조상의 악기, 틀에 넣어 만든 토기, 상형문자로 종이에 쓴 책 코디시즈?
무덤 벽화와 토기, 인 조각의 의상과 머리는 현재도 사용 중이다.
※과테말라 모형도: 중앙공원 대성당 뒤에는 마야의 풍성한 민예품시장이 있고, 국립고고학 민속학 박물관과
주위에 있는 미술관, 의상 박물관과 지도공원에는 전 국토모형을 축소해서 제작해 놓은 곳이 있다.
37개의 화산과 4개의 활화산이 있는 과테말라는 90% 가까이 산으로 이루어진 모든 지형에 이름을 써 붙여
한 눈에 볼 수 있어 이 나라 국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 만들어 놓았다.
<1. 중앙공원 광장 2~3. 국립고고인류학 박물관 건물들>
★과테말라시티: 해발 1,493m 되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온화하고 쾌적한 산악기후이라 '영원한 봄의
도시'로 불리는 이곳엔 전 인구 1,200만 중에 인구 82만(대도시권 320만)이 산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국제도시로 중앙아메리카 최대의 도시이며,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중심지로 1773년
지진으로 파괴된 안티구아를 대신하여 1776년 과테말라 총독의 수도로 건설되었다.
1917~18년에 거의 6주 동안 계속된 엄청난 지진으로 파괴된 뒤 현대적인 도시로 재건되었으며, 특히 남쪽을
비롯하여 구도시의 경계지역에 훌륭한 고급주택가가 건설되었고 값싼 주택들도 여러 지역에 세워졌다.
산카를로스 대학교(1676 설립)에는 예술, 상업, 직업, 군사교육을 위한 주요학부가 있으며, 지리와 역사학회와
몇몇 중요 박물관이 있고, Zona Viva 지역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밤거리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다.
에펠탑 모형의 철 구조물은 송신탑(Torre del reformador)으로 올라갈 수는 없지만 야간의 조명이 아름답다고
하고, 교황은 1983년과 2002년 2번 왔다고 한다.
이 도시에 살던 교민은 의류제조와 판매를 하고 있었으나 미국 등지로 떠나가고 현재는 6,000여 명이 있다.
<1. 라자 베르린에서 본 과테말라시티 2. 부자 동네에서 오다가 본 시내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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