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교회
수년 전에 일본에서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는 노(老) 농부의 인간승리 이야기가 SBS스페셜에서 소개된 바 있다. 30여 분간 방영된 내용은 이렇다.
과수원 일을 하면서 사용된 농약으로 인해 부인이 알레르기 피부발진, 각종 중독증상으로 고생하는 것을 본 노(老) 농부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사과를 재배할 결심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수원 토양을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갈고 갈면서 해를 거듭하지만 못된 벌레의 습격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한다. 바로 옆 과수원에서는 농약사용으로 풍성하게 사과들을 재배하는 광경을 보면서 마음한편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노(老)농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산에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데 나무의 과실이 제 때에 잘 맺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이전과는 달리 과수원 내에 자연스럽게 돋아나는 풀들을 베지 않고 잡초들도 제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여 수년간 지나니 쌓인 풀들과 자연배설물들이 훌륭한 거름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비로소 10년 만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탐스런 사과들을 재배하는데 성공한다.
이 사과는 특징이 있는데, 재배 중에 벌레가 침투하여 갉아 먹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살이 돋듯 자연치유가 된다. 또한 실온에 수개월간 보관해 두어도 수분만 빠져나갈 뿐 전혀 썩지 않았으며 맛은 기이하여 일본 내 최고급 호텔에서 고품격 요리의 재료로 사용되어져 호텔 방문객들로부터 “とっても おいしい!”(너무 맛있다!)라고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카메라 기자 앞에서 탐스런 사과를 들고 감개무량하면서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노(老)농부의 모습이 지금도 제 눈에 생생하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에서도 무농약 사과 재배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농약이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힘으로 땅이 스스로 사과를 재배하는 경이로운 모습이다. 아마도 죄가 들어오기 전 아담이 먹었던 과일들이 이런 종류가 아니었을까? 물론 아담 이후 현대에 이르기 전 인류가 먹었던 모든 먹거리들이 이런 자연적인 것들이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는 하나님의 농장(고전 3:9)이다. 이 농장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쉰 ‘성경’(딤후 3:16)이라는 말씀의 영으로 일구어져 열매를 맺는다. 땅이 스스로 사과를 재배하듯 교회는 말씀의 영의 주도로 믿음이 견고해지고 인수가 날마다 증가해 성장해 간다(행 16:5). 교회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쉰 말씀의 영이 주도함으로 핍박이나 박해를 받아도 오히려 믿음은 더 견고해지고 인수는 더 증가되어 간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열매가 많지 않으면 자꾸 농약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농장지기처럼! 많은 교회의 농장지기들이 농약의 유혹을 받는다. 효과가 검증되었다는 각종 프로그램, 야베스적 기복설교(대상 4:10), 무속 신앙적 성경해석, ‘큰 교회가 아름답다’는 종교적 외설, 윤리적인 설교, 심리학적인 설교, 율법적인 설교 등등 다양한 종류의 농약들이 사용되었다. 그러한 말씀은 건강한 가르침이 아니라 듣는 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말씀이다(딤후 4:3). 또 그러한 말씀은 빗나간 말씀이다(요이 9). 이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앞으로 나아간, 즉 올바른 것에서 더 지나쳐 나아간, 곧 건강한 가르침의 한계 밖의 말씀이다.
이것을 성서는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고후 2:17, 4:2)고 말한다.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는 것은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두 곳에 나온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 나오는 단어는 ‘kapeleus’인데, 이 단어는 소매로 팔다, 행상하다를 의미한다. 원래 이 단어는 하류층의 행상인들이 값싼 물건을 속여서 비싸게 파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행상하고 혼잡하게 했다. 고린도후서 4장 2절에 나오는 단어는 'duloo'인데,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올가미에 걸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는 금이나 포도주에 불순물을 섞듯이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고린도후서 2장 17절의 단어보다 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으로서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했다. 사도들의 사역은 얼마나 순수하고 참되었던가!
말씀에 불순물을 섞는 농장지기들은 아첨의 말을 하거나 탐욕의 탈을 쓰고 한다(살전 2:5). 탐욕의 탈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고 다니거나 말씀에 불순물을 섞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이익을 위하여 경건을 가장하는 것이다(딤전 6:6, 딛 1:11, 벧후 2:13). 그들은 마치 바른 길을 버리고 빗나가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갔다고 볼 수 있다. 발람은 불의의 대가를 사랑하였다. 발람은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참된 이방인 선지자였다. 그러나 그는 불의의 대가를 사랑했다(민 22:5, 7, 신 23:4, 느 13:2, 계 2:14).
말씀에 불순물을 섞지 않는 농장지기들은 바른 길을 간다. 바른 길을 간다는 것은 진리의 길(벧후 2:2)과 의의 길(벧후 2:21)을 가는 것이며, 구부러짐이나 치우침이 없이, 곧 불의가 없이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 길은 건강한 말씀과 경건에 따른 가르침의 길이다(딤전 6:3). 주님의 건강한 말씀은 경건에 따른 가르침의 근원이다. 특별히 어떤 방면에서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르칠 때, 그것은 경건에 따른 가르침이 된다.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은 언제나 경건, 즉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생활을 하게 한다.
그러나 많은 농자지기들이 생각이 썩어 진리를 잃어버림(빼앗김)으로써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다(딤전 6:5). 그들이 진리를 잃어버렸다(빼앗겼다)는 것은 한때 진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빼앗겼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지금 진리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경건을 물질적인 이익을 얻는 길로 삼는다. 즉 경건을 이익을 얻는 장사로 삼는다. 이것은 그들이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다(딤전 6:10). 삯군 목자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무지 말씀의 영의 일하심을 기다리지 못한다. 변질된 말씀의 거름인 혼잡한 말씀을 뿌린다.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우리나라에는 작지 않은 교회들, 곧 현대판 버가모 교회들이 많다. 참 그리고 아쉬운 것은 농약으로 재배된 사과가 시간이 지나면 썩듯이 비슷한 행태를 요즘 쉽게 농장지기들에게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추문으로 복음, 곧 기쁜 소식이 아니라 아름답지 못한 소식을 온 세상에 흩뿌린다.
‘진짜 교회’는 성장을 의식하지 않는다.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선포하고(설교),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전하고(전도),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가르치고, 성장을 의식하지 낳고,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양육하고,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건축하고,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봉사하고,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드린다(헌금). 성장을 의식하면 말씀의 영을 무시하는 것이다.
교회는 농약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당연히 농약 중독증상도 없어야 한다. 상처가 나도 마데카솔을 사용하듯 생살이 잘 차오른다. 그런 교회가 ‘유∙기∙농 교회’이다. 유기농 교회의 농장지기인 사역자는 그 일본 노(老)농부처럼 사과나무를 기른다. 실패를 거듭해도 꾸준히 말씀의 영, 곧 성령의 열매(갈 5:22-23)들이 맺히길 기다린다. 많은 사과가 아니라 맛있고 완전하고 온전한 사과를 기다린다. 말씀의 영이 성장 DNA요, 말씀의 영이 성숙 DNA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이고(골 2:2)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이다(엡 3:4). 그러므로 하나님의 농장인 교회에는 말씀 안에 하나님과 그리스도, 즉 진리, 곧 실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진리, 곧 실재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여 교회를 사역하는 농장지기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열매 맺는 것(롬 7:4)이 아니라 농장지기 자신을 열매 맺는다.
첫댓글 최고의 영적 엑기스로 뽑습니다 이 부분을 다시 읽었습니다 브니엘님 고맙습니다 여기^^
‘진짜 교회’는 성장을 의식하지 않는다.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선포하고(설교),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전하고(전도),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가르치고, 성장을 의식하지 낳고,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양육하고,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건축하고,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봉사하고, 성장을 의식하지 않고 드린다(헌금). 성장을 의식하면 말씀의 영을 무시하는 것이다.
교회는 농약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당연히 농약 중독증상도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