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송시비 / 건립경위 및 행사 “이 땅은 나를 술마시게 한다“더니 -너무도 아까운 시인의 타계와 歸去來辭,詩碑
급기야 임은 강을 건너시고 깊은 강물소리만 우리를 오한으로 에워 쌉니다 ........................... 임은 언제나 정의와 자유의 시심으로 타오르는 불꽃 심지였습니다 임은 언제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힘을 북돋우셨고 소외당한 이들을 껴안는 품이셨습니다. 임은 언제나 깨끗한 모습으로 고독하셨고 자상하게 우리를 이끌어주신 길라잡이셨습니다. 이제 건너신 강, 아늑하고 가차운 그나라에서 임을 잃은 우리들의 號哭 들으시겠지요 좋은 시 많이 쓰셔서 부쳐주시고요 안경도 벗어버리고 한껏 평안을 누리소서 임이여, 우리들의 임이여- 최은하(한국현대시인협회회장)시인의 추모시 낭송속에 전북 순창군 귀례체육공원 언덕에서 03.11.15.오후2시에 준공행사가 거행되였다. 서울에서 대형버스 2대에 나눠탄 우리들은 새로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 현장에 도달하였고 이미 광주,부산, 목포,전주 등지에서 30여명의 작가들이 뫃여 있었다. 그의 시 가운데서 선택된 “반딧불”이 반딧불이를 닮게 考案된 화강석위에 이근배시인의 글씨로 조각되였고 설계는 성신여대 미술과 장윤우교수가 맡았다는 현지 장교철 시인의 설명이 뒤따랐다. 서울문인과 순창문인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군비 700만원과 서울모금 77명이 639만원. 순창지역은 108명이 528만원, 도합 1067만원을 거출하여 2년만에 빛을 보게 되였다. 元老 차범석 예술원회장,문덕수 고문,함동선 건립위원장, 국회의원 이강래,강인섭의원,신세훈 문인협회이사장의 축사가 이여졌다. 오전에 뿌려준 비로 인해 四圍가 맑고 깨끗하여 행사를 한층 보이게 해주었다. 순창시인 서복희가 낭송한
권일송의 시, 반딧불- 단순히 사랑만을 노래하기엔 / 하늘은 너무나 깊고 푸르렀다
끝모를 無名의 들판에 / 훨훨 나는 새의 모습으로 영원의 모서리에닿는다 땅위에 영그는 작은 열매들은 / 저마다 평화로운 식탁 둘레에 노동의 새벽을 열어 주나니 하늘에게 가는 목숨이야/ 어디 날개 달린 새 뿐이랴 모시 수건으로 정갈히 닦아낸 / 쟁반위의 밤하늘엔 반딧불로 어지러운 / 떠돌이의 고향이 보인다. 그렇다 너무 그는 일찍 가고 말았다. 1933년 순창읍 가남리 가잠마을에서 출생한 권시인은 목포 문태고등학교,영흥고등학교 교사로 활동중에 한국일보,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에 시당선함으로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였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분과회장과 현대시인협회회장, 국제 PEN클럽한국본부부회장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아깝게도 지병인 간경화로 1955년 11월에 他界하였으니 겨우 62세였다. 저서로는 시집 “이 땅은 나를 술마시게 한다”“도시의 화전민” “비비추의 사랑”등이 수필집 “이 성숙한 밤을 위하여” ‘우리들의 시대를 위하여’ “미완의 길목에서” “슬픔을 가르쳐 드립니다”등이 칼럼집 “전환기의 새벽”을 간행하였다.이외에도 공저,번역본,評傳,장편서사시등이 다수 남아서 그의 떠남을 아쉽게 한다. 서울 청진동과 무교동에서 <흑산도>라는 홍어횟집을 차려 우리를 불렀을때 막걸리와 함께 이른바 “홍탁”을 우리는 얼마나 마셨던가. 술,술, 이 땅이 그를 마시게 만든 술로 가버린 그에겐 황량한 사회,非理가 난무하는 情勢뿐이 아닌 나도 한 몫을 거든 죄가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남아서 아직도 술에 절어 살고 있으니 이게 무슨 몰골인가 언젠가는 그의 뒤를 쫓을 것이다. 60년대- 권일송,신세훈,강인섭,이근배 시인이 뫃여서 동인지 “新春詩”를 만들며 19집까지 한껏 기세를 드높혔었는데 권시백과 박봉우,윤삼하,조태일,황명시인이 이미 타계하였다. 우리는 권시인의 生家를 찾았고 古宅에서 빚어 판매에 성공한 순창고추장을 70여 일행이 모두 선물로 받아 왔다. 허허, 귀거래로다 미망인과 장성한 세 아들을 보며 이제 그를 다시 그려본다. 내가 그에게 진 빚을 원토록 전해질 詩碑로나 속죄할까.아니면 그토록 그가 즐기던 홍합 한접시를올려놓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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