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면은 멀리하고 편리함이나 절약하는 것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것 같다. 내 어머니는 80세를 넘긴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젊어서는 그렇게 깔끔하고 깨끗함을 강조하셨던 분인데 이제는 입는 것이나 씻는 것, 정리·정돈하는 것도 대충 대충을 좋아하신다.
몇 달 전에 난 우연히 거실의 탁자위에 휴지조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관심을 갖고 관찰해보니 부엌의 식탁 위, 화장실의 휴지걸이 위 등 집안의 여러 곳에서 간혹 보인다. 난 무슨 이유로 이런 것들이 집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원인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연세가 들어가면서 콧물이 자주 나오는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을 뜯어 코를 푸시곤 살며시 삼각형으로 접어 탁자위의 물건을 디딤돌로 삼아 놓으신 것이다. 그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코를 풀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질 않아 아까워서 다시 쓰려고 접어놓으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난 할 말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 깔끔하던 어머니가 언제부터 두루마리 휴지 한 칸도 재사용하고 계셨는지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종종 좌변기에 소변을 보시곤 물을 내리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10여분씩 아버지를 닦달하곤 하셨던 분이다. 소변을 보고나면 냄새가 얼마나 나는데 물도 안 내리고 그냥 나온다고 말이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눈만 껌벅거리시며 나중에 내리려고 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둘러대시곤 하셨다.
그런 분이 이제는 코를 푼 휴지 한 칸이 아까워 재사용하려고 여기저기 어지럽게 늘어놓으신 것이다. 난 어머니의 이런 행동을 고치기 위해서 조목조목 따지듯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엄마! 요즘 젊은 세대는 밥 먹는 식탁에 티슈만 올려놓지 두루마리 휴지는 화장실용이라고 올려놓게 하지도 않아요. 근데 엄만 코푼 휴지를 접어서 올려놓으면 되겠어요? 혹여 젊은 애들이 와서 같이 식사하면 기절할 테니 그러지 말고 바로바로 버려요!” 말이 존댓말이지 억양은 거의 훈계 수준이라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분이 나쁠 법도 한 말투로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반격을 하신다. “요즘 젊은 것들은 아까운 걸 몰라서 그래! 돈도 못 버는 것들이 일회용이나 사서 쓰고, 정부에다 애 키우기 힘들다고 손이나 내미는 것들이 위생은 무슨 말라빠진 위생타령이야!”하신다. 내가 젊은 세대를 핑계로 어머니의 버릇(?)을 고치려 한 것 때문에 나대신 욕을 얻어먹었다.
나는 다시 물러서지 않고 “엄만 아버지가 좌변기에 소변보고 물 안 내린다고 그렇게 잔소리해놓고 코푼 휴지는 왜 안 버리는 거임?” 그러자 어머니는 다시 크게 반격을 하신다. “너는! 너는 왜 화장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안 버리고 나오는 거냐? 한 번 사용한 물은 버려야지!”하신다. 난 깜짝 놀랐다. 사실 나도 얼마 전부터 제주에 와서 어머니와 살면서 생긴 버릇이다. 화장실이 넓다 보니 아침마다 세수하고 나서 헹군 물을 버리지 않고 좌변기 옆 한쪽에 밀어두었다가 볼일을 본 다음 손을 씻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것을 눈치체고 반격을 가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한번 사용한 물을 재사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계셨던 모양이다.
사실 아버지가 화장실 사용 후 처리를 미룬 문제는 내가 나이가 들어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전립선비대증으로 약을 복용하고 계신 것은 알았는데 내가 똑같은 입장이 되어보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와 똑같은 증상으로 고생하면서 알게 된 것은 아버지도 소변을 보러 갔다가 억지로 짜내듯 간신히 볼일을 보고 일어서면서 곧 다시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양도 적게 나왔고 다시 와서 볼일을 시원하게 본 후에 한꺼번에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법하다. 평상시의 소변 양이었으면 당연히 물을 내렸을 것이지만 그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매번 물을 내리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도 직장을 떠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이곳에 와서 생긴 헹군 물을 재사용하겠다는 것이나, 아버지의 전립선비대증으로 인해 소변을 적게 보았기 때문에 다음에 한꺼번에 내려야겠다는 것이나, 어머니의 휴지 한 칸이라도 콧물이 적게 묻었으니 나중에 다시 사용해야겠다는 마음은 모두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각자의 처한 입장에 따라서 본인들은 나름 이유가 있는 행동을 하였겠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선 그것이 배려 없는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헹군 물을 재사용하지 않으면서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말로 설득하기 보다는 보는 즉시 휴지를 쓰레기통으로 넣어 버린다. 어머니도 나와 한바탕 한 것을 기억하고 계셔서인지 휴지를 재사용하겠다고 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처럼 연세가 들어가시는 어르신들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돈을 버는 입장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아써야하는 입장으로 바뀌게 되면서 아껴야한다는 마음이 체면을 유지하는 것보다 점점 커져가는 것 같다. 그 또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배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자식 또한 부모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또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